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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0화 (10/197)

< 크라벤의 천재 검사 (4) >

“뭐?! 이 좆만 한 새끼가 미쳤나?!”

갑작스러운 나의 급발진에 놀란 민머리 사내, 빌로트가 쌍욕을 퍼부으며 나에게 손을 뻗었지만, 이번엔 내가 더 빨랐다.

퍼억-!

“큽!”

내가 전력으로 휘두른 팔꿈치에 명치 부근을 얻어맞은 빌로트가 짧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굽힌다.

숨이 턱 막히지, 이 새끼야?

“흐아앗!”

뒤이어, 나는 눈앞에 보이는 놈의 머리를 향해 시원한 발차기를 먹였다.

빠각!

“크헉!”

내 발차기에 머리를 걷어차인 빌로트가 크게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진다.

“우와아아!”

“와아, 대박!”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들이 보기엔, 갑자기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와 안하무인으로 행패를 부리던 나쁜 놈을 상대로 자그마한 소년이 정의의 심판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미친! 이걸 버틴다고?!’

정말 온 힘을 다해 상대의 머리를 걷어찼는데, 빌로트는 옆으로 쓰러지기만 했을 뿐 목이 꺾이질 않았다.

무식하리만큼 단련된 그의 목 근육이 충격을 버텨냈기 때문이었다.

“크흐으읍! 이런 씹어 처먹을 새끼가!!!”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바닥에 쓰러졌던 빌로트가 순식간에 몸의 중심을 회복하고 일어섰다는 것!

“이런 젠장!”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휘우우웅!!!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의 아슬아슬한 차이를 두고 빌로트의 주먹이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크흡! 위험했다!’

한 대만 맞아도 곧장 바닥에 드러눕게 될 듯한,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는 주먹이었다.

“하! 이 새끼 봐라? 이걸 피해?”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은 빌로트가 연달아 두 번의 주먹을 날렸다.

후우웅! 훙!

하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두 번의 주먹을 모두 피해냈다.

나의 몸속에 녹아들어 있는 검성의 초인(超人)적인 감각이 그러한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후아아! 이 미친 새끼가 진짜 사람을 죽이려고 그러네?!”

어차피 막장으로 치닫게 된 상황, 나는 거리낌 없이 상대에게 욕을 퍼부었다.

조금이라도 상대의 멘탈을 흔들어 방심을 유도하려는 생각이었으나...

“하하핫! 재밌네, 재밌어! 요리조리 잘 도망치는 게 잡아 죽이는 맛이 일품이겠구나!”

“이런 미친 또라이 새끼!!!”

얼굴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근처 식당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나무 쟁반을 집어 들었다.

콰지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나무 쟁반.

무거운 음식을 한가득 올려도 너끈히 버텨낼 만큼 단단한 쟁반이었는데, 녀석의 주먹에 걸리니 무슨 종잇장 찢어지듯 허무하게 박살이 났다.

“크윽!”

빌로트의 주먹에 담긴 힘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나는 부서져 흩날리는 쟁반 조각들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허윽, 후우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충격으로 얼얼한 양손을 거칠게 털어내며 생각했다.

‘... 이러다간 결국 잡힌다! 넓은 곳으로 나가야 해!’

이렇게 사방이 막혀 있는 식당 안에서 도망만 다니는 건 한계가 있다.

건물 밖의 넓은 공간에서 싸워야, 조금이라도 나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후, 나는 뒤로 훌쩍 뛰어 빌로트와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말했다.

아주 큰 목소리로.

“야, 이 머리털도 제대로 안 자란 흉악한 오크 대가리 새끼야!”

“?!”

“남의 영업장에서 개지랄 그만 떨고 밖에 나가서 제대로 한 판 붙자! 쫄리면 계속 여기 있던가! 그 나이 처먹고 어린 애들이나 괴롭히는 좆 같은 새끼! 에이, 더럽다! 퉤퉤퉤!”

“...”

어린 내가 쏟아낸 살벌한 욕설에 정신적인 타격(?)을 받은 것인지, 잠시 멈칫한 빌로트.

하지만, 그 잠깐의 정적 뒤 빌로트는 더할 나위 없이 흉악한 표정이 되어 내게 말했다.

