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히든 피스 (1) >
‘뭐, 나쁘진 않네.’
이번엔 허세가 아니었는지, 한스가 새로 가져온 검의 상태는 꽤 괜찮았다.
그렇다고 뭐 전설의 보검 수준이란 얘기는 아니고.
그저 나 같은 초심자에게 추천할 만한, ‘저렴한 가격에 막 써도 아깝지 않은’ 보급형 검 치고 품질이 나쁘지 않다는 소리였다.
“흔히 ‘숏소드(Short Sword)’라고 부르는 한손검이다. 뭐, 검 배우는 사람이라면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선택하는 무기지.”
“숏소드... 확실히 길이가 짧네요.”
“그래. 특히 데미언 너 같은 경우엔 나이가 어려서 아직 몸이 완전히 자라지 않았으니, 더더욱 이걸로 검을 배워야 할 거야. 어쭙잖은 애들이나 멋 부린다고 롱소드 들고 설치지.”
“음...”
한스의 설명을 들으며 검을 꼼꼼히 살펴보는데, 만듦새에선 딱히 불량의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 다행히 양품을 뽑았네. 복불복 성공이다.’
휙- 휙-!
시험 삼아 허공에 대고 검을 몇 번 휘둘러 보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제법 듣기 좋았다.
‘이번엔 이렇게...’
이번엔 좀 더 격한 동작으로 검을 휘둘러 보았다.
찌릿-!
‘... 젠장.’
바로 어깨에 반응이 온다.
그렇게 엄청나게 힘을 실어 휘두른 것도 아닌데, 부실한 어깨에 부담이 갔는지 살짝 통증이 느껴졌다.
‘아오, 이 죽일 놈의 몸뚱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몸이길래 고작 이 정도의 동작만으로도 어깨가 아픈 것인지.
‘... 나쁜 의미로 역대급이네.’
씁쓸한 마음을 애써 숨긴 채, 나는 들고 있던 검을 한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괜찮은 것 같아요, 아저씨. 이걸로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원래는 8실버에 파는 물건인데, 내가 아까 실수한 것도 있고 하니까 특별히 1실버 깎아주마. 하하하! 좋지?”
“...”
한스의 너스레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녹색의 눈동자를 들어 물끄러미 한스의 눈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이 아저씨, 끝까지 이런 식으로 한다고?
“아니, 그...”
“...”
침묵의 시선이 길어질수록, 무너져가는 한스의 표정.
결국,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하아! 그래, 아까는 아저씨가 정말 미안했다! 그러니까, 그... 6실버! 6실버에 주마! 이러면 진짜 남는 것도 없어!”
“...”
진심을 담은 눈빛 한 방으로 물건 가격을 1실버나 추가로 깎았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
원래의 데미언이라면 모를까, 나는 고작 물건값 2실버 깎은 거 정도로 신이 날 만큼 물렁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까짓 연습용 숏소드 따위를 사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었다.
“... 아까는 뭐 반값에 주시겠다더니?”
“아니, 그건 이 검이 아니었고...”
“아, 헐값에 사 온 싸구려 칼은 반값에 줘도 제대로 된 건 아까워서 그렇게 못 주시겠다?”
“그... 그게 아니라!”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더 하면 어른을 상대로 괜히 분위기만 망칠 것 같았기에 이쯤 하기로 한다.
“됐어요, 아저씨. 농담이었어요.”
“...?”
“그냥 제값 주고 살게요. 장인이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을 막 후려쳐서 사려고 들면 안 되죠. 자, 여기요. 돈 받으세요.”
짤랑-
한스의 손바닥 위에 반짝이는 은화 여덟 개를 내려놓았다.
8실버.
일주일 치 봉급으로 겨우 은화 열 닢을 받는 나에겐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하지만 나는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스가 보여준 숏소드가 마음에 들어서?
아니지.
내가 이깟 평범한 숏소드의 가격으로 은화 8닢을 흔쾌히 내어놓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신요, 아저씨. 이 숏소드에 저거 하나 덤으로 끼워주세요.”
