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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47화 (43/197)

< 붉은 송곳니의 대군주 (3) >

히든 피스, ‘붉은 송곳니의 도끼날 조각’을 얻은 후 나는 서둘러 일행들이 있는 야영지로 돌아왔다.

곧바로 히든 피스의 능력을 흡수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혹시라도 지난 두 번의 경우처럼 내가 오랜 시간 기절해버릴 경우 그동안 일행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야, 너 뭐야 인마?! 어디까지 갔다 왔길래 이제야 왔어?”

야영지에 온 나를 보고 불침번을 서던 엔리케가 눈을 부라렸다.

입으로 볼멘소리를 내뱉는 와중에 눈빛엔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어서 그 모습이 지쳐있던 날 웃음 짓게 했다.

“저 아까 주변 정찰 다녀온다고 말하고 갔는데? 좀 멀리까지 돌아보고 올 테니까 늦을 거라고... 대장한테 얘기 못 들으셨어요?”

“아, 물론 들었지. 들었는데... 늦어도 너무 늦었잖아, 새끼야. 하도 안 돌아오길래 너한테 무슨 일 난 줄 알았다.”

“무슨 일이 나기는... 제 실력 못 믿으세요? 아고고, 피곤하다!”

털썩, 엔리케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았다.

원하던 것을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손에 넣고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긴장이 풀린 몸이 스르륵 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지. 이건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걸지도?’

하긴, 구원의 성배 덕에 강화된 신체를 믿고 오늘 하루 참으로 무리를 많이 했더랬다.

전날 이른 새벽 눈 떴을 때부터 전투를 시작해 꼬박 하루가 지날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이러고 있으니...

‘애초에 에리히 그 양반이랑 성벽 위에서 맞다이 뜰 때부터 체력은 간당간당했지.’

리트렌 전투에서 맞닥뜨린 ‘바덴하임의 사자’, 에리히 프라이슬러와의 대결은 나의 체력과 정신력을 순식간에 고갈시켰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긴장감에 체력과 정신력의 소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 그 뒤로는 솔직히 성배 빨로 버틴 거나 다름없지.’

성지(聖地) 에셀바흐에서 얻은 나의 두 번째 히든 피스, 구원의 성배가 내게 가져다준 가장 값진 선물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강화된 회복력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회복력 덕분에 나는 에리히와 격전을 치르며 바닥을 쳤던 체력을 금세 다시 채울 수 있었다.

‘체력뿐만 아니라 사자 아저씨한테 당한 상처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아물었지.’

물론,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고 출혈이 멈추는 정도로만 회복이 된 터라 통증은 여전했다.

하지만 에리히 정도 되는 양반한테 칼 맞고서 반나절 만에 질질 흐르던 피가 멈췄다면, 충분히 미쳤다고 말할만한 수준의 회복력이었다.

‘그래도 어디 팔다리 안 잘리고 살가죽만 베인 거라 다행이었지... 어휴!’

그야말로 살벌했던 에리히의 검을 생각하니 팔뚝과 목덜미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턱-

“음?”

그 어느 때보다 고됐던 하루를 되새기고 있는데, 별안간 엔리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 근방에 몬스터라도 나타난 건가?

하지만 뒤따라온 엔리케의 목소리는, 그런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야, 이거라도 좀 먹어라. 네 몫으로 챙겨둔 거야.”

엔리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슴 고기를 얇게 저며 만든 육포.

생각해보니 종일 그 힘겨운 하루를 보내며 뭘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먹을 거 보니까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예의 떨지 말고 빨리 먹어 새끼야.”

“하하, 예.”

엔리케에게 건네받은 육포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육포 특유의 딱딱한 질감과 짭짜름한 소금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간다.

“어우...”

엄청 배고픈 상태에서 갑자기 입안에 짠맛이 확 도니까 현기증이 나는 것 같다.

내가 멍한 눈빛으로 육포를 씹는 것을 바라보던 엔리케가 다시 시선을 전방의 풀숲으로 돌리며 말한다.

혹시라도 듣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한껏 낮춘 목소리였다.

“원래는 저기 꼬마 아가씨 몸 상태 생각해서라도 불 피워서 물 좀 끓이고, 거기에 육포 넣어 고깃국 흉내 좀 내볼까 했었는데...”

“했는데?”

“우리 꼬마 아가씨가 자긴 괜찮으니 그냥 육포만 먹자고 하더라. 사방 깜깜한데 불 피우면 혹시 몬스터들이 그 불빛 보고 달려들어서 위험한 거 아니냐면서.”

“음...”

“분명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처럼 건장한 어른도 아니고, 열두 살 난 어린 꼬마애가 추워서 파랗게 변한 입술로 오들오들 떨면서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참,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미어지더라고. 에잉!”

