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치킨 게임
제이슨과 윌리엄을 비롯해 산하 금융기관들의 경영진들을 소집했다.
목적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과거처럼 미래 정보에 의지할 수 있다면 내가 모든 걸 단독으로 결정하고 그대로 따르라 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그럴 수는 없었다.
정확히는 그래서는 안 됐고.
“제가 보기엔 미국 증시가 현재 꽤 위험한 상태 같은데요. 여러분들 의견은 어떠신가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의견을 내는 데에 주저하지는 않았다.
물론 난 전문가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투자 실적도 회귀빨에 가까웠고.
그래도 내 생각이 꼭 전문가의 것보다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미래 정보에 의존한 투자였더라도 세계경제의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한 게 벌써 몇 년째다.
때로는 직접 그 흐름에 관여하기도 했고 말이다.
단순히 미래 정보로 투자를 한 게 아니라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내가 꽤 성장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선 트럼프 정부의 방향은 명확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풀겠죠.”
“당연히 그런 만큼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고요. 결국 관건은 트럼프 정부가 계속해서 높아질 인플레이션 위험을 얼마나 관리할 수 있느냐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제이슨과 윌리엄의 의견도 비슷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거기에 지금 주식시장과 가상 자산 시장에는 거품이 가득하다.
다른 경영진 중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류 의견은 나와 비슷했다.
특히 지금의 기술주에는 엄청난 버블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실제로 당장 인수 제안이 쏟아지고 있으니까.’
회귀 이후 내가 주력했던 투자 분야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 지능 정보 사회 등.
향후 몇 년간 엄청난 상승세를 맞이할 분야라 생각해 괜찮아 보이는 스타트업이 있으면 무차별적으로 투자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결과는 성공적.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첨단 기술 기업들은 투자 당시보다 작게는 4~5배에서 크게는 20~30배가 뛰었다.
‘물론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는 앞으로도 계속 유망하지. 클라우드도 그렇고.’
최근 들어 짐 켈러로부터 매주마다 받고 있는 Chatgpt 관련 보고.
짐의 말에 따르면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어쩌면 5년 내로 인공지능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첨단기술 분야 중 몇 개는 지금의 폭등세도 아직 고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분야들.
“최근 콩토의 지분 40%에 대해서 30억 유로 제시가 왔었죠?”
“예. 정확히는 28억 8천만 유로입니다.”
제대로 된 근거 없이 가치가 너무 펌핑 된 곳이 수두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토(Qonto)는 내가 일전에 투자한 적 있던 프랑스의 인터넷 은행이다.
비즈니스 은행 계좌를 주로 운영하는 핀테크 기업으로, 한국으로 치자면 토스나 코코아뱅크라 볼 수 있다.
물론 핀테크 또한 꽤 유망한 사업이라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40%의 지분에 대해서 29억 유로라니.
‘현재 콩토 이용자 수는 끽해야 20만 명을 조금 넘지.’
20만 명의 이용자밖에 없는 은행이 약 75억 유로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거다.
인터넷 은행이 아닌 프랑스의 기존 은행, 소시에테제네랄 같은 경우는 시가총액이 240억 유로다.
콩토의 약 3배 조금 넘는 정도.
하지만 61개 나라에 존재하는 소시에테제네랄의 글로벌 이용자 수는 3천만 명이 넘는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은행 이용자의 가치를 따지자면 한 명당 800유로인 것이다.
콩토의 이용자 가치는 명당 몇만 유로가 넘어가고.
‘핀테크 기업이라는 차이 하나만으로… 이 정도의 가치 차이가 생기는 게 정상일까?’
평가 잣대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핀테크 쪽에만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작년과 올해를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런 유니콘 기업들의 90% 이상이 모두 첨단 기술 기업이었고.
사이버 보안, 핀테크, 원격의로, 화상회의 기업 등등.
전통적인 기업들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이용자 수만으로도 그들과 엇비슷한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되었다.
‘지금은 괜찮겠지. 투자시장에 계속해서 돈이 쏠리고 그런 기업들의 가치는 계속 오를 테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상승세가 멈추게 되면…….’
그때서야 투자자들은 해당 첨단 기술 기업들의 실적에 눈을 돌리게 될 거다.
그리고 그간 굉장한 상승폭을 기록했던 기술주 대부분이 실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속 빈 강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고.
“제이슨.”
“예, 보스.”
“저희가 투자한 기업 중 상당수를 이번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죠. 물론 앞으로의 사업 분야에 있어서 필요한 건 남겨 둬야겠지만, 그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취득했던 건 파는 방향으로요.”
“현재의 자산 가격이 버블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특히 기술주 쪽은 더욱요.”
“알겠습니다.”
결국, 선택을 내렸다.
갖고 있는 수많은 테크 기업의 주식을 정리하고, 핵심적인 것만 남겨 놓기로.
그렇게 현금성 자산을 쌓아 놓은 후 상황을 관망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새로운 투자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다.
아마 버블이 터지는 걸 대비해 하락장에 베팅하는 게 되겠지.
“다행히 매수자들을 찾기는 쉬울 겁니다. 지금은 다들 돈을 싸 들고 주식을 사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저것도 이번 기회에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려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리 추려서 정리한다 해도 내가 갖고 있는 주식들의 가치는 최소가 수백억 달러.
지금과 같은 상승장이 아니면 정리할 기회도 마땅치 않았다.
‘물론 내 감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나 맞는 투자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됐다.
* * *
[선우진, 현 증시 거품이라 보나? 보유 자산 매도세로 돌아서.]
