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8화 (8/197)

< 크라벤의 천재 검사 (2) >

“못 볼 것을 봤다니, 갑자기 그게 뭔...”

예상치 못한 부하의 답변에 대장 사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아는 메이슨은 농담 따위와는 거리가 먼 남자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먼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은 대장 사내가 삐딱하던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천천히, 알아듣게 설명해봐.”

“예. 실은... 제가 아침에 주변 산책을 하다가 요 근처 빈민가 공터에서 용병 길드 막내를 봤습니다.”

“용병 길드 막내?”

“예.”

메이슨의 말을 들은 대장 사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다.

“길드 막내라면... 그, 접수처 업무 보는 꼬맹이 말하는 건가? 머리 금발에 삐쩍 마른 녀석 맞지?”

“예, 맞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닥 닦고 있던 놈이 몇 달 전부턴 접수 일을 보던데...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낯익은 소년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짓던 대장 사내.

그러다 문득 얼굴을 굳히며 메이슨에게 묻는다.

“근데, 갑자기 그 녀석이 왜?”

“그 꼬맹이, 혼자 공터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더군요.”

메이슨의 대답을 들은 대장 사내가 맥이 탁 풀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 난 또 뭐라고... 용병 길드에서 일하는 애들이 헛바람 들어서 칼질 배우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더구나 그 녀석은 나이도 어리니, 더 그렇겠지.”

무슨 일인가 싶어 잔뜩 긴장했던 대장 사내가 별 것 아닌 내용에 바로 세웠던 허리를 구부정하게 되돌린다.

하지만, 무너졌던 그의 자세는 이어진 메이슨의 말에 다시 꼿꼿하게 세워졌다.

“저로서도 생전 처음 보는, 대단한 수준의 고급 검술이었습니다.”

“...!”

“물론, 대장님 말씀처럼 녀석이 아직 나이가 어린 터라 힘도 체력도 부족해 그 검술의 위력을 제대로 끌어내지는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먹고 몸이 성장해 그 검술의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다면, ‘최소’ 기사 급의 전력이 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

대장 사내의 얼굴빛이 변한다.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길 했다면 거짓말을 한다거나 과장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야기를 전한 이는 다름 아닌 메이슨.

알게 된 지 만으로 4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그는 농담하는 메이슨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드르륵-

방금의 이야기로 식욕이 싹 달아난 대장 사내가 테이블 위의 접시들을 손으로 밀어내며 말한다.

“... 방금 한 얘기,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

***

“하! 이 새끼가 진짜... 야! 너 나 누군지 몰라? 어이가 없네, 진짜!”

쾅! 쾅! 쾅!

한껏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지금 자신의 심기가 무척 불쾌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행동인 것 같은데...

‘... 이 새끼가 미쳤나?’

접수대 맞은 편에서 그를 상대하던 내가 보기엔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는 짓거리였다.

“어이, 꼬맹아! 너 말고, 네 위에 있는 다른 직원 데려오라고! 어린 새끼랑 일 얘기 하려니까 뭔 말이 안 통하네. 씨발!”

“...”

나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상대방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나이는 이십 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숨기려 하지만 눈매와 목소리에서 어린 티가 역력히 느껴진다.

키도 꽤 크고, 덩치는 확실히 좋았다. 딱 봐도 힘 좀 쓰게 생긴 스타일.

하지만...

‘낡기만 했지 전혀 손질되지 않은 가죽 갑옷, 창검에 베인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손과 팔뚝의 피부, 거기에 우리 도시에선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까지.’

결정적으로, 스킬 ‘창조주의 눈’을 통해 살핀 상대의 레벨이 너무 낮았다.

‘레벨 6이라...’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바닥에서 칼밥 좀 먹었다 싶은 용병들은 아무리 못해도 레벨 10 이상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잡놈’은 고작 레벨 6.

이 모든 특징을 조합해보면, 단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 이 새끼, 완전 초짜네.’

행패 부리던 상대가 초짜인 것을 확인하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씨, 괜히 쫄았네.’

상대의 능력치가 내 두 배라지만, 그래 봤자 레벨 3 vs. 레벨 6으로 도토리 키재기였다.

‘애초에 레벨의 절대 값이 낮으니... 이 정도 차이는 무시할 수 있지.’

더불어, 내 몸에 깃든 검성(劍聖)의 지고한 경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 격차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새끼가 사람 말을 씹네? 야! 뭘 멀뚱멀뚱 서서 쳐다보고 있어? 네 윗사람 데려오라고 인마!!!”

그새를 못 참고 버럭 성질을 부리는 용병 놈.

하지만 마주 바라본 녀석의 눈빛에는 당황함이 깃들어 있었다.

‘초짜 새끼, 네 생각대로 상황이 안 돌아가니까 당황스럽지?’

저 어설픈 모습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온다.

건장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 힘깨나 쓴다는 소릴 듣고 자랐을 거고, 동네에서 자경단 완장 차고 어설프게 칼질도 몇 번 해봤을 거다.

그러다 눈먼 칼질로 들짐승 몇 마리 썰어 넘기다 보면 ‘내가 검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거다.

‘... 제법 휘둘러서 손에 익은 싸구려 검 한 자루에 가죽 갑옷까지 걸치고 나면 베테랑 용병이라도 된 것 같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나는 눈앞의 얼치기에게 냉정한 세상의 법도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저, 손님? 저희 길드의 의뢰 접수 담당은 접니다. 다른 사람은 없어요. 저랑 얘기하시죠.”

