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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6화 (6/197)

< 첫 번째 히든 피스 (2) >

좀머(Sommer)는 크라벤 용병 길드에서 5년째 일하고 있었다.

원래는 상단에서 짐 나르던 말단 직원이었는데, 일하던 상단이 망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찾다가 용병 길드로 흘러들어온 경우였다.

그는 업무는 접수 담당으로, 일거리를 찾아 길드에 들른 용병들의 실력에 맞는 적당한 의뢰를 소개해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용병들은 성격이 거칠었다.

아니, 말이 좋아 거친 것이지 사실 보통 사람에 비하면 ‘개차반’이라 불러도 무방할 놈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런 용병들도 길드에 방문하면 평소와 달리 행동을 조심했는데,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 용병 길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몇십 년씩 업계에서 구르다 현직에서 은퇴한 전직 용병인 경우가 많았다.

그 험한 용병 바닥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은퇴까지 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업적이었다.

용병 길드란 그런 닳고 닳은 베테랑들의 손에 의해 세워진 곳.

아무리 개념을 밥 말아 먹은 용병 놈들이라고 한들, 그런 곳에서까지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

그건 평생 용병으로서의 험한 길을 걸어온 선배들에 대한 예우였고, 앞으로 자신들이 걸어갈 길에 대한 대비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용병 출신이 아닌 좀머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게 문제였다.

“에이, 이런 거 말고. 착수금 더 챙겨주는 그런 일 없어요? 이건 주는 돈이 너무 적잖아!”

“어이, 아저씨. 지금 이딴 걸 의뢰라고 알려줍니까? 아이, 시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애들 소꿉장난 해?”

“참나, 이거... 용병 일 안 해본 티가 나네. 지금 당신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이해는 하쇼?”

“으잉? 얘네 지난번에 간단한 상단 호위 업무라고 해놓고 몬스터 득시글거리는 숲길 지나가서 뒤질뻔하게 만든 그 새끼들 아냐? 야! 이 새끼가 지금 누굴 좆 되게 하려고... 너 미쳤냐? 어?”

기본적으로 용병들은 좀머를 우습게 생각했다. 용병 출신이 아닌 데다, 일단 생긴 것 자체도 허접한 동네 양아치 같은 인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이가 많건 적건, 용병들은 좀머를 함부로 대했다.

반말 툭툭 내뱉는 정도는 양반이었다.

어떤 놈은 거기에 욕까지 섞었고, 심하면 대낮부터 술을 처먹고 와 손찌검을 하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상대로 좀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왜 반말하냐고 따져봤자 사과를 들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병이란 놈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센 놈’에게만 상식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놈들이었고, 좀머는 그런 용병들에게 한주먹 거리에 불과한 ‘약한 놈’이었다.

그러니, 그냥 참아야 했다.

그렇게 일하다 쌓인 분노와 짜증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 참으며 살던 어느 날,

“어이, 일 열심히 하고 있나?”

“허업! 안녕하십니까!”

평소엔 거의 얼굴 볼 일도 없던 길드의 중간 간부 하나가 웬 꼬맹이를 데리고 사무소에 들렀다.

“오늘부터 네가 얘 좀 맡아서 일 가르쳐라. 그리고 우리 길드 창고 있지? 거기 대충 치워서 얘한테 자리 좀 내어 주고. 갈 곳이 없다네?”

“예?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아직 나이도 어리고, 빈민가 출신이라 글을 못 배워서 서류 작업 같은 건 못해. 그러니, 창고 정리나 청소 같은 일 위주로 시켜라. 시장에 심부름 갈 일 있으면 대신 좀 보내고. 내 말 알아들었지?”

“예? 아, 예에...”

길드와 오랜 인연이 있다는 한 용병의 부탁으로 길드에 들어오게 된 고아 소년, 데미언.

처음엔 소년의 후원자라던 용병의 존재가 두려워 잘 챙겨주는 척했던 좀머였지만, 그 용병이 몬스터 토벌 의뢰를 나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데미언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하! 이 병신 같은 고아 새끼가... 애비, 애미 없이 자란 티 내냐? 시발, 제대로 안 해?”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대답! 귓구멍이 막혔냐? 어?”

“부모 없이 살 거면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어휴, 어디서 이딴 게 기어들어 와서...”

좀머는 부모 없이 자란 소년의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길드 내에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줄 존재가 생겼다는 것에 신이 났을 뿐이었다.

죄책감? 그런 건 없었다.

