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동맹 (4)
“뭐? 포오오올라아아안드으으? 니 진짜로 대가리가 돌아삣나?”
150만 대군의 지휘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인상을 마구마구 구기면서 코르시카 억양 듬뿍 담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쯧쯧. 안 그래도 이제 나이 먹어서 팔자주름이 보이는데 저러면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된다고.
“왜. 안돼?”
“뭐, 사실 안될 건 없지.”
크 역시 우리 코르시카 출신 투명 드래곤이라면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줄 알았어! 믿고 있었다고 제에엔장!!
나폴레옹은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가 지도를 꺼내 가리켰다.
“직선 거리로 1240km. 멀긴 하지. 하지만 폴란드가 중국도 아니고 못 갈 건 아니야.”
“계속해봐.”
“어차피 이 전쟁은 베를린, 빈, 상트페테르부르크, 런던에 삼색기를 꽂으면 끝나는 전쟁 아니냐.”
뭐지. 마치 레몬 하나에는 레몬 하나만큼의 비타민C가 들어있다는 것처럼 말하네.
“다른 곳은 몰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깃발 꽂으려면 바르샤바는 무조건 지나야지. 바르샤바를 탈환하는 순간, 우린 수만 명의 동맹군을 얻을 수 있고 병참기지를 얻게 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나폴레옹이 덧붙였다.
“우리의 목적이 뭐냐, 기욤.”
“목적이라니.”
“동맹국의 해방이냐, 아니면 프랑스인을 집으로 더 살려 보내는 거냐, 그것도 아니면 무슨 수를 쓰든 승리하는 거냐. 확실하게 말해.”
“셋 다 하면 안 되나?”
“아잇 씨발.”
나폴레옹이 넥타이를 풀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곤, 의사들이 TV에 나와 척추 건강을 위해 절대 해서는 안 될 자세 TOP5라고 항상 말하는 삐딱한 자세로 의자를 젖혔다.
“새총 쏴서 새 잡고, 둥지 뒤져서 알 찾았으면 됐지! 두 개도 모자라 세 개를 다 하자고?”
“희대의명장이자불패장군프랑스중앙군사학교의최대아웃풋신조차모독하는사상최고의군인나폴레옹보나파르트라면해낼수있지않을까.”
“그 저주받을 아가리 좀 닫지.”
“넹.”
“···젠장. 왜 프랑스 시민들이 너한테 표를 준 거지? 플라톤이 했던 말처럼, 민주주의는 중우정치가 아니었을까?”
“그 민주주의가 댁 견장에 별 달아준 건 알지?”
“···사실 난 플라톤보다는 소크라테스와 페리클레스를 좋아해. 중우정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민의를 배반하는 정치체제야말로 쓰레기 같은 체제지. 암 그렇고말고.”
야무지게 탈룰라를 시전한 나폴레옹은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커흠. 여하튼. 우리 통령 각하께서 그러시니 군인은 응당 까라면 까야지 뭐.”
그는 펜에 잉크를 묻히고 삐딱한 자세를 정자세로 바꾼 뒤, 지도에 슥슥 무언가를 그려 나갔다.
“뭐야?”
“진격로.”
[A. 스트라스부르-트리어-프랑크푸르트-예나-라이프치히-올름]
독일 중부지역을 쭉 이어나가던 나폴레옹은 잠시 고민하다가 선을 두 갈래로 쪼갰다.
[A-1 올름-베를린]
[A-2 올름-프라하]
“연합군을 손쉽게 상대하려면 놈들이 뭉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 올름을 치면 프로이센과 신성로마제국이 완전히 분리되고, 여기서 베를린으로, 모라비아와 보헤미아로 가는 길이 열려.”
그의 눈에서 집중력이 튀기 시작했고, 나는 말을 끊는 대신 나폴레옹의 말을 꾸준히 경청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에 삼색기를 꽂으면 프로이센이 끝나고, 모라비아와 보헤미아를 넘어 빈으로 가면 신성로마제국이 끝나지.
따라서 내가 연합군이라면 무조건 올름이 내줄 수 있는 최대치고, 거기서 전력을 다해 우릴 막아설 거야.”
