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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68화 (64/197)

< 구출 (1) >

잘그락- 잘그락-

주머니 속 물건들이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히든 피스 ‘카델린의 아뮬렛’을 찾으러 갔다 마주친 도둑 길드 조직원들에게 양도(?)받은 소소한 용돈들.

똘마니들은 털어봤자 은화 몇 개가 전부였는데, 나한테 걷어차여 방구석에 처박혔던 놈 주머니에 금화가 한 개 있었다.

“이걸로 우리 니나 야식이나 좀 사줘야지. 흐흐!”

일행이 묵는 여관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근처 시장에 밤늦게까지 장사하는 꼬치집이 있다고 들었다.

이런저런 꼬치를 많이 파는데, 그중에서도 닭고기 꼬치의 맛이 아주 일품이라고.

오랜 여정에 몸과 마음이 잔뜩 지쳐 있을 니나에게 소소한 행복이나마 선물해주고 싶었다.

“자아, 다들 돌아와 있...”

으지직-

여관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의 문고리를 잡는데,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하아...”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예상대로 내 손에 잡혀 으스러진 문고리가 보였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나의 괴력.

아무래도 한동안은 이런 일이 잦을 것 같다.

“... 환장하겠네, 정말.”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천히 문을 여는데...

“응?”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1층 식당에 모두 모여있는 일행들.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는 아니었다.

꼭 있어야 할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왔냐, 데미언.”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서 있던 겔베르트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 대장. 근데... 니나 아가씨는 아직 안 돌아오신 겁니까?”

내 입에서 니나의 이름이 나오자 더욱 무거워지는 일행의 분위기.

그것으로 난 니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세한 얘기는 직접 들어라,”

턱 끝을 움직여 테이블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겔베르트.

그쪽으로 돌아간 내 시선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아드리안이 들어왔다.

***

“... 그렇게 된 겁니다. 하아!”

다급하게 설명을 마친 아드리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조함에 목이 마른 것인지,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들어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켜는 아드리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전한 이야기의 내용을 천천히 되짚었다.

“즉, 베르켈 경께서 예전 사자기사단 시절의 동료를 만나셨는데, 그 작자가 베르켈 경과 니나 아가씨께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는 거지?”

“예. 스승님께서 계속 사양을 했는데, 그쪽에 집요하리만큼 자꾸 권했습니다.”

“... 그냥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그러는 걸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아드리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분의 제안을 받아들인 스승님께서 저를 여기 숙소로 돌려보내시면서 ‘엔리케 용병대장에게 오늘 아가씨와 이곳에서 머물 것이니 기다리지 말라고 전해라’, 이렇게 얘길 하셨거든요.”

“베르켈 경이 엔리케 조장을 두고 용병대장이라고 하셨다고?”

“예.”

고개를 돌려 ‘진짜 대장’인 겔베르트를 쳐다보는데,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베르켈 경이 그렇게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하셨다는 건...”

“... 상황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거겠지.”

나와 똑같은 판단을 내린 겔베르트의 목소리.

그의 대답이 신호라도 된 듯, 나는 앉아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제가 아드리안, 엔리케 조장과 함께 아가씨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대장은 나머지 일행들과 함께 떠날 채비를 해주십시오. 동이 트는 즉시 카를리온을 떠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마치 내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하는 겔베르트였다.

생각 같아선 푸른 방패의 모두를 데리고 몰려가 니나를 구해오고 싶었지만, 왕도 한복판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간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목이 달아나게 될 것이다.

결국, 소수정예를 편성하여 은밀하게 구출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

당연히, 일행 내에서 가장 실력이 고강한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조심해라, 데미언. 네 실력이야 믿고 있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겔베르트와 대화를 마친 나는 엔리케, 아드리안과 함께 나갈 채비를 하며 식당 구석에 있는 한 사람을 불렀다.

“야, 막내.”

“응? 나?”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인지,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상대.

3년 만에 들어온 푸른 방패의 새로운 막내, 아린이었다.

“... 나? 선배한테 반말?”

“으, 으아니...!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선배님, 저 부르셨습니까?”