미안한 거로 따지면 자신에게 함부로 구는 용병 놈들이 몇 배는 더 미안해야 했다.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렇지, 뭐. 약한 놈은 먹히고, 센 놈은 잡아먹고 그런 거 아니겠어?’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인 데미언이 싫은 티를 내거나 뭐라 반항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늘 무기력한 눈빛에 심약한 모습으로 있으니 괴롭혀도 별다른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좀머에겐 데미언을 괴롭히는 것이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저 새끼가 이상해진 게 얼마나 됐더라?’

한 달쯤 되었나?

죽은 생선 눈깔 같던 데미언의 눈동자에 전에 없던 알 수 없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는 늙은 말처럼 느릿하던 움직임이 먹이를 채 가는 날짐승처럼 빠릿빠릿해졌고, 예전엔 그렇게 자주 하던 지각도 이제 하질 않았다.

뿐인가, 이전엔 자신이 뭐라 말을 걸면 기가 죽어 흠칫흠칫 놀라고 겁먹기 일쑤였던 녀석이 이제는 느물거리는 말투로 슬쩍슬쩍 말대답까지 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시발, 갑자기 뭔 연줄이라도 생겼나...? 아니야, 애비애미 다 뒤진 고아 새끼가 연줄은 무슨!’

그렇게 묘하게 달라진 데미언의 분위기를 유심히 살피며 한 번 제대로 밟아줄 기회만 노리고 있던 좀머.

드디어 오늘, 그 기회가 왔다.

실로 오랜만에 데미언이 지각을 한 것!

‘잘 걸렸다, 이 건방진 고아 새끼!’

한 달 내내 별러왔던 순간이 온 만큼, 창고로 향하는 좀머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했다.

끼이익- 콰앙-!

데미언이 있을 길드 창고 문짝을 있는 힘껏 걷어차고 들어가며 소리를 지르는 좀머.

“야! 이 빌어먹을 고아 새끼가... 네가 죽고 싶어서 아주 환장을 했지? 이 새끼가 존나 빠져 가지고!”

대체 뭔 짓을 했는지 윗옷까지 훌렁 벗어 던지고 멍하니 서 있는 데미언을 향해, 좀머는 미리 준비해서 들고 간 빗자루를 내리쳤다.

***

쉬이잉-!

좀머의 손에 들린 빗자루가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이 미친 새끼가?!’

남의 집(사실 창고였지만)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서 냅다 육두문자 갈기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다짜고짜 빗자루를 휘두른다?

그것도 위험하게 머리를 노리고?

‘이 양아치 새끼가 선을 넘네?!’

하지만, 한껏 열 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왜?

‘... 보인다, 다 보여!’

그것은, 마치 평생 모르고 지냈던 새로운 영역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듯한 기분이었다.

‘미쳤네, 진짜!’

온몸 가득히 느껴지는 이 짜릿한 감각.

그 덕분에, 나는 내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빗자루의 나아갈 궤적을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이런 게 가능해지다니!’

미쳤다는 말로도 부족할 이 상황.

이는, 히든 피스를 통해 왕국 역사상 최강의 무인이라 불렸던 ‘검성(劍聖)’의 심득을 얻은 결과였다.

“흡!”

아주 살짝 고개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내 머리를 노리던 빗자루를 가볍게 피해낸다.

상대와 나의 간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부릴 수 있는 과감한 여유였다.

“어흣?!”

내가 자신의 공격을 피할 것이란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던 좀머가 몸의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린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꾸욱- 퍽!

휘청이는 좀머의 측면으로 다가서며 놈의 한쪽 발을 지그시 밟고, 동시에 어깨빵(?)을 갈겼다.

“으헉!”

쿠당탕-!!!

발을 밟힌 상태에서 어깨를 가격당한 좀머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발은 바닥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상체는 뒤로 밀려나는 꼴이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으... 아...”

바닥에 뒤통수를 강하게 부딪친 좀머가 그 충격에 침을 질질 흘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난밤에 벗어두었던 윗옷을 천천히 걸치고 전날 시장에서 사 온 숏소드를 검집째로 집어 들었다.

‘... 판 벌인 김에 서열 정리나 제대로 하자.’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작정하고 칼춤 한번 춰 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적어도 좀머에게 ‘죽음의 공포’ 정도까지는 느끼게 해줘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도 기어오를 생각을 못 하지 않겠는가?

“어으, 으...”

뒤로 넘어진 충격에 아직도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던 좀머.

그런 그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냅다 걷어찼다.

퍼억-!

“허으억!”

“야, 엄살 그만 떨고 일어나.”

“으으으... 너, 너 이 새끼! 나한테 이러고도 괜찮을 것 같...”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헛소리를 하는 좀머에게 다시 한번 징벌의 발차기를 먹였다.

