217화 우정이 돈독해짐
“그러니까… 얼마라고요?”
“크흠. 11원입니다.”
오 마이 갓.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11원, 11원… 미화로는 딱 1센트.
이게 무엇이냐 하면 바로 GL전자의 MC사업본부가 모바일 기기 1대를 팔 때마다 얻었던 수익이다.
GL폰이 한 대 팔릴 때마다 GL은 1센트를 벌어들이는 거다!
‘60억 인구한테 다 팔아도 700억 원이 안 되잖아?’
괜히 사업본부를 통째로 판 게 아니었다.
지랄폰 지랄폰 했다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러면 70억 명한테 모두 팔아도 800억 원이 안 되는 거네?
생각보다 처참한 상황의 GL폰이었다.
그래도 스웜폰? SW폰?
아직 네이밍은 못 했지만 여하튼 내가 스마트폰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면 GL보다 몇 배는 더 좋은 환경이기는 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간 GL이 온갖 삽질을 해 온 건 맞지만 그 삽질이 아예 쓸모없던 건 아니었더라.
‘그렇게 세계 최초를 좋아했으니…….’
세계 최초의 듀얼 코어, 세계 최초의 옵티머스 3D, 세계 최초의 어쩌고저쩌고, 마지막으로 롤러블폰까지.
시도만큼은 이것저것 해 본 덕에 갖고 있는 IP가 쓸 만한 게 몇 개 있었다.
물론 100개의 지적재산권 중 10개 정도만 앞으로의 스마트폰에 필요한 수준이지만 그게 어디인가.
‘손 떨림 방지 카메라 기능… 노크온으로 화면 락, 언락, 터치 패턴… 어이고. 많기도 하네.’
저렇게 개발한 기술 중 수익성이 난 게 10%가 안 돼서 그렇지
“뭐… 그래도 이제 상황이 나아지긴 하겠죠?”
“하하. 예. 그러긴 할 겁니다. 우선 기존의 GL전자 방식과는 다르게 저희는 자체 칩셋을 설계할 수 있으니까요.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부분도 자체 개발한 AI가 이미 존재하고요. 그것도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요.”
다행인 부분은 그런 처참한 수익성이 꽤나 개선될 여지가 많다는 것.
기존 GL전자에서 다른 회사의 기술이나 SW에서 의존하던 부분 중 상당수가 내 사업체들이 현재 갖고 있는 거로 대체 가능했다.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었고 말이다.
“노키아와 블랙베리 측은 반응이 어때요?”
“양 사 모두 적극적입니다. 핀란드 정부 반응도 긍정적이고요. 다만, 정부와 국회 측 인사들과 얘기를 나눠 보니 아무래도 핀란드 투자 유치를 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거야 뭐, 데이터 센터 수십억 달러어치 짓는 거로 대체하면 되죠.”
애초에 핀란드는 데이터 센터를 짓기에 무척이나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데이터 센터 운영의 가장 큰 지출은 바로 전력.
그런 만큼 1년 대부분 서늘한 기후의 북유럽 국가들에 데이터 센터를 지으면 전산실 냉각을 위한 전력을 무척이나 줄일 수 있다.
특히 핀란드에서라면 건물 냉각을 위해 차가운 바닷물을 끌고 와 사용할 수도 있고 말이다.
‘SCP 추가 데이터 센터 건설 지역으로 논의되고 있는 데가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세 나라였으니까.’
일석이조, 아니 나아가 일석 삼조까지 가능할 것 같았다.
“음, 몇 년 전 노르웨이에 지었던 SCP 데이터 센터는 아예 지역 난방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했죠?”
“예. 데이터 센터에서 나오는 열을 단열 파이프 시스템을 통해 난방 에너지로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핀란드에 짓는 데이터 센터도 그런 설비를 갖추게 할까요?”
“네. 그 방식을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댔죠? 그거 가지고도 딜을 한번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에 합쳐서 SCP의 ESG 경영에 대한 홍보도 겸하고요.”
환경, 사회, 지배 구조 등에 있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ESG 경영.
최근 들어 여러 빅테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체면치레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 이미지니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내가 생각하기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브랜드 이미지였다.
아이폰은 왜 갤럭시보다 더 잘나갈까?
