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숏 스퀴즈
로빈후드가 왜 게임스탑의 매수 버튼을 막았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자칫하다가는 자기들이 ㅈ 되니까.
물론 로빈후드가 큰일 나는 건 아니다.
진짜 큰일 나게 될 대상은 게임스탑 공매도에 엮인 주요 헤지 펀드인 멜빈 캐피탈.
현 운용 자산 약 120억 달러의 멜빈 캐피탈은 지금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SW 매니지먼트에 빨리 연락 넣어! 이러다 우리 진짜로 망한다고!”
멜빈 캐피탈의 CEO이자 월 스트리트의 스타 매니저 중 하나, 가브리엘 블롯킨이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이대로는 정말 큰일이 난다.
[GME - 518.24$]
[GME - 523.71$]
천정부지로 치솟는 게임스탑의 주가.
이러다가는 멜빈 캐피탈이 입어야 할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어떻게는 SW 매니지먼트의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아니면, 그 반대 포지션으로 자금을 퍼붓거나.
하지만 후자의 방식이 통할 리가 없다.
멜빈 캐피탈은 월 스트리트의 유명 헤지 펀드다.
최고 경영자인 가브리엘 또한 월 스트리트 최고의 매니저 중 한 명일뿐더러, 멜빈 캐피탈은 2014년도부터 2020년도까지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달성하며 월 스트리트에서 가장 성공적인 헤지 펀드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최근 월 스트리트의 떠오르는 신성 헤지 펀드하면 바로 멜빈 캐피탈을 포함한 몇 군데의 이름이 나오는 수준.
그런 만큼, 수많은 큰손 투자자가 돈을 싸 들고 와 멜빈 캐피탈에게 맡겼다.
그렇게 모인 운용 자산이 무려 120억 달러.
여기에 다른 관계로 얽힌 월 스트리트의 다른 금융사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면 최대 100억 달러까지는 힘을 보탤 수 있다.
시타델 캐피탈이 멜빈 캐피탈에게 20억 달러라는 자금을 긴급 수혈해 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가브리엘 블롯킨은 창업 전 시타델에서 근무했었고, 그 인연으로 시타델에서의 긴급 자금 수혈을 받아 냈다.
그래서 로빈후드가 GME의 매수 버튼을 빼 버린 거다.
멜빈 캐피탈에게 20억 달러를 빌려준 시타델 캐피탈, 그들은 로빈후드의 지분 40%를 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모은다고 선우진을 이길 수 있을 리가!’
가브리엘이 월 스트리트의 신성이라면… 선우진은 그냥 신이다.
쌓아 올린 전설 같은 투자도 투자일뿐더러.
모름지기 돈 많은 놈이 꼭대기에 올라서는 월 스트리트에서, 선우진이란 존재는 신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홀로 유명 투자 기관들만큼의, 어쩌면 그 이상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게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투자조차 실패하지 않은 존재.
그런 이와 싸우고 싶어 하는 곳은 월 스트리트에서도 몇 곳 되지 않았다.
적어도 멜빈 캐피탈은 아니었다.
“…개비, 시타델의 연락이 쏟아지고 있어. 아무래도 답이 필요할 것 같은데…….”
“Fuck! 일단… 일단 줘 봐. 내가 해결할게.”
아마 시타델도 아닌 것 같았다.
[Mr. 블롯킨,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당장 그가 시타델에 있던 시절 그의 예전 보스였던 이가 하는 말을 봐라.
개비도, 게이브도, 가브리엘도 아니 Mr. 블롯킨.
철저하게 월 스트리트의 방식으로 나오겠다는 뜻이다.
투자자와 피투자자.
“그게… 그게 말입니다…….”
[SW 매니지먼트에서 실시간으로 매도 물량을 받아 내고 있습니다. 콜 옵션도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고요. 멜빈에서는 뭐 하고 있는 거죠?]
“…할 말이 없습니다.”
분명 할 말이 있어야 할 텐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가브리엘이었다.
해 봐야 아무 소용 없을 거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
그거야 간단했다.
선우진보다 보유 자산이 많은 이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성공 확률 0.1%의 일에 함께해 달라고.
