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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5화 (15/197)

< 멘하우 요새 공방전 (2) >

“이야, 이 미친놈! 허으! 허억! 너는 어떻게 사람이랑 말을 통째로 베냐? 그게 가능해?”

“후우! 후우! 가능하니까, 했겠죠?”

나와 엔리케는 우리를 노리고 달려온 3기의 적 기병을 순식간에 처리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평소 행실은 망나니(?) 그 자체였지만, 활 솜씨만큼은 귀신 같기로 유명한 엔리케가 가볍게 화살 세 대로 두 명의 적(과 한 마리의 말)을 처리했고, 나는 단 한 번의 칼질로 내게 달려들던 말과 사람을 동시에 베어버리는 절정의 기예를 선보였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힘으로,

정확한 위치를 벤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해내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그 일을 나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해냈다.

검성(劍星)이라 불리던 사나이의 진전을 이었다는 사실이, 바로 이런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후우! 그나저나, 본대는 괜찮겠죠?”

“괜찮을 거야. 신호 보내자마자 본대 쪽에서 깃발... 하이고, 힘들어! 흔드는 거, 봤거든!”

그렇다면 걱정할 게 없었다.

깃발을 흔들었다는 건 우리의 신호를 확인했다는 뜻.

이런 상황을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더구나 현재 본대를 이끄는 이는 대장 겔베르트.

텔마르크 영지 최강 용병대의 대장 자리는 도박장에서 딴 것이 아님을 증명해낼 것이다.

“그래도... 허억! 혹시, 모르니까! 빨리! 가보자고!”

“알겠습니다! 흐아아아!”

“가, 같이 가! 이 새끼야!!!”

***

“조장! 저기 보입니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부하의 외침에, 무리를 이끌던 벨가르트의 경기병 정찰조장이 눈을 빛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가도를 따라 길게 한 줄로 늘어서서 이동 중인 넉 대의 짐 마차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사방을 경계하며 걷는 용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첩보수집을 통해 알려진 텔마르크 측의 지원 물자가 분명했다.

“조장! 어떻게 합니까? 공격합니까?!”

“어서 명령을!”

부하들의 물음에 잠시 망설였지만, 정찰조장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들이친다! 모두 공격 준비!”

“공격 준비이이이이이!”

촤앙! 촤앙! 촤앙! 촤앙! 촤아앙!

총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벨가르트의 경기병 정찰대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무장 상태는 그리 특출나 보이지 않았지만, 적의 숫자는 얼핏 보아도 아군의 두 배 이상,

하지만 힘차게 말을 달리는 그들의 눈에선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기병(騎兵)이었다.

감히 인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덩치와 압도적인 힘을 지닌 존재, 말 위에 올라타 적과 싸우는 이들.

무장 상태가 가벼운 정찰 목적의 경기병들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병의 전투력은 보병의 몇 배에 달했기에 두 배 정도의 숫자 차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

뒤늦게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린 짐 마차 주변의 용병들이 혼비백산하며 전투 대형을 갖추는 게 보였다.

“하하하! 이미 늦었다, 이 새끼들아!”

“우아아아아아아!”

호쾌한 함성을 터트리며 적에게 돌입하는 벨가르트의 기병대.

달려온 속도 그대로, 폭풍처럼 돌진해 상대를 쓸어버리겠다는 의도였으나...

“지금이다, 모두 무기 들엇!!!”

그 지나친 자신감이, 이 순간 독(毒)이 되었다.

***

멀리 언덕 위에서 엔리케가 제대로 경고해준 덕에 겔베르트가 이끄는 본대는 제대로 준비를 한 상태에서 적 정찰대를 상대할 수 있었다.

“야, 준비했던 거 다 꺼내!”

“알겠슴돠아!”

푸른 방패의 대원들은 마차에 미리 실어두었던 대(對) 기병용 장창과 큼지막한 방패를 꺼내 길옆의 수풀에 숨겼다.

언제든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이번 임무가 시작되기 전 겔베르트가 가려 뽑은 대원 다섯 명은 장창과 방패 대신 준비했던 활과 화살을 마차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활 잘 쏘기로 영지 내에 이름 높은 엔리케만큼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 준수한 활 솜씨를 지닌 대원들이었다.