엔리케의 말을 들으며 잠들어 있는 니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니나는 데론과 아드리안이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엮어 정성스레 만든 간이 천막 안에서 죽은 듯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낙엽을 잔뜩 끌어모아 한기를 어느 정도 막은 바닥에 내가 리트렌에서 탈출할 당시 도둑 길드원에게 얻은(이라 쓰고 뺏었다고 읽는다) 모포를 깔고 위엔 갬비슨 갑옷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니나가 덮고 있는 저 갬비슨의 주인은 아마도...

‘... 아드리안이겠지. 녀석, 기특하네. 엄청 추울 텐데.’

니나가 잠든 간이 천막 바로 옆, 낙엽을 채워 넣은 구덩이에 들어가 미동도 없이 잠든 아드리안이 보였다.

내 짐작대로 아드리안은 갬비슨 없이 얇은 웃옷 한 장만 걸치고 잠들어 있었는데, 추운 것인지 어깨와 목을 잔뜩 웅크린 자세였다.

‘아이고, 저러다 목에 담 걸리겠네.’

알다시피 갬비슨은 천으로 만든 의복에 두꺼운 솜과 양털, 헝겊 부스러기, 혹은 아마포 여러 겹을 채워 두껍게 만든 갑옷이었다.

가격 대비 방어력이 좋은 탓에 용병부터 기사들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쓰이는 갑옷이었고, 지금처럼 야지에서 비박을 해야 할 경우엔 탁월한 보온 효과를 발휘해주는 생존 장구이기도 했다.

그런 갬비슨을 주군인 니나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바들바들 떨며 자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주고 싶을 정도...

... 까지는 아니고.

‘아드리안, 원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단다.’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주제에 너무 꼰대 같은 발언이었지만, 사실 내 몸속에 담긴 영혼은 전생의 삶까지 더해 마흔을 넘긴 나이인지라 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 동네는 따뜻한 날씨 탓에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 힘들다는 대륙 중부였다.

꽤 추울 테지만, 그래도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닐 거다.

‘하여간... 알아서 잘 살아남아라, 아드리안. 형이 열심히 응원할게! 청춘 만세! 파이팅!’

그렇게 마음속으로 아드리안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며, 나는 입안에 남은 육포 조각을 마저 씹기 시작했다.

***

내가 야영지에 돌아와 두어 시간쯤이 지났을 무렵, 서서히 동쪽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힘겹게 눈을 뜬 일행들에게 새벽의 정찰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 동굴을 발견했다고?”

“예. 여기서 4, 50분 정도 떨어진... 아니지, 그건 제가 혼자 이동했을 때 기준이니 우리 일행이 다 같이 움직이는 거면 넉넉히 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리에 있습니다.”

“크흠! 동굴이라, 동굴...”

내 말을 들은 겔베르트가 뭐라 확답을 내놓지 않은 채 슬쩍 데론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일행의 최종 결정권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엔 데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야 이런 강행군을 버틸 수 있다지만 영주성에서 곱게 자라신 니나 아가씨는 아닙니다. 더구나 아직 나이도 어리시니...”

“흐음...”

“앞으로도 쉽지 않은 여정이 될 텐데, 아가씨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무조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따뜻한 모닥불과 음식이 있는 곳에서 말이죠.”

구구절절 옳은 내 말에 데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자네가 확인한 그 동굴이라는 곳 말이야.”

“예.”

“혹시 몬스터나 야생동물이 사는 곳은 아니던가? 괜히 들어갔다가 더 큰 위험을 만날 수도 있네.”

예상했던 물음에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답을 내어놓았다.

“제가 직접 동굴 안쪽 깊은 곳까지 들어가 확인을 하고 왔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누구도 드나들지 않았던 곳이 분명합니다. 동굴 안팎으로 그 어떤 동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나? 동굴처럼 머물기 좋은 곳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니?”

이 역시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마도 동굴로 올라가는 길이 위험하고 복잡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길이 위험하다?”

“예, 저는 절벽을 타는 빠른 길로 올라갔는데 그나마 완만한 쪽도 가파르고 위험한 바윗길을 기어오르듯 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인간이었다면 어떻게든 돌을 깎고 나무로 계단을 놓았겠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몬스터들은 그리 할 수 없었겠지요.”

사실은 동굴에 들어가면 죽는 저주가 걸려 있어 몬스터가 접근한 흔적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대신 생각해낸 이유였다.

‘그리고 뭐 실제로 길이 험하기도 하고 말이지...’

다행히 내가 한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마침내 데론의 입에서 원하던 답변이 떨어졌다.

“좋네. 자네가 발견한 동굴로 향하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군무관님.”