괴물급 칩 성능? 클라우드의 안정성? 스피커 품질? 아니면 iOS 간 연동성?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닐까.
‘아이폰을 쓰는 게 갤럭시를 쓰는 것보다 더 있어 보이니까.’
요즘은 플립을 통해 그런 이미지를 어느 정도 쇄신했다고는 하지만, 오성폰을 쓰면 아재폰 쓴다는 소리가 아직도 나오곤 했다.
갤럭시를 쓰면 30대 대기업 남자일 것 같고, 아이폰을 쓰면 20대 초중반 디자이너 여자일 것 같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심했다.
미국 10대 사이에서는 갤럭시를 쓴다고 하면 왜 그런 걸 쓰냐고 이상하게 보는 수준.
‘스웜폰이 그래서는 안 되겠지.’
단순히 성능이 어떻고, 가격이 어떻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 싶은, 갖고 싶은 폰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처음 생각은 그냥 가볍기만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본격적이게 되네.’
물론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폰을 만들 수 있을지.
하지만 다른 거 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올해 예산으로 2,000억 달러 정도면 되겠죠?”
“…예?”
세상에는 가끔 무식한 방법이 제일 효과적일 때가 있다는걸.
“스마트폰 사업이요. 처음에는 기존 사업체들의 UI나 UX, 디자인 같은 것들을 적당히 바꿔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요. 이왕 시작한 거 세계 최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플 시총이 지금 1조 달러가 넘던데.
십 년이 넘는 아이폰의 역사를 빠르게 따라잡으려면 한 해에 2천억 달러 정도는 써야 하지 않을까.
* * *
[마이크 - 임상 2차를 방금 끝마쳤어. 결과는 당연히 성공적이었고. 바로 3차에 들어갈 예정이야.]
뉴스로 나오는 것보다 한발 앞서 마이크의 보고를 받았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백신 개발.
언론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SW 바이오의 백신에 주목하고 있었다.
[SW 바이오 코로나19 백신… 임상 2차 통과 완료]
[1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통해 안전성 검증한 SW 바이오, 1차 임상 대상자 경과도 매우 좋아.]
[트럼프 대통령 “SW 바이오에 대한 큰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올해 10월이 오기 전, 우리는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그런 만큼 SW 바이오에 대한 걱정 섞인 우려도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시샘 가득한 우려라고 해야 하려나.
[백신 전문가에 물었다… “SW 바이오의 백신, 과연 안전할까?”]
[신약 개발 경험이 거의 전무한 SW 바이오, 더욱 까다로운 검증 필요해.]
[국제백신연구소에 따르면 SW 바이오 백신의 심근염 가능성 결코 무시할 수 없어.]
화이자를 필두로 한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의 견제.
그들에게 있어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하나의 큰 기회였다.
백신 개발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떼돈을 벌 수 있는 크나큰 기회.
이미 여러 나라의 정부와 다자간 기구들이 엄청난 돈을 약속한 상황이다.
백신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높은 가격에 수십억 도스를 팔 수 있었다.
그런데 당장에라도 자기네들 것이 될 것 같았던 그 보상을 갑자기 나타난 SW 바이오라는 놈이 전부 채 갈 지경인 거다.
[선우진, “팬데믹 종식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백신을 통해 돈을 벌려는 생각은 없어. 개발 비용만 보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전 세계에 공급할 것. 다만, 제3세계국 등을 위해 부유한 나라에게는 더 높은 부담을 요구할 뿐.”]
[“돈방석? 앉기 싫어!” 최소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포기한 선우진의 SW 바이오!]
[백신 개발 성공 시 연구원들에게 지급될 인센티브… 알고 보니 전부 선우진의 사비로 지급될 예정?]
[돈 벌기 싫은 세계 최고 부자? 선우진의 지속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알아보다.]
하지만 뭐… 그런 견제가 먹힐 리가 없다.
SW 바이오의 백신이 각국 정부들의 일부 부담금을 제외하고는 전면 무료화될 것이라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와;;; 지리네, 진짜.
