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3화 (13/197)

< 푸른 방패 용병대 (2) - (수정) >

2년 후,

신성력(神聖歷) 782년,

펠리노어 왕국 남부, 텔마르크의 주도(主都) 크라벤(Kraven)_

시설은 다소 허름하지만, 주인장의 푸근한 인심과 맛좋은 음식들로 인기가 많은 여관 ‘친절한 당나귀’.

그 여관 건물 앞쪽 공터에 몰려든 한 무더기의 사내들의 무언가를 지켜보며 열심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흔여섯... 아... 아흔일곱... 크으으으!”

“야야, 막내야! 이제 세 개 남았다! 조금만 더 힘내자!”

“와이씨, 저 미친놈! 진짜로 백 개를 채운다고?”

“푸흐흐! 내가 말 했지? 막내 저 새끼, 생긴 것만 곱상하지 아주 지독한 놈이라니까?”

“저 자식 지독한 거 누가 모르냐? 근데 이건 다른 문제 아냐!”

“흐으읍, 아흐은... 여덟...!”

“아자차! 이제 두 개 남았다!”

“씨발, 조졌네... 하아!”

“아흐은... 아호옵...!”

“막내야, 마지막이다! 마지막! 으하하하!”

“딱 한 개만 더! 가즈아아아아아!”

상의를 벗어 던진 채로 바닥에 엎드려 쉬지 않고 팔굽혀 펴기를 하는 금발 머리의 소년.

소년에 등 위엔 한눈에 보아도 무거워 보이는 큼지막한 돌덩이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을 둘러싸고 마치 도박장에 모여든 꾼들처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광하는 사내들.

이들은 바로 텔마르크 영지 최강의 용병대라 불리는 ‘푸른 방패’의 대원들이었다.

“으아아아아... 배-애액!”

금발 머리 소년의 입에서 백 번째 팔굽혀펴기를 알리는 외침이 터져 나오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의 표정이 두 패로 갈린다.

“이야아아아아아!!!”

“야, 봤지? 봤지! 내가 저 새끼 백 번 한다고 했잖아!”

“아오, 시발! 망했네! 나 진짜 이번 달에 쓸 돈 거덜 났는데!”

“푸훗! 그러게 신중했어야지!”

“그러게. 인마! 너는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말도 모르냐?”

“허이구, 개소리하네. 맨날 도박장 가면 돈 잃는 새끼가...”

“자자! 잔말 말고 돈이나 내놔, 이 새끼들아. 막내가 못 할 거라는 쪽에 걸었던 놈들 5실버씩 내놓으시고!”

“크흠, 맞다. 나 아까 대장이 뭐 시킨 게 있었는데 깜빡하고 있...”

“에헤이! 조장! 갈 거면 돈 내놓고 가요! 누굴 지금 호구로 보시나...”

“알았어, 인마! 이 새끼들이 진짜 누굴 돈 떼어먹는 그런 파렴치한 놈으로 만들고... 에이!”

쩔그렁-

소중하게 쥐고 있던 은화 다섯 개를 돈 내놓으라며 닦달하는 부하에게 넘겨준 엔리케.

“아오, 짜증 나! 오늘 술값 날렸네!”

씨근덕거리며 고개를 돌린 그가 땀범벅이 되어 바닥에 엎어진 소년을 붙잡아 일으킨다.

“야, 이씨! 넌 진짜 뭐 하는 놈이냐?”

“후우... 예에? 무슨 말이에요?”

선배의 볼멘소리를 들은 소년이 땀에 젖은 금발 머리를 쓸어올리며 밝게 웃는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소년의 머리칼을 흔들고, 맑은 날의 햇빛이 그 위로 부서져 내리며 말로 다 설명 못 할 반짝임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아름다운 녹안(綠眼)이 보였다.

머금은 그 눈빛이 해가 갈수록 더욱 진해져 오묘한 신비스러움을 풍겼다.

원래도 높았던 콧날과 날렵한 턱선엔 조금씩 남자다움이 묻어나기 시작하고, 몰라보게 살이 오르고 탄탄해진 몸은 이제 소년이 남자가 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성년을 한 해 앞둔 나이, 열일곱.

푸른 방패의 막내 데미언이 얼굴 가득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쓸어내며 불퉁거리는 선배의 말을 경청한다.

“아니, 너 팔굽혀펴기 평소에 잘 안 하지 않아? 왜 이렇게 잘 하는데? 심지어 더럽게 무거운 돌덩이까지 올리고!”

