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본인, 강림
“멜빈 캐피탈이 GME 5천만 주를 공매도했습니다.”
게임스탑의 현 주가는 20달러 정도.
즉, 10억 달러 정도의 공매도 물량인 거다.
‘뭔가… 소박하네.’
당장 텍사스주에 10년 동안 1,00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게 몇 주 전이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스탑에 쏟아진 공매도 금액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애초에 게임스탑의 시총 자체도 15억 달러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니까.’
이렇게 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번 건지 실감이 났다.
한때 게임스탑으로 2억가량을 잃고 울듯이 소주를 마셨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2억 원은 물 쓰듯 쓰는 금액. 아마 오늘 쓴 돈도 그 정도가 넘을 거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제이슨의 보고를 마저 들었다.
“게임스탑의 공매도 물량이 총주식 발행 수의 140%가 넘습니다. 하하, 전형적인 헤지펀드들의 개수작이군요.”
유통 주식보다 많은 수량의 공매도.
헤지펀드들이 무차입 공매도를 했을 확률이 높았다.
공매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아직 없는 주식을 먼저 빌려서 팔고,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싸게 사 빌렸던 걸 되갚아 이윤을 보는 방식.
그게 바로 차입 공매도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공매도 방식으로, 주식을 빌려준 다른 주주들의 주식을 빌려 팔고 나중에 사서 메우는 방식이다.
하지만 무차입 공매도는 있지도 않은 주식을 차입도 안 하고 일단 내다 팔고 보는 거다.
우선 매도한 후 결제일 이전에만 주식을 되갚으면 되는 것.
투기 성격이 강해, 한국과 홍콩 등의 나라에서는 자본시장법상 엄격하게 금지되는 행위였다.
‘미국은 그렇지 않아 지금 같은 일이 발생한 거지만.’
미국의 경우는 시장 조성자에 한해 무차입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다.
시장 조성자란 거래소와 시장 조성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
즉, 개인은 불가능하지만 기관에게는 무차입 공매도가 허용된다는 뜻이다.
갖고 있지도, 빌리지도 않은 주식을 기관들은 일단 갖다 팔고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잔뜩 팔아서 주가가 낮아지게 되면 그때 가서 산 다음 갚는 거였으니, 개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기관 새끼들.
-(인증)난 GME 콜 옵션에 5만 달러를 투자했어.
-우리가 본때를 보여 주자고! Fuck u, melvin capital.
-언제까지 기관들 수작질에 놀아나야 해? 게다가 숏 물량이 140%? 아주 그냥 회사 하나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네!
-우리 wsb가 뭉쳐서 게임스탑을 계속 매입해야 해. 저 ㅈ같은 무차입 공매도를 시장에서 몰아내자고.
게임스탑 사태가 그런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레딧의 WallStreetBets라는 곳에서 게임스탑 관련 논의가 오가고 있던데요. 해당 주식과 콜 옵션을 집단 매수해, 숏 스퀴즈를 일으키자고 하더군요. 제이슨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개인 투자자들이 모여 숏 스퀴즈라… 글쎄요. 원래라면 실패했을 거라 단언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멜빈 캐피탈을 비롯한 다른 헤지펀드들이 큰 실수를 했거든요. GME 주식의 물량은 한정되어 있는데도, 과도한 공매도 포지션을 시장에 노출시켰습니다. 뭐, 우리가 이렇게 공매도 때릴 거니까 얼른 도망치라는 일종의 경고였겠지만… 너무 과도했습니다. 140%라뇨. 이 정도로 무리한 공매도 전략을 펼치면 다른 하이에나들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죠.”
다른 하이에나들이라.
제이슨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다른 기관들이 오히려 개인의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예. 공매도로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익은 100%에 불과하지만, 손실은 무제한이니까요.”
공매도의 최대 수익은 제한적이다.
현재 게임스탑의 시총은 15억 달러 정도.
지금 가격에 전 물량을 공매도 때리고, 주가를 1원까지 하락시킨다 해도 15억 달러가 벌 수 있는 최대라는 뜻이다.
하지만 손실의 경우는 다르다.
주식의 가격이 내려가는 데에는 0이라는 끝이 존재하지만, 오르는 데에는 한계가 없으니까.
공매도를 때린 주식의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기관은 손해를 본다.
주가가 무한대가 되면 손실도 무한대가 된다는 뜻.
‘공매도한 투자 기관의 손실이 무한대가 된다는 건, 반대로 그들을 공격한 쪽은 이득을 무한대로 본다는 거지.’
물론 이론상으로만 그렇지.