-저거 글고 말이 개발 비용 보전이지… 생산 공장 대규모로 짓는 데 들어간 건 그대로 SW 바이오가 안고 가겠다고 함; 본인 회사들 자산인 거라고… 사실 백신 수십억 도스 생산해야 하는 거라 딱히 필요없는 과투자였는데도.
-ㄹㅇ 선우진은 딱 이거네. 내가 돈이 있지, 가오가 없냐?
-진짜 개지린다. 이런 게 진짜 국위선양인데, 선우진 군 면제 안 시켜 주냐?
-ㅋㅋㅋㅋㅋ아, 시켜 준다고~ 이제 군대 안 가도 된다고~
-(정보) 이제는 진짜 안 가도 된다. 예비군만 가면 된다.
-나 저번에 직장 예비군 갔다가 선우진 봤는데ㅋㅋㅋㅋㅋ 지루해 죽을라 하던데.
-ㅅㅂㅋㅋㅋ 선우진 직장 예비군이면 주위 사람 대부분 자기 회사 직원들인 거 아님?
-ㅇㅇ
-근데 직원들도 좀 불편했겠는데? 직장 예비군 받으러 갔는데 옆에 회사 회장님 있는 거 아냐.
-ㄴㄴ 오히려 개꿀. 조교랑 교관들도 선우진 눈치 보느라 설렁설렁해서. 원래도 사내 예비군은 글킨 한데, 더 좋아지더라.
-여하튼 선우진만 한 놈도 어디 없다. 몇조 달러 있다고 해서 몇천억 달러가 안 아쉬운 게 아닌데… 그걸 걍 다 포기하네.
-맞말임. 팬데믹 빨리 회복할수록 본인한테 도움되니까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 코로나 백신 시장 예상 매출이 몇천억 달러던데, 그거 포기하는 거 쉬운 거 아님.
지금의 나는 거의 성자 취급을 받는 중.
부정적인 논조의 기사들이 쏟아져도, 금방 ‘기자, 그래서 돈 얼마 받음?’ 따위의 댓글들로 도배되고는 이내 사라진다.
특히 임상 2차 결과를 통해 SW 바이오 백신의 안정성을 더욱 신뢰하게 된 트럼프가 아예 철퇴를 들어 버렸는데.
[일부러 불신과 불안감을 퍼뜨리려는 이들은 정부 차원에서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발 빠른 방역 조치를 통해 큰 발병을 억제하고, 재확산세를 최대한 낮추며, SW 바이오와 긴밀히 협력해 지금의 팬데믹을 종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며칠 전 있었던 트럼프의 연설.
요즘 들어 살판난 모습의 트럼프였다.
최근 미국 여러 주에서 행해진 다음 대선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 그의 지지율이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SW 바이오의 백신이 모든 임상 절차를 통과한 것도 아니고, 미국 전역에 배포된 것도 아님에도 발생한 놀라운 변화.
‘그런데…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미국 누적 확진자가 벌써 300만 명이 넘었을 텐데.’
딱히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원래부터 그렇게 신뢰성 높은 말을 하던 양반은 아니니까.
지금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거라고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지지율을 높여 재선에 성공하는 거일 거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저런 연설이 미국 내에서는 먹히고 있으니 말이다.
‘똥은 내가 다 치우는 거 같은데…….’
이런 걸 두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건가?
물론, 나는 곰이 아니라 돈도 챙기고 있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니 영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체로는 부족하겠어.’
최근 들어 결정한 또다른 사업 생각이 났다.
곰곰이 따져 보니 그림도 괜찮은 것 같고.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 모두 미국 기업이 된다면야.
트럼프의 정치 모토인 ‘Make America Great Again’에 딱 맞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열심히 내 스마트폰 사업을 지원해 주는 게 옳았다.
음… 어차피 애플처럼 자회사 세워서 거기에 순익 신고해 낮은 세율을 내도 애플은 미국 기업인 거잖아?
아무튼.
탁-
스마트폰을 열어 곧바로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 들어와 지내는 요즘.
서울 시간으로 오후 2시, 아마 워싱턴은 지금 새벽 1시인가 그럴 텐데.
이렇게 밤 늦게 전화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만 내일까지 기다릴 수도 없으니 그냥 하기로 했다.
“헬로?”
[오! 마이 프렌드!]
지금의 나는 그래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