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방패의 귀환 (2) - 무료 마지막 회차 입니다 >
“메이슨...! 너 이 자식! 살아 있었구나!”
콰악!
메이슨에게 다가간 겔베르트가 몸이 부서질 기세로 그를 껴안는다.
본래 무뚝뚝한 성격을 지닌 메이슨이었지만, 그 역시도 끓어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했는지 입술을 바르르 떨며 겔베르트를 마주 껴안는 게 보였다.
“이런 씨이... 죽은 줄 알았잖아! 어흐흐윽!!!”
이미 눈물을 쏟기 시작한 엔리케가 서로 부둥켜안은 두 사람에게 달려든다.
산산이 깨어졌던 푸른 방패의 조각들이 다시 하나가 되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우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도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울컥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
눈물을 참아보려고 해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메이슨도... 살아 있었어!’
원작 속 리트렌 전투에선 ‘바덴하임의 사자’ 에리히 프라이슬러를 만나 몰살을 당했던 푸른 방패 용병대.
하지만, 현실이 된 이곳에선 목숨 걸고 에리히의 발목을 잡은 나의 노력으로 인해 용병대의 주요 멤버들인 겔베르트와 메이슨, 엔리케까지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고개를 떨군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
누군가의 손이, 덜덜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는 게 느껴졌다.
작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그 손의 주인은...
“... 데미언 오빠, 괜찮아요?”
바로, 니나였다.
“음? 어... 괜찮, 괜찮아.”
괜찮다고는 말을 했지만 눈물을 질질 짜고 있는 내 얼굴이 영 설득력이 없었던 것인지, 니나는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좋아서 우는 거죠? 동료를 다시 만났잖아요.”
“어, 그렇... 그... 그렇지.”
“잘 됐다, 정말 잘 됐어요!”
목이 메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밝은 미소로 위로해주는 니나.
그러다 문득, 나를 위로해주고 있는 눈앞의 이 어린 소녀가 얼마 전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를 포함해 자신의 인생을 이루던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 얘는 그런 힘든 일을 겪고도 어떻게 이렇게 의연할 수가 있지?’
심지어 열두 살 난 어린 애가 말이지.
내 의문에 대한 답은, 니나의 상태창에 담겨 있었다.
팟-!
『 니나 아르펜 / Lv. 2
소속: 없음
클래스: 군주
고유 특성:
- 꺾이지 않는 운명 』
처음 봤을 땐 대체 이게 뭔 뜻인가 싶었던 니나의 고유 특성.
근데, 지금 이런 상황이 되어 생각해 보니 대강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꺾이지 않는 운명이라...’
그야말로 주인공이 지닌 ‘불굴(不屈)의 의지’를 뜻하는 고유 특성이었던 거다.
‘그야말로 강철 멘탈이네... 하긴, 그러니까 주인공 하는 건가?’
한편, 메이슨과 한바탕 눈물을 쏟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눈 겔베르트와 엔리케에겐 더욱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대장, 들어가 보십쇼. 애들이 깜짝 놀랄 겁니다.”
“애들... 애들이라고?”
“뭐야, 다른 놈들도 다 살아 돌아왔어요?”
메이슨이 꺼낸 말에 깜짝 놀란 겔베르트와 엔리케가 되묻는다.
그리고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뻐끔거리는 두 사람을 제치고 여관 1층 식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헐, 뭐야? 데미언?”
“막내? 막내 맞지?”
“이런 씨... 데미언? 너 진짜 데미언이야?”
“야아!!! 다들 내려와 봐! 막내가 돌아왔다고!!!”
“뭐? 누가 왔다고? 막내?”
우당탕탕!!!
계단을 통해 2층 객실에서 뛰쳐 내려오는 사람들.
나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온 겔베르트와 엔리케 역시 눈앞의 광경을 보고 말을 잃었다.
“대장?! 뭐야, 엔리케 조장까지?”
“이런 젠장! 대장,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죽은 줄 알았잖아! 어흐윽!!!”
“거봐, 내가 대장은 절대 안 죽었을 거라고 했지?”
“이야아, 역시 대장! 믿고 있었다고요!!!”
“너 이 자식들...!”
쏟아지는 부하들의 환호성에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는 겔베르트.
원작 소설에선 눈물 따윈 모르던 강철 같은 사나이 겔베르트였는데, 오늘만큼은 고장 난 수도꼭지가 따로 없었다.
“데미언!!!”
반가운 재회의 방점을 찍은 것은, 다름 아닌 여관 ‘친절한 당나귀’의 주인장 후고 아저씨였다.