“하! 이 새끼가 근데 아까부터 꼬박꼬박 말대답이나 처하고, 어린 놈의 새끼가 뒤지고 싶나... 야! 이거 안 보여? 이거!”

나의 대답을 듣고 기분이 더욱 언짢아진 사내가 자신의 왼쪽 허리에 매인 검에 손을 가져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내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어디서 줘도 안 가질 싸구려 칼 가지고 자랑은...”

“뭐? 지금 그거 나한테 한 말이냐?”

갑자기 불량스럽게 변한 나의 말투에 놀란 사내의 눈이 커진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하려던 말을 이어나간다.

“그럼 여기 나랑 얘기하는 사람이 아저씨 말고 또 있어요? 당연히 그쪽이죠.”

“뭐? 그, 그쪽?”

“보아하니 이쪽 일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실력에 안 맞는 고액 의뢰를 넘보면 안 되죠. 그러다 제 명에 못 살아요! 젊은 나이에 칼 맞고 객사하고 싶으신가...”

“이, 이...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내가 한참 인생 선배라도 된 것처럼 훈계를 늘어놓자 열 받은 사내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검 손잡이를 힘껏 잡았는데, 만듦새가 허술한 싸구려 검답게 아직 뽑지도 않은 검에서 ‘덜그럭’하는 쇳소리가 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설픈 꼴을 보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나왔다.

“얼라? 아저씨, 여기서 칼 뽑으려고요? 안 그러는 게 좋을 텐데... 그거 뽑으면 별로 좋은 꼴 못 봐요.”

“이런 미친 새끼가 끝까지...!”

스릉, 덜커덕! 촤앙-!

내 친절한 충고(?)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사내가 기어이 검을 뽑고 말았다.

그 와중에 검을 한 번에 뽑아내지 못하고 검집에 걸려 버벅거리다 겨우겨우 뽑아내는 꼴이 우스웠다.

‘... 어떤 놈한테 샀는지 몰라도, 어지간히 싸구려를 산 모양이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낸 채, 나는 사내를 마주 본다.

“뽀, 뽑았다, 이 새끼야! 네가 뭘 어쩔 건데, 어? 또 지껄여봐! 아까처럼 짖어 보라고!”

검을 뽑아 든 사내가 잔뜩 화가 난 어조로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휘우웅-!

사내가 검을 뽑아 들던 그 순간, 나는 접수대 옆에 세워두었던 기다란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어 그대로 휘둘렀다.

지금처럼 어설픈 실력으로 어깃장을 놓는 초짜 용병들을 다져줄(?) 용도로 미리 준비해 놓은 물건이었다.

퍼억-!

“으아악!!!”

내가 힘껏 휘두른 몽둥이에 검을 쥔 오른손을 얻어맞은 사내가 비명을 토한다.

만약 내 손에 들린 것이 몽둥이가 아니라 검이었다면 단번에 손이 잘려 날아갔을 정도의 매서운 일격이었다.

탱그렁-!

사내가 놓친 검이 멀리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손 한대 얻어맞았다고 바로 검을 놓치는 꼴이 과연 어설픈 초짜다웠다.

“이 건방진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검을 뽑아!”

단 일격으로 상대의 무장을 해제시킨 나는 단숨에 몸을 날려 접수대를 뛰어넘었다.

지난 석 달 내내 아침마다 크라벤의 뒷골목을 달리며 충실하게 다져온 다리 근육이 이 순간 진가를 발휘했다.

“어, 으! 어으어어!!!”

빠르게 가까워지는 상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봐주진 않는다.

빠각-!!!

몸을 띄운 상태에서 횡으로 휘두른 몽둥이가 상대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어차피 내 팔 힘이 부족한 탓에 단박에 머리통이 깨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끄아아...”

이마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사내의 눈이 대번에 풀린다.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휘청, 술 취한 사람처럼 뒷걸음질을 치는데, 내 손에 들린 나무 몽둥이는 그런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매타작을 이어나갔다.

퍼억! 퍽! 빠각-! 퍼어억!

“으악! 억! 크어억! 꺽!”

다채로운 타격음과 다양한 비명이 어우러져 살벌한 화음을 이뤘다.

얼핏 보기엔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나의 몽둥이질에는 검성(劍聖)의 심득을 담아낸 검술, 리히테나워 류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평소엔 혼자서 벽보고 연습하던 검술을 이렇게 실전으로 펼쳐내니, 확실히 느껴지는 손맛(?)이 달랐다.

“여기가! 너 같은! 동네! 양아치가! 함부로! 설치는! 곳인 줄! 아냐? 어? 어? 이 새끼야!”

뻑! 퍼억! 퍽! 퍽-! 빠각-!

내 근력이 부족해서 몽둥이질에 죽거나 불구가 될 정도의 힘이 실리진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아플 정도의 위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 그만! 그마안-! 커억!”

“뭘 그만이야, 이 새끼야! 닥치고 더 맞아!!!”

어설프게 때리다 그만둘 생각은 애초에 하질 않았다.

이렇게 천지분간 못하고 설치는 놈들은 제대로 버릇을 고쳐줘야 했다.

‘이런 놈들은 한 번 기강 잡을 때 내 얼굴만 봐도 똥 지릴 정도로 패줘야 뒤탈이 없지.’

더불어, 지금의 내 행동은 주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놈들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처맞기 싫으면 용병 길드 내에서 함부로 깝치지 마라’는 메시지였던 것!

‘오늘 일이 여기저기 퍼지면 당분간은 좀 조용하겠지?’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진 초짜 용병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 크라벤의 천재 검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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