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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7화 (17/197)

< 멘하우 요새 공방전 (4) >

“뭐야, 왜 이렇게 안 와?”

강가 근처에 서서 물을 마시러 간 경계조장을 기다리던 병사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미친 새끼, 지 혼자 강물 다 처마시려고 하나...”

“워워, 목소리 들리겠다 이 새끼야.”

“들리라고 해! 뭔 말끝마다 시발시발 거리기나 하고. 아오, 물 처먹다 콱 뒤져버렸으면 좋겠네!”

병사들이 수군대는 말의 내용만 들어도 경계조장이 얼마나 부하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근데, 너무 늦는 거 아냐?”

“그러게... 뭔 일 났나?”

물 마시러 갔다는 사람이 꽤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질 않자 슬슬 불안해진 병사들.

“야, 한 번 가봐.”

“내가? 내가 왜?”

“미친놈아, 네가 군번 제일 느리잖아! 너 9월 군번 아냐?”

“야, 시발... 겨우 한 달 차이 가지고 유세냐?”

“한 달이고 하루고 빠른 건 빠른 거지. 지랄하지 말고, 빨리 갔다 와.”

“아, 씹... 그래. 간다, 가!”

군번이 느리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나선 병사 하나가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이며 경계조장을 찾아 나섰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 음?”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헤치며 강가로 다가간 병사의 눈에 바닥에 엎드려 물을 마시는 경계조장의 모습이 보였다.

“뭔 물을 저렇게 처먹고... 목 말라서 뒤진 귀신이 붙었나.”

자기만 들을 정도의 목소리로 씨근덕거린 그가 엎드린 경계조장에게 다가선다.

“저, 조장님? 이제 슬슬 가셔야...?”

뒤에서 말을 걸던 병사의 말끝이 흐려진다.

바닥에 엎드린 경계조장의 머리가 강물 깊숙이 처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런 씨...”

턱! 콰직!

“끅! 끄흐으으...!”

그 순간, 수풀 속에서 달려온 누군가가 병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 깊숙이 틀어박히는 단검!

앞서 목이 베인 채 강물 속으로 얼굴을 처박았던 경계조장처럼, 단검에 폐가 찢겨나간 병사 역시 비명도 못 지른 채 숨이 끊어졌다.

스르륵, 털썩!

숨이 끊겨 늘어지는 병사의 시신을 수풀 속에 숨긴 습격자가 단검에 묻은 피를 강물에 담가 씻어낸다.

“후우, 이제 두 놈 정리했고...”

새하얀 얼굴엔 검댕을 바르고, 시커먼 두건을 머리에 둘러 반짝이는 금발을 가린 어둠 속의 습격자.

데미언이 참았던 숨을 천천히 토해내며 말했다.

“... 나머지도 빨리 처리하자.”

깨끗이 닦아낸 단검을 허벅지의 검집으로 돌려보낸 후, 데미언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벨가르트의 병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새끼는 왜 또 안 와?”

“뻔하지, 조장 새끼가 또 지랄 떠는 거 받아주고 있겠지.”

“받아주긴 뭘 받아줘? 혹시 뒷구멍으로 다른 거 받아주고 있는 거 아냐?”

“푸흐흣! 이 미친 새끼!”

나는 큼지막한 바위 뒤에 숨어서 놈들의 숫자를 세어보았다.

‘칼 든 놈이 하나, 둘, 셋, 넷... 활 든 놈은 둘, 합이 여섯.’

여섯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니, 치밀하게 동선을 짜야 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두 번의 기회는 없다.

검을 뽑은 순간 모조리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테니까.

“야, 근데 조장이 엎드리라고 하면 너넨 엎드릴 거야? 응?”

“아우, 씨발! 생각만 해도 토 나오네!”

“야, 어차피 해야 하는 거면 내가 공격을 해야지, 조장 새끼 엎어 놓고 말이야. 이렇게, 팍! 팍! 푸하하하!”

돌아오지 않는 경계조장과 동료를 두고 저급한 농담을 던지는 병사들.

하지만, 그중 한 녀석이 얼굴을 굳히며 풀어진 분위기를 다잡았다.

“조용, 그만 떠들고 가서 확인 좀 해보자.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 뭔가 좀 이상한데...”

