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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7화 (7/197)

< 크라벤의 천재 검사 (1) >

푸르스름한 새벽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이른 아침.

계절은 이제 깊은 가을로 접어들어 아침저녁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후우... 춥다, 추워!”

하지만, 오늘도 난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크라벤의 뒷골목을 달렸다.

“허억... 허억... 허억...!”

한 20분 정도 그렇게 뛰었을까?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에선 쉴 새 없이 거친 숨이 터져 나오고, 목에선 진한 피 맛이 났다.

“아이고 죽겠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달래기 위해 양쪽 무릎에 두 손을 짚은 채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온몸에서 모락모락 더운 김이 올라온다.

여전히 눈앞이 핑핑 돌 만큼 힘들지만, 이젠 그 힘든 느낌마저 익숙해진 요즘이었다.

“후우우... 크흡! 이제 다 왔네.”

내 오전 훈련의 종착지인 빈민가 중심의 작은 우물가에 도착했다.

이미 우물가엔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히 물을 뜨러 나온 주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야, 데미언! 오늘도 열심이구나?”

물을 뜨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이들 중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날도 추운데 옷을 그렇게만 입고... 괜찮아? 그러다 감기든다!”

“하하, 운동해서 오히려 더워요. 괜찮습니다!”

다들 빈민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로, 데미언이 어린 아기일 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었다.

“보기 좋구나, 데미언.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예전에 비쩍 말라서 안쓰러웠는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봐요.”

“자자, 목마르지? 물 한 모금 해라. 방금 뜬 거야.”

“아, 예. 감사합니다!”

꿀꺽, 꿀꺽-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우물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크으, 이거지!’

격렬한 운동 후에 마시는 냉수 한 잔의 시원함이란!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의 열기가 한풀 꺾이는 느낌이다.

“잘 마셨습니다, 아저씨.”

“허허, 그래. 내일 또 보자, 데미언!”

물 한잔의 호의를 베푸신 동네 아저씨에게 공손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발걸음을 돌려 용병 길드 건물로 향했다.

데엥... 데엥... 데엥...

멀리, 시간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종이 일곱 번 울렸으니, 아침 7시란 얘기다.

예전엔 이 시간까지 길드에 출근해 청소를 시작해야 했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다.

“고작 출근 한 시간 늦춰졌을 뿐인데, 세상 편하네.”

슬슬 밝아지는 아침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석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히든 피스 ‘검성(劍聖)의 낡은 롱소드’가 지닌 힘을 흡수한 후 양아치 좀머를 상대로 서열 정리를 했던 날.

목숨만 살려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빌던 좀머에게 나는 서로의 업무를 바꾸자는 제안(이라고 쓰고 협박이라 읽는다)을 건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좀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나는 원래 하던 청소 및 잡일을 때려치우고, 좀머가 하던 용병 길드 접수처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접수처 업무를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좀머.

그러나, 서류 몇 번 훑어보는 것으로 업무 파악을 마친 내가 더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선 절망 어린 표정이 되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이건 뭐 서류 작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네. 쉽다, 쉬워!’

인류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던 지난 생의 지식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나였다.

인간의 언어를 배운 것도 모자라 기계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와 코드로 대화를 나누던 내게 좀머가 만지작거리던 서류 쪼가리는 정도는 하품 나올 정도로 쉬운 일거리일 수밖에.

‘애초에 접수처 업무가 복잡할 리도 없고 말이지...’

나와 좀머의 담당 업무가 바뀌며 자연스럽게 출근 시간도 변했다.

좀머는 아침 7시까지 길드에 나와 청소를 시작하고 나는 한 시간 늦은 8시까지 여유롭게 출근하게 된 것.

나는 새롭게 얻어진 그 한 시간의 여유를 그대로 오전 훈련에 투자했고, 그 결과...

팟-!

