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 개시 (1) >
“가시나무 용병대 급속 전진! 고블린의 좌측면을 때려라!”
“키르헨의 방패! 전열 지켜! 그 자리에서 버텨! 버티라고 새끼들아!”
“뭐하나, 핏빛 늑대! 여기 구경하러 왔어? 빨리 돌입해! 받아버려!!!”
다닐렌츠의 주도 키르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너른 들판.
키르헨 용병 길드 소속의 4개 용병대로 구성된 몬스터 토벌군이 한 떼의 고블린 무리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케륵! 케르륵!!!”
“케륵은 시발, 뒤져 이 새끼야!”
콱! 으지직!
가시나무 용병대 소속의 용병 하나가 고블린의 공격을 능숙한 동작으로 피해낸 후 놈의 얼굴 한복판에 자신의 검을 박아넣는다.
“끄르륵...”
얼굴 뼈가 쪼개진 채로 힘없이 무너지는 고블린.
놈을 쓰러뜨리고 한숨 돌리려는데, 그 꼴을 못 보겠다는 듯 곧바로 다른 고블린들이 덤벼들었다.
“어휴, 이 미친 새끼들 진짜!!!”
기본적인 전투력의 차이도 있고, 들고 있는 장비의 수준도 명백했다.
‘심지어 병력의 숫자도 우리가 더 많은데...’
그런데도 고블린들은 악을 쓰고 토벌군에게 덤벼들었다.
용맹한 것인가, 무모한 것인가?
뭔지 모를 그 판단은 뒤로 미루고, 그는 우선 눈앞의 싸움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 괴물 새끼들, 싹다 죽여버려어어어!!!”
***
“이쪽 수레는 더 못 실어! 꽉 찼어!”
“다 채운 수레는 옆쪽으로 빼라고! 빈 거 가지고 와!”
“에이씨... 야이 새끼야, 이렇게 가죽을 걸레로 만든 걸 어떻게 가져다 파냐? 이건 그냥 버려!”
“그쪽 잡아봐. 그렇지! 하나둘 하면 수레 위로 던지는 거다? 자, 하나, 두울-!”
고블린 무리와의 전투가 마무리된 후, 나와 겔베르트는 각자의 말에 올라탄 채로 전장을 정리 중인 용병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닐렌츠 상단장의 신분을 지닌 나와 키르헨 용병 길드장의 신분을 지닌 겔베르트.
우리 두 사람은 몬스터 토벌을 명목으로 모인 이 무리에서 권력 서열 1, 2위에 올라 있는 이들이기에, 당연히 몬스터 사체를 정리하는 잡일에서 열외 되었다.
“야, 씨... 고작 반나절 싸웠는데, 벌써 끌고 온 수레 다섯 대를 다 채웠다. 이게 말이 되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겔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진짜 많긴 많네요.”
“내가 살다살다 이렇게 몬스터 많이 나오는 동네는 처음 본다. 아, 버니언 산맥은 제외. 거기는 뭐, 어차피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니까.”
“하하! 애초에 몬스터랑 짐승들 사는 곳이죠, 거긴.”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닐렌츠로 이사 와서 살 생각을 못 하지.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인데 이따위로 몬스터가 우글거리면... 어이구!”
“이사 오는 길에 다 죽겠어요.”
“내 말이. 하긴, 우리도 다닐렌츠 오는 길에 몇 번이나 습격당했잖아? 몬스터 놈들, 그리고 도적놈들...”
“그나저나 이 동네는 몬스터들이 엄청 사납네요. 딱 봐도 우리 쪽이 전력이 훨씬 강한데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박는 걸 보니까.”
“원래 북부 쪽 몬스터들이 성질머리가 더 억세고 사나워.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그래요?”
“어, 그렇다더라. 내가 또 이 옆에 안할트 영지 출신이라 잘 알지.”
“음...”
나는 겔베르트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원작 소설 설정에서도 북부 지역의 몬스터가 더 강하다고 했거든.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냥 이 동네 몬스터들이 다른 지역 몬스터들보다 겁대가리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겁대가리가... 없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의아해하는 나의 눈빛을 알아챈 겔베르트가 타고 있는 말의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다닐렌츠의 몬스터들은 늘 인간들과의 싸움에서 우위에 있었거든. 다른 영지는 가끔 영지군이나 용병들이 나와서 토벌도 하고 그러는데 여기는 돈 없어서 여태 그걸 못 한 거잖아.”