나의 싸늘한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각 잡고 대답하는 아린.

여전히 푸른 방패의 막내라는 자신의 위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열심히 두들겨 맞으며 몸에 새겼던 나에 대한 공포심만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막내 너도 같이 간다. 빨리 준비해.”

“어으, 엇! 예옛!”

***

“하하! 형님, 그때 기억나십니까? 클리덴부르크로 가는 가도 근처에 위치한 야산에서 고대 신의 사원이 하나 발견됐다고 떠들썩했던 거요.”

“아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불콰해진 얼굴로 신나게 떠드는 옛 동료의 얼굴을 보며, 데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먼 슬레작.

젊은 시절 함께 사자의 이름 아래 검을 휘둘렀던 옛 동료.

지금은 왕국군 대령의 신분으로 왕도 카를리온을 방비하는 수천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겨 소원한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건만, 노먼은 오랜만에 찾아온 데론을 보고도 마치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살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먼은 데론이 전한 리트베르크 영지의 비극적인 최후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분노했고, 니나와 데론을 돕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게, 이상했다.

데론이 기억하는 노먼은 분명 능력 있는 기사였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일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즉흥적인 약속을 내어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만난 지가 오래되었으니 그동안 노먼의 성격이 변했으리란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었던 데론.

결국 그는 제자인 아드리안을 보내 일행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도록 지시했다.

“크, 그때 그 사원에 고대 문명의 보물이 가득할 거라고 다들 난리를 쳤었는데...”

“... 소문과 다르게 몬스터들만 득시글대는 곳이었지.”

“흐흐, 맞습니다. 어휴, 그때 우리 다 죽을 뻔했잖아요? 트롤에 오우거에... 뭔 놈의 몬스터들이 그렇게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던지.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털이 막 곤두섭니다. 하하!”

아찔했던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과장된 몸짓으로 진저리를 치는 노먼.

데론은 그런 노먼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시간을 보내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아... 나이가 드니 확실히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 예전 같았으면 자네랑 해가 뜰 때까지 마셨을 텐데, 이젠 힘들어서 그럴 수가 없네. 이거... 창피하구만.”

나이 핑계를 대며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데론에게 노먼이 손을 흔들며 대답한다.

“하하하! 창피하긴요, 형님. 사실 저도 힘들어서 눈이 막 감기던 참입니다. 저도 이제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 아닙니까.”

“참, 그랬지. 나만 나이 먹은 게 아니란 걸 깜빡했어. 자네도 늙었구만.”

“그럼요, 저도 어디 가면 늙은이 소리 듣습니다. 하하하! 아이고, 주인된 입장에서 손님 모셔놓고 먼저 자겠다는 말을 못 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참인데... 형님이 이렇게 말씀을 꺼내주셨으니, 이제 슬슬 저도 자러 가야겠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난 또 내가 흥을 깬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 뭔가.”

“어디 오늘만 날입니까? 내일도 있고, 내일모레도 있는 것을.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 밤은 여기서 푹 주무십시오. 아, 형님 주무실 곳은 니나 아가씨가 계시는 방 바로 옆입니다. 마음 쓰실 것 같아서요.”

“배려해줘서 고맙네. 그럼 내일 보세나. 저녁 정말 잘 먹었네.”

“예, 아침에 뵙지요. 푹 주무세요, 형님.”

“그래, 내일 보세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시녀 하나가 재빨리 데론의 앞으로 나선다.

손님인 그에게 침실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 위해서였다.

“형님, 안녕히 주무세요! 하하하!”

기분 좋게 취한 목소리로 멀어지는 데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먼.

하지만 시녀의 안내를 받아 윗층으로 향한 데론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이 사라졌다.

“주 아르닌께서 이 노먼을 도우심인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집으로 굴러들어왔구나.”

데론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사실 노먼은 바덴하임 백작과 인연이 있었다.

왕도 방위군 소속 대령, 노먼 슬레작.

그는 정기적으로 바덴하임 백작에게 후원을 받는 군 지휘관의 한 명이었다.