『 데미언 / Lv. 3

소속: 크라벤 용병 길드

클래스: 사무원

고유 특성:

- 창조주(創造主)

- 검성(劍聖)

보유 스킬:

- 창조주의 눈(신화 등급)

- 리히테나워 류(전설 등급)

보유 아이템:

- 평범한 숏소드(일반 등급)

- 싸구려 깃털 펜(일반 등급) 』

드디어, 비루한 레벨 1의 신세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 근데 석 달을 죽어라 굴렀는데 겨우 레벨 3인 건 너무 심하다, 진짜.”

쏟은 노력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효율이었다.

마구잡이로 무식하게 운동한 것도 아니고, 지난 생을 통해 쌓아온 현대인의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 근력 운동과 유산소, 철저한 휴식을 병행하며 열심히 훈련했다.

뿐인가, 좀머에게 간간이 뜯어낸 용돈(?)으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시장 근처 여관에 들러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영양 보충에도 신경을 썼다.

하지만 나의 답 없는 육신은 이토록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약한 수준의 발전만을 보여주었다.

“이건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아니고... 하!”

그래도 이젠 검 몇 번 휘둘렀다고 어깨가 아픈 수준은 넘어섰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약골 중의 약골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레벨 3이라면 내 또래의 평범한 소년들과 비슷한 능력치.

그간 열다섯 나이에 걸맞지 않은 부실한 신체 능력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그나마 평균 수준엔 도달한 것 같았다.

“보자,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출근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나는 검술 훈련장으로 애용 중인 용병 길드 근처 공터를 찾았다.

“후우...”

공터의 중앙에 선 나는 지난 석 달간의 수련으로 이제 꽤 손에 익은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시장에서 산 6실버 짜리 숏소드.

말 그대로 이제 막 검을 잡기 시작한 초짜들이나 사용하는 저가의 보급형 철검이었다.

하지만, 그 검으로 그려내는 것은 낡은 롱소드 한 자루로 세상을 발밑에 두었던 검성(劍聖)이란 거인의 세계.

슈웅- 슈아아아악!!!

날카로운 검 끝이 바람을 가르고, 공간을 찢는다.

지금의 내 경지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위력의 검격이 연달아 펼쳐진다.

휘웅! 슈아아앙! 휭! 후아앙!

그렇게, 나는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리히테나워 류의 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펼쳐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순식간에 밀려오는 탈력감에 눈앞이 아찔하고,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와아,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하아아!”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한참을 허리를 꺾은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아직도 멀었네.”

분명 겉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은, 아니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을 검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직접 검을 휘두른 나는 알 수 있다.

방금 내가 펼쳐낸 검술은 제대로 된 검의(劍意)를 담지 못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냥 형태만 따라 하기에도 벅차네. 후우우... 빡세다, 빡세!”

힘과 체력이 부족한 탓에, 아직 검성의 검술을 제대로 펼쳐낼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더딘 성취에 자연스럽게 걱정과 초조함이 밀려들었지만, 나는 최대한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말자.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아자아자! 할 수 있다!”

조급함을 버리기 위해 주문처럼 구호를 외친 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움직여 공터를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했다.

“음?”

히든피스 ‘검성의 낡은 롱소드’가 지닌 힘을 흡수한 뒤 비약적으로 발전한 나의 감각이 무언가를 감지해냈다.

“...!”

재빨리 고개를 돌려 수상한 느낌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허름한 빈민가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 우두커니 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 뭐야, 저 자식?”

상대는 내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음을 깨달았는지, 금세 골목 틈으로 사라져버렸다.

관찰한 시간도 짧았고,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지라 정확한 인상착의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나를 지켜보고 있던 수수께끼의 인물은, 긴 장발에 검은 피부를 지닌 사내였다.

***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다녀와?”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덩치 큰 사내가 막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검은 피부의 사내에게 물었다.

“... 몸이 좀 찌뿌둥해서, 가볍게 주변 산책 좀 했습니다.”

“크으, 너는 보면 참 부지런해. 부하 놈이지만 참 멋있다, 존경스러워!”