공매도를 때린 기관들의 자본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무한대의 이득을 볼 수는 없다.
그저 공매도 기관들이 파산하게 되는 수준이 최대치가 될 뿐.
하지만 그래도…….
“현재 게임스탑에 공매도를 한 투자 기관들이 어디 어디죠?”
“대표적인 곳은 멜빈 캐피탈과 시트론 리서치입니다. 그 외 소규모 헤지 펀드가 몇 곳 더 있고요.”
“그곳들 운용 자산을 모두 합치면 어느 정도 될까요?”
“멜빈 캐피탈이 현재 125억 달러, 시트론 리서치는 320억 달러, 그 외의 헤지 펀드들까지 합치면… 총 600억 달러가 될 것 같습니다.”
600억 달러.
게임스탑의 시총 15억 달러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에게?’ 싶었지만, 600억 달러는 얘기가 좀 달랐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저희도 이참에 한번 하이에나 되어 볼까요?”
* * *
사실 나는 게임스탑에 공매도를 때린 기관들의 도덕성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예전이었다면 나도 그런 기관들을 욕했겠지만…….
이제는 정작 내가 그런 기관의 수장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다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짓.
불법만 아니라면 비난할 이유가 없다 생각한다.
조금 내로남불이긴 하지만, 내가 막상 기관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라.
그러니까.
[일주일 만에 300% 오른 게임스탑, 76.35달러로 마무리.]
[발등에 불 떨어진 멜빈 캐피탈과 시트론 리서치.]
[헤지 펀드들, 개인 투자자들에 패배하나? GME 사태를 알아보다.]
저들도 날 원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본인들도 돈을 벌기 위해 게임스탑에 숏을 쳤던 것처럼, 나도 그러는 것뿐이니까.
헤지 펀드의 최대 목적이 돈이듯, 나 또한 돈 벌려고 하는 거다.
-제군들! 다 봤지? 우리가 승리하고 있어!
-설마 70달러가 왔다고 파는 병신은 없겠지? 100, 200, 500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Hold the line!
-don’t sell! Hold the line!
-500달러가 아니라 1,000달러까지도 갈 수 있을 거야.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레딧의 WSB 서브레딧을 자주 들여다봤다.
과거의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서브레딧.
저 ‘hold the line’이라는 말을 믿고 실제로 라인을 지켰었던 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2억 3,700만 원이라는 결과였고.
뭐, 저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거래 어플인 로빈후드의 GME 매수 제한이나, 각종 언론 플레이 등 숏 스퀴즈를 막으려는 기관들의 온갖 수작이 너무 강력했던 것일 뿐.
어쨌거나-
[시트론 리서치, 게임스탑 주식 매수자들을 향해 ‘포커판의 호구들’이라 평해.]
[“지금처럼 주가가 높은 상황에서 게임스탑을 사는 건 멍청한 짓이다” 시트론 리서치의 트윗 화제.]
아직까지만 해도 지금의 폭등을 헤지 펀드들은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그저 성난 군중들의 일시적인 소요일 뿐이라 여기는 것.
하지만 바로 사흘 뒤.
[화제의 게임스탑, 결국 1주 만에 800% 상승. 161.45$로 마무리.]
끝내 160달러를 찍어 버린 게임스탑의 주가.
이제 슬슬 헤지 펀드들도 당황하지 않을까.
물론, 게임스탑이 끝도 없이 오르기만 한 건 아니다.
게임스탑의 주가는 160달러를 찍은 후 다음 날이 되자 조금씩 흘러내리며 90~110달러를 횡보했다.
[GME - 117.54$]
하지만 그때 올라온 머스크의 트윗.
[@elonmusk]
-Gamestonk!
R/wallstreetbets
누가 봐도 게임스탑을 말하는 듯한 ‘gamestonk’라는 트윗과 이번 사태의 주역인 WSB 서브레딧을 링크로 달기까지.
저 gamestonk이 주는 뉘앙스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대충 ‘게임스탑가즈아!’였다.
-Go! Go! Go! Gamestonk!
-우린 머스크와 함께하고 있어! Gme를 닥치는 대로 사라고!
-stonk stonk gamestonk!
-난 이제 이 빌어먹을 사건의 끝을 봐야겠어! 헤지 펀드 새끼들이 죽는 끝을!
-(인증) 10만 달러 추가 매수함.
-너무 거품 낀 게 아니냐고? Fuck u! 아직 진짜 버블은 오지도 않았어.
그러자 미쳐 날뛰기 시작한 WSB 서브레딧.
게임스탑의 주가 또한 덩달아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머스크가 이런 트윗을 올려서 다행이네.’
