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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222화 (222/267)

222화 돈이 엄청 필요함

“좋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박재용 부회장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스웜폰을 통한 오성과의 합작회사 설립.

다만, 반도체와 관련해서는 합작 얘기를 꺼내지 않고 내 계획만 알려 줬다.

“파운드리 회사를 세울 생각입니다.”

“예? 파운드리를요?”

그러자 놀라는 박재용 부회장.

하지만 그렇다고 낭패의 표정을 짓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요즘의 반도체 시장은 대활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5G등 이동통신의 발달, 데이터 센터 건설 붐, 그래픽 카드 수요 증가 등.

거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며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파운드리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은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것.

덕분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전년보다 매출 규모가 20% 넘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오성전자가 AMD나 SCP의 데이터 센터용 칩 등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반도체 시장이 엄청난 활황기인 만큼 나한테만 매달릴 필요는 없기 때문.

내 쪽에서 오는 수요가 사라지더라도 다른 기업들의 수요가 그 자리를 대체할 거라 보는 거다.

뭐, 실제로도 그럴 테고.

게다가.

‘아마 내가 초미세 공정이 아니라 10나노 이상급 파운드리 회사를 차릴 생각이라 알아듣지 않았을까.’

오성전자와 TSMC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 무대는 7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이었다.

두 회사 모두 5나노급 제품은 이제 막 양산에 들어간 상황이고, 3나노급 제품 양산을 위해 투자 및 공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

하지만 모든 반도체에 그런 초미세 공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전자 제품에는 다양한 반도체가 들어가는 만큼 굳이 7나노 이하의 제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즉, 박재용 부회장은 내가 차리게 될 파운드리 회사가 자신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게 되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기대를 깨 줘야겠지.’

“이번에 AMD가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으로 만드는 데이터 센터용 CPU와 GPU를 만든 거 아시죠? 내후년 출시된 젠4코어 기반 프로세서도 5나노 공정이 적용될 거고요. 초기에는 오성이나 TSMC에게 생산을 위탁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이후로는 제가 직접 해 보려고요.”

“…하하. 선 대표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7나노 이하의 공정 개발은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세계 3위의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도 몇 년 전 오랜 실패 끝에 개발을 포기했었고요.”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글로벌파운드리가 아니니까요.”

내 대답에 박재용 부회장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지금의 나는 아마 박재용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일 거다.

게다가 지금 상황은 ‘나 조만간 너희 파운드리랑 싸울 거임’이라고 선전포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런 그에게 내가 준비한 게 뭔지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AMD의 판단 결과에 따르면, 오성의 7나노 수율이 영 엉망이라 하더라고요.”

“…….”

“5나노도… 소문을 들어 보니 비슷하다죠? 아, 오성전자 보안 팀을 질책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희 쪽이 대단한 거지 오성 쪽이 엉망인 게 아니니까요. TSMC라고 해서 다르지도 않고요.”

“…….”

우선 오성전자의 현 상황.

지금은 양쪽 모두 반도체 품귀 속에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TSMC와 오성전자였지만, 두 회사의 격차는 명확했다.

7나노를 DUV가 아닌 더 선진적인 EUV 설비로 만들며 TSMC를 제쳤다고 자신만만하던 오성전자의 7나노 제품이 폭망한 수준의 수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

AMD의 보고 또한 그러했고, 다른 회사들의 상황을 살펴 보니 오성전자에 새롭게 물량을 줬던 엔비디아도 TSMC에 위탁하는 방향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7나노급 이하의 공정 개발은 어려운 일이죠. 글로벌 파운드리도 그렇고, 그 인텔도 진입에 실패했고, 오성도 TSMC와 비교해 난항을 겪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런 의미로-”

몇 달 전, 오성전자의 파운드리 관련 발표를 본 적이 있다.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할 거라는 야심찬 계획에 대한 발표.

그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를 꼽아 보자면…….

‘10년 동안 133조 원? 음… 생각보다 별로 많이 안 드네?’

요즘 버는 돈의 단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지다 보니 자연스레 들어 버린 생각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만만세.

아무튼, 오성전자가 10년 동안 투자한다는 133조 원.

그 두 배를 투자한다면, 그것도 10년이 아니라 한 1~2년 사이에.

그 정도면 오성 반도체의 지난 20년과 앞으로의 3년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온 금액이.

“-2천억 달러를 준비했습니다.”

2천억 달러.

“뭐, 그 정도면 2년 정도 투자금으로는 충분하겠죠.”

이어진 내 말에 박재용 부회장의 입가가 굳는 게 보였다.

말을 고르는 듯 몇 번 달싹이더니, 이내 입을 연다.

“…선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말씀을 지금 제게 해 주시는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믿기… 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보고 지레 겁먹고 파운드리를 포기하라는 말씀은 아니실 텐데요.”

“에이, 제가 그럴 리가요. 그간의 관계도 있고, 저희는 이제 동료 아닙니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절대 강자 애플을 꺾기 위해 힘을 합치는 동료. 그리고 제가 이런 말을 한 건 겁먹으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

“전 지금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제가 차릴 파운드리 회사에 투자할 기회.”

이제는 더욱 괴상망측한 얼굴로 변하는 박재용 부회장의 얼굴.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제가 설립한 반도체 회사는 본사를 미국에 둔 회사가 될 겁니다. 제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할 건지 좀 알 거든요.”