앉은 자리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부하의 성실함을 칭찬한 덩치 큰 사내가 술 냄새를 풍기며 널브러져 있는 주변의 다른 부하들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야! 너희들도 저런 모습은 좀 따라서 배워라, 이 새끼들아. 휴가라고 맨날 여관에 죽치고 앉아서 술만 처먹지 말고. 그러니 맨날 술배가 나오지.”

덩치 큰 사내의 핀잔에 주변에 앉아 있던 몇몇 사내가 불만이 있는 듯 입술을 삐죽거린다.

“참나, 저희랑 부대장이랑 같습니까? 저쪽은 이십 년 가까이 군대 짬밥 먹으면서 근면 성실이 몸에 배어버린 양반 아닙니까. 우리랑은 아예 종이 다른 인간이라고요!”

“맞습니다. 명색이 용병인데 어떻게 휴가 기간 내내 술 한잔도 입에 안 대고... 와, 진짜 독하다, 독해!”

그들의 말을 들은 검은 피부의 사내가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 술은 근육을 녹이고 정신을 해이하게 만든다. 장기간의 휴가라면 모를까, 당장 내일 투입될 의뢰가 잡혀 있는데 몸 관리를 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그럼, 구구절절 맞는 소리다! 들었냐 이 새끼들아? 3일 휴가 중에 이틀을 술 처먹다 날 새는 너희 같은 삼류 양아치 용병들이랑은 아예 그릇이 달라.”

“뭐래, 대장님도 휴가 첫날엔 우리랑 술 먹고 카드 치면서 날밤 까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날 술도 자기가 제일 많이 마셨으면서...”

“아, 시끄럽네. 난 그래도 돼 이 새끼들아.”

“뭐야,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아아! 불공평합니다!!!”

“배신자! 애초에 술판 벌이자고 꼬신 것도 대장이잖아요!”

테이블 탕탕 내리치며 대장이라 불리는 덩치 큰 사내의 말에 반발하는 부하들.

하지만 이어진 대장 사내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입 다물어, 이 삼류 용병 나부랭이 새끼들아! 술 처먹고 날밤을 까도 내가 우리 중에 싸움 제일 잘 해! 억울해? 그러면 지금 밖에 가서 나랑 한판 뜨던가. 평생 술은커녕 부서진 턱주가리로 묽은 죽만 처먹게 만들어 줄게!”

“... 크흠! 뭐 그렇게 말씀을 살벌하게 하신대.”

“어후, 저게 용병대장인지 깡패두목인지...”

“뭐 이 새끼야?”

“아,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했슴돠!”

스스로의 호언장담처럼, 대장 사내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금세 꼬리를 말며 찌그러지는 부하들의 모습에 코웃음을 지닌 대장 사내가 진지하게 명령한다.

“아무튼, 메이슨 말대로 내일은 다시 일하러 가야 하니까 오늘은 술들 처먹지 마라. 얌전하게 몸 관리하면서 장비들이나 챙겨놔.”

“... 알겠습니다.”

“허이구, 대답은 넙죽넙죽 잘 하지. 암튼 몰래 술 처먹다가 걸리기만 해라. 특히 엔리케 너! 그 자리에서 남아 있는 앞니 하나도 뽑아버릴 테니까.”

“허읍! 알겠슴돠!”

대장 사내의 으름장을 들은 한 부하가 자신의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헛바람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부하를 상대로 협박(?)을 마친 대장 사내는 다시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아침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검은 피부의 사내가 팔짱을 낀 채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어이, 메이슨.”

“예, 대장.”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아침에 산책하다가 뭐 못 볼 거라도 봤어? 응?”

별생각 없이 농담조로 건넨 말이었다.

헌데 그 말을 들은 검은 피부의 사내, 메이슨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예, 못 볼 걸 본 것 같습니다.”

“... 뭐?”

< 크라벤의 천재 검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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