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각 변동 (5) >
카아아아앙!!!
“커흑! 큭!”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묵빛의 쇳덩어리를 자신의 전투 도끼로 겨우겨우 받아낸 위르겐의 잇새로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온다.
공격을 몸에 얻어맞은 것도 아니고, 분명 자신의 무기로 막아냈는데 눈알이 빠지고 양 손목이 부러질 듯한 충격이 느껴진다.
‘이런 씨발! 뭐 이딴 게 다 있어...?!’
덜덜 떨리는 팔다리가 쉴새 없이 비명을 지른다.
생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무식한 크기의 철퇴.
저딴 걸 만든 것도 어이가 없는데, 저걸 만들어서 실제로 쓰는 놈이 눈앞에 있으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뭐야, 벌써 지쳤어? 겁대가리 없이 우리 상단 치러 온 놈이 겨우 이따위 수준이라? 참... 실망이네, 실망이야.”
당장이라 쓰러질 뜻 거친 숨을 토해내는 위르겐을 보며 조롱하듯 묻는 사내.
다닐렌츠 상단장, 데미언.
그는 사람이 아니라 트롤을 잡을 목적으로 만든 초대형 철퇴를 젓가락 다루듯 가볍게 휘둘러 자신과 부하들을 박살 냈다.
사실, ‘휘둘렀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싶긴 했다.
맨 처음 달려들었던 용병 다섯 명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후부터는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툭툭 상대를 건드린다는 느낌으로 철퇴를 사용했으니까.
하지만 말이 툭툭이지, 저 무식하리만큼 커다란 철퇴가 지닌 무게와 강도를 생각하면 그 한방 한방이 치명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아아아!!!”
남아 있던 위르겐의 부하 중 한 놈이 괴성을 지르며 데미언에게로 달려들었다.
눈깔이 뒤집혀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걸 보니 그냥 이성을 잃고 덤벼든 모양.
하지만 정신줄을 놓아버린 놈이 휘두른 눈먼 칼이라도 맞으면 뼈와 살리 갈라지고 피를 쏟게 되는 법이다.
방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모습이 꽤 위협적이었으나...
“어휴, 이 새끼 이거 눈깔 돌아간 거 봐. 참나...”
데미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그저 ‘귀찮음’의 감정일 뿐이다.
마치 하루살이나 날파리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데미언은 덤벼드는 위르겐의 부하를 향해 대(對) 트롤 용 특수무기, ‘안면분쇄자’를 가볍게 들이밀었다.
그리고,
휭- 퍼어억!
“꾸웨엑!!!”
철퇴에 가슴 한복판을 가격당한 상대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진다.
당연한 결과다.
그가 어른 머리통만 한 쇳덩어리에 정면으로 부딪치고도 멀쩡할 정도의 인간이라면, 한낱 용병 일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어으어... 으으으...!”
모르긴 몰라도 가슴뼈 몇 군데는 부러졌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죽는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겠지.
“내 팔... 내 파아알!!!”
“어흐으윽! 다리가... 아아악!”
다닐렌츠 상단 마차의 주변, 비명과 신음을 내뱉는 위르겐의 부하들이 즐비하게 쓰러져 있다.
다행히 데미언이 손속에 사정을 둔 탓에 처음 달려들었다가 피떡이 된 다섯 명을 제외하곤 죽은 이가 없었다.
다만, 죽을 것처럼 아프긴 할 것이다.
데미언이 가볍게 휘둘렀다고 해서 쇳덩어리가 솜뭉치처럼 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휘둘러도 철퇴는 철퇴였고, 그에 비하면 인간의 몸은 너무나 연약했다.
심지어 데미언이 들고 있는 것은 보통의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몬스터 사냥 전용 철퇴.
그 규격 외의 무기와 마주칠 때마다 뼈가 뚝뚝 부러지고, 칼과 도끼날이 힘없이 깨져나갔다.
바다 위에서 거센 폭풍을 만난 작은 조각배들처럼, 작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쓸려나간 습격자들.
그리하여 마침내...
“자, 너 하나 남았다.”
“...!”
철퇴를 막아낸 충격으로 바들거리던 팔다리의 떨림을 겨우겨우 잡아낸 유르겐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용병대 회색수염의 모두가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계속 할 거야?”
“으, 으, 으으...!”
절대 이기지 못할 싸움, 이기지 못할 상대.
지더라도 한 번 싸워보겠다는 식의 호승심은 애초에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찬 생각은 오직 단 하나뿐.