“차기 말씀이십니까?”

“예. 트럼프요. 아시겠지만 SW 바이오 백신의 임상 3차만 제때 통과한다면 다음 대선은 트럼프의 재선으로 끝날 겁니다.”

내게는 돈 말고 다른 빽도 한 명 있었다.

“그리도 차기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을 벌일 겁니다. 반도체 전쟁을요.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한창인 만큼, 그 싹을 눌러 놓으려 할 겁니다. 대중국 기술 제재를 단행해, TSMC나 오성전자가 중국의 팹리스 업체들로부터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하는 걸 원천 금지시킬 겁니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마치 표정으로 그렇게 묻는 듯한 박 부회장.

나도 미소로 답을 대신 해 준 후 말을 이었다.

“이 계획의 최종 목표는 미국이 칩 설계를 리드하는 건 물론, 나아가 제조까지 리드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게 하는 겁니다. 음… 아마 그걸 위해서 생산 기반이 중국에 있는 반도체 회사들에 대한 여러 제재가 가해지겠죠. 그러니까 오성전자 같은 곳 말입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미국에 본사를 둔 파운드리 기업에게는 엄청난 혜택이 갈 거고요.”

“그렇죠. 엄청난 지원금이 뿌려지지 않을까요?”

이쯤 됐으면 박재용 부회장도 내가 말하는 게 뭔 말인지 알아들었을 거다.

대충 정리하자면…….

“이 모든 건… 트럼프 현 대통령께 들은 겁니까?”

“아뇨.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제가 계획했고, 그걸 트럼프에게 전달했죠.”

내 등 뒤에 미국 있음.

트럼프 등 뒤에 내가 있는 건가?

뭐, 여하튼 대충 비슷한 뜻이었다.

박재용 부회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어제의 대화는 순조롭게 끝이 났다.

박재용 부회장과 나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방향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오성 쪽과 협력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가만 보면 오성도 여러 시도는 참 많이 했단 말이지.’

비록 그런 시도들 중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면 모두 1위가 아니라 2위의 콩 라인이지만 말이다.

아예 OS처럼 콩 라인은커녕 3위도 간신히 따낸 분야도 있었고.

“실리콘밸리의 모든 개발 인력을 쓸어 담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운영체제도 독자적인 개발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오성 측에서도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타이젠에 대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선점 효과라는 건 참 무섭다.

특히 운영체제, OS 시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모바일에서 쓰이는 운영체제는 단 두 가지다.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iOS가 사실상 아이폰에만 사용되는 걸 감안하면, 안드로이드가 거의 모든 시장을 장악했다 볼 수 있다.

안드로이드와 iOS가 각각 72%와 25%, 그 외의 것들은 운영체제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OS에 투자하는 게 맞을까.’

스웜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부터 시작된 의문이다.

자체 OS 개발.

정확히는 독자 운영체제 생태계를 정착시키는 것.

가능만 하다면 누구나 그걸 원할 수밖에 없다.

안드로이드를 쓰는 순간, 구글과의 협상력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힘들지, 무척이나.’

자체 OS 개발은 오성전자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도 시도했던 일이다.

그리고 둘 다 망했다.

데스크톱 OS를 갖고 있고, 여러 소프트웨어 제작사들과의 커넥션도 탄탄한 마이크로소프트조차 몇 년 못 가고 포기했을 정도다.

심지어 오성전자는 바다라는 OS를 개발했다가 대차게 망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타이젠이라는 운영체제까지 재차 개발했다가 또 참패했다.

오성뿐만 아니라 인텔과 모토로라 등이 함께 참여해 개발했던 다목적 운영체제, 타이젠.

당연하게도 타이젠 또한 망했다.

모바일 쪽은 진작에 철수했고, 그나마 갤럭시 워치 등 오성의 웨어러블 기기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웨어러블 쪽에서도 타이젠 철수를 계획하신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현재는 구글 통합 웨어러블 OS인 웨어 OS로의 전환을 생각 중입니다.”

물론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이대로라면 1, 2년이 한계겠지만 말이다.

“일단 보류해 두시는 게 어떨까요? 타이젠을 넘겨주시면 그걸 기반으로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할 생각입니다. 물론 당장 스웜폰에 써먹지는 못하겠지만요.”

운영체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본으로는 안 된다.

앱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

결국 앱 개발자들이 앱을 만들고 발전시켜야 운영체제 또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현재로서는 아무리 돈을 들여도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일단은 스웜폰을 안드로이드 기반 형태로 출시해 사용자 점유율을 늘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용자 수를 확보하고, 막대한 자본을 풀어 강제로라도 앱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

물론 그러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자금이 남들 기준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내 기준에서도 엄청나다 느낄 정도의 막대한 자금일 것이다.

‘1년에 최소 수천억 달러…….’

앱 스토어의 글로벌 매출이 6천억 달러 내외라고 한다.

그 엇비슷한 금액을 투자해야 할 터.

내가 돈 복사, 돈 복사를 외쳐도 정말로 돈을 찍어 낼 수는 있는 게 아닌 터라 그만한 금액은 나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데 또, 이 돈 복사라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란 말이지?’

정확히는 거의 비슷한 짓 정도는 할 수 있다.

[가상 화폐 제2의 전성기? 코로나 영향으로 엄청난 상승세!]

…차이나 머니 다음으로 나의 오랜 친구, 가상 화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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