“하아... 하아... 저 원래 다른 훈련 안하고 팔굽혀펴기만 하면 한 이백오십 개까지는... 후우! 그냥 해요. 평소엔... 아이고, 숨 차! 다른 훈련 할 게 많아서... 하! 체력 아끼려고 굳이 안 하는 거지. 후우... 아, 근데 돌덩이 지고 하니까 확실히 빡세긴 하네요.”

“이런 미친... 뭐, 하긴. 네가 평소에 하는 훈련이 좀 빡세야지.”

헐떡이는 숨을 참아가며 대답하는 데미언의 모습을 보며, 엔리케가 새삼스럽다는 듯 말한다.

2년 전, 우연한 기회로 푸른 방패 용병대에 들어오게 된 막내 데미언.

처음 들어왔을 때도 열다섯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무지막지한 검술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녀석이다.

그러나 빈민가 출신의 고아답게 제대로 못 먹고 자라서인지, 체력과 힘이 약해 지닌 검술의 위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데미언에게선 깡 말랐던 그때의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너 처음 용병대 들어왔을 때 생각하면 같은 놈이 맞나 싶다. 그땐 진짜 비쩍 꼴아 가지고 불쌍해 보였는데, 지금은 뭐... 어휴!”

숨을 헐떡일 때마다 그림을 그린 듯 선명하게 드러나는 데미언의 복근을 보며 엔리케가 작게 감탄을 터트린다.

“에이, 몸은 조장도 좋으시잖아요.”

“아니야, 인마. 나 요즘 술배 나와서 큰일이야.”

“그러게 술 좀 적당히 드시지... 그리고 저랑 같이 오전 훈련하자니까요? 딱 훈련하고 점심 먹으면 상쾌하고 좋잖아요.”

“야, 이씨! 그런 건 너나 해! 너는 어려서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너처럼 하면 바로 골병든다.”

오전 훈련을 같이하자는 말에 엔리케가 질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옆에서 지켜본 그가 생각하기에, 데미언이 하는 훈련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가벼운 달리기로 몸을 달궈준다.

말이 ‘아침 일찍’이지, 거의 새벽닭이 울 때쯤 일어나는 거라 엔리케처럼 술 좋아하고 아침잠 많은 사람은 따라 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달리기로 몸을 풀어준 후엔 여관 근처 공터에 가져다 둔 커다란 바윗돌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렸다가 다시 바닥으로 던지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한다.

엔리케도 궁금함에 몇 번 따라 해본 적이 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힘든 훈련이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처음엔 꼬맹이 머리통만 한 걸 들고 하더니... 요즘엔 아예 호박만 한 돌을 가져다 놨더라?”

“아, 예. 이제 그 정도는 되어야 운동이 되니까요.”

데미언이 만들어낸(?) 훈련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엔 굵직한 밧줄 두 개를 가져다가 쇠말뚝에 묶은 뒤 반대편에서 밧줄 끝을 잡고 아래위로 물결치듯 계속해서 흔드는 기묘한 훈련을 만들었는데, 이것 역시도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 두 가지 신기한 훈련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데미언은 검을 잡았다.

수직 베기, 수평 베기, 찌르기 같은 기본적인 동작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연습하고, 그 후엔 각각의 동작을 연계해서 펼쳐내는 식으로 또다시 수십 번을 반복한다.

여기까지가 데미언이 말하는 소위 ‘오전 훈련’의 일정이었다.

“너 근데 점심 먹고 또 훈련하잖아. 안 힘드냐?”

“힘들죠. 힘든데...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일하다가 안 죽으려면.”

엔리케의 말처럼, 데미언은 오후에도 치열하게 훈련에 몰입했다.

오전이 기본기에 충실한 시간이라면, 오후는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시간이었다.

처음 용병대에 들어올 때부터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 정체 모를 검술을 열심히 갈고 닦았고, 이후엔 대장 겔베르트 혹은 부대장 메이슨을 찾아가 대련 시간을 가졌다.

용병대의 서열 1위와 2위가 번갈아 가며 막내의 훈련을 돕는 실로 희귀한 그림.

이게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두 사람을 제외하면 푸른 방패 용병대 내에서 검으로 데미언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너 인마, 혹시 내 자리 노리는 거 아니지? 응? 그럼 아주 배신이야, 배신!”

툭, 후배의 어깨에 손을 올린 엔리케가 농담 반, 진담 반의 짓궂은 장난을 걸어온다.

