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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87화 (83/197)

< 광산 개발 (1) >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자원 중의 하나인 소금.

소금의 발견과 함께 인류는 음식을 장기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이 같은 변화는 인구의 가파른 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실제 유럽의 중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곳 <로스트 킹덤>의 세계에서도 소금의 중요성은 남달랐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가까운 곳에 암염 광산이 없어 소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아직도 소금을 화폐 대신 사용할 정도였다.

이토록 소금이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에 다닐렌츠 영지에 대규모의 암염(巖鹽) 광맥이 발견되었다.

당연히, 영지 안팎으로 난리가 날 수밖에.

“허어, 그게 사실인가? 쿨럭! 암염 광맥이 발견되었다니! 허허허!!!”

영지 북부에 자리한 광산 개발 현장에서 암염 광맥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영주에게 달려가 그 소식을 전했다.

“예, 방금 연락을 받자마자 영주님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감사한, 쿨럭! 일이다! 암염 광산이라니... 크흠, 쿨럭! 이 다닐렌츠에 아르닌의 축복이 내리는구나! 쿨럭!”

그렇게 벅찬 목소리로 한참을 기뻐하던 다닐렌츠 영주, 구스타브 카릴베르크 남작.

쉬지 않고 얕은 기침을 토하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 아니지, 진정한 주님의 축복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인데... 쿨럭! 내가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었구만.”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남작의 눈에 애정이 가득했다.

처음엔 친한 벗의 딸을 무사히 지켜내어 자신에게로 데려다준 용감무쌍한 용병 정도로 나를 생각했던 남작.

그 이후엔 다닐렌츠에 전에 없을 기적을 이뤄낸 영지의 은인(恩人)으로 나를 대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자네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참 좋으련만... 그럼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쿨럭! 쿨럭!”

나는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흡사 장성한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과 같았다.

“... 저 또한 영주님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신다니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다닐렌츠의 모든 영지민들을 위해서도 오래오래 저희의 곁에 남아주셔야지요.”

요새 들어 병세가 더욱 깊어진 까닭인지, 두 눈이 움푹 들어간 남작을 보며 내가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작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원작에서 니나가 열다섯이 되던 해에 남작이 떠났으니, 이제 1년 정도 남은 건가...’

나의 개입으로 바뀐 원작의 흐름.

그 변화의 여파가 남작의 생(生)에도 미치지 않을까 싶었으나, 날이 갈수록 마른 나뭇가지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니 그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았다.

“허허... 그러면 참으로 좋겠으나, 주 아르닌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간이 다하면, 그 운명에... 쿨럭! 후우... 따라야 하겠지.”

“영주님...”

담담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남작.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울컥 솟아오르는 슬픔을 느꼈다.

비록 지닌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영지를 성세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영지민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 남작님이 못다 이룬 꿈, 제가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왕국 최고, 최강의 영지 다닐렌츠.

젊은 날의 구스타브 카릴베르크가 가슴 속에 품었던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며칠 후,

다그닥, 다그닥...

나는 멋들어진 갈기를 자랑하는 말 위에 올라 다닐렌츠 영지 북부의 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으, 확실히 북쪽으로 올라오니까 공기가 확 차가워지는 느낌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목을 잔뜩 움츠리는 이는 나의 비서 겸 호위 역할을 하는 아드리안.

갈수록 한기를 더해가는 늦가을의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옷깃을 단단히 여미는 그였다.

아드리안은 광산 개발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암염 광맥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급하게 키르헨을 떠나온 나의 출장길에 동행중이었다.

혹시 모를 위급 상황을 걱정한 파스칼이 호위 병력을 데려가라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깔끔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제일 센데, 누가 누굴 호위한단 말인가?

‘옆에서 수발들 부지런한 놈 하나면 족하지.’

바로 그 ‘부지런한 놈’, 아드리안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게. 아이펠 산맥에서 너머에서 찬 공기가 넘어오나 보다. 곧 눈도 내리겠어.”