“다들 내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깝치지 마라, 알았냐?”

“어휴, 대장! 말 좀 이쁘게 해요! 깝치지 말라는 게 뭡니까?”

“알아들었으면 됐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뒤질래?”

“쳇, 하여간 성격 더러운 건 진짜...”

“대장! 슬슬 옵니다!”

“전원 아가리 다물어! 지금부터 나 말고는 입도 뻥긋하지 마, 이 새끼들아!”

“...!”

순식간에 찾아온 침묵.

평소엔 대장에게 깐족거릴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들이었지만, 실전 상황엔 둘도 없이 충성스러운 늑대들로 변하는 푸른 방패의 대원들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득의양양 미소를 지은 채 달려오는 벨가르트의 기병들.

“으, 으아아!”

“기병이다, 기병!”

“시발! 도망쳐!”

“야야, 같이 가!!!”

겔베르트와 그의 부하들은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다져온 내공의 깊이를 보여주듯, 혼란에 빠진 삼류 용병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그 모습을 본 적들은 더욱 방심할 수밖에 없었고.

“하하하! 이미 늦었다, 이 새끼들아!”

“우아아아아아아!”

신이 난 벨가르트 기병대의 목소리가 대원들에게 들릴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지금이다, 모두 무기 들엇!!!”

겔베르트의 성난 외침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텅! 텅! 터텅! 텅! 텅! 텅! 터터텅!

수풀 속에 숨겨져 있던 큼지막한 방패가 들어 올려져 바닥에 힘껏 내리꽂힌다.

차르르르르르르륵!

그리고 그 방패 위로 마치 가시가 돋아나듯 기다란 장창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시에 마차 위로 뛰어오른 다섯 명의 사수가 준비했던 활의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다.

“이런 씨발!!!”

순식간에 완성된 대(對) 기병용 방진을 본 벨가르트의 정찰조장이 기겁하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말머리를 돌리기엔 이미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푸푸푸푸푸푹!

“끄아아악!”

“쿠웨엑!”

“끼후후후후훙!”

가장 앞에서 돌진해 들어오던 적들의 몸에 검붉은 색깔의 꽃이 수두룩하게 피어난다.

어떤 창은 사람을, 어떤 창은 말의 몸통을 찔렀다.

작정하고 준비된 창날의 날카로움은 사람과 말, 그 모두를 단번에 꿰뚫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이 개새... 커흡!”

슈슈슈슛! 퍽! 퍼퍽! 퍽!

용케 말 머리를 돌려 창날의 벽을 피한 이들은 마차 위에서 쏘아진 화살의 제물이 되었다.

아무리 엔리케만 못한 활 솜씨라지만, 지척까지 다가와 허둥대는 먹잇감을 놓칠 만큼 바보는 아니었던 마차 위의 대원들.

그들이 착실하게 쏘아붙인 화살들이 혼란에 빠진 벨가르트 기병들의 몸통에 실수 없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물 던져! 이 시발 새끼들, 다 떨어뜨려!!!”

장창 방진으로 기병대의 1차 돌진을 저지한 겔베르트가 준비했던 다음 작전을 꺼내 들었다.

휭! 휭! 휭!

곧, 끝에 금속 추를 달아 무게를 더한 그물 여러 개가 아직 말 위에서 버티고 있던 적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흑! 이, 이런 젠장!”

“이런 시발! 개 같은 새끼들... 으윽!”

온몸을 덮은 그물에 팔다리가 엉켜 허우적대는 적들.

“자, 당겨어어어어!”

“흐아아아아!”

상대가 그물에 완전히 걸려든 것을 확인한 푸른 방패의 대원들이 있는 힘껏 그물을 잡아당겨 적을 낙마시킨다.

“으와아아아아!”

“야, 조져!”

“뒈져, 이 새끼들아!”

말 위에서 떨어진 기병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상대는 정신없는 난전(亂戰)에 특화된 베테랑 용병들이 아니던가?

“사, 살려주... 컥!”

