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88화 (84/197)

< 광산 개발 (2) >

“여기군요.”

“예, 상단주님.”

나와 아드리안은 나움 마을 뒷산에 세워진 광산 개발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곡괭이로 벽을 딱 찍었는데, 손맛이 달랐지요. 이 일을 오래 해봐서, 경험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여기 뭔가가 있구나!’”

내 앞에서 신이 나서 암염 광맥 발견의 순간을 설명하는 이는 광산 개발 현장의 작업반장.

그는 콜티츠 상단에게 양도받은(뺏은) 루테니아 북서부 광산에서 데려온 베테랑 광부로, 광산 짬밥이 무려 40년이 넘은 양반이었다.

오는 길에 상단 직원에게 들어보니 현장에서도 활약이 대단하다고.

자그마한 키에 어울리지 않는 무자비한 팔근육과 두꺼운 몸통을 지닌 그는 인간이 아니라 어쩐지 드워프 쪽에 가까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광부로서의 실력이 출중한 걸 보니 닮은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 색이 영롱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작업반장 아재가 주먹만 한 크기의 소금 결정을 하나 집어내게 건네주었다.

소금인지 모르고 보았다면 보석의 일종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근데, 소금의 색깔이...

“... 소금이 붉은색이네요?”

“하하하, 그래서 더 영롱하니 예쁘지요. 먹어도 아무 상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 내가 소금이 왜 하얗지 않고 붉은색이냐고 따질 것을 염려했는지, 작업반장이 웃는 낯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 알아 이 양반아. 우리집에 있는 소금도 히말라야 핑크 솔트였다고.’

지난 생의 경험으로, 붉은빛을 띤 소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와... 소금은 원래 하얀색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붉은색이... 상단주님, 이거 무슨 마법 같은 기운이 섞인 거 아닐까요? 먹으면 막 몸이 뜨거워진다던가?”

붉은색의 소금을 보고도 태연한 나와 달리 아드리안은 어지간히 놀란 듯 호들갑을 떨었다.

새끼, 많이 놀랐나 보네.

‘소금이 붉은색을 띄는 이유가... 미네랄, 특히 철분이 많이 섞였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지난 생애의 지식 덕분에, 나는 소금의 색깔이 붉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소금이 그렇게 많은 철분을 머금고 있는 이유? 그거야 뻔하지.’

피식, 작게 미소지은 나는 작업반장 아재와 그 밖의 다른 인부들에게 치하의 말 몇 마디를 전하고 다시 나움 마을의 숙소 돌아왔다.

그리고는 광산 개발 현장을 책임지는 우리 상단 측 사람과 기사 마틴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두 분 다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소금 광산의 설립은 앞으로 다닐렌츠 영지에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다줄 중요한 사업인 만큼, 자부심과 책임감을 지니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상단장님.”

“광산의 경비는 아무 염려 마십시오, 상단장님. 이 기사 마틴이 몸 바쳐서 지켜내도록 하겠습니다!”

담백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이는 상단 직원과 달리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후려치며 각오를 다지는 다닐렌츠의 기사 마틴.

그 믿음직한 태도가 고마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 페스텔 경의 말씀을 들으니 걱정하지 않고 키르헨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잠시 말에 뜸을 들이며 앞에 선 두 사람의 집중을 유도한 후, 나는 살짝 낮춘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얘기했다.

“제 생각엔 이 산에, 소금 말고 다른 광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철광석이라던가...”

“예에?”

“처, 철광석, 말입니까?!”

내가 꺼낸 말에 깜짝 놀란 두 사람.

이번에도 상단 직원보다 마틴의 반응이 더욱 격렬했다.

아무래도 군무(軍務)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기사인 만큼 최강의 전략 자원이라 할 철의 가치를 더욱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테지.

“상단장님, 혹시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를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끓어오르는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마틴이 물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광산에 다녀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뚝딱 만들어낸 그럴듯한 ‘썰’을 하나 풀어주었다.

