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69화 (65/197)

< 구출 (2) >

휭- 퍼퍽!

“컥!”

“큭!”

철퍽! 철퍼덕!

저택 건물 뒤편의 담을 넘자마자 마주친 두 명의 경비병을 손쉽게 처리했다.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아주 살짝 뒤통수를 후려쳐줬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경비병들은 고개가 꺾이다 못해 누가 강제로 잡아 누른 것처럼 앞으로 엎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손날로 목 뒤를 후려쳐서 기절시켰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히든 피스 ‘카델린의 아뮬렛’을 얻은 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치솟는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

예전처럼 손날로 쳤다간 그냥 목뼈를 부러뜨려 죽여버릴 것 같았기에, 부득이하게 손바닥을 썼다.

‘경비병들은 죄가 없으니...’

얌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쌕쌕 숨을 쉬는 경비병들.

그 모습을 보니 손바닥을 쓴 건 아주 바람직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 이야, 무슨 마동석 된 것 같은 느낌이네. 손바닥으로 원샷원킬!’

그렇게, 내가 기절시킨 경비병들의 몸을 질질 끌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는 동안 아드리안이 담을 넘어 저택의 정원 안쪽으로 들어왔다.

“... 형님.”

“그래, 준비됐지?”

“후우... 예.”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아드리안.

그와 동시에 바닥을 박찬 아드리안이 나를 향해 힘차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깍지 낀 손을 뒤집어 손바닥이 위로 보이게끔 넓게 펼쳤다.

“... 흣차!”

달려온 아드리안이 내 손바닥을 밟고 도약하는 순간, 나는 있는 힘껏... 아니, 적당한 힘으로 녀석을 들어 올려 주었다.

“흡!”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힘차게 도약하는 아드리안.

다행히 이번엔 힘 조절이 잘 됐는지, 솟구쳐 오른 아드리안이 저택 2층의 툭 튀어나온 테라스 난간 너머로 안착한다.

아마 힘을 더 줬으면 저택 지붕 위로 날아갔겠지.

“... 형님, 올라오세요.”

테라스에 오른 아드리안이 난간 너머로 고개를 빼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자기의 손을 잡고 올라오라는 의미 같은데...

미안하지만, 난 도움이 필요 없다.

“흣차!”

내가 발을 구르며 제자리에서 뛰어오르자, 마치 무중력 상태에 놓인 것처럼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타탁-!

힘찬 도약에 이은 깔끔한 착지.

“어... 으어?”

단숨에 2층 테라스 위에 나타난 내 모습을 본 아드리안의 표정이 무척이나 볼만했다.

“입 닫아, 벌레 들어가겠다.”

“어, 으... 옛!”

“조용히, 발소리 죽이고 따라와. 복도에 몇 놈 있다.”

“... 알겠습니다.”

끼이익-

‘...!’

테라스 출입문을 여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다행히, 복도 있던 경비병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다.

‘어우, 씨! 간 떨어질 뻔했네...’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열린 문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들이밀어 복도 안을 살폈다.

‘... 저기인가?’

아드리안도 나도 이 저택의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복도를 서성거리는 경비병들의 위치만 보아도 대강 니나와 데론이 있는 방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2층에 자리한 여러 개의 방 중 경비병들이 문 앞에 서 있는 두 개의 방.

바로, 저곳에 니나와 데론이 있을 것이다.

‘방 앞에 서 있는 경비병이 두 명씩, 총 네 명. 일단 저놈을 쓰러뜨리면서 발차기로 옆에 있는 놈을 걷어차고...’

문 앞을 지키고 선 놈들을 바라보며 한 번에 모두 제압할 동선을 궁리하던 그때,

우후, 후우우- 우후, 후우우우-

별안간 들려오는 부엉이의 울음소리.

다른 사람들은 그냥 부엉이가 우나보다, 하고 넘어갈 테지만 나는 저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 씨발.”

저 부엉이 울음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위험을 알리는 엔리케의 비상 신호다.

“형님, 왜요?”

“뭔가 일이 꼬인 것 같다. 잠깐만 여기 있어. 금방 올게.”

“옙, 알겠습니다.”

놀란 아드리안을 진정시킨 후 나는 2층 테라스 난간을 밟고 도약해 단숨에 저택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이런...”

옥상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탄식을 터트렸다.

건물 뒤편으로 숨어들어와 볼 수 없었던 저택 정면의 풍경.