“예, 그렇죠.”
“한마디로 이 동네 몬스터들은 인간한테 제대로 당해본 기억이 없는 거야. 즉, 학습이 안 된 거지.”
“음... 그 말 들으니까 이해가 가네요.”
북부 지역 몬스터 특유의 사납고 억센 기질도 기질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다닐렌츠의 몬스터들은 인간에게 ‘당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니 병력이며 장비며 모든 게 다 열세인 상황에서도 앞뒤 안 가리고 무모하게 덤벼들었던 거다.
다닐렌츠의 몬스터들에게 인간은 그저 그들이 언제든지 사냥해 잡아먹을 수 있는 ‘식량’일 뿐이었으니까.
“뭐, 우리 입장에선 나쁠 거 없지. 이 새끼들 한 마리라도 더 잡아서 돈 벌어야 하는데, 알아서 모가지 들이밀면 일이 더 쉬워지잖아?”
“그러게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네.”
겔베르트의 기분 좋은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물어 가는 붉은 해를 바라보았다.
다시, 키르헨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그 뒤로도 장장 일주일간, 우리는 다닐렌츠의 주도 키르헨 주변의 숲과 들판을 들쑤시며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첫날 확인했던 것처럼, 지금껏 인간에게 크게 당한 적이 없었던 다닐렌츠의 몬스터들은 우리와 마주칠 때마다 도망칠 생각을 않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우리야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는 거지 뭐.
그렇게 일주일 동안 사냥한 몬스터가 무려 수레로 서른대 분량 가까이 되었으니, 도시 주변에 돌아다니는 몬스터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만했다.
“가죽 작업은? 얼마나 진행됐어?”
“예, 일단 수레 열 대 분량은 끝났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무두질에 필요한 재료들 수급이 안 되어서,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고 합니다.”
다닐렌츠 상단 본부 2층에 자리한 상단장실.
쳐내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른 서류의 산속에서, 나는 가죽 작업장에 다녀온 아드리안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수레로 열 대 분량이라...”
여기서 말하는 수레 열 대 분량이란 아직 작업하지 않은 몬스터의 사체를 기준으로 한 얘기다.
즉, 무두질 작업이 끝난 가죽만을 기준으로 치면 그보다 훨씬 적은 양이 남을 터.
“예, 무두질 작업이 끝난 가죽 기준으로만 치면... 수레 두 대 분량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상단마차에 실으면 한 대 분량이 조금 안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뭘 궁금해하는지를 금세 알아차린 아드리안이 냉큼 답을 내어놓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아휴, 이 똘똘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제 고작 열여덟 살이 된 내가 한 살 차이 나는 애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웃긴 그림이긴 하다만...
‘뭐, 겉으로만 그렇지 속은 다 늙은 아저씨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 눈에 아드리안이 참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데론 그 양반이 제자를 참 잘 키웠어.’
하긴, 그러니 원작에서도 아드리안이 니나를 데리고 홀로 다닐렌츠까지 살아서 온 거겠지.
타고난 무재(武才)가 뛰어나 스승 데론의 눈에 들었던 아드리안.
하지만, 내가 볼 땐 다른 재능이 더 뛰어났다.
눈치 빠르고, 말 예쁘게 잘하고, 과감할 때 과감하고 침착해야 할 때 침착할 줄 아는 재능.
거기에 아드리안은 뭔가를 시키면 왜 이걸 시키는지, 그리고 이 일을 하려면 어느 부분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본능적으로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
‘그런 걸 이른바 일머리라고 하지.’
열일곱 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인데도 이렇게 똘똘하게 일을 잘 하니 나중엔 얼마나 더 유능한 인재가 될지 기대가 된다.
“아, 그리고... 상단장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작업 중에 나온 몬스터 내장은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어, 그래. 잘했다.”
내가 몬스터의 내장을 따로 모아주라고 한 이유.
바로, 농사일에 쓸 거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것도 다 원작에 나온 내용이었지.’