“데미언, 무사히 돌아왔구나! 잘 됐어, 너무 잘 됐다!!!”
동료들이 외치는 내 이름을 듣고 부엌에서 뛰쳐나온 후고 아저씨가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돈 없는 나에게 든든한 식사를 챙겨주던, 그때의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후고 아저씨, 잘 계셨어요?”
“이 녀석아, 내가 어떻게 잘 있었겠니? 네 걱정하느라 힘들었지!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
왜 이리 늦었냐며 원망하듯 이야기하는 후고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나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어. 그동안 먹고 싶었던 거 있으면 다 말해! 오늘 제대로 내가 대접하마.”
“아, 그럼 저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잔뜩 흥분한 엔리케가 목이 찢어져서 소리쳤다.
“여기, 맥주! 다른 거 제쳐두고 맥주부터 깔아주세요! 와하하하!!!”
***
정신없었던 재회의 첫 순간이 지나가고,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가 되었다.
니나와 데론, 아드리안은 우리들의 재회를 위해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고, 식당엔 푸른 방패의 식구들만 자리한 상황.
테이블에 앉아 부하들의 얼굴을 돌아보던 겔베르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잭과 요나스, 마르빈, 자비어. 이렇게 넷이 맞나?”
그의 질문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모두의 표정이 침울해지고, 모두를 대표해 메이슨이 그 말에 대답을 건넨다.
“예, 맞습니다. 잭과 요나스, 자비어는 전투 중 사망했고... 마르빈은 중상을 입어 치료 중에... 먼저 떠났습니다.”
죽었다는 말 대신 ‘먼저 떠났다’는 표현으로 동료들의 마지막을 전하는 메이슨.
“...”
그 대답을 듣고 말없이 한참을 서 있던 겔베르트가 다음 질문을 이어나간다.
“... 다친 녀석들은 얼마나 되나?”
“앞으로 무기를 들 수 없게 된 녀석들이 다섯, 회복 가능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녀석은 저를 포함해 여섯입니다. 나머지는 멀쩡합니다.”
“크게 다친 놈이 다섯...”
대답을 들은 겔베르트가 침통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본 메이슨이 위로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래도, 그 아수라장에서 안 죽고 살아나온 사람 숫자가 열 명이 넘습니다. 대장과 엔리케, 막내를 포함해서요. 이 정도면 천운이라 할만합니다. 전쟁신 카이테르님께서 우릴 도와주신 거지요.”
“천운이라...”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테이블 어딘가를 응시하는 겔베르트.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리트렌 빈민가의 어느 창고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내가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을 때, 겔베르트는 ‘칼밥 먹고 사는 놈들 팔자가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대답했었지.
‘... 나랑 엔리케가 심적으로 동요할까 봐 일부러 그렇게 대답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의 겔베르트는 애써 태연한 척하던 그 날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타깝고, 괴롭고, 슬픈 얼굴.
부하들의 죽음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씨, 대장! 고개 들어요. 대장이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으면 먼저 떠난 놈들이 뭐가 됩니까?”
“맞슴돠! 먼저 간 놈들도, 그리고 저희도 푸른 방패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대장, 고개 떨구지 마십쇼!”
“맞습니다! 그리고 이 바닥 일 하면서 어디 안 죽을 생각하고 사는 놈 있답니까?”
“얼굴 펴요! 대장이 그러면 죽은 놈들이 더 쪽 팔려 할 겁니다!”
눈에 띄게 어두워진 겔베르트의 얼굴을 본 푸른 방패의 동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을 건네며 그를 위로했다.
평소 말 없기로 유명한 메이슨 역시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대장이 그렇게 힘들어하시면 먼저 간 놈들이 더 슬퍼할 겁니다.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고, 남자답게 떠난 놈들입니다. 우리도 멋지게 보내줘야죠.”
‘멋지게 보내 준다’는 표현이 겔베르트의 가슴을 울린 것일까?
오랜 침묵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난 겔베르트가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잭! 요나스! 마르빈! 자비어! 네 녀석 모두 누구보다 잘 싸우고, 용감했고, 의리 있는 멋진 놈들이었다. 누가 말 더럽게 안 듣는 놈들 아니랄까 봐 대장한테 보고도 없이 먼저 떠났지만, 우리도 곧 따라갈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자!”
“어이씨, 나는 그 새끼들 따라가기 싫은데? 오래오래 살 거예요!”
“맞아, 저 세상 갈 거면 대장이 제일 먼저 따라가요! 그럼 그때가서 나도 생각해 볼 테니까.”