“크흠, 그럴까?”

“예, 알겠습니다.”

하는 말을 볼 때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놈인 듯했고, 다른 병사들도 그 지시에 군말 없이 따르는 걸 보니 무리에서 선임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 저 새끼부터 딴다.’

자연스럽게, 내 공격의 첫 목표가 결정되었다.

슈융- 슈웅- 슈웅!

내 손에서 출발한 자그마한 손도끼가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슈웅- 퍼걱!

화살처럼 날아간 손도끼가 정확하게 목표에 안착했다.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적의 머리통.

쪼개진 틈으로 시뻘건 피와 허연 뇌수가 줄줄 흘러나온다.

코앞에서 그 살풍경을 목격한 놈들은 다리가 풀린 것인지 기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으아악! 피, 피잖아!!!”

어둠 속에서 별안간 날아온 도끼가 동료의 머리통을 쪼갰다.

그런데 도끼를 던진 적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밀어닥치는 혼란, 치밀어오르는 공포!

“시발, 어디야? 어디냐고?!”

“스, 습격이야! 습격!”

“입 닥치고 이리로 모여! 병신들아, 이리 오라고!”

슈웅- 슈웅-!!!

그 순간, 다시 한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퍽, 으지직!

“끄아아아아!”

내가 던진 손도끼에 가슴팍이 찍힌 한 녀석이 죽는다고 꽥꽥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이제 남은 건 네 명!’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부대장 메이슨을 졸라서 배운 손도끼 투척술이었는데, 오늘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쪽! 저쪽이야!!!”

동료 둘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나의 위치를 파악한 한 녀석이 들고 있던 검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래도 나름 군인들이라고 체계가 잡혀있던 것인지, 내 위치를 알아채자마자 활을 든 놈들은 뒤로 빠지고 칼 든 놈들이 앞으로 나섰다.

“이 씨발 새끼! 넌 뒤졌다!!!”

타타탁!

검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든 병사 한 놈이 땅을 박차며 내게 달려온다.

방어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는, 공격일변도의 자세.

코앞에서 동료가 죽어 넘어가는 꼴을 본 탓에 눈이 뒤집힌 탓이었다.

‘... 이러면 나야 고맙지.’

상대가 냉정을 잃으면, 공략법은 간단해진다.

“으어흣!”

나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어설프게 뒷걸음질을 쳤는데, 잔뜩 흥분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근데, 이 새끼가 속아주려나?’

잠깐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눈깔이 돌아간 상대의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다.

“뒈져라, 이 새끼야!!!”

후우웅!!!

앞뒤 안 가리고 달려 들어온 상대가 단박에 내 머리통을 쪼개려는 심산으로 검을 내리친다.

정확하게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걸렸다, 이 새끼야!”

파팍!

힘차게 바닥을 박찬 내가 검을 내리치는 상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두 손으로 있는 힘껏 검을 내리치는 와중에 품으로 뛰어들었으니, 상대의 팔 안쪽을 내 어깨로 받아내는 모양새가 되었다.

“컥!!!”

어깨로 팔을 받아내며 동시에 왼쪽 주먹으로 상대의 가슴을 강하게 가격했다.

퍽, 소리와 함께 뒤로 튕겨 나가려는 상대를 따라붙으며 허리춤에서 마지막 손도끼를 뽑아냈다.

콰직! 퍼억! 퍽!

그 짧은 순간 놈의 옆구리를 세 번이나 손도끼로 찍었다.

“으아아아악!”

살덩이가 푹 패여 나가고, 갈비뼈가 쪼개졌으며, 찢어진 내장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동료의 죽음을 보고 흥분해 달려든 대가치고 무척이나 잔혹했지만, 어쩌겠나?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

이게 전쟁의 본질인 것을.

“저, 저, 저 씨발!”

“야, 도망가자! 우리가 못 이겨!”

“튀어! 빨리 튀자고!!!”

남은 세 놈은 내게 덤벼든 동료가 도끼에 찍혀 잔혹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었는지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둘 내가 아니다.

슈웅- 슈웅- 슈웅- 퍼억!

“끄에엑!”