퍽-!

“쿠엑-!!!”

“자, 말로 하는 건 이게 마지막이야. 다음엔 말로 안 하고 이걸로 할 거야.”

툭툭, 손에 들고 있던 검집으로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좀머의 머리통을 건드렸다.

처음엔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신경 쓰느라 자신의 머리를 건드리는 물건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좀머.

그러다 자신의 머리를 건드린 게 내가 들고 있는 검집의 끝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너, 너, 너! 지... 지금 이거 뭐야?”

“뭐긴 뭐야, 칼이지. 용병 길드에서 오래 일한 놈이 칼도 못 알아보나?”

“그, 그게 아니라 네가 왜 칼을 들고...”

“네 생각엔 왜일 것 같은데? 응?”

촤아아앙-!!!

대답과 동시에 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내가 해놓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깔끔한 발검(拔劍)!

“히이이익!”

눈앞에 시퍼런 검날이 보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나를 대하는 말투부터 바뀐다.

“데, 데, 데, 데미언! 어, 음... 지, 지금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그거 아니야, 아니야아! 일단 이 카, 칼부터 좀 치우고...”

두려움에 양 볼을 바르르 떨며 말하는 좀머.

장장 3년이란 시간 동안 내 머리 위에서 왕처럼 굴던 놈이 순식간에 비루먹은 개새끼가 되었다.

그 극적인 변화에, 나는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오해? 오해는 무슨 오해? 뭐, 네가 아침 댓바람부터 쌍욕 하면서 들어와서 빗자루로 내 머리통 깨려고 한 거?”

“아니야! 내가 언제 그랬어! 어? 그건... 그건! 그냥 내가 발을 삐끗해서 그랬던 거야! 원래는 빗자루를 이렇게 잡고서...”

개도 안 믿을 변명을 늘어놓으며 옆에 굴러다니는 빗자루에 손을 뻗는 좀머.

하지만,

슈아악-!

내 손끝에서 검광이 번쩍임과 동시에 좀머가 잡으려던 빗자루가 순식간에 토막 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왕국이 낳은 가장 위대했던 무인, 울리히 리히테나워가 평생의 경험으로 빚어낸 단 하나의 검술, 리히테나워 류(流).

되먹지 못한 육신의 부족함 탓에, 지금으로선 그 위대한 검술이 지닌 위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흉내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좀머 같은 양아치를 다스릴 목적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 아니, 충분하다 못해 철철 흘러넘칠 정도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삼킨 채, 나는 좀머의 턱밑에다 검을 가져다 대었다.

툭-

“흐이익!”

턱밑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검의 느낌에 좀머가 질겁하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내, 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데미언! 어... 그, 내가 미쳤었다! 내가 다 잘못한 거고! 어? 앞으로 저, 절대로, 절대로 너한테 함부로 하지 않으마! 그러니까... 한 번만 살려줘라! 제발! 제발!”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내게 사죄하는 좀머.

하지만 녀석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과 달리 그 말을 듣는 내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철퍼덕-!

“데미언! 우리, 우리... 3년 동안 같이 일했잖아? 응? 둘이서 손발도 잘 맞았고! 어? 갑자기 내가 사라지면 다들 놀랄 거야! 그, 그럼 너한테도 좋을 거 없잖아! 흐으으윽! 살려줘! 제발!”

급기야 녀석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같잖은 헛소리를 열심히 주워섬기는 좀머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현실을 알려주었다.

“손발이 잘 맞긴 개뿔... 너 접수처에 종일 앉아 있는 동안 난 청소하고 짐 나르고 허드렛일만 했는데, 무슨 손발?”

“그, 그... 그건!”

“그리고, 상식적으로 너 같은 말단 직원 하나 없어진다고 길드에 놀랄 사람이 있을 것 같냐? 이 새끼 이거 순진한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여기 과일 가게 아니고 용병 길드야, 새끼야. 돈 받고 사람 죽이던 일 하는 살벌한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데라고.”

“...!”

내 말을 들은 좀머가 엎드린 자세에서 몸을 벌벌 떨더니만,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오열하기 시작한다.

“어흐으윽!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라... 아니! 살려주십시오, 데미언님! 으흐흑!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아!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시키는 건 뭐든지! 뭐가 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바알-!!!”

저러다 손금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양 손바닥을 싹싹 빌며 읍소하는 좀머였다.

“살려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예, 예! 뭐가 되었건,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흐음...”

나는 창고 바닥에 이마를 쿵쿵 처박으며 살려달라 사정하는 좀머를 묵묵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이렇게 해보자고.”

< 첫 번째 히든 피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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