쏟아지는 물량을 선우진이 다 쓸어 담고 있는 탓에 아무리 공매도를 쳐도 게임스탑의 주가가 떨어질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신을 믿고 수백억 달러를 베팅하라고.
그렇게 애원을 해야 했다.
‘…그걸 누가 들어주겠어.’
그런 멍청한 선택을 내릴 사람은 월 스트리트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거다.
그 사실을 가브리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칼… 아무래도 저 좆 된 거 맞죠?”
가브리엘이 한때 그의 보스이자, 1년에 한두 번씩 부부 동반 여행도 가곤 했던 칼에게 물었다.
멜빈 캐피탈에게 20억 달러를 대출해 준 시타델의 사람 칼에게 물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칼 또한 Mr. 블롯킨이 아닌 가브리엘에게 대답했다.
[…그래. 남은 건 결국 파산뿐이겠지. 자네가 이제 해야 할 건 펀드의 대부분 자산을 현금화하고, 그중 어느 정도를 선우진에게 바칠지를 정하는 것뿐이지.]
“…….”
[월 스트리트에 복귀하길 원한다면 멜빈 캐피털의 기존 투자자들에게도 체면치레 정도는 해야 할 거야. 하지만… 선우진이 그걸 용납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시타델은요?”
[우리는 이미 멜빈에게 투자한 20억 달러를 손실로 처리하자고 결론을 내렸네. 아마 포인트72도 마찬가지일 거야.]
포인트72 에셋 매니지먼트는 시타델과 비슷하게 멜빈 캐피탈에게 긴급 자금을 수혈해 준 곳이었다.
그 자금은 무려 30억 달러.
시타델과 포인트72이 수혈해 준 자금을 합치면 약 50억 달러.
멜빈 캐피탈이 게임스탑 공매도를 상환하기에 앞서, 그들이 투자한 50억 달러를 먼저 회수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만한 금액을 시타델도, 포인트72도 포기했다는 뜻은…….
“선우진과 싸우길 원치 않는다는 거군요.”
[하하. 싸워? 우리가 그럴 주제가 된다 생각하나? 그저 그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함일 뿐이지.]
멜빈 캐피탈보다 규모가 큰 헤지 펀드인 시타델은 38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다룬다.
포인트72 또한 약 22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 중이다.
두 회사가 합쳐 봐야 600억 달러.
포인트72의 회장이자 미국 헤지 펀드의 왕, 외환 거래의 전설적인 투자자, 세계 최고의 트레이너 등 각종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월 스트리트의 거물 중 거물 스티브 코헨의 순자산 또한 130억 달러다.
물론 스티브 코헨이 설립한 여러 헤지 펀드와 전문 투자사들을 합치면 수천억 달러에 달할 테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우진에게는 부족하다.
설령 부족하지 않더라도 그 모든 걸 걸고 선우진과 다툴 이유가 스티브 코헨에게는 없었고.
사실, 스티브 코헨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의 월 스트리트에서 선우진과 대적하길 원하는 자가 있기나 할까.
JP모건,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의 IB들은 물론 블랙록, 뱅가드, STT 등의 자산 운용사까지.
선우진과 함께하길 원하지, 그 반대에 서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건 사실상…….’
월 스트리트가 단 한 명에게 지배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않나?
그런 생각과 함께,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은 가브리엘 블롯킨이었다.
‘…그의 심기를 거슬렀으면 안 됐어.’
무엇이 그를 자극했는지는 모르겠다.
공매도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을 호구 잡으려 한 거?
아니면 게임스탑이라는 무고한 회사를 자본의 힘으로 털어먹으려 한 거?
이유가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저 단순히 돈 때문일 수도 있겠지.’
멜빈 캐피탈이 게임스탑을 타깃으로 잡은 이유도 그거였다.
돈이 될 것 같으니까.
시총 규모도 작고, 주가가 오를 이유도 마땅치 않으니 공매도 몇 번으로 쥐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게임스탑과 그 투자자들이 그런 공매도 공격으로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았다.
돈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란 건 없기 마련이니까.
“…하하하.”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선우진이 멜빈 캐피탈을 털어먹는 것에도 하등의 잘못된 점이 없었다.