그 후원을 대가로 노먼은 바덴하임 백작이 운영하는 카폴리노 상단을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왕도 방위군 소속 예하 부대의 군수품 공급자로 선정했다.

노먼과 황금백은, 전형적인 군납 비리의 형태로 얽힌 관계였던 거다.

“데론 형님, 젊었을 적엔 나한테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더니... 그게 미안했나 보오? 다 늙어서 이렇게 큰 선물을 안겨주고 말이야. 흐흐흐...”

저녁 식사 내내 니나와 데론에게 보여주었던 호탕한 기사의 얼굴 대신 그 자리에 노회한 중년 사내의 욕망 어린 얼굴이 나타난다.

“... 귄터.”

“예, 대령님.”

노먼의 물음에 저녁 식사 내내 응접실 밖에서 대기하던 부하 하나가 달려와 머리를 조아린다.

“지금 왕도 방위군 병력 2개 소대... 아니지, 1개 중대 병력을 빼서 이리로 데려와라. 사유는 야간 비상 훈련, 내가 직접 지시했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지금은 늙었지만, 데론은 젊었을 적 우리 기수 중 최고라 불렸던 기사다. 무장 확실히 해서 데려오도록. 특히, 방패수들은 필수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라.”

노먼의 명령을 들은 부하가 빠른 걸음으로 물러난다.

“후우...”

꼴꼴꼴...

부하에게 지시를 내린 뒤, 긴장으로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시다 남은 포도주를 잔에 채우는 노먼.

“후우... 쫄리네, 쫄려.”

부리나케 뛰쳐나가는 부하의 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며 그가 천천히 포도주를 들이켰다.

***

“저기 보이는 저 저택입니다.”

“음...”

나는 아드리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의 끝에 놓인 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2층 높이로 지어진 커다란 석조 저택.

높은 담장이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기다란 도끼창을 든 병사들이 출입문 앞을 지키고 있다.

“그놈 이름이 뭐라고?”

“노먼 슬레작, 현 직업은 왕국군 대령입니다. 과거 사자기사단에서 스승님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라고 들었습니다.”

“사자기사단 출신이라... 칼 좀 쓰겠군.”

아드리안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검성의 감각을 널리 퍼뜨렸다.

‘하나, 둘... 여덟 명.’

내 감각에 걸려든 경비병의 숫자는 총 8명.

건물 안에는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건물 밖 정원과 출입문에 배치된 인원의 수는 그러했다.

“일단은... 건물 밖에 있는 놈들의 수는 여덟 명이다.”

“그게, 보여? 아니... 보이십니까?”

옆에서 내 말을 듣던 아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여전히 존댓말은 입에 잘 안 붙는 모양이다.

“응, 나는 보여. 너도 나중에 경지가 오르면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농땡이 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알았냐?”

“... 알겠습니다.”

유독 자신에게만 엄하게 구는 내 모습이 불만인 듯 살짝 코를 찡그리며 대답하는 아린이었다.

“오면서 설명했듯이, 저랑 아드리안이 저택 안으로 잠입할 겁니다. 엔리케 조장은 밖에서 대기하면서 주변을 경계해주시고, 일이 잘 안되어서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면 그때부터 사격을 부탁합니다. 그 전까지는 쏘지 마세요.”

“알았어, 맡겨둬라.”

내 설명을 들은 엔리케가 고개를 끄덕이며 믿음직스러운 눈빛을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여전히 입술을 불퉁하게 내민 아린을 바라보았다.

“막내,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조장을 보호해야 한다. 전투가 벌어지고 조장이 활을 쏘기 시작하면, 일부가 이리로 몰려들기 시작할 거야. 네가, 그놈들을 막아내야 해. 할 수 있지?”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래. 해내야 할 거다. 만약 조장이 털끝 하나라도 다치면, 넌 나랑 특별 대련시간을 갖게 될 테니까.”

“... 자, 잠깐!”

아린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아드리안, 가자.”

“예, 형님.”

휘영청 달빛마저 밝히지 못하는 골목길의 진한 어둠이 나와 아드리안을 천천히 삼켰다.

< 구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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