지병으로 세상을 뜬 구스타브 남작의 뒤를 이어 다닐렌츠의 영주가 된 니나.
영주의 자리에 오른 뒤 영지 시찰에 나섰던 니나는 어느 화전민 마을에서 몬스터 내장을 이용해 거름을 만드는 모습을 목격한다.
‘... 몬스터의 내장에 나무를 태워 나온 잿가루와 나뭇잎 등을 잘 섞어 며칠간 잘 썩히면 훌륭한 거름이 탄생하지.’
거기서 힌트를 얻은 니나는 몬스터를 잡아 가죽은 내다 팔고, 내장은 거름으로 만들어 영지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결과, 원래도 농사짓기 좋은 땅이었던 다닐렌츠의 농업 생산량은 빠르게 증가하게 된다.
“흠... 일단 아드리안, 나랑 같이 외출 좀 하자. 지금 보는 서류까지만 확인하고 일어날 거야.”
“외출 말이십니까? 어디로 가시려고...”
“영주님 저택. 할 얘기가 좀 있어서.”
***
영주 저택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남작의 집무실.
다닐렌츠 상단의 설립을 위해 수천 골드의 재산을 쾌척한 나는 그게 언제가 되었건 원한다면 이곳 집무실에서 남작과 독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어서 오시게, 상단장.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로 이 부족한 몸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시려는가?”
언제나 고전적인 말투로 나의 몸을 굳게 만드는 구스타브 남작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남작님의 따뜻한 환대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환대를 아니할 수가 없지! 상단장의 존재로 인해 이 온 다닐렌츠 땅에 전에 없는 활기가 돌고 있지 않은가?”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별것 아닌 잔재주를 부리고 있을 뿐, 모든 것은 여기 계신 영주님의 존재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한참을 오간 후에야 본론이 진행되었다.
“... 몬스터 내장으로 만드는 거름이라?”
“예. 상단에서 매일 같이 나오는 몬스터 내장을 그대로 버리기가 아까워 어떻게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 나온 방도입니다.”
“흠,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은데...”
가난한 일반 사람들의 삶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구스타브 남작은 영지민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이른바 ‘애민(愛民)’ 정신이랄까?
그런 구스타브 남작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를 찾아와 몬스터 내장으로 거름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털어놓았고, 곧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음, 알겠네. 내 서기관에게 일러 다닐렌츠 영주의 이름으로 거름 만드는 재주가 좋은 이들을 모으도록 하지.”
“정말 감사합니다, 영주님.”
“감사는 무슨... 이토록 놀라운 기책을 우리 다닐렌츠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네에게 내가 더 감사하지.”
“감당하기 힘든 말씀이십니다.”
“아니, 감당하시게. 앞으로도 매번 자네에게 감사할 예정이니 말이야. 하하하! 자, 함께 들지. 차가 많이 식었어.”
“예, 영주님.”
그렇게, 나는 구스타브 남작과 함께 다닐렌츠 영지의 농업 부흥을 불러일으킬 준비를 착실하게 해나가기 시작했다.
***
“상단장님께서 직접 영업을 뛰러 가신다고요?”
“어. 왜? 문제 있나?”
“아니... 왜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 누구? 영지 서기관을 내 마음대로 보내겠냐, 아니면 아직 세상 물정 어두운 너를 보내겠냐?”
“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내 대답에 바로 고개를 숙이며 납득하는 아드리안.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일단 이번이 처음이니까, 내가 직접 가는 게 맞아. 가서 판로도 제대로 뚫고, 또 그거 말고도 이것저것 할 게 많거든. 아무튼 그렇게 알고, 차질 없이 준비하자. 다음 주까진 상단마차 두 대 분량은 확실히 나와야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용병 길드에 가서 상행 호위 의뢰 넣고 와. 내가 직접 따라가니까 호위가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구색을 맞춰야 하니... 인원은 한 열 명 내외로?”
“예, 오전 내로 처리하고 점심 전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씩씩하게 대답하고 돌아서는 아드리안에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을 전해준 후,
“자, 그럼... 귀한 분 모셔올 계획을 한 번 세워볼까?”
우리 다닐렌츠 상단의 크나큰 발전을 이뤄낼 한 인물의 이름을 떠올리며, 나는 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 영업 개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