나로 인해 여러 나비효과가 생겼으니, 이번에는 안 올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직접 비슷한 걸 올려야 하나 생각도 들었는데…….
여하튼.
[113.42$]
[117.98$]
[125.62$]
[131.06$]
[168.17$]
1분 단위로 엄청난 변동성을 보여 주는 게임스탑.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GME - 217.31$]
200달러를 노크했고.
이번에는 10분이 지나자.
[GME - 326.14$]
300달러가 되었다.
‘옛날 생각나네…….’
당시만 해도 흡연자였던 나.
한창 쓰던 에피소드의 결말 부분에서 막혀, 담배 한 대 태우기 위해 작업실 밖으로 나왔었다.
그렇게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당시 인터넷에서 핫한 화제였던 게임스탑의 주식을 4천만 원 정도 샀었는데.
정말 별 생각이 없이 산 거였다.
그냥 매수 목록을 캡처한 후 친구들 있는 단톡방에 [게임스탑 4천 풀매수 인증ㅋ] 따위의 사진만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 한 대를 전부 태우는 데에 걸린 3~4분 남짓.
[+1,200만 7,812원]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벌어 버린 액수였다.
그와 함께 느껴진 짜릿한 쾌감.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전부 게임스탑에 박아 버리게 된 계기였다.
* * *
[GME - 488.66$]
다음 날이 되자, 천장을 찍고 있는 게임스탑의 주가.
그때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거래 어플인 로빈후드가 한 가지 공지를 발표했다.
[현재 GME를 둘러싼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투자자들이 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GME를 포함한 몇 가지 옵션들을 구매 불가능으로 돌렸습니다.]
주식 매도 버튼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매수 버튼은 비활성화시켜 버린 것.
-WTf?!?!
-FUCK! 뭐 하자는 거야, 지금?
-로빈훗 말고 다른 mts와 hts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어.
-추가 매수를 아예 막고, 매도만 하게 놔둔다고? 이게 뭔 미친 짓이야?
-HOLD THE LINE!
-WE LIKE THE STOCK! HOLD THE LINE!
-이 새끼들 진짜 계급장 떼고 붙어 보자 이거지?
-당장 저기 금융사 이사회 놈들을 교도소에 처박아야 해!
-(인증) 나 DeepFuckingValue인데 아직 하나도 팔지 않았어.
사실상의 공개적인 주가 조작.
WSB 서브레딧이 엄청난 난리가 났다.
하지만 아무리 WSB의 규모가 꽤 큰 편이라고는 해도, 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미 500달러까지 게임스탑의 주가가 치솟은 상황.
대부분의 WSB 투자자는 지금 가격에 매도할 경우 최소 2~3배의 수익이 가능했다.
공매도 기관들과 끝을 보는 게 아니라 여기서 만족하고 수익을 챙기고 끝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터.
게다가 게임스탑의 주가를 올린 건 WSB 투자자들만이 아니었다.
그들 이외에도 게임스탑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보도가 되면서 수익을 노리고 뛰어든 투자자들이 부지기수.
[결국 기관의 승리로 끝나나? GME 매수 버튼 막아 버린 로빈후드.]
[공매도 세력 vs 개인… 결국 개인의 패배로 끝날 가능성 높아져.]
이런 상황에서 쏟아지는 기사들은 그들의 탈출 심리를 더욱 키울 수밖에 없을 거다.
-fuck…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패배한 걸지도 몰라…….
-이 미친 새끼들이 매수 버튼을 빼 버릴 줄이야… Haha 너무 엿같아서 말도 안 나오는군.
-내 친구놈은 뉴스 보고 뛰어든 건데… 이미 다 팔아서 수익 봤다더라.
점점 WSB 서브레딧에 비관적으로 변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결국 언론과 mts, hts까지 움직여 버린 공매도 기관들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될 것 같은 상황.
…분명 그런 상황이어야 했다.
[GME - 475.42$]
[GME - 481.61$]
[GME - 491.17$]
[GME - 498.08$]
-????
-뭐야? 왜 주가가 오르는 거야?
-매도 물량이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그걸 누군가가 다 주워 담고 있는데?
-FUCK! 떴뜨아-!
-뭐가 떠?
-SW 매니지먼트 참전!!!!!
-…what? 내가 아는 그 SWM?
-폭스 뉴스에 따르면, SW 매니지먼트는 GME에 롱 베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는데?
-됐다! 됐어!
-오, 신이시여!!
WSB를 포함한 레딧의 모든 투자 관련 서브레딧에서 신과 같이 여겨지는 사내.
선우진의 등장이었다.
돌아가기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