“그런 건가요. 하, 그나저나 아이펠 산맥... 진짜 멋있네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아이펠 산맥의 웅장한 모습에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아드리안이었다.

“어,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다. 멋있네, 정말.”

나 역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아이펠 산맥의 모습을 보며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륙의 지붕’이라 불리는 대륙 중부의 하얀 산맥에 비해선 그 규모가 작았지만, 그 산세의 험준함만 따진다면 대륙 제일이라는 북부의 산맥 아이펠(Aifel).

새하얗게 얼어붙어 있는 만년설 아래, 눈으로 보기에도 산세가 가파르고 거칠어 보이는 것이 과연 대륙에 널리 퍼져있는 그 무시무시한 명성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나저나... 상단장님은 어떻게 소금 광맥이 있는 곳을 딱 찍어서 개발하라고 하신 거예요? 사람들이 말하길 광산 개발 시작한 지 반년도 안되어서 결과가 나오는 건 진짜 기적이라고 하던데...”

“아, 그거야 뭐.”

아드리안의 존경 어린 눈빛을 받으며,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 꿈에 나왔어.”

“에? 꿈이요?”

내 입에서 나온 대답에 존경심이 느껴지던 아드리안의 눈빛이 약간 흔들린다.

야, 인마 그렇다고 바로 그렇게 눈빛이 바뀌냐?

그 의구심 어린 시선을 다시 처음처럼 바꾸어 놓기 위해, 나는 혼신의 구라(?)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어. 몇 달 전 꿈에 웬 늑대 한 마리가 나오더라고.”

“늑대요?”

“응. 엄청 큰 늑대였어. 그...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하나? 마냥 회색빛이라고 하기엔 좀 어둡고, 그렇다고 잿빛이라고 부르기엔 번쩍이는 광택이 있는 털을 가진 놈이었지. 여하간 엄청 멋있게 생긴 놈이었어.”

“오오...!”

내가 꺼낸(만들어낸) 꿈 이야기를 들은 아드리안이 호들갑을 떤다.

하긴, 성년이 되었다고 해도 이제 고작 열여덟 밖에 안 된 소년 아닌가.

존경하는 형님이자 주군이 털어놓는 신비스러운 꿈 얘기에 눈이 동그랗게 변한 아드리안을 바라보며, 나는 태연하게 꾸지도 않은 꿈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눈에서는 번쩍거리는 빛을 뿜어내는 게 딱 봐도 평범한 늑대는 아니었어. 막 눈으로 말을 하는 것 같은... 근데 가만 보니까 그 늑대 녀석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은 거야.”

“그래서요?”

“조용히 따라갔지. 따라갔는데... 무슨 마을이 보였어. 작은 시골 마을인데, 마을 한복판에 엄청나게 큰 자작나무가 서 있는 게 인상적이었지.”

“... 자작나무요? 아, 그때 그럼?”

내 이야기를 듣던 아드리안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퍼뜩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럼, 몇 달 전에 자작나무가 세워진 마을을 찾아보란 지시를 내리셨던 이유가 꿈에서 그 마을을 보셨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아드리안이 말한 몇 달 전의 지시.

나는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자작나무가 자라있는 곳을 찾으라는 지시를 아드리안을 통해 내렸다.

곧 아드리안은 사람들을 풀어 영지 내에 자작나무가 자라있는 마을을 수소문했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광산 개발 현장 근처의 마을 나움(Naum)이었다.

“맞아. 꿈속에 나왔던 마을, 그게 바로 나움이었어.”

사실은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기에 나움 마을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적당하게 만들어낸 핑계가 바로 꿈 얘기였다.

“오오, 그랬구나... 그다음엔요? 꿈 이야기요, 계속해 주세요!”

