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86화 (82/197)

< 지각 변동 (6) >

탐욕(貪慾).

지나치게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

콜티츠 상단주 지몬은 탐욕스러운 자였다.

그는 루테니아 제일의 상단을 소유한 콜티츠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

그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질 수 있었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그것을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치워버릴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세워 성세(盛世)를 이룬 콜티츠 상단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에서 기인한 힘이었다.

더불어, 그 돈으로 사들인 권력의 힘이기도 했고.

얼핏 생각한다면 의아한 부분이었다.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는 삶’을 사는 이가 어째서 탐욕스러운 성품을 가지게 된 것인가?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노력 없이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에, 손에 쥔 것들의 소중함을 몰랐다.

주변의 모든 이가 그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주었기에 삶의 고단함을 몰랐다.

하다못해 부모의 가르침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아비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정은 뒷전이었고 사치스럽고 천박한 성품을 지닌 어미는 오히려 자식의 비뚤어진 성장을 부추겼다.

그렇게, 지몬은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평생 그토록 원하던 상단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 지몬은 이제 남은 일생에 꽃길만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상단주로서의 권력과 명예를 충분히 누려보기도 전에, 보크 상단이라는 걸림돌이 등장했다.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등장한,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무엇인가였다.

처음엔 조금 신경이 거슬리는 정도였다.

마치 손가락 끝에 박힌 작디작은 가시 같은 거슬림.

하지만 그 작은 거슬림이 눈 깜짝할 새에 커다란 상처로 변했다.

손가락 끝의 가시가 손가락을 자르고, 팔 한쪽을 뭉텅 썰어갈 정도의 위협으로 자라난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콜티츠 상단과 지몬의 주머니로 들어가야 할 돈들이 보크 상단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지몬 콜티츠는 나이 사십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 인생의 위기다운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자체를 견뎌낼 인내심과 맷집이 부족했다.

그래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크 상단과 경쟁하여 이길 생각을 하는 대신 비정상적인 편법을 써서 급하게 해결을 보려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자신은 물론, 콜티츠 상단의 운명을 관짝에 처박아버리는 악수(惡手)였다는 것을.

***

콰아아아앙!!!

쩌저적!

지몬의 집무실 한가운데 놓여있던 커다란 회의용 탁자가 부서져 내린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손날로 힘껏 탁자를 내리친 결과였다.

“으히익!!!”

콰당!

안 그래도 내가 은연중에 내뿜는 기운에 짓눌려 진땀을 흘리고 있던 지몬이 기겁하며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엎어진다.

“어이고, 이거 부서지네? 버틸 줄 알았더니만...”

하지만 나는 부서진 탁자를 바라보며 태평한 소리나 늘어놓을 뿐이었다.

“상단주님, 이거 칠흑의 숲에서 가져온 철흑단목으로 만든 탁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정말 소문대로 무쇠만큼 튼튼한가 궁금했는데... 손날로 쳤다고 부서지는 걸 보니까 이거, 사기당하셨네.”

“어흑... 흐윽!!!”

내 말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혼이 나간 표정으로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바닥을 기는 지몬이었다.

“아이고, 이거 뭐 애새끼도 아니고 왜 다 큰 어른이 바닥을 기어다니 십니까? 볼썽사납게... 자자, 일어나세요. 얼른 제 손 잡으시고.”

“으히익!!!”

지몬은 인내심만 없는 게 아니라 용기도 없는 자였다.

자리에서 일으켜주려 내민 내 손을 보고 혹시나 자기를 때리는 게 아닌가 싶어 잔뜩 움츠러들었다.

이 아저씨 이거, 더럽게 겁 많네.

‘하긴, 이건 그냥 겁이 많다고 말하기가 좀 그런 상황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서울 만도 하다.

그 단단함이 무쇠와 같다고 하여 이름에 ‘철(鐵)’이라는 단어가 붙은 나무, 철흑단목.

도끼로 후려치면 쇳소리가 들리고, 도끼날과 부딪친 곳에서 불꽃이 튄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한데 내가 철흑단목으로 만든 탁자를 주먹도 아니고 손날로 후려쳐 단박에 쪼개버렸다.

그 살벌한 손이 대뜸 자신에게 뻗어오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저절로 심장이 쪼그라들 수밖에.

‘... 게다가 지가 나한테 한 짓이 있으니, 제 발 저릴 만도 하지.’

용병을 써서 우리 다닐렌츠 상단의 물건을 빼앗고, 상단 직원들을 해하려 했던 지몬이다.