[다우지수, 나스닥 등 미국 증시 -4% 하락. 선우진의 변화된 스탠스 때문인 것으로 보여.]
새삼 내가 지닌 영향력을 실감하게 됐다.
끝도 없이 오르던 미국 주식시장이 어제자 한 달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월 스트리트에서 ‘선우진이 갖고 있는 자산을 팔기 시작했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이후의 현상.
‘뭐… 그래도 완전히 뒤바꾼 건 아니지만.’
[하락장 이후 다시 상승장. 이번에는 선우진이 틀렸다?]
[선우진 따라 소액 투자자들 매도 행렬? 하지만 기관 투자자들은 여전히 사들이고 있어]
[‘선우진 효과’는 그저 잠깐. 다시 상승세 시작한 글로벌 증시.]
금리가 0%인 시대.
나로 인해 주가 상승이 멈춘 건 겨우 하루뿐이었다.
다음 날 다시 상승장으로 돌아서면서 전날의 하락세를 그대로 회복.
[SW 인베스트먼트의 발표 “그저 이익 실현을 한 것일 뿐. 버블 때문은 아니다.”]
제이슨을 시켜 저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어제 새벽 트럼프로부터 전화를 받았기 때문.
‘어떻게 보면 트럼프의 정책에 똥을 뿌린 거니까.’
시장에 계속해서 유동성을 공급해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경제 침체를 모두 회복하겠다.
트럼프의 스탠스를 요약하자면 바로 저거였다.
그런 만큼, 그의 정책 방향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내게 전화를 해 우려를 표한 거다.
트럼프의 재선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나였지만, 이제는 또 그의 파워가 가장 강한 시기.
아무리 나라고 해서 대놓고 그와 대적할 수는 없었다.
임기 중후반부터라면 몰라도 이제 막 새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기에 맞서서는 안 됐다.
[스웜, 올해 콘텐츠 제작 투자 금액 발표! 작년보다 상향 조정.]
[선우진의 자산 매도. OTT 업계 평정을 위해서였나?]
그래서 그런 트럼프를 달래 주기도 할 겸, 스웜 관련 투자를 발표했다.
원래도 기존 수입의 대부분을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고 있던 스웜이었지만, 더욱 큰 금액을 투자해 OTT 업계를 일통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
물론 단순히 트럼프를 달래 주기 위한 투자 발표는 아니었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투자니까.’
[불 붙은 OTT 전쟁! 스웜,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3파전으로 굳혀지나?]
[워너미디어, 아마존 울상. 투자 비용은 치솟지만 구독자 증가세는 그리 크지 않아.]
[2분기 실적 발표에 넷플릭스 주가 –13% 하락.]
작년.
2020년은 OTT의 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은 마비되었고,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다.
유튜브와 트위치 등의 플랫폼들이 엄청난 성장을 이뤘고, OTT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2018년에만 해도 760억 달러에 불과한 OTT 시장 규모가 지금은 1,400억 달러에 달했다.
거의 두 배, 글로벌 OTT 사용자들 또한 두 배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하락세지…….’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SW 바이오의 백신이 원역사보다 1년 가까이 더 빠르게 풀리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가 빠르게 종식되었다.
뭐, 아직까지 종식이라 보지 않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일상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요즘은 번화가를 나가면 코로나 이전 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은 사람이 술자리를 가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집에 틀어박혀 OTT만 보지 않는다는 뜻.
[둔화된 OTT 성장세… OTT 업체들 사이 위기설 돌기도.]
[OTT 경쟁 속에 입맛 까다로워진 시청자들. 이제 아무 OTT나 구독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서 OTT 시장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든 OTT 업체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면, 지금은 몇몇 OTT 업체를 제외하고는 다들 슬슬 수익성을 걱정하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구독자 증가세가 주춤한 것은 물론, 일부 소규모 OTT들은 구독자들이 계속해서 빠지고 있는 것.
‘이럴 때일수록 출혈경쟁을 해서라도 점유율을 확대해야지.’
소규모 OTT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넷플릭스와 디즈니와 비교했을 때 스웜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면 무엇일까.
우월한 자체 콘텐츠들의 퀄리티?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 한류 붐을 이끌어 가는 K-콘텐츠들?
결국 ‘가장 큰’ 장점을 뽑자면 하나였다.
더 많은 돈.
OTT 시장에 뛰어든 어떤 기업들보다 돈이 더 많다는 것.
즉, 아무리 치킨 게임을 해도 가장 나중에 죽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오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평정했을 때 사용했던 전략을 참조했지.’
언택트 시대를 맞이해 늘어났던 OTT 업체들의 수익성은 최근 들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대로 콘텐츠 제작 투자 비용을 전처럼 가져가다가는 계속된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럴 때일수록 극단적인 출혈 경쟁을 한다면… 천하일통도 가능한 거 아닐까?’
오성전자가 계속된 증산으로 적자를 보면서 반도체를 팔아 치워 대만과 일본 기업을 모두 파산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내 목표도 디즈니와 넷플릭스를 그렇게 시장에서 도태시키겠다는 것.
[할리우드 작가 및 제작사 쓸어담기 시작하는 스웜! 작품당 수억 달러에 경쟁사 제작집 섭외 나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기존 3배로 확대한다? 사실상의 치킨 게임 선포!]
그러니까 스웜의 발표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거다.
너희 나만큼 돈 많아?
앞으로 스웜은 1년에 수십억 달러는 콘텐츠 투자에 쓸 건데, 너희도 그럴 자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