데론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내가 말했다.

“가시는 길은, 제가 뚫겠습니다.”

***

뜬눈으로 밤을 버텨낸 첫 번째 야영지를 떠나 데미언이 발견했다는 동굴로 향하는 길.

길을 아는 데미언이 일행보다 훨씬 앞에서 홀로 이동했고 나머지 일행의 선두엔 겔베르트가, 그 뒤로 데론과 아드리안이 니나를 앞뒤로 호위하듯 움직였다.

불침번을 서느라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엔리케는 일행의 맨 뒤에서 언제라도 화살을 날릴 수 있게 준비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데미언 이 친구의 솜씨는 다시 봐도 정말 대단하구나.’

가는 걸음마다 놓인 늑대와 들개 따위의 야생동물과 몬스터의 시체들.

그것들이 모두 일행의 선두에 선 데미언이 앞서 처리한 결과라는 것을 안 데론은 놀라움에 혀를 내둘렀다.

‘모두 일격으로 숨통을 끊었어. 한 녀석에게 두 번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상대의 가장 치명적인 급소를 단번에 꿰뚫었다는 뜻인데, 저 정도 나이에 이토록 과감하고 정밀한 검술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열일곱이란 어린 나이에!

‘아드리안이 괜히 실망하지 않게 옆에서 열심히 챙겨줘야겠구나. 후우...’

자신이 감히 맞설 수도 없을 만큼 아득히 높은 재능을 지닌 소년을 마주한 제자 아드리안이 혹시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스승의 우려였다.

바로 그때, 그들보다 몇 걸음 앞서서 걷던 겔베르트의 굵직한 목소리가 제자 걱정에 잠겨 있던 데론의 정신을 일깨웠다.

“... 거의 도착한 것 같습니다, 군무관님. 저기 보시죠.”

“음?”

멀리, 겔베르트가 손짓으로 가리키는 숲의 틈새로 웅장하게 치솟은 바윗 절벽 위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수고했다, 데미언. 나머지 식량 구하고 땔감 찾아오는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저기 동굴 안쪽 깊은데 들어가서 조용히 눈 좀 붙여라. 제발 좀 인마! 너 그러다 죽어!”

“그래, 그리 하도록 하게. 밤새도록 정말 고생 많았어.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푹 쉬게. 수고했네, 데미언.”

내가 발견한 동굴, ‘타이랄의 궁전(물론,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동굴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에 도착한 겔베르트와 데론은 둘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게 휴식을 권했다.

리트렌을 탈출해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모두를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그럼. 죄송하지만, 가서 눈 좀 붙이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깨워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그런 두 사람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고?

‘... 동굴 구석에 짱 박혀서 얼른 히든 피스 빨아먹어야지.’

빨아먹는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붉은 송곳니의 도끼날 조각’이 가진 힘을 얻기 위해 나는 일행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후우...”

그리고 품속에 넣어두었던 ‘붉은 송곳니의 도끼날 조각’을 꺼내어...

꿀꺽-

아주 단순무식하게,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크흡, 끄으...”

날카로운 도끼날 조각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식도를 가르고 내장을 조각조각 찢는 아픔이 찾아오기 시작하...

“... 지를 않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불량인가?”

생각과 달리,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삼킨 도끼날 조각은 마치 작게 부서진 사탕 조각처럼 천천히 목구멍 안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게임 속 세상으로 넘어온 주제에 말이 안 될 건 또 뭔가 싶었다.

‘어... 뜨겁다.’

뜨거웠다.

마치 뜨거운 음식을 먹었을 때 식도와 위장을 따라 몸이 천천히 뜨거워지는 것처럼, 육체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크흠, 이거 너무 졸린데...’

가슴에서 시작되어 팔다리, 머리로 퍼져나가는 뜨거운 기운.

뜨겁다고 표현했지만 아주 펄펄 끓는 정도는 아니어서, 마치 적당히 버틸만한 온도의 찜질방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몸, 자연스럽게 감기는 눈.

산처럼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무너져 내렸다.

‘어흑, 졸립... 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끊겨버린 의식.

그리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팟-!

『 데미언 / Lv. 64

소속: 푸른 방패 용병대

클래스: 용병

고유 특성:

- 창조주(創造主)

- 검성(劍聖)

- 무골지체(武骨之體)

- 붉은 송곳니의 대군주

보유 스킬:

- 창조주의 눈(신화 등급)

- 리히테나워 류(전설 등급)

- 오크 왕의 분노(전설 등급)

보유 아이템:

- 빼어난 롱소드(고급 등급)

- 고급 아마포 갬비슨(고급 등급) 』

마침내, 나는 레벨 60의 벽을 깨뜨렸다.

< 붉은 송곳니의 대군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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