하지만 나의 존재로 인해 지몬이 세웠던 그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가 거액을 들여 구했던 금패 용병 위르겐은 얼마나 처맞았는지 원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꼴이 되어 저기 방 한쪽 구석에 꿇어앉아 있다.

칼 맞고 어디 이름 모를 벌판에서 죽었어야 할 다닐렌츠 상단의 직원들도 멀쩡했고, 보크 상단으로 전해져야 할 몬스터 가죽들도 무사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래요, 바닥이 편하시면 그렇게 계속 바닥에 계시고요. 저는 하려던 얘기 계속하겠습니다.”

작정하고 위험한 기세를 뿜어내며 협상의 이름을 가장한 ‘협박’을 가하는 다닐렌츠 상단장.

나, 데미언이 지몬의 앞에 있었다.

“용병을 고용해 경쟁 상단의 직원들을 죽이고 물품을 강탈하려 했다... 이건 뭐, 두 번 세 번 입 아프게 언급할 필요도 없는 중범죄죠. 여기 루테니아 영지에서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아닙니까?”

“그, 그게 아니라...!”

“쉿! 조용.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

“제가 시키기 전엔 함부로 입 열지 마세요. 이 탁자처럼 되고 싶으세요? 상단주님 머리통은 철흑단목보다 튼튼합니까?”

“...”

내가 나긋한 목소리로 전하는 말을 듣고 금세 입을 다무는 지몬.

어이구, 말 잘 듣네.

아까 보여준 ‘탁자 격파’ 퍼포먼스가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상단주님께 세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하나, 루테니아 영주님을 찾아가 해당 사건에 대한 전후 사정을 전달하고, 재판을 청하는 것.”

“...!”

내가 재판을 언급하자 지몬의 살찐 턱이 두려움으로 떨린다.

범죄 사실이 너무 명백하여, 지몬과 콜티츠 상단의 입장에선 재판에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운이 없다면 사형까지 당할 수도 있을 중범죄를 저지른 지몬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재판장에 가고 싶지 않겠지.

“둘, 약속된 장소에서 콜티츠 상단과 다닐렌츠 상단이 정식으로 한판 붙는다. 돈을 풀어서 용병을 사 모으건, 연줄로 어디서 병력을 끌어모으건 그건 알아서 하는 거로.”

“저, 정식으로 붙는다고요?”

“뭐, 영지전 같은 거죠. 승리한 쪽은 패배한 쪽의 모든 것을 갖는 조건으로. 돈, 사업체, 그리고... 목숨까지 포함해서.”

“...?!”

“왜요? 문제 있습니까? 나도 며칠 전에 칼 맞고 죽을 뻔했는데?”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위르겐이 ‘칼 맞고 죽을 뻔했다’는 내 말을 듣고 꿈틀하는 것이 보였으나, 나는 못 본척했다.

뭐, 내 입장에선 죽을 ‘뻔’한 건 사실이잖아?

물론 안 죽었지만.

“크읍...!”

“개인적으로 저는 이쪽이 마음에 드는데, 뭐 아무튼... 마지막 세 번째 제안은요.”

슬쩍 흘린 말로 겁먹은 지몬을 한 번 더 위협한 내가 진짜 목적을 꺼냈다.

“이번 사건을 덮고, 이후에도 영원히 언급하지 않는 대가로 다닐렌츠 상단에 ‘적정한 수준의’ 보상을 지급한다.”

“...!”

내가 한 마지막 제안을 들은 지몬의 눈이 커진다.

앞선 두 제안에 비해 훨씬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리라.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답이 없으시면 저희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세, 세 번째로 하겠습니다!”

혹시나 내 입에서 다른 소리가 나올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지몬이 냉큼 대답했다.

“저희가 한 잘못에 대한 보상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외부에 이 일이 알려지는 것만은 막아주십시오.”

“흠...”

원하던 대답을 들었기 때문일까?

저절로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나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

“... 그래서, 콜티츠 상단으로부터 이걸 받아오셨다고요?”

“응, 어때? 괜찮은 장사지?”

“어... 그게, 음...”

프롤린으로의 상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다닐렌츠의 주도, 키르헨의 상단 본부.

나는 콜티츠 상단의 상단주 지몬으로부터 앞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을 덮는 대가로 받아온 보상을 파스칼에게 내어주었다.

“... 상단장님과 우리 직원들의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닐 테지만, 그 관점을 버리고 이 조건 자체만 본다면 어마어마하긴 합니다.”

“그렇지? 나 잘했지? 하하하!”

손에 들린 콜티츠 상단의 보상안 협상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파스칼이 연신 혀를 내둘렀다.