그러자 데미언이 손사래를 치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진짜 아닙니다! 저 같은 초짜가 무슨... 그깟 칼질 좀 한다고 조장 될 수 있으면 개나 소나 다 하게요? 조장 달려면 기본적으로 경험이랑 인성이 받쳐줘야죠.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바닥에서 굴러야죠, 선배님들 모시면서.”

“크으, 막내 이 새끼! 너는 진짜 칼 쓰는 솜씨보다 혓바닥 굴리는 게 더 예술이라니까?”

“에헤이, 혓바닥을 굴리다뇨! 평소 생각하던 걸 그대로 말한 것뿐입니다.”

“아이고, 알았어 인마! 자, 들어가자! 오늘은 특별히 내가 우리 이쁜 막내한테 소시지 쏜다!”

“하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

“대장, 뭐하십니까?”

“음? 아... 머저리들이 머저리 짓 하는 거 보고 있었지.”

여관 ‘친절한 당나귀’의 2층 객실.

열린 방 창문을 통해 부하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겔베르트에게 메이슨이 찾아왔다.

“그나저나 막내 저놈, 대단하네. 바윗돌 등에 지고 팔굽혀펴기 백 개를 쉬지도 않고 했어.”

“음... 확실히,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하면 대단하긴 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땐 뭐 전체적으로 다 부족했으니.”

“음... 확실히,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하면 대단하긴 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땐 뭐 백 개는커녕 서른 개도 겨우 하는 정도였는데...”

무성하게 자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겔베르트가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저 자식 훈련하는 거 보면 진짜... 어우, 난 죽어도 못 해.”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워낙 회복력이 좋을 나이니...”

“아니, 그 반대지. 나이가 어리니까 저렇게 할 수가 없는 거라고. 난 저 나이 때 저렇게 빡세게 훈련 안 했어.”

“하긴... 한창 하고 싶은 거 많고 끈기가 부족할 나이니까요. 그때 군에 처음 입대했던 저도 저렇게는 안 했습니다.”

“내 말이 그거야. 으아, 저 독한 놈... 일 없을 때 오전 오후 나눠서 두 번 훈련하는 거, 그거 2년 내내 했지?”

“예. 심지어 비 오는 날엔 실내에서 맨몸 운동도 했습니다.”

“후우... 참, 내가 꼬셔서 우리 용병대 데리고 왔다만 진짜 이 정도로 대단한 놈인지는 몰랐지. 징그럽다, 징그러워!”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겔베르트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지, 누가 뭐래도 데미언은 겔베르트 그의 자랑스러운 제자였기 때문이다.

“쓰읍, 저러다 너무 무리해서 다치는 건 아닌지 몰라.”

“의외로 철저하게 휴식 시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루 저렇게 훈련하면, 다음날은 오전에 달리기만 하고 푹 쉬더군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대단히 체계적이고 철저합니다.”

“흐음... 참, 신기해.”

“뭐가 말입니까?”

메이슨의 궁금한 눈빛을 받은 겔베르트가 피식 웃는다.

“메이슨, 너 말이야. 막내 얘기할 때 말 엄청 많아지는 거 알아? 원래는 하루에 몇 마디도 안 하는 녀석이.”

“... 크흠, 그렇습니까.”

겔베르트의 지적에 민망한 듯 시선을 돌리는 메이슨이었다.

“뭐, 스승의 영광은 엄연히 내 것이다만 메이슨 너 정도면 ‘수석 조교’ 자리 정도는 내어줄 수 있지.”

“... 사양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침에 다녀오신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평소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 엔리케를 비롯한 부하들을 갈구며 하루를 시작했을 겔베르트.

하지만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외출을 해야 했다.

겔베르트가 이끄는 푸른 방패 용병대를 상대로 ‘지명 의뢰’를 해온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아침에 길드 들러서 길드장이랑 얘기하고 왔다. 의뢰 내용이 개떡 같으면 대충 얘기 들어주다가 깔 생각이었는데...”

“...?”

“막상 가보니까, 의뢰를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 우리가 의뢰를 받고 자시고 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대였다.”

“예? 대체 누가 의뢰를 했기에...?”

겔베르트가 꺼낸 말에 절로 심각한 얼굴이 된 메이슨이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바로 나왔다.

“카림 다보르... 그 자식이, 이번 임무의 의뢰인이야.”

< 푸른 방패 용병대 (2) -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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