그저 자신은 패배했을 뿐이다.
돈과 돈의 싸움에서 패자가 된 것.
‘120억 달러… 그중 100억 달러는 선우진의 손에 들어가겠지.’
다만, 그 대가가 무척이나 큰 패배였지만.
* * *
[GME - 657.31$]
급기야 650달러를 넘겨 버린 게임스탑의 주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유통 물량이 씨가 말랐기 때문이었다.
로빈후드의 매수 버튼 삭제가 있고, 겁먹은 개인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이 이어졌었다.
[게임스탑에 잔뜩 낀 거품… 이대로라면 위험해.]
[밈 주식 사들이는 개인 투자자들, 이제는 AMC와 은으로 타깃 바꾼다? 게임스탑은 옛날 얘기!]
[쏠쏠히 벌어들이고 게임스탑 팔아넘기고 있는 레딧의 WSB.]
심지어 이런 기사들도 간혹 나오고는 했다.
로빈후드의 매수 버튼이 비활성화됨과 동시에 약속했다는 듯 쏟아진 기사들.
저걸 보고 그동안 게임스탑 주식을 홀드하고 있던 투자자들이 매도하길 유도하는 거다.
매도 물량이 나오는 만큼 공매도 세력의 숏 커버링이 쉬워지니까.
하지만 그 매도 물량을 대부분 내가 받아 냈고, 저들의 언론 플레이도 내 SW 매니지먼트의 참전 소식으로 금방 멈추고 말았다.
[선우진, 게임스탑 사태 참전?!]
[선우진의 매수 소식에 반전된 게임스탑 사태… 개인 투자자들 ‘hold the line! To the moon!’ 외치는 중]
-lololol 우리가 amc와 은으로 간다고? 그게 뭔 개소리야?
-선우진이 우리와 함께한다고! Hold the line!
-달까지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하하하! 우린 그냥 붙잡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선우진의 고향인 코리아에는 이런 말이 있던데? ‘존버’!
-‘존버’가 뭐야?
-존나 버티라는 거래.
-I got it! ‘존버!’ 우리에겐 존버만이 살 길이야!
그렇게 뒤바뀐 분위기.
“기존 게임스탑 경영진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겠군요.”
“뭐, 본인들의 선택이었으니 어쩔 수 없죠.”
그 모습에 눈물 흘리고 있을 이들 중에는 게임스탑에 공매도를 때린 세력들 말고 게임스탑의 경영진들도 포함되어 있을 거다.
게임스탑의 CEO, CFO, CCO 등의 경영진들.
그들이 몇 년에 걸쳐 회사로부터 받은 스톡옵션의 가치는 현재가 기준으로 약 84억 달러에 달했다.
…물론 그들이 여전히 그 스톡옵션들을 갖고 있었을 때의 얘기였다.
“그래도 40달러에서 50달러에 대부분 매도했으니 기존보다 2~3배는 더 수익을 본 거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만족해야죠.”
게임스탑 사태에 참전하자고 결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그거였다.
기존 경영진들의 주식 사들이기.
‘생각보다 과정이 수월했지.’
오히려 게임스탑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게임스탑의 주가가 몇백 달러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40달러 정도에 다들 처분하려고 들더라.
그렇게 당시 시점으로 처분 가능한 경영진의 스톡 옵션을 대부분 사들여, 숏 스퀴즈를 손쉽게 촉발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자기네들이 4~50달러에 판 주식이 지금은 650달러를 넘기고 있으니.
아마 1초가 다르게 오르는 주가를 보다 보면 피눈물이 절로 나지 않을까.
물론, 경영진의 지분을 모두 사들일 수 있던 건 아니다.
최대한 내 정체를 들키지 않고 우회해서 사들인 지분이지만, 그래도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들의 지분을 원한다는 소식에 일부는 팔지 않고 남겨 둔 경영진들이 있었다.
‘뭐, 그 정도야 내줘도 괜찮겠지만.’
모든 걸 독점하겠다는 건 욕심이다.
여하튼.
“조만간이죠?”
“예. 그렇습니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공매도 상환일.
씨를 뿌렸으면 이제 거둘 차례지.
즐거운 수확 시간이었다.
돌아가기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