“엥? 저걸 말이냐?”
“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것’을 본 한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처음 가게에 들어와 확인한 먼지 쌓인 무기 중에서도 가장 낡고 볼품없는 물건이었다.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던 낡은 검 한 자루.
대체 얼마나 오래된 물건인 건지 검집은 아예 있지도 않았고, 잔뜩 이가 빠진 검날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실전은커녕 연습용으로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을 지경인, 사실상 ‘고철’에 불과할 물건.
하지만 그 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나에겐,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강의 보검이었으니...
‘... 첫 번째 보물, 찾았다.’
내가 <로스트 킹덤>의 세계에서 찾아낸 첫 번째 히든 피스.
지금으로 4백여 년 전 활약했던 왕국 역사상 최강의 검사, ‘검성(劍聖)’ 울리히 리히테나워의 낡은 롱소드가 내 눈앞에 있었다.
***
“후우...”
아늑하고 냄새나는(?) 나의 보금자리.
용병 길드 창고로 돌아온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바닥에 놓인 두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둘 중 하나만 바라본 것이었지만.
“이게 바로 검성의 롱소드란 말이지...”
정식 명칭은 ‘검성의 낡은 롱소드’.
내 눈앞에 놓인 이 검은, <로스트 킹덤>에 존재하는 여러 히든 피스 중에서도 최초로 만들어진 보물이었다.
특히, 나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능력치와 외관 디자인은 물론 검에 얽힌 역사적 설정에 이르기까지.
검에 관한 모든 것이 개발팀의 리더였던 나의 뜻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 이거 기분 참 묘하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기분이었다.
평생 마주친 적 없었던, 그리고 마주칠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자식을 만나게 된 느낌이랄까?
“자식은커녕 결혼도 못 해봤지만...”
... 뭐, 어쨌든. 그런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는 얘기다.
팟-!
『 보유 아이템:
- 손때 묻은 빗자루(일반 등급)
- 낡은 대걸레(일반 등급)
- 검성(劍聖)의 낡은 롱소드(전설 등급) 』
상태창을 열어보자 보유 아이템 리스트에 검성의 롱소드가 새로 등록된 것이 보였다.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다.
검 자체의 능력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검을 쥐고 휘둘렀던 인물 자체가 워낙 특별해 전설의 이름을 갖게 된 케이스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검성’ 울리히 리히테나워가 무인(武人)으로써 쌓아온 평생의 경험과 깨달음을 담아 만들어낸 검술 ‘리히테나워 류(流)’.
히든 피스 ‘검성의 낡은 롱소드’는 그 위대한 검술 리히테나워 류를 완성한 검이었으며, 검성이 세상을 떠나던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유일한 벗이기도 했다.
‘... 이 검의 힘을 흡수한 이는 검성이 만들어낸 검술, 리히테나워 류를 펼쳐낼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이 게임 개발자였던 내가 직접 만들고 부여한 이 검의 고유한 설정이자, 서사(敍事)였다.
하지만...
“하아, 다 알고 있는데도 긴장돼 미치겠네...”
이 검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선, 검의 주인이 된 이가 자신의 심장에 검을 ‘직접’ 찔러넣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조건이 달려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렇게 내 발등을 내가 찍는구나. 으...”
아니, 차라리 발등을 찍는 정도면 나았을 것이다.
내 심장을 내가 찔러야 한다니,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설정이란 말인가!
“무슨 마왕이 들고 다니는 마검(魔劍)도 아니고 이게...”
하지만, 그 설정 또한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니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후우, 한번 해보자. 죽지는 않을 테니까...”
롱소드의 검날 부분이 원체 긴 탓에, 역방향으로 손잡이를 잡으면 가슴을 찌를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검날 중간 부분을 잡고 가슴을 찔러야 했는데, 맨손으로 날을 잡으면 손을 베일 것이 뻔한지라 미리 준비해두었던 헝겊을 검날에 여러 겹 감았다.