“왜? 프랑크푸르트나 예나, 라이프치히에서 우릴 막는 게 더 안전하지 않나?”
“올름에서 이긴다면 기나긴 퇴각 길에 오른 프랑스군을 그대로 싸 먹을 수 있으니까.”
승리자는 패배자가 피해를 수복할 기회마저 주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여기, 아우스터리츠(Austerlitz)가 A 진격로... 뭐, <독일 전역>이라고 이름 붙이지. 아무튼 최대 분수령일 거야.”
“음.”
“그 다음은.”
나폴레옹은 펜을 아래로 옮겼다.
[B. 마르세유-니스-제노바-밀라노]
다시 한번 선이 나뉘었다.
[B-1, 밀라노-카스틸리오네-만토바-베네치아-그라츠-빈]
[B-2, 밀라노-볼로냐-로마-나폴리]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신성로마제국과 러시아의 따까리들을 모두 일소한다. 이렇게 되면 지중해는 영국이 차지한 몰타를 제외하고 우리 손에 들어오지.”
“흠.”
“게다가 <독일 전역>을 맡은 부대가 꾸준히 나아간다고 치면, 신성로마제국은 위아래에서 양동을 맞게 된다.
빈에 거대한 포위망이 형성될 거고 빛나는 대도시는 하루아침에 양곡과 물자가 끊겨 기근에 시달리겠지.”
문제는 카스틸리오네, 그리고 만토바.
“카스틸리오네와 만토바에는 오스트리아인들이 만든 정교한 요새가 있고, 여길 함락시키지 않는 이상 에 있는 모든 아군은 측면을 위협당하게 돼.”
그러나 요새를 빼앗기만 하면 오히려 남부 독일로 공세를 펴는 아군이 측면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
게다가 제국의 유일한 군항인 트리에스테도 사정권.
트리에스테가 함락되면 제국은 항구를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한다.
프랑스 해군은 정말 제 꼴리는 대로 발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정 필요하면 상륙으로 전선을 하나 더 열어버릴 수도 있다.
“B 진격로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이름 붙이자고.”
그렇게 <독일 전역>과 <이탈리아 전역>을 담당하는 군대가 빈 앞에서 만나는 순간, 제국은 수도를 버리고 런하거나 항복 조인서에 얌전히 사인하는 수뿐이다.
나폴레옹이 또다시 펜을 들었다.
[C-1 콘스탄티노플-세바스토폴-오데사-하르코프-쿠르스크-툴라-모스크바]
[C-2. 콘스탄티노플-카이로-알렉산드리아-트리폴리-몰타]
“C 진격로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지중해를 프랑스의 호수로 만들기 위해 몰타를 사정권에 넣는 게 목표.”
드니프르 강 일대는 러시아 제일의 곡창지대이자 광산지대, 그리고 교통의 요지. 저길 쳐서 얻으면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다대한 피해를 줄 수 있고, 모스크바의 턱에 칼을 들이밀 수 있다.
이미 오스만이 우리 쪽에 붙은 이상, 콘스탄티노플을 지나 흑해에 병력을 투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집트가... 좀 문제긴 한데.”
“영국?”
“그래. 너 영국이랑 한 판 붙는 건 별로잖아.”
“뭘. 싸워야 할 땐 싸워야지.”
이집트를 따면 <런던-이집트-인도>로 이어지는 아편 무역 길이 막힌다.
“마지막. D.”
[D. 툴루즈-바르셀로나-사라고사-마드리드-지브롤터]
“지중해에서 완전히 영국을 쫓아낸다.”
역시 투명 드래곤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
“3군단과 5군단 완편이 끝났습니다.”
“군마 3만 마리 징발도 완료됐습니다.”
“오늘 거국내각에서 참전용사 관련 연금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오늘 대영제국 상무부가 관세인상을 결의했습니다.”
“북독일 지역에서 프랑스 국적 사업가들이 패악질을 당한답니다!”
“갸아아아악!”
개...새끼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사람을 이렇게 갈구다니. 정녕 죽어서 하늘이 두렵지 않느뇨?
역시 궁극의 무기, ‘민족자결주의’의 힘은 대단하다.
