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라벤의 천재 검사 (3) >
그 뒤로도 나는 예의 없이 행동하는 초짜 용병들을 상대로 몇 번이나 ‘쇼 타임’을 펼쳐주었다.
감히 길드에서 선 넘는 짓거리를 벌인 얼치기들을 상대로 한 화려한 몽둥이 찜질 쇼!
내 빼빼 마른 몸뚱이를 우습게 보고 덤벼들던 녀석들은 모두 예외 없이 너절한 빨랫감(?) 신세가 되어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다.
“하, 이 새끼들은 이게 무슨 동네 아줌마들 빨래 몽둥이질인 줄 아나...”
내가 하는 몽둥이질엔 4백 년 전 낡은 검 한 자루로 천하를 자신의 발아래 두었던 검성의 드높은 경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 나를 상대로 어디 근본도 없는 걸 검술이랍시고 배워와 휘적거리고 있으니, 냅다 처맞을 수밖에.
“와, 진짜로 몽둥이 휘두르는 게 너무 빨라서 보이질 않더라니까?”
“그것도 그건데, 나는 상대방이 칼 휘두르는 걸 정확하게 몽둥이로 쳐내는 게 더 대단하더라.”
“엥? 그게 되나? 그 몽둥이 나무 깎아서 만든 거 아냐?”
“어, 되더라고. 이게 칼날 쪽으로 맞으면 몽둥이가 잘릴 텐데, 정확하게 칼을 면 쪽으로 때리니까 안 잘리고 버티는 거야!”
“오, 그러네! 그럼, 그 자식은 그걸 정확하게 보고 칼 옆면만 쳐낸다는 거야?”
“아니... 그게 되나?”
“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이 자식이 사람 말을 못 믿어?”
“데미언 그놈 말이야, 비리비리 말라깽이에다가 키도 작은 녀석이 대체 어디서 그런 대단한 검술을 배운 걸까?”
“뭐, 길드에서 일하니까 친하게 지내는 용병이 가르쳐줬겠지?”
“근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녀석 검술은커녕 주먹질도 못 하지 않았어?”
“어... 그러네?”
“알고 보니 타고난 검술 천재였던 것 아닐까?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지! 일부러 약한 척하면서!
... 무슨 힘숨찐이냐, 내가.
뭐, 어쨌든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한 소문은 싸움을 목격한 이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말을 전하는 중간중간 살이 붙어서 내가 건방 떨던 용병 놈의 머리통을 단박에 깨버렸다느니, 대뜸 팔다리를 한 짝씩 잘라버렸다느니 하는 무서운 얘기로 와전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크라벤 용병 길드에 얼치기 초짜 놈들을 몽둥이 하나로 박살 내버리는 싸움의 천재가 있다!’
‘싸움의 천재’라고 불리기엔 상대가 많이 허접했지만, 퍼져나간 소문의 뉘앙스 자체는 내가 원했던 게 맞았다.
문제는, 그 소문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나는 이 소문을 통해 실력도 안 되는 얼치기들이 길드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랐다.
착각이었다.
용병이란 기본적으로 호전적(好戰的)인 성격을 지닌 이들.
소문들 듣고 몸을 사리는 이들보다 ‘나도 한번 그놈이랑 싸워봐야지!’ 따위의 생각을 하는 놈들이 훨씬 더 많았던 거다.
“야!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한다고? 밖으로 나와 봐! 나랑 한 판 뜨자!”
“참나, 그 자식은 이런 비리비리한 애새끼한테 처맞았다는 거야? 아주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야! 나도 한 번 때려봐! 때려보라고!”
“어이, 네가 겁대가리 없이 우리 길드 막내 건드렸다는 그 미친 꼬맹이냐? 엉?”
“밖으로 나와 인마! 길드 사무실 안에 숨어있지 말고 밖으로 튀어나왓!”
“지난번엔 내가 방심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거다! 정정당당하게 붙어보자!”
매일 같이 길드 앞으로 찾아와 한 판 붙어보자며 개소리를 늘어놓는 놈이 어찌나 많던지.
일거리 찾아온 길드 손님들 상대하랴, 불나방처럼 덤벼드는 얼치기 놈들 밟아주랴 아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하아, 피곤해 죽겠네...”
처음 몽둥이를 휘둘렀던 날엔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뭐, 덕분에 알차게 경험치를 쌓고 있긴 하다만...”