“자, 준비는 다 됐고...”
후우우, 긴장으로 가득한 숨을 내쉰다.
애써 침착해보려 했지만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 무서운 게 당연한 거지.’
이 검으로 심장을 찔러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조그만 문구용 칼로 손끝만 살짝 베여도 그렇게 아픈데, 이 길쭉한 검이 심장을 찌르면 대체...
‘에이, 시발! 모르겠다!’
시간 끌어봤자 안 좋은 생각만 자꾸 드는 것 같아서, 나는 저질러 버리기로 했다.
“자, 가즈아아아아아아-!!!”
양손으로 검을 단단히 붙잡고, 심장 부근을 힘껏 찔렀다.
푸우욱-!!!
“꺼흐으윽...!”
차가운 검날이 피육(皮肉)을 가르는 섬뜩한 느낌!
동시에 나는 마음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존나 아프잖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이, 정신을 잃기 전 내가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
눈을 떴다.
“...?”
허름한 창고의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줄기가 보였다.
그 빛의 밝기와 각도로 볼 때, 출근해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난 게 분명했다.
“... 아이씨, 출근 늦었네.”
이 와중에 출근 걱정이라니, 아직도 직장인 시절의 노예 근성(?)를 떨쳐내지 못한 나였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대신, 누운 자세에서 천천히 손을 들어 왼쪽 가슴께를 쓸어보았다.
두려움을 참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가슴에 찔러넣었던 검성의 낡은 롱소드가...
없다.
세워두면 내 허리 어름까지 올 만큼이나 길었던 검.
그 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 진짜로 없어졌네. 허, 알고 있었는데도 신기하긴 하다.”
달랑 한 벌 있는 옷에 구멍이 날까 봐 일부러 상의를 벗은 채로 검을 찔러 넣었었다.
하지만, 지금 확인해본 내 가슴팍엔 그 어떤 상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핏방울 하나,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피부.
스스로 심장에 검을 찔렀던 그 엄청난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후으음...”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갈비뼈의 윤곽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앙상한 몸이 들숨으로 부풀어 오른다.
늘 보던 모습이다.
비쩍 마른 몸에 이어진 가녀린 팔다리도 그대로였다.
<로스트 킹덤>의 세계가 품은 최초의 히든 피스, 검성의 낡은 롱소드가 지닌 힘을 흡수했건만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확실히 이루어져 있었다.
“... 창조주의 눈.”
팟-!
『 데미언 / Lv. 1
소속: 크라벤 용병 길드
클래스: 청소부
고유 특성:
- 창조주(創造主)
- 검성(劍聖)
보유 스킬:
- 창조주의 눈(신화 등급)
- 리히테나워 류(전설 등급)
보유 아이템:
- 평범한 숏소드(일반 등급)
- 손때 묻은 빗자루(일반 등급)
- 낡은 대걸레(일반 등급) 』
한눈에 보이는 상태창의 변화.
보유 아이템 리스트에 올라와 있던 검성의 낡은 롱소드가 사라지고, 고유 특성 ‘검성(劍聖)’과 스킬 ‘리히테나워 류(전설 등급)’가 추가되었다.
여기서 문득 든 생각.
검술도 스킬로 분류가 되는 건가?
‘하긴... 검 쓰는 기술(Skill)이니 스킬이 맞긴 하지.’
일단 상태창이 알려준 내용으로 봤을 땐, 검의 능력을 흡수하겠다는 내 계획은 생각대로 잘 진행된 것 같았다.
하지만,
“... 확인은 해봐야겠지.”
다행히도 그 확인 작업을 도와줄 감사한 희생양(?)이, 지금 막 도착한 듯했다.
끼이익- 콰앙-!
“야! 이 빌어먹을 고아 새끼가... 네가 죽고 싶어서 아주 환장을 했지? 이 새끼가 존나 빠져 가지고!”
나의 재수 없는 직장 상사, 좀머가 창고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 첫 번째 히든 피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