“야, 어차피 대장이 우리 중에서 제일 늙은이잖아. 자연스럽게 먼저 가게 되어 있어!”
“아,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네, 푸하하!”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다시 왁자지껄해진 식당의 분위기.
그 중심에 선 겔베르트가 맥주잔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자, 치사하게 먼저 도망친 놈들을 위해 한잔하자! 푸른 방패!!!”
겔베르트의 선창에 모든 푸른 방패의 식구들이 잔을 들어 올리며 외친다.
“영원하라-!!!”
***
우리가 크라벤에 도착한 지도 벌써 열흘이 훌쩍 넘었다.
니나와 데론, 아드리안은 뭐 그리 할 이야기가 많은 지 하루가 멀다 하고 텔마르크 영주성을 찾아가 남작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 생각엔 아마도 바덴하임 측이 주장한 리트베르크 침공 전쟁의 명분이 조작된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텔마르크 영주인 티노 라이만 남작, 그리고 그가 모시는 주군인 바이펠베르크 백작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 모두 왕국 내에서 바덴하임 백작의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니, 바덴하임 백작을 압박할 정치적 카드로 써먹기 위해 니나의 주장을 신경 써서 들어주는 것이겠지.
한편, 우리가 텔마르크 측에 위임했던 오우거 사체의 처리 및 판매가 모두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으와, 대장! 이, 이게...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맞아요? 어? 으아, 미친...!”
우리와 안면 있는 기사 다니엘이 직접 여관까지 찾아와 전달해준 문서의 내용을 들여다보던 엔리케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 대단하군.”
문서를 손에 쥔 겔베르트도 그 내용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 총 판매 대금 16,000골드 중 오우거 사체의 처리와 판매과정 모두를 담당한 텔마르크 영지 측이 그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취한다. 수수료를 제한 대금 잔액 8,000골드를 푸른 방패 용병대의 몫으로 지급하며, 오우거 토벌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500골드를 포상금의 명목으로 추가 지급한다.
- 텔마르크 영주, 남작 티노 라이만 ]
그렇게, 도합 8500골드의 거액이 우리 용병대의 이름으로 주어졌다.
지난 생의 화폐 가치로 따진다면, 무려 85억 원 상당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 고맙다, 치페른의 폭군. 네 덕에 부자 됐다!’
싸울 때는 더럽게 힘들었는데, 문서에 적힌 금액을 보니 그 모든 기억이 아름답게 변하는 기분이다.
“금화나 금괴로 지급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기에, 부득이하게 전표로 준비했습니다. 여기...”
다니엘의 품에서 왕국 내 가장 높은 신용을 자랑하는 ‘왕립 펠리노어 은행’의 빳빳한 새 전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
하지만, 겔베르트는 다니엘이 내민 전표를 받지 않았다.
마치, 그 전표가 자신과 상관없는 물건이라는 듯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의아한 눈빛을 한 다니엘의 물음에, 그제야 겔베르트가 이유를 말했다.
“제가 받을 물건이 아니니까요.”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
“막내야, 뭐하냐? 랭턴 경께서 기다리신다. 빨리 받아라.”
“...!”
겔베르트의 말에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이 아저씨, 이걸 지금 나한테 받으라는 건...
‘... 이 돈, 나한테 다 주는 거야?’
엔리케의 도움을 조금 받긴 했지만, 사실상 나 혼자서 오우거 ‘치페른의 폭군’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큰돈을 다 나한테 준다고?
“어, 예! 감사합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다니엘에게 전표를 건네받았다.
8500골드.
손에 쥐고도 참 현실감이 없는 액수의 돈이었다.
번쩍이는 금화가 아니라 종이 쪼가리를 들고 있어서 더 와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영주님의 승인 문서와 전표, 모두 차질없이 잘 전달해드렸습니다. 그럼, 전 이만...”
“아, 예! 살펴 가십시오, 랭턴 경.”
정신없이 다니엘을 떠나보낸 후, 나는 멍한 얼굴로 겔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바로 돌아오는 겔베르트의 목소리.
“인마, 뭘 그렇게 멍청하게 쳐다봐? 그거 네 돈 맞잖아?”
“아니, 그렇지만...”
“그렇지만은 무슨... 야, 나 올라가서 좀 더 잔다. 이따 밥 먹을 때 깨워라.”
진한 상남자의 향기를 풍기며 2층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겔베르트.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 돈을 가장 먼저 써야 할 곳을 결정했다.
< 푸른 방패의 귀환 (2) - 무료 마지막 회차 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