출근 전의 체력 단련, 업무 시간엔 초짜 용병들을 상대로 한 실전 비무, 퇴근 후엔 하루 동안의 배움을 되돌아보는 명상 시간까지.
요즘의 내 생활은 그야말로 치열한 수련의 연속이었다.
타고난 육신의 부족함 탓에 발전의 속도는 매우 더뎠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어우, 싸움질에 미친 놈들이 왜 이렇게 많냐. 뭔 야인시대도 아니고... 길드 간판을 종로 우미관으로 바꿔 달든가 해야지, 에이!”
몽둥이질로 뻐근한 어깨 근육을 연신 주무르며, 퇴근 준비를 서두르는 나였다.
“저 먼저 퇴근합니다. 뒷정리 잘 하시고, 내일 봬요.”
“어어, 그래! 자, 잘 들어가 데미언! 내일 보자!”
‘서열 정리의 그 날’ 이후 눈에 띄게 착해진(?) 된 좀머의 작별인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길드를 나섰다.
***
퇴근 후 나는 시장 근처에 자리한 여관 ‘친절한 당나귀’에 들렀다.
정확히는, 여관 1층에 있는 식당에 들른 거였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값이 비싸 평소에는 감히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고기를 ‘영양 보충’의 개념으로 챙겨 먹는 날이었다.
현대 문명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내게 단백질을 먹어야 근육이 붙는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었으니까.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 데미언 왔구나! 가만, 오늘이 벌써 금요일이었나?”
인심 좋기로 유명한 여관 주인, 후고(Hugo)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준다.
나에게 온갖 생색을 다 내며 싸구려 칼을 팔아먹으려 했던 무기상의 한스와 달리, 후고 아저씨는 정말로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었다.
여관과 식당을 운영해 번 돈으로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거리의 천사!
나(정확히는 데미언의 기억이었지만) 역시 어렸을 적 후고 아저씨가 선물한 빵을 먹고 자란 기억이 있었다.
물론 그 나눠준 음식이란 게 돌처럼 딱딱해서 물에 불려 먹지 않으면 도저히 씹을 수가 없는 딱딱한 호밀빵에 불과했지만, 빈민가엔 그마저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돈 많은 사람이 기부하는 것보다 없는 살림 쪼개서 가난한 애들 돕는 사람이 더 힘들고 대단한 거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아저씨, 야채 스튜 한 접시랑 삶은 닭고기 하나 부탁드려요.”
“그래, 얼른 준비해줄게. 조금만 기다려라!”
내 음식 주문을 받고 돌아선 후고 아저씨가 부엌으로 막 들어서려던 그때,
끼익, 콰앙!!!
부서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식당 문이 거칠게 열렸다.
“뭐, 뭐야?”
“누가 문을 저렇게 세게 열고...”
“발로 찬 거 같은데?”
“어이구, 밖에 무슨 일 났나? 응?”
나를 비롯해 앉아 있던 손님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곧, 놀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듯 받아내며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누군가.
“에이, 시발! 먹던 밥이나 열심히 처먹지 뭘 그렇게들 쳐다봐? 식당 오는 사람 처음 보냐? 어?”
“...!”
모습을 드러낸 상대는 커다란 덩치를 지닌 근육질의 민머리 사내였다.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난폭함에 겁을 먹은 손님들이 재빨리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딱 한 사람.
나를 제외하고 말이지.
“응? 넌 뭐야? 뭘 그렇게 꼬나봐, 이 새끼야.”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있는 와중에 내가 홀로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있자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대번에 험악한 말을 늘어놓으며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는 사내.
그 반짝이는 민머리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아재, 생긴 것만 봤을 때는 찐인데...’
수많은 상처가 새겨진 근육질의 팔뚝과 그간의 모진 풍파를 상징하는 듯한 거칠고 험악한 인상.
거기에 진득한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위협적이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듯한 쭉정이일 수도 있으니, 제대로 된 확인이 필요했다.
‘... 창조주의 눈.’
팟-!
사내의 눈을 피하지 않고 몇 초간 마주친 덕에 상대의 능력치를 알아낼 수 있는 나의 신화급 스킬, ‘창조주의 눈’이 발동되었다.
그렇게 확인한 상대의 레벨은...
『 빌로트 / Lv. 18
소속: 없음
클래스: 용병 』
‘이런 씨...!’
씨팔.
아니, 18!