‘시발... 이런 씨바알!!! 다닐렌츠 상단주가 이런 괴물 같은 새끼라는 얘기는 안 했잖아!’
대체 이걸 왜 하겠다고 했을까?
콜티츠 상단주의 살인 청부 제안을 돈만 보고 덥석 물었던 과거의 자신을 욕하면서,
탱그렁-!
“하, 항복! 무조건 항복하겠습니다!!!”
유르겐은 이가 깨져버린 자신의 전투 도끼를 내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앞서 내게 얻어터지고 바닥을 뒹굴고 있던 부하들이 허탈감을 느낄 정도로 재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예! 항복입니다!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하하하!”
그 큰 덩치에 맞지 않게 야비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유르겐.
나는 그런 상대에게 마주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일단 좀 맞을까?”
“예, 그래야죠! 일단 좀 맞... 예? 아니, 그게 무슨... 커헉!!!”
퍼억-! 쿠당탕!!!
내 발길에 시원하게 걷어차인 유르겐의 몸이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었고,
“맞다가 죽을 것 같으면 말해. 그럼 조금 쉬었다가 때려줄게.”
“커흑! 컥! 살려... 크헉!!!”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
“야, 이 새끼들아! 줄 맞춰서 잘 따라오라고! 특히 거기 너!”
“예, 예엡!”
“똑바로 걸으라고 했잖아! 똑바로! 아우, 씨! 죽을래? 반항하냐?”
퍼억!
“어흑! 죄... 죄송합니다!”
“이번엔 뒤통수 맞는 거에서 끝나지만 다음번엔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 알겠냐?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야!”
“예, 예엡!”
“알겠습니다!”
밧줄에 묶인 채로 줄지어 상단 마차 뒤를 따라오는 회색수염의 용병들을 무섭게 다그치는 엔리케과 푸른 방패의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포로 신세가 된 용병들의 행동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가했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노예 시장으로 향하는 악덕 상인들의 행렬쯤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상황.
“...”
하지만 나는 그런 엔리케와 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 몇 대 맞는 게 뭐 대수라고.’
애초에 저놈들은 우리 상행단을 습격해 죽이려던 목적으로 몰려온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죽이지 않고 포로 신세로 만들어 준 것만 해도 열 번, 백 번 감사해야 할 일이다.
“... 너, 금패 용병이라고?”
내가 타고 있는 말 안장에 걸린 밧줄에 손목을 묶인 채로 처량하게 걷고 있던 용병대 회색수염의 대장, 위르겐 스팔터.
그가 나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다.
“어, 옛! 그렇습니다!”
“금패 딴지 얼마나 됐는데?”
“어, 그게... 한 5, 6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5, 6년이라... 꽤 오래됐군.”
“가,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체 뭐가 감사하고 뭘 더 열심히 하겠다는 건지.
뭔가 대화의 흐름에 맞지 않는 대답을 늘어놓는 위르겐이었다.
‘하긴, 지금 정신이 없긴 할 거다.’
깨져버린 코에선 한줄기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입술은 위아래를 구분할 것 없이 터져 있다.
퉁퉁 부어 원래의 생김새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 그 자신이 흘린 피와 흙먼지가 뒤섞여 엉망이 된 머리도 보였다.
그렇게, 처참하게 얻어터져 성한 곳을 찾기 힘든 위르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가 금패 용병의 자리에 오른 이후 오늘처럼 개 잡듯이(?) 맞은 날이 있었을까?
‘장담컨대, 한 번도 없었겠지.’
팟-!
『 위르겐 스팔터 / Lv. 48
소속: 회색수염 용병대
클래스: 용병 』
슬쩍 엿본 위르겐의 상태창 속 레벨 수치는 48.
과연 금패 용병이라 할 만한 수준의 고강함이었다.
뭐, 그래 봤자 내 입장에선 철패 용병이나 금패 용병이나 똑같이 한주먹 거리였지만.
참고로 현재 내 레벨 수치는 76.
히든 피스를 꿀떡꿀떡 집어삼키며 미친 듯이 성장하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느려진 속도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아무튼, 이야기는 다시 위르겐과 나의 대화로 돌아온다.
“그래서, 너 이번일 하고 얼마 받기로 했어?”
“오... 오백 골드, 받기로 했습니다.”
“오백? 이 새끼가... 내 몸값이 그거 밖에 안 되어 보이냐?”