“애새끼라 적당히 놀아주다가 그만하려고 했는데... 오늘, 내가 개 한 마리 잡는다!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온몸의 관절 하나하나를 잘근잘근 밟아서 부숴주마!!!”

***

“에엥? 뭐야, 저거?”

일행의 선두에 서서 휘적거리며 걷던 구릿빛 피부의 사내, 엔리케가 무엇을 봤는지 바쁘게 놀리던 발걸음을 멈췄다.

“억!”

“크흡!”

“아이씨, 뭐야!”

그 바람에 뒤에서 따라오며 골목을 돌던 사내 몇몇이 앞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그 갑작스러운 접촉사고(?)의 피해자가 된 동료 몇몇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갑자기 왜 멈춰!”

“아오, 조장! 일부러 그런 거죠!”

뒤에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볼멘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고개를 돌린 엔리케가 무리의 한 가운데에서 걸어오던 덩치 큰 남자에게 말했다.

“대장님, 저기 여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어디 보자.”

엔리케의 말을 들은 덩치 큰 사내가 시선을 돌려 일행의 목적지인 여관 쪽을 바라본다.

슬슬 어둠이 번져가는 초저녁의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이 여관 건물 앞쪽에 모여 웅성웅성 소란을 떨고 있는 게 보였다.

멀리서 봐선 무슨 일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광경.

하여 덩치 큰 사내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의 조언을 구하기로 한다.

“... 메이슨.”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긴 장발 머리를 끈으로 단단하게 묶어 올린 검은 피부의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한다.

“예, 대장.”

“저게 뭔 지랄인 거 같냐?”

“음...”

“혹시... 경비대 놈들이나 지역 길드 놈들이 나와서 설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애초에 그놈들이 나왔으면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서 태평하게 구경하고 있지 못할 겁니다.”

“아하, 그렇긴 하네.”

일리가 있는 메이슨의 말에 대장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 생각엔... 싸움이 난 것 같습니다.”

“싸움?”

“예. 애초에 이런 시장바닥에서 사람들이 떼로 모여 소리 지르며 구경할 만한 일이 싸움 구경 아니면 불 구경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전자겠군. 일단 불 난 곳은 없어 보이니.”

“예, 그렇습니다.”

논리적인 메이슨의 말에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말이 없었던 대장 사내, 겔베르트(Gelwert)가 천천히 입을 연다.

“그래, 어떤 놈이 저렇게 관중을 많이 모아놓고 주먹질을 하는지, 가서 확인해보자. 따라와.”

“으앗! 대장 같이 가요!”

***

“이런 씨이...!”

원래 ‘씨이’ 뒤에 더 갖다 붙일 말이 있었다.

허나 상황이 너무 급하다 보니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젖혀 주먹을 피하자마자 내 발목을 노리고 뻗어진 빌로트의 발차기.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린 상태에서 그 발차기를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내 몸속에 녹아있는 검성의 감각은 그 불가능한 일을 또다시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쿠당탕!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여관 앞 시장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이른바 무협지에서 말하는 ‘나려타곤’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해냈던 것!

무협지에선 이 나려타곤으로 상대 공격을 피하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불명예로 묘사하지만, 나는 지킬 명예가 쥐뿔도 없는 사람 아니던가?

‘애초에 빈민가 출신 고아 소년한테 지킬 명예가 어디 있겠냐!’

그저 안 맞는 게 중요할 뿐인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바닥을 굴렀고, 그 덕에 기습적으로 들어온 빌로트의 발차기를 피해낼 수 있었다.

“으으으! 으으! 이 빌어먹을 새끼! 죽여버린다아아아아!!!”

식당 밖으로 나와서도 여전히 나를 붙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짜증이 났는지, 빌로트가 발을 구르며 욕설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마주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놈이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 죽인다는 얘기를 함부로 하네? 왜, 아주 칼도 뽑지 그러냐? 이 개새끼야! 도시 경비대! 경비대 여기 없습니까? 여기 웬 미친놈이 사람 죽인다아아아아!!!”

“...!”

바락바락 마주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보며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빌로트.

그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끝을 모르는 진득한 분노였고, 거기서 나는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표정이 왜 저래?’

내가 도시 경비대를 언급하며 소리를 지른 것은, 눈앞의 미친놈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도시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도시 경비대의 이름값을 빌려 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이 개새끼야! 모가지를 썰어주마!!!”