젊은 프로이센 기병 장교들은 대낮에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외교관 마차를 인터셉트한 뒤, 외교관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내곤 풀어주었다.
한술 더 떠서, 이 새끼들은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나중에 대사관 직원들이 퇴근할 시간이 되니까 기병도를 뽑아 대사관 계단을 연마석 삼아 칼을 갈았단다.
당연히.
“이보세요! 대낮에 타국 외교관을 겁박하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뭐, 젊은 혈기에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열을 내시오?”
역시 나라 자체가 군바리 새끼들이 세운 나라 아닐까 봐, 하는 꼬라지나 생각 자체가 빠따 들고 재개발지역 엎는 깡패 용역 새끼들하고 또이또이구만.
아닌가? 왕년에 타국 외교관을 잡아다가 키 크다고 국왕 친위대로 강제 자원(?) 입대를 시킨 놈들이라면 저게 자연스러운 디폴트 값이리라.
신성로마제국은 그래도 줄줄 흐르던 내장을 다시 주워 담고 전국에서 징병령을 실시해 머릿수부터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영국은... 그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길 가는 사람을 강제로 잡아다가 해군에 입대시키는 강제입대(Press gang)로 해군력을 펑펑 불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정지! 정지! 정선하라! 아니면 발포하겠다!”
“뭐야. 당신들 뭐요?”
“우린 대영제국 왕립 해군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우리 왕립 해군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간주한다.”
“무슨 개소리야! 우린 미국인이요! 미국인! 이건 미국 상선이라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봐, 라이미! 우린 맨해튼에서 발급해준 신분증도 있소!”
“아니. 너희들의 신분증은 지금 이 순간부터 위조 신분증으로 간주하겠다.”
“당신 미쳤소?”
“국왕 폐하의 신성한 신민이 감히 미국인인 척 행세하다니! 이봐, 해병대! 당장 이 자들을 선실로 데려가 교육시키도록!”
“아이 아이 써!”
“전 영국인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영국인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영국인이었습니다...”
“좋아, 네 고향은 어디지?”
“뉴, 뉴욕...”
“안 되겠군. 교육이 더 필요하겠어.”
“잘못해써요! 잘못해써요! 때리지마새오!!”
“이보세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뭘 그러시오?”
“당신네 해군이 우리 민간인들을 납치하고 있잖소!!”
“무슨 소리? 우리 왕립 해군은 철저히 ‘자국민’에게만 ‘명예로운 입대’를 권유하고 있소. 미합중국에서 도는 그런 허무맹랑한 낭설은 무척이나 난감하오만.”
“야!! 증인이 몇 명인지 알아!!?”
“아 몰라 몰라. 해적이 잡아갔나 보지. 우린 무슨 일인지 몰라.”
덕분에 미국에선 상선 보험료가 껑충 뛰었고.
“이대론 안 됩니다! 언제까지 저 라이미 새끼들한테 끌려다닐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제 해안경비대가 아니라 해군이라 할만한 군대가 필요해요!”
“미 연방의회 하원과 상원은 전부 압도적 찬성으로 ‘미 해군 창설 특별 자금’을 승인하는 바입니다.”
USS 컨스티튜션으로 대표되는 44문 대형 호위함 3척과 38문 중형 호위함 3척으로 출발한 미 해군이 정식으로 창설되어 영국 해군의 으라차차 미국인 납치 대소동을 막고 있었다.
···같은 영어 쓴다고 타국 민간인을 잡아다가 강제입대를 시켜? 역시 이 19세기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아니지. 이런 일을 이해하면 사람이 망가져 버린다.
러시아는 우리 외교관 앞에서 카자크 군단을 사열해, 자기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과시했고 쿠투조프라는 외눈의 장군을 야전 원수로 진급시킨 뒤, 오스만 제국령 베사라비아를 옴뇸뇸 집어삼켰다.
이딴 게 세상? 사실 이 세상은 불에 타 없어지는 게 맞는 거 아닐까?
타노스 선생님은 틀리지 않았다... 이딴 세상, 반갈죽이야 말로 옳다...
그리고 1813년 12월.
[우리는 최근 유럽에 휩싸인 일련의 비문명적이고 폭력적인 사태에 관해 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