“아, 아닙니다! 모자랍니다! 한참 모자랍니다! 사, 상단장님 몸값은 적어도 천 골드... 아니, 만 골드는 되실 겁니다!”
혹시나 내 심기를 거슬렀다가 아까처럼 또 맞을까 싶었는지, 허둥거리며 아부성 발언을 늘어놓는 위르겐.
밧줄 묶인 손목을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내게 변명하는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오백 골드라...’
내 몸값치고 너무 싼 거 아니냐며 위르겐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런 돈을 턱턱 내놓을 정도의 재력과 우리 상단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원한을 동시에 지닌 놈들이라...’
내가 생각해도 답이 너무 뻔한 질문이었다.
“... 콜티츠 상단, 이 미친놈들이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나의 얼굴엔 상황에 맞지 않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왜냐고?
“덕분에 일이 더 쉽게 풀리겠네. 고맙다, 사고 쳐줘서. 하하하!!!”
***
루테니아의 주도, 프롤린에 도착한 상단 마차를 보크 상단에 넘긴 후, 나는 그 길로 콜티츠 상단 본부를 찾았다.
프롤린으로 오는 내내 얻어터져 엉망진창의 몰골이 되어버린 용병대 회색수염의 대장 유르겐을 앞세운 채였다.
콰앙-!
콜티츠 상단 본부의 문짝을 힘차게 걷어차며(참고로, 그 문짝은 부서졌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콜티츠 상단주님 여기 계십니까? 나랑 인사 좀 합시다!”
“누, 누구십니까? 누군데 이렇게 함부로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 겁니까?”
상단 직원 하나가 용감하게 나서서 내게 소리쳤다.
“아, 나요? 나는 멀리 다닐렌츠에서 온 데미언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닐렌츠 상단이라는, 작고 볼품없는 곳의 상단장을 맡고 있지요.”
“다, 다닐렌츠 상단...!”
그제야 나의 정체를 알아차린 콜티츠 상단 직원들의 눈빛이 변한다.
놀라움, 증오, 부러움, 원망... 뭐, 다양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만 하기로 했다.
“콜티츠 상단장께서 보내주신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아주 대단한 선물이던데요?”
툭, 나는 밧줄을 칭칭 묶어 함께 데려온 유르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전해주신 선물이 너무 비싸서... 제가 좀 부담스럽네요. 오백 골드라나? 진짜 ‘목숨 걸고’ 받아야할 선물이더라고요?”
“이봐요! 나가세요! 빨리 나가라니까!”
“그렇다고 주신 선물을 안 받을 수는 없어서, 제가 직접 상단주님 얼굴 뵙고 감사 인사드리려고 왔거든요. 여기 계시죠?”
“상단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신다고 한들 미리 약속을 잡고 오신 게 아니라면 어서 나가세요!”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상단 경비원들이 거친 기세로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익...!”
“뭐야, 왜 안 밀려?”
“사람이 무슨... 크흡! 이래도 안 밀린다고?”
무려 상단 경비원 다섯 명이 달려들어 나를 붙잡고 끌어내려 하지만 될 일이 아니다.
땅에 박힌 철기둥처럼 버티고 선 채, 나는 더욱 목소리를 크게 돋우어 소리쳤다.
“이것 참... 지몬 콜티츠 상단주님! 안에 계시죠? 그 선물, 뭐였는지 여기서 큰 소리로 얘기 좀 해볼까요? 직원들 다 들리게? 아니면 이 길로 루테니아 영주님을 찾아가서 제가 받은 선물 자랑 좀 할까요? 어느 쪽이 좋으세요?”
싱글거리며 외친 내 목소리가 마침내 숨어있던 지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쿵쿵쿵쿵!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위층에서 계단을 달려 내려온 누군가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자, 잠깐! 내가, 내가 지몬... 허억! 허억! 지몬 콜티츠일세! 우... 우리! 올라가서 따로 얘기함세!”
“아, 콜티츠 상단주님? 이렇게 뵙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다른 사람을 시키지도 않고 직접 저렇게 달려 내려온 걸까.
뒤룩뒤룩 살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너무 놀래서 아주 백돼지가 됐네. 창백하다, 아주.’
그런 속마음과 달리 나는 예의 바른 자세로 그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다닐렌츠 상단장, 데미언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바, 반갑네. 콜티츠 상단주, 지몬일세.”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지몬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반갑게 미소 지었다.
눈앞의 돼지 놈을 뜯어먹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이었다.
< 지각 변동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