상대는 무려 레벨 18을 찍은 진짜배기 베테랑 용병이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용병 놈들이 죄다 레벨 10 이하의 잔챙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눈앞의 사내는 아예 격이 다른 수준의 실력자.
지난 몇 달간 미친 듯이 노력해 겨우 만든 지금의 내 레벨이 6이었으니, 단순 계산상으로도 나보다 무려 세 배의 강함을 지닌 상대였다.
‘레벨 18이라... 어지간한 도시의 경비대 조장 정도는 갖고 놀 수준이네.’
상대의 레벨을 확인한 뒤 끓어오르는 긴장으로 입안이 바짝 마르기 시작한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해보지만, 이미 뒷덜미와 등판은 솟아난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젠장, 나도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눈 깔고 있을 걸...’
이러다가 저놈이랑 시비가 생겨 한 판 붙게 된다면?
머릿속으로 다급하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내가 얻은 검성의 유산, 리히테나워 류(流)는 명실상부 <로스트 킹덤> 세계관 최강의 검술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평범한 성인 수준에 불과한 나의 신체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검술의 위력을 선보일 수 없었다.
레벨 10 이하의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할 땐 부족한 신체 조건의 단점을 압도적인 기술의 격(格)으로 보완하며 싸울 수 있겠지만 상대가 레벨 18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용병이라면?
‘... 아니야, 이건 안 돼.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싸우면 무조건 진다!’
심지어 지금은 내 주 무기인 나무 몽둥이는커녕 젓가락 한 짝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 검성의 검술이고 나발이고, 이건 안 돼. 일단, 차분하게 대화로 풀어보자.’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나는 일부러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문이 쾅! 하고 열리는 바람에, 놀라서 쳐다보다가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한껏 겁먹은 아이(내 나이는 열다섯이었지만, 체구가 작아 실제보다 더 어리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를 연기하며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 정도면 대강 상황을 마무리 짓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는데...
“죄송은 시발, 말로만 하면 끝이냐? 쥐새끼 좆만 한 새끼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그 혓바닥 끝을 뚝 잘라서 보여주면 좀 더 싸가지가 생기려나? 응?”
... 이 새끼가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라는 게 문제였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쿵!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마음에 실수인 척 테이블에 머리까지 박아가며 격한 사과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눈앞의 미친놈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턱!
“크흡! 끄으으...!”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다짜고짜 손을 뻗어서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지금의 내 실력으론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빠른 손놀림이었다.
“끄으... 이거... 놔 주...”
“허어, 이 새끼 봐라?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주둥이를 나불대네? 확 그냥 모가지를 꺾어주랴?”
내 옷깃을 단단히 틀어쥔 상대의 손에서 무지막지한 힘이 느껴진다.
제대로 힘을 쓰면 사람 목 정도는 우습게 꺾어 버릴 정도의 대단한 악력이었다.
“끄윽... 큭!”
“이런 시장바닥에서 혼자 싸돌아다니는 거 보면 잘 사는 집 자식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새끼가 뭘 믿고 이렇게 눈깔을 싸가지 없게 뜨나? 그 눈깔 확 뽑아줄까? 엉?”
처음 식당 문을 냅다 발로 걷어차며 들어올 때부터 느꼈지만, 이 새끼는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다.
‘크윽! 어떡하지? 그냥 한판 붙어야 하나?’
내가 사내에게 멱살을 잡힌 채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아이고, 손님! 진정하세요! 이, 일단 그 손 놓고 얘기하시죠!”
부엌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후고 아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와 내 멱살을 틀어쥔 상대의 팔을 붙잡았다.
아마도 내가 다칠까 봐 말리려 그러셨던 모양인데, 그게 상대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이런 시발 새끼가 어디다 손을 함부로 올려!”
사내는 내 멱살을 잡았던 손을 그대로 휘둘러 손등으로 후고 아저씨의 얼굴을 쳐버렸다.
철썩-!
“컥!!!”
손등이 아니라 숫제 주먹으로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음이 들리고,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후고 아저씨가 맥없이 뒤로 쓰러진다.
“끄흐윽...”
바닥에 쓰러진 아저씨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저씨의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흘러나오는 붉은 피.
코피가 터지고, 입술도 터졌다.
그리고...
“이런 애미 없는 개 호로 새끼가 진짜!!!”
지금으로선 도저히 싸울 수 없는 강한 상대를 앞에 두고 꾹꾹 눌러 참고 있던 나의 인내심도 터져버렸다.
< 크라벤의 천재 검사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