내가 제안하고, 지몬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한 그 계약서에 담긴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콜티츠 상단은 다닐렌츠 상단에게 향후 3년간, 매년 1천 골드씩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둘, 콜티츠 상단이 현재 소유 중인 루테니아 북서부의 광산 한 곳의 개발 및 운영권을 다닐렌츠 상단 측에 조건 없이 양도한다.

안 그래도 급성장 중인 보크 상단에게 치여 서서히 과거의 성세를 잃어가고 있던 콜티츠 상단이었는데, 내가 받아온 보상안은 그런 콜티츠 상단의 ‘기둥뿌리’를 뽑는 수준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던 거다.

“이거... 콜티츠 상단 타격이 엄청나겠는데요? 올해가 가기 전에 보크 상단한테 완전히 밀릴 것 같습니다.”

“그럴 테지. 그래야 하고 말이야.”

우리의 든든한 우군인 이자벨의 보크 상단이 루테니아의 상권을 장악해준다면, 향후의 계획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아, 이자벨 상단주와는 얘기 잘 되셨습니까?”

“음, 잘 됐어. 역시 시원시원해. 세부 계획은 묻지도 않고 ‘알겠습니다’ 하던데?”

“하하하! 이자벨이야 상단장님 말씀이라면 이제 콩으로 치즈를 만든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지요.”

나를 만나 고작 1년 사이에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뀐 이자벨.

나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거의 종교 수준으로 굳어져 있었다.

“이자벨이 다음 달 말까지는 어떻게든 사람을 모아준다고 했으니, 가을바람 불 때쯤이면 바로 광산 개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거기에 맞춰서 준비해줘.”

“예, 알겠습니다. 한데... 상단장님.”

“음?”

한 가닥 걱정이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파스칼이다.

“상단장님을 믿고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말씀드려 걱정되기는 합니다.”

“뭐가 그렇게 걱정되는데?”

“아시다시피 광산 개발이라는 게 그렇게 턱턱 시도하는 대로 성공하는 사업이 아니잖습니까. 평생 광산 개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도 변변찮은 광맥 하나 발견 못 하고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근데, 원래 사업이라는 게 다 그럼 위험을 안고 하는 거 아니겠어?”

“물론 그렇죠. 하지만 광산 개발은 특히 그 위험성이 큽니다. 개발에 투자하는 돈의 규모 자체가 워낙 크니까요. 다른 사업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죠. 게다가...”

거기까지 말한 파스칼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서류 하나를 펴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상단장님께서 직접 다 확인하고 결재하신 내용이니 아시겠지만, 현재 저희 상단의 수익금 대다수가 다닐렌츠 영지 개발에 재투자되고 있습니다.”

“음, 알지.”

“때문에 이번 가을로 예정된 광산 개발 착공에 투자할 여유금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파스칼을 영입한 이후 상단 운영의 많은 부분에서 손을 뗀 나였다.

영지 개발에 쏟아붓는 돈이 워낙 많아서, 남아있는 자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걱정할 정도였다니?

나도 조금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파스칼에게 물었다.

“그렇게 빠듯한가? 올해 말까지 들어올 콜티츠 상단의 보상금을 더해도 부족해?”

“음, 그 돈까지 더해서 계산을 해보면...”

슥슥, 책상 위에 놓인 빈 종이에 숫자를 써 내려가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파스칼.

잠시 후, 계산이 끝낸 파스칼이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내가 말했다.

“... 콜티츠 상단의 보상금을 더해도, 광산 개발에 책정할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합니다. 올해가 지나면 돈이 다 떨어질...”

“올해? 아, 그럼 됐어.”

“예...?”

갑작스러운 나의 태세 전환에 당황한 파스칼이 멍한 얼굴로 되묻는다.

“올해가 지나면 돈이 다 떨어진다며? 그 말은 최소한 올해가 지나기 전까지는 광산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거 아냐.”

“어... 예, 그렇죠. 그렇긴 한데, 아시다시피 광산 개발은 길게 보고 벌이는 사업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광맥을 찾는데 최소 반년은 걸리는...”

“아니, 한 달 안에 찾을 수 있어.”

“...?!”

나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파스칼.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내가 말했다.

“두고 봐, 가을에 광산 개발 시작하면, 겨울이 오기 전까진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

그로부터 3개월 뒤,

“파, 파스칼님! 차, 찾았답니다!!!”

“... 갑자기 찾긴 뭘 찾아? 알아듣게 말해.”

한창 업무를 보던 파스칼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신의 방을 찾아온 부하 직원에게서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금, 소금입니다! 광산 개발 현장에서 소금 광맥이 발견됐답니다!!!”

< 지각 변동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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