“아, 그래. 꿈 얘기... 그, 늑대가 마을을 지나쳐서 계속 걸어갔어. 나도 그 뒤를 쭉 따라갔고. 그다음엔, 어... 산이 하나 나오더라. 그냥 마을 뒷산이라고 하기엔 조금 큰 산이었는데, 늑대가 그 산에 있는 동굴로 쏙 들어갔지. 그리고, 잠에서 깼어.”

“늑대가 들어간 동굴... 어, 설마?”

“그래,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광산 개발 현장이 바로 그 꿈속에 나온 동굴이야. 진짜로 나움 마을 뒷산에 그런 곳이 있더라고.”

“와, 진짜 신기하네요. 주 아르닌께서 상단장님을 정말로 보살펴 주시는 걸까요?”

실제로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풀어놓는 내 꿈 얘기에 넋을 놓고 빠져든 아드리안이었다.

“글쎄다, 정말 신께서 나를 보살펴 주시는 것인지 아닌지는 앞으로의 내 인생을 보면 알겠지? 결과가 궁금하면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라. 알았냐?”

“알겠습니다!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하하하!”

***

“상단장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커다란 자작나무가 자라난 마을, 나움으로 들어서는 우리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커다란 덩치를 지닌 젊은 사내였다.

다닐렌츠의 기사, 마틴 페스텔.

그는 건장한 체구에 남자다운 인상을 지닌 전형적인 무인(武人)으로, 이곳 광산 개발 현장 보호를 위해 다닐렌츠 영주, 구스타브 남작이 약간의 영지군 병력과 함께 파견한 인물이었다.

“아, 페스텔 경. 마중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다닐렌츠 영지의 은인이신 상단장님께서 오시는데 제가 어찌 뻔뻔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겠습니까? 당연히 나와 있어야지요.”

젊다고는 하지만 이제 열아홉이 된 나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나이가 많은 마틴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준귀족의 대우를 받는 기사의 신분.

영주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평민에 불과한 나에게 존대하며 시종일관 깍듯하고 진심 어린 태도를 보여주는 것만 보아도 이 마틴이라는 사내의 소탈한 성품이 설명되었다.

“자, 여기서부턴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일단 숙소로 가시지요!”

그렇게 말한 마틴이 직접 내가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잡고 안내를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마을이 워낙 작은 규모였기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숙소가 나왔다.

보통의 나무들과 달리 새하얀 껍질이 인상적인, 예의 그 자작나무가 높이 자라난 마을 광장 근처에 자리한 2층짜리 건물이었다.

“오... 저게 바로 상단장님께서 꿈에서 보신 그 자작나무군요?”

자작나무를 본 아드리안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마틴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꿈에서 본 나무? 그게 무슨 소리지, 아드리안?”

나와 달리 아드리안에게 좀 더 말을 편하게 하는 마틴이었다.

“아, 사실... 상단장님께서 꿈에서 저 자작나무를 보시고 이곳 나움 마을을 수소문하라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오, 그게 사실입니까 상단장님?”

“예, 그렇습니다. 저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드리안의 말이 사실인지 묻는 마틴에게, 나는 뻔뻔한 얼굴로 그렇다고 답했다.

이렇게 알음알음 꿈 얘기를 퍼뜨리다 보면 내가 주신(主神) 아르닌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

‘... 그럼, 앞으로 내가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많은 기적들에 대한 그럴듯한 근거가 생기겠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다닐렌츠 영지 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 나움.

사는 주민의 수를 다 더해보아도 채 오십 명이 되지 않을 이 작은 마을은 몇 년 안에 ‘나움가르트(Naumgart)’라 불리는 광업 기반의 산업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발전을 더욱 빠르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고.

‘... 소금은 시작일 뿐이지.’

이곳 나움 마을의 뒷산에는 암염 광맥 말고도 영지의 운명을 뒤바꾸어줄 아주 대단한 물질이 잠들어 있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략자원이라 불리는 그것.

바로,

철(鐵)이다.

< 광산 개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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