“살려주긴 시발, 여기 놀러 왔냐? 잔말 말고 뒤져 이 새끼야!”

푹! 스걱! 촤아악!

말에서 떨어진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적들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 줍듯 손쉽게 처리하는 푸른 방패의 대원들이다.

“흐랏차!”

휘우우우웅, 콰직!!!

벼락처럼 떨어진 검에 얻어맞은 상대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다.

단숨에 머리통이 쪼개졌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푸화아아악!

사방으로 뿜어진 피 분수가 망자(亡者)의 비명을 대신했다.

“한 새끼도 놓치지 마! 빠져나가는 놈 있으면 골치 아파진다!”

방금 검을 휘둘러 적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쪼갠 겔베르트가 피범벅이 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처럼, 여기서 빠져나가는 놈이 생긴다면 벨가르트의 후속 부대가 몰려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의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어잇, 씨발! 대장! 저기요, 저기! 한 새끼 튑니다!”

“뭐? 이런 젠장!”

부하가 손가락질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겔베르트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한 적 하나가 말을 타고 냅다 도망치고 있었다.

“야! 저 새끼 쏴! 놓치면 안 돼! 우리 다 뒤진다!!!”

퉁! 투퉁! 퉁! 투웅-!

겔베르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차 위에서 날아가는 다섯 발의 화살.

그러나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상대를 먼 거리에서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활의 달인이나 가능한 일.

쏘아진 다섯 발의 화살 모두가 맥없이 빗나가 버리고, 재차 시위에 화살을 걸었을 땐 이미 상대가 활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상태였다.

“흐으으읍!”

투우웅-!

다급해진 그가 부하에게 활을 건네받아 있는 힘껏 시위를 당겨보았지만, 날아간 화살은 적에게 닿지 못하고 애먼 곳에만 꽂힐 뿐이었다.

“하, 시발... 좆 됐네.”

싸우다 팔이 잘린 것인지, 피 뿌리는 팔꿈치를 덜렁거리며 빠르게 멀어지는 적의 모습에 겔베르트가 이를 악문다.

기병으로 유명한 벨가르트의 기수답게 남은 왼손 하나만으로도 능숙하게 말을 몰아가는 모습이 실로 대단했지만, 푸른 방패 용병대의 모두는 감탄 대신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빨리 짐 싣고 튀자! 저 새끼가 가서 다른 새끼들 데려오기 전에!”

“짐 챙겨 빨리! 해 떨어지기 전에 멘하우 요새에 들어간다!”

“아, 알겠습니다!”

“방패부터 빨리 실으라고 새끼들아!”

“인마, 저기 물통 떨어졌잖아! 빨리 주워!”

“끄으응... 어우, 씨! 야, 무겁다! 같이 좀 들자!”

“재깍재깍 움직여! 벨가르트 새끼들 뛰어오는 소리 벌써 들린다!”

겔베르트 이하 모든 대원이 정신없이 악을 쓰며 출발 준비를 하던 바로 그때,

“야! 빨리빨리 움직... 응?”

입으로 부하들을 닦달하며 멀어지는 적의 모습을 바라보던 겔베르트의 표정에 황당함이 떠오른다.

저 멀리, 잘 도망가던 적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한 대에 머리를 얻어맞고 말에서 떨어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저거...”

그리고 겔베르트는,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상대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출 정도로 대단한 활 솜씨를 지닌 이를 한 명 알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봤냐? 봤어! 신이 내린 이 몸의 활 솜씨를! 아이고, 겔베르트 씨? 나 없으면 어쩌려고 맨날 이러십니까? 크하하하하핫!”

반짝이는 금발 머리의 소년과 함께 길게 자란 수풀 속에서 나타난 부러진 앞니의 사내.

막내 데미언과 함께 언덕 위로 정찰 임무를 나갔던 푸른 방패 용병대의 제 2조장, 엔리케였다.

“허...”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반가운 그의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겔베르트.

주변 가까운 부하들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가 혼잣말을 내뱉는다.

“... 진작 좀 오지. 에이, 시발놈.”

< 멘하우 요새 공방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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