“제가 예전에 용병 생활을 하셨던 것은 알고 계시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때 왕국 남부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건너 들은 이야기입니다. 본디 하얀색이어야 할 소금이 붉은색을 지니는 이유는, ‘불의 기운’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재밌는 것은 내가 꺼낸 이야기를 들은 마틴의 반응이었다.

“음, 불의 기운이라...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제법 진지한 얼굴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긴, 현대 문명 사회도 아니고 종교적 사고가 지배적인 사회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 꿈속에 나타난 늑대가 소금 광산의 위치를 가르쳐 줬다는 얘기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인데...’

그에 비하면 붉은색 소금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 정도는 나름 과학적(?)인 얘기처럼 들릴 것이다.

“어, 근데 상단장님.”

“예?”

“그, 붉은색 소금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이랑 철광석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저는 잘 이해가...”

마틴의 옆에 서 있던 상단 직원이 묻는다.

혹시라도 자신의 질문이 상단장인 나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 것인지, 무척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직원에게 아주 친절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아까 하던 얘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붉은색 소금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다, 여기까진 들었죠?”

“예예.”

“불의 기운이라. 불, 불꽃, 화염... 이런 걸 들으면 생각나는 거 없습니까?”

“어, 불꽃과 화염이라면... 아!”

내 설명을 들은 마틴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발을 구르며 대답한다.

“벨카누스!”

“아...!”

마틴의 말을 들은 상단 직원 역시 뭔가 눈치챈 듯 입을 벌린다.

불꽃과 강철의 신, 벨카누스(Velkanus).

관장하는 분야가 분야인 만큼, 대장장이들과 광부들이 주로 믿는 신이었다.

“불의 기운을 품고 있는 붉은색 소금 곁에 철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신들이 정해두신 당연한 이 세상의 이치일 겁니다. 제가 이 근처에 철광맥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고요.”

신의 이름을 갖다 붙였을 뿐,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현대 문명의 과학 지식을 들이밀어 설명하느니, 차라리 신의 이름을 언급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판단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역시 상단장님! 나이도 어리신 분이 어찌 그리 박학다식하십니까!”

불꽃과 강철의 신, 벨카누스의 신화를 잘 알고 있는 상단 직원과 마틴이 나의 설명에 감탄한다.

옆에 있는 아드리안은 다시 한번 뜨거운 눈빛으로 나에게 존경을 표현하고 있었고.

“자, 그러니 두 분은 이곳에서 소금 광산 개발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조용히 입이 무겁고 배신하지 않을 자들을 따로 추려내 철광맥 탐사를 시작해주십시오. 보안이 특히 중요합니다.”

내 두 눈에 어린 진지하고 엄격한 눈빛을 확인한 두 사람의 자세가 절로 딱딱하게 변한다.

“소금도 대단하지만, 특히 철은 지역의 판도를 바꿔버릴 수 있는 중요한 전략 자원입니다. 그러니 철광을 발견한 후, 적어도 1년 정도는 그 사실을 숨겨야 합니다. 그 기간 내에 다른 영지들이 우리를 우습게 볼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을 갖추면, 그때부턴 상관없겠지만요.”

“예, 상단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광산 주변의 경비에 힘쓰겠습니다.”

내 말에 빠릿빠릿한 태도로 대답하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의 손을 차례로 힘 있게 잡아준 후, 나는 나움 마을을 떠났다.

***

두달 후,

신성력(神聖歷) 784년 12월,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 드디어.”

상단 본부에 자리한 집무실 내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내 앞에 전해진 한 통의 서신.

이제 이름이 바뀌어 나움가르트(Naumgart)라 불리게 된 영지 북부의 새로운 도시에서 전해온 그 서신엔, 나를 비롯해 다닐렌츠 영지의 수뇌부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이 담겨져 있었다.

바로, 철광맥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 내년엔 더 바빠지겠네.”

일행과 함께 이곳 다닐렌츠에 정착한 지도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나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다.

“어휴, 눈 많이 온다.”

다닐렌츠 상단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진 탓에, 상단에 고용된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어서 상단 본부 건물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급속도로 불어난 인구만큼이나 빠르게 넓어진 도시의 면적.