저 멀리, 한 떼의 군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것도 확인된 것은 없었지만, 왠지 저 병력의 목적지가 이곳 저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노먼이 부른 병력이겠군.”

한밤의 깊은 어둠을 몰아내는 수많은 횃불.

그 어른거리는 불빛 아래 대강 파악할 수 있는 병력의 수만 해도 족히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

“노먼 이 새끼, 겁 엄청 많네. 데론 한 사람 잡자고 중대급 병력을 불러?”

나쁘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좋게 표현한다면 철두철미하다고 할 수 있겠지.

저택으로 접근하는 병력의 숫자를 보고 노먼 슬레작이라는 인간의 성향을 대강 파악한 나는 다시 아드리안의 곁으로 돌아갔다.

“형님, 무슨 일 입니까?”

“계획을 바꿔야겠다. 원래는 아가씨와 너희 스승님만 몰래 빼내려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졌어.”

“그, 그럼...?”

천천히 허리춤에 매인 검을 검집째로 끌러내며, 나는 아드리안의 질문에 대답했다.

“빠르게 가자. 그냥 다 패버리자고.”

***

탁탁탁-

“으, 으응?”

늦은 밤 밀려드는 수마(睡魔)와 싸우며 겨우겨우 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는 갑자기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달빛만이 새어드는 복도 끝,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누, 누...”

휘우웅- 퍼억!

털썩!

‘누구냐!’라고 소리치려고 했던 병사의 시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법을 써서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육박해온 침입자가 휘두른 무기에 턱 끝을 얻어맞고 기절해버렸기 때문이다.

“치, 침입...!”

휭- 퍼억! 퍽! 빠악!

니나와 데론의 침실 앞을 지키던 나머지 세 병사의 신세도 앞서 쓰러진 동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털썩! 털썩! 스르륵... 털썩!

그들 모두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를 만큼 빠른 쾌속의 공격을 얻어맞고 눈을 뒤집으며 복도에 쓰러졌다.

“후우...”

단숨에 2층 복도를 지키던 경비병 넷을 제압한 나는 마지막 병사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침실 출입문 너머의 ‘누군가’에게 말했다.

“... 베르켈 경, 접니다.”

끼이익-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리는 침실 문.

곧, 검을 뽑은 채로 침실 출입문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데론이 모습을 드러낸다.

“왔구만.”

“예,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기는, 이만하면 빠르지.”

내 얼굴을 봐서 조금 긴장이 풀린 것일까?

살짝 미소 짓는 데론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였다.

하긴, 난 원래 어두워도 잘 보이긴 한다.

“아가씨는?”

“아드리안이 방금 침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곧 일어나실테죠.”

“음, 많이 당황하실 터인데...”

노먼이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진즉 파악한 데론과 달리 니나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알지 못했다.

잠 잘 자고 있다가 갑자기 봉변을 당한 격일 테지.

하지만, 오랜 여정을 거치며 몸과 마음이 모두 부쩍 성장한 니나인 만큼 침착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드리안이 아가씨에게 잘 설명해드릴 겁니다. 걱정마십쇼.”

“그래.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쩔 셈인가?”

“왕국군 병력이 저택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집주인이 이리로 부른 듯한테...”

“노먼, 이 개자식이...!”

분노한 데론의 손에 들린 검이 부르르 떨린다.

그것은 오랜 전우를 배신한 노먼에 대한 분노이자 그런 상대의 변심을 알아채지 못하고 사지(死地)로 걸어들어온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다.

“본래는 두 분만 빼내어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1층으로 내려가서, 노먼을 인질로 잡겠습니다. 일단, 1층 계단 앞을 지키는 경비병들을 속일 수 있도록 베르켈 경께서 앞장서 주십시오.”

“알았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스릉- 탁!

검을 다시 검집으로 돌려보낸 데론이 들고 있던 검을 나에게 넘긴다.

그리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는, 1층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단 사각지대에 숨어 내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한다.

천천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데론.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계단 앞에 서 있던 경비병들이 깜짝 놀라 묻는다.

“베, 베르켈 경?”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막상 누웠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술이나 한잔 더 마실까 하고 내려왔다네.”

“아...”

“보자, 저 응접실 쪽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노먼 이 친구도 아직인가 보군. 허허, 잘됐네.”

능청스럽게 말을 주워섬기며 불이 밝혀진 응접실을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데론.

“저, 저저! 데론 경! 그게...”