슈카앙-!!!

순식간에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롱소드.

빌로트의 막강한 실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발검(拔劍) 동작이었다.

대체 뭔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도시 경비대를 언급한 게 놈의 ‘발작 버튼’을 누른 꼴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휘웅-! 휘우웅-!!!

방금까지 주먹과 발이 난무하던 장소에 별안간 시퍼런 검광이 번뜩인다.

“흡! 허읍! 흐아앗!”

살기를 줄줄 흘리는 빌로트의 검이 나의 목을 노리며 사방에서 날아들었고, 나는 헛바람 집어삼키며 급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우웅!!!

“저, 저, 저 자식 칼을 뽑았어?!”

“으아앗! 조심해요!!!”

“위, 위험해!!!”

“뒤로 가! 빨리 뒤로 가라고!”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어찌나 섬뜩한지, 우리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주변에 둥글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이! 크흐읍!’

맨손으로 싸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워진 놈의 움직임.

그리고 숨통을 조여오는 이 무지막지한 기세까지!

빌로트는 맨손으로 싸울 때도 위협적인 사내였지만, 검을 들었을 때는 그보다 훨씬 더 완성된 전사였다.

촤아악!

“크윽!!!”

결국, 나는 빌로트와의 싸움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주르륵-

검에 베인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새빨간 피가 팔을 타고 흘러내린다.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드는 옷.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이어질 후속 공격에 대비하며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 젠장!”

팔을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는 걸 봐선 근육이나 뼈에 손상을 줄 정도로 깊게 베인 것은 아닌 듯하나, 어마어마한 통증에 정신이 아찔했다.

“하하! 드디어 걸렸구나 이 쥐새끼야!”

낼름, 자신의 검날에 묻은 나의 피를 혀로 핥으며 희열에 찬 미소를 보여주는 빌로트.

그 역겨운 미소를 보며 섬뜩함을 느낀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저기요, 누구 검이나 막대기 같은 거 있으면 좀 던져주세요! 제발!!!”

놈이 지닌 막강한 기량을 생각했을 때, 검을 들었다 하더라도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터!

“여기다, 데미언! 이걸 써!”

바로 그때, 누군가가 던진 나무 막대기 하나가 내 발밑으로 떨어졌다.

대충 모양이 부서진 의자 다리 같았는데, 날아온 방향을 슬쩍 바라보니 흐르는 코피로 얼굴이 피범벅이 된 후고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콱-

손을 뻗어 아저씨가 전해준 의자 다리를 힘껏 붙잡았다.

검은 아니었지만, 검의 역할을 대신해줄 무언가가 내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했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고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진다.

천천히 의자 다리를 들어 올린다.

아니,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것은 한 자루의 검(劍)이 된다.

“푸흐흐, 그까짓 나무 막대기 하나 들었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응?”

의자 다리를 마치 검처럼 쥐고 자세를 잡는 나를 보고 비웃는 빌로트.

동시에 그는 바닥을 크게 박차며 달려와 검을 휘둘렀다.

“뒈져라, 이 새끼야!!!”

휘우우우웅!

단숨에 내 머리통을 쪼개 버릴 기세로 떨어지는 빌로트의 검.

“아, 안돼에에에에!”

“으아아아!”

곧 펼쳐질 끔찍한 광경을 예상한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나,

태에에에엥!!!

“뭣?!”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쇳소리와 함께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고 옆으로 빗겨나가는 빌로트의 검.

내가 떨어지는 검의 끝부분을 후려쳐 궤도를 틀어버린 결과였다.

“와아아아!!!”

단 한 수에 불과했지만, 검이 아닌 부러진 의자 다리로 만들어낸 놀라운 광경에 구경꾼들의 함성이 터진다.

“이런 시발 새끼가!”

자신의 검이 그깟 부서진 의자 다리에 밀려났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한 빌로트가 숨 쉴 틈 없이 공격을 몰아쳤다.

하지만 나 역시 방금의 한 수로 기세를 탄 상태!

‘침착하게, 욕심내지 말고 공격을 쳐내는 것에만 집중하자!’

곧, 검술 리히테나워 류의 드높은 경지를 증명하는 움직임이 내 손끝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 크라벤의 천재 검사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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