사람들이 이른바 ‘신시가지’라 부르는 그곳에, 새로운 다닐렌츠 상단의 본부 건물이 자리했다.

나무가 아닌 돌을 쌓아 무려 3층 높이로 지어진 거대한 상단 본부 건물.

백 명을 훌쩍 넘는 상단의 사무직원들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대단한 규모였다.

바로 그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공간.

창 너머로 키르헨 신시가지의 모습이 훤히 내다보이는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

“2년 사이에 많이도 변했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광경이었다.

널찍하게 쭉쭉 뻗어 나가는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수많은 상점들.

눈 내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사에 한창인 모습이다.

식당과 술집, 푸줏간, 의류점, 대장간, 각종 곡식과 과일을 파는 식료품점들까지 오가는 손님들로 붐빈다.

“흐흐흐, 좋네. 이번 달도 세금 팍팍 걷히겠어.”

시장에 훈풍이 불고, 경제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도시의 주인인 영주는 더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경제학의 이치를 이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특히, 영주로 대표되는 귀족들이 그랬다.

그들에게 있어 귀족이 아닌 이들은 그저 헐벗고 굶주리게 사는 게 당연한 존재들.

영지민들이 배부르게 먹고, 돈을 많이 벌수록 그런 이들에게서 받는 세금도 많아진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 영영 깨닫지 마라. 계속 그렇게 영지민들을 핍박하고, 악랄하게 수탈해라.”

다른 영지의 귀족들이 계속 그런 구시대적 생각에 머물러 준다면, 우리 다닐렌츠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다.

영주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던 주변 다른 영지의 주민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어찌어찌 산이나 숲속에 정착해 이름 없는 화전민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맹수와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곳에서의 삶이란 한계가 있다.

그보다야 새로운 정착민에게 살 집도 빌려주고 농사지을 땅도 내어주는 다닐렌츠가 훨씬 낫다.

실제로 내가 제안한 이 정책을 지난 2년간 꾸준히 쓴 덕에 다닐렌츠 영지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주도인 키르헨은 물론이고, 도시 주변 몬스터 토벌이 끝난 너른 대지에 새로운 마을이 다섯 곳이나 생겼다.

기존에 있던 세 곳의 마을과 합치면, 벌써 키르헨 주변의 마을만 여덟 곳이다.

그곳에서 매달 들어오는 막대한 세수가 다닐렌츠의 곳간을 채웠다.

돈도 많고, 식량도 넘치도록 쌓이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군사력부터 챙기자. 기껏 벌어들인 돈, 지킬 힘은 있어야지.”

이제 따뜻한 봄이 오면 겨우내 쌓였던 돈과 식량을 풀어 영지군과 경비대를 추가적으로 모집할 생각이다.

그쯤 되면 나움가르트의 광산에서 강철도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배불리 먹이고, 좋은 가죽으로 만든 갑옷과 질 좋은 강철로 만든 무기를 장비한 병력이 준비되면 곧바로 남작에게 건의할 생각이다.

“카르셀의 버러지들... 올해 안에 싹 쓸어낸다.”

영주의 영향력이 미약한 탓에 사실상의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영지 남부 최대의 도시, 카르셀.

그곳을 지배하며 사실상의 영주처럼 군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도둑 길드와 용병 길드, 그 밖의 온갖 추잡한 짓을 하고 사는 범죄자들.

그 모두를 쓸어내고, 다닐렌츠의 남부를 평정할 것이다.

“그 다음엔 남쪽으로 가는 무역로를 확보하...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앞으로의 계획을 몰입해 있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다.

“옷차림은 이만하면 됐고... 어휴, 눈이 많이 내려서 큰일이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줄 두꺼운 망토를 다급히 두른 채 나는 방을 나섰다.

오늘은 영주님의 저택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

다닐렌츠의 영주 구스타브 카릴베르크 남작이 친구의 딸이었던 니나 아르펜을 자신의 양녀(養女)로 들이는 날이었다.

< 광산 개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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