“잠시만, 저희가 먼저 가서 연대장님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런 데론의 행동에 당황한 경비병들이 서 있던 자리를 이탈해 그의 뒤를 쫓는다.

지금 응접실에선 노먼이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갑옷과 무기를 챙기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고 있을 터.

작전이 개시되기도 전 그 광경을 데론이 목격하게 둘 순 없었다.

“허허, 뭘 그렇게 당황하는가? 아, 혹시 노먼 그 친구에게 혼날까 봐 그러나? 에이, 이 사람들아. 내가 노먼 그 친구와는 사석에서 형님, 아우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라네. 이런 일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놀란 경비병들이 허둥지둥 데론의 뒤를 따른다.

이윽고, 성큼성큼 걸어 응접실 앞에 도착한 데론이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턱-!

데론의 뒤를 다급하게 따라온 경비병 하나가 팔을 뻗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한다.

“하아, 베르켈 경. 죄송하지만, 지금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연대장님께서 중요한 손님과 이야기 중이시라...”

“중요한 손님? 이 밤에?”

“예. 왕도 방위군 쪽에서 급하게 찾아오신 손님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죄송하지만 침실로 돌아가 주십시오.”

“어허, 이런... 사정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가 없겠군. 다시 잠이나 자러 가야겠구만.”

고개를 끄덕인 데론이 그대로 몸을 돌린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 근데 말이지.”

우뚝, 몸을 돌리다 멈춘 데론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한다.

“나는 그렇다 쳐도, 저 뒤에 따라오는 친구는 무조건 들어가야겠다는데?”

“...?!”

데론의 말을 들은 두 경비병이 깜짝 놀란 얼굴로 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는데...

퍼억! 퍽!!!

“끄르륵...”

“꺽, 커흑...”

순식간에 휘둘러진 데론의 주먹이 두 경비병의 턱을 좌우로 돌려버린다.

털썩! 털썩!

찍소리도 못하고 기절해버린 경비병들.

그리고...

“... 끝내주는 주먹이었습니다.”

데론의 뒤에서 그가 경비병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내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아직 짱짱하다네.”

내가 잠시 맡아두었던 자신의 검을 돌려받으며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 데론이 다시 표정을 굳히며 응접실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다.

철컥, 끼이이익-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마치 전쟁터라도 가는 듯 갑옷을 단단히 차려입은 노먼 슬레작과 몇몇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에게 호통을 치던 노먼의 눈에 당혹감이 차오른다.

2층의 침실에서 얌전히 자고 있어야 할 데론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 혀, 형님? 이 밤에 여긴 어쩐 일로...”

“그건 내가 물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깊은 밤중에 자네는 웬 갑옷 차림인가?”

“하하하! 이게 그, 무슨 일이냐면... 그러니까...!”

놀라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어물어물 변명을 내뱉는 노먼.

흔들리는 그의 시선이 데론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나에게로 잠시 머문다.

아마도 내 정체를 파악하려는 모양인데...

팟-!

『 노먼 슬레작 / Lv. 46

소속: 펠리노어 왕국군 왕도 방위군

클래스: 기사 』

그가 나와 눈을 마주쳐 준 덕분에, 나는 스킬 ‘창조주의 눈’을 발동시켜 노먼의 능력치를 읽어낼 수 있었다.

‘... 꽤 하네. 나름 사자기사단 출신이라 이건가?’

내가 살핀 노먼의 현재 레벨은 46.

오십 중반에 달한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능력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부하들의 레벨은 각각 36, 38, 37.

얼마 전 내게 반항도 못 하고 흠씬 두드려 맞았던 용병대 막내, 아린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형님. 저놈은 누굽니까? 아까 저녁때 형님이 데리고 왔던 그 제자 놈이랑은 생긴 게 다른데? 제자가 또 있었습니까?”

“...”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끄는 노먼.

그가 무엇을 노리고 그러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는 성큼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시게.”

나의 말에 선선히 대답하는 데론.

그의 허락이 떨어지던 그 순간,

휘우우웅!!!

마치 팽팽하게 잡아당겼던 시위 끝에 걸린 화살처럼, 단숨에 공간을 가로지른 내가 노먼의 눈앞에 나타났다.

“으허엇! 이게 뭐...?!”

이어, 기겁한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퍼억! 퍽! 뻐걱! 파아앙-!!!

“커허억!!!”

“켁!”

“끄헉!”

“크헤엑!”

와장창창!!!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그의 곁에 서 있던 네 명의 왕국군 기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 구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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