앞 녀석의 옆구리를 찍던 손도끼를 던져 가장 먼저 도망치던 놈의 뒤통수에 꽂았다.

제일 앞에서 뛰던 놈이 머리에 도끼를 맞고 죽자, 그걸 본 나머지 두 놈이 기겁하여 그 자리에 멈춰섰다.

혹시나 자신도 도끼를 맞고 죽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지닌 투척용 손도끼는 세 개뿐이었고, 방금 게 마지막이었다.

물론, 놈들은 그 사실을 알 리 없겠지만 말이지.

촤아아앙-!

내 허리춤에 있던 검이 순식간에 뽑혀 나왔다.

발검(拔劍)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원래부터 손에 들고 있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으아아아! 이 개새끼야아아!!!”

도망치기가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남은 두 놈 중 하나가 악을 쓰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슁!

가슴을 노리고 휘두른 검을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피하고,

쉬잉!

다리를 향해 휘두른 검은 슬쩍 오른발을 들어 올려 피해낸다.

손가락 한 마디 만큼의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가는 시퍼런 칼날.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내 몸속에 잠재된 검성의 감각의 믿었고, 그 믿음은 확실하게 보상받았다.

쉬이잉, 촤악!!!

적이 시도한 두 번의 공격을 무위로 돌린 뒤, 벼락같이 검을 떨쳐내어 놈의 가슴을 갈랐다.

“끄아악!”

푸화아악!

쩍 벌어진 놈의 가슴에서 시뻘건 피 분수가 뿜어졌다.

검날의 진행을 막아서는 갈비뼈까지 깨끗이 베어내고, 그것도 모자라 심장까지 반 토막을 냈다.

이번 의뢰를 앞두고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을 투자해 산 고급(Advanced) 등급의 롱소드가 제대로 돈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털썩-!

“사, 살려... 살려줘! 난 진짜로... 그게 아니라... 어흐흐윽!”

홀로 남은 벨가르트 병사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저앉아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총원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경계조 하나가 차 한잔 마실 시간에 도륙당했다.

그 악몽 같은 순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 넌 운 좋은 줄 알아라.”

빠각, 털썩!

이미 정신 나간 놈 죽여봤자 뭔 의미가 있나 싶어 머리를 걷어 차 기절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울리는 알림 소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호...? 경험치 달달하네?”

본래 레벨이 19였으니, 이제 20이 되었겠군.

예상치 못한 희소식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기절한 놈의 옷자락을 찢어 손목과 발목을 꽁꽁 묶고 눈까지 가린 뒤 수풀 속에 처박았다.

“이 정도면 해 뜰 때까진 발견 못 하겠지?”

그렇게, 대충 현장 수습을 마무리 지은 나는 멘하우 요새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

푸른 방패의 리더, 겔베르트는 무성한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로 뚫어져라 멘하우 요새의 동쪽 방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

“음?”

그런 그에게, 역시 같은 방향을 응시하며 대기 중이던 엔리케가 물었다.

“막내, 잘 들어갔겠죠?”

“... 잘 들어갔을 거다.”

겔베르트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를 마음속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이었으리라.

“뭐, 저도 막내가 요새까진 잘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사실 그 다음이죠.”

“... 나도 같은 생각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벨가르트 군의 감시를 뚫고 멘하우 요새에 진입한다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데미언의 실력을 믿었다.

불가사의할 만큼 강한 검술 실력은 물론이고, 열일곱이란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상황 판단력과 침착함까지 갖춘 녀석이었다.

대체 어린놈이 어디서 그런 경험을 쌓았는지, 가끔 말하다 보면 이놈이 삼, 사십 먹은 아저씨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믿자, 그냥 믿고 있자고. 어차피 그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후우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 입술을 축인 엔리케가 뒤이어 무슨 말을 하려던 그때,

와아아아아아아-!

멀리, 멘하우 요새의 동문 방면에서 여러 사람이 내지르는 큰 함성과 함께 붉고 노란 불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저 현상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엔리케가 격정이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상관을 바라보았고, 그 눈빛을 받은 겔베르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푸른 방패, 지금부터 멘하우 요새 서문을 향해 전력으로 이동한다. 자, 빨리 가자 이 새끼들아!”

< 멘하우 요새 공방전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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