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97화 (93/197)

< 다닐렌츠 남부 평정전 (5) >

쉬이잉- 카카캉!!!

거의 동시에 들려온 세 번의 파열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두른 나의 검이 테오릭의 경호원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강하게 후려치는 소리였다.

단숨에 목을 날려 끝내버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놈들은 테오릭의 곁에 붙어 카르셀 주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어 온 기생충 같은 자들.

맨 처음 걸린 놈은 기선 제압을 위해 단칼에 목을 쳤다지만, 나머지 놈들에게까지 편안한 죽음을 선사할 만큼 내가 착한 성격은 아니다.

“어윽!”

“큭!”

“아흑!”

탱그렁-! 태엥!

검을 쥔 손목과 팔에 감히 버텨낼 수 없는 충격을 받은 경호원들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검을 떨어뜨린다.

뒤이어 그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빠르게 거리를 좁혀 달려든 나의 발차기와 주먹이 놈들의 얼굴 한가운데 적중한다.

퍼억! 퍽! 뻐걱!

“아악!”

“크허억!”

“커흑!”

내 주먹에 맞아 안면이 으스러지고, 한쪽 눈알이 터지고, 턱이 으깨진 세 명의 경호원이 피를 토해내며 무기력하게 쓰러진다.

죽진 않았지만, 죽을 만큼 아플 것이다.

또한, 남은 생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되겠지.

그동안 놈들이 테오릭의 곁에서 기생하며 쌓아온 업보의 결과였다.

“어, 어떻게?!”

“이게 무슨... 미친!”

순식간의 네 명의 동료(앞서 나의 검에 목이 날아간 녀석까지 합쳐서)가 전투 불능상태가 된 것을 본 남은 두 경호원이 기겁하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방금 내가 쓰러뜨린 세 녀석의 합공 실력은 영지의 이름난 기사라 할지라도 함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어린아이 손목을 꺾듯 너무나 간단하게 그 셋을 쓰러뜨렸다.

코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두 경호원은 그동안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공포가 자신들의 목줄을 죄는 것을 느꼈다.

‘못 이겨, 저건 괴물이야! 절대 못 이겨!’

‘씨발! 그냥 도망칠까?!’

하지만, 그들은 사방이 막힌 도박장에 갇힌 신세.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의 손발을 묶고, 호흡을 흐트러뜨렸다.

제대로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이미 싸울 의지가 꺾여버린 것이다.

“이 썅! 막아! 막으라고!!!”

처음의 여유는 어디 갔는지, 너무 놀라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테오릭이 남아 있는 두 명의 경호원을 험한 말로 닦달했다.

하지만 명령에도 불구하고 경호원들이 바닥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자, 급기야 놈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야이, 씨발!!! 안 싸우면 내가 죽인다! 내가 뒤에서 찌를 거야 이 개새끼들아!!!”

눈깔이 뒤집혀 악을 쓰는 테오릭의 기세에 밀려난 경호원 하나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억지 기합을 넣으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흐아아아아아!!!”

굳이 상태창을 띄워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상대의 몸놀림을 확인하는 것으로 대강 그 수준과 경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자식, 기사급이다.’

진짜 기사는 아닐 테니, 기사와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떠돌이 용병쯤 되겠지.

아니면 진짜 기사가 맞는데, 영지에서 큰 사고를 치고 쫓겨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먹고살던 방랑 기사 놈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건 그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가 귀족도 아니고 한낱 폭력 조직의 두목 경호를 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도시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테오릭의 재력이 그 흔하지 않은 경우를 가능케 했을 터다.

‘하, 아드리안보다도 실력이 한 끗발은 높아 보이는 놈을 둘씩이나 데리고 다니다니...’

찰나의 순간에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고 느낀 놀라움.

물론, 거기까지였다.

놀란 것은 놀란 거고,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기사 급의 움직임이건 나발이건, 어차피 나에겐 하품 나올 정도로 느려터진 하수의 몸짓일 뿐이었으니까.

“뒈져라, 이 괴물 새끼야!”

쉬이이잉-!!!

놈이 내 얼굴을 노리고 수평으로 휘두른 검을 고개만 까딱 움직여 가볍게 피해낸다.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상대의 검.

실로 위험천만한 장면이었지만, 상대의 검이 절대로 나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내 마음은 평온하기만 했다.

“이런 씨발!”

상대의 검이 소득 없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버릇처럼 욕을 뱉어낸 상대가 급하게 휘둘렀던 검을 회수하고 그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는데...

콰지직!!!

순식간에 상대의 정면으로 접근한 내가 검 손잡이 끝으로 놈의 머리통을 찍어버렸다.

제 손에 잡힌 검을 회수하는 것보다도 빠른, 가히 번개 같은 속도였다.

“컥!”

털썩!

검 손잡이의 끝부분, 이른바 폼멜(Pommel)이라 불리는 둥근 쇳덩이에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은 상대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다.

맞는 순간 눈이 뒤집히고, 검 손잡이에 얻어맞은 부분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움푹 들어간 것이, 머리통 내부가 곤죽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제, 남은 테오릭의 경호원은 단 한 명뿐이다.

“이런 씨발...! 이런 좆 같은 괴물 새끼!!!”

굳게 믿고 있던 여섯 명의 경호원 중 무려 다섯 명이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반송장이 되어 바닥을 굴러다니는 모습을 목격한 테오릭이 혼비백산해 출입문 쪽으로 달려들었다.

“야, 시발!!! 문 열어! 문 열라고오!!! 으아아아아아!!!”

쾅! 쾅! 콰앙! 쾅!

문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발로 걷어차기도 해본다.

하지만 그래 봤자 테오릭의 손과 발만 아플 뿐, 굳게 닫힌 도박장의 철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으으, 으으! 씨바아알!”

태에에엥! 촤악! 푸화악!!!

테오릭이 밖으로 나가보겠다고 두꺼운 철문을 상대로 되지도 않는 용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마지막 경호원의 공격을 가볍게 쳐낸 후 역습을 펼쳐 놈의 오른팔을 팔꿈치 밑으로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아아아악!!!”

팔이 잘린 경호원이 남아 있는 왼손으로 잘린 오른팔을 붙잡으며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동안 테오릭과 함께 카르셀의 수많은 주민들을 괴롭히고, 협박하고, 때리고, 갈취했던 놈들이다.

동정의 마음 따윈, 털끝만큼도 들지 않는다.

“시끄럽다, 이 새끼야.”

휭- 퍼억!

“커억!”

깔끔한 뒤돌려 차기 한 방으로 비명을 지르던 경호원의 머리를 걷어차 잠재운 후, 나의 시선은 홀로 남은 테오릭에게로 향했다.

“... 테오릭 베케르트.”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테오릭.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열심히 철문을 두드린 건지, 슬쩍 살핀 그의 오른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뻔히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철문을 열어보겠다며 주먹으로 부리나케 두드린 결과였다.

“아이고,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게 주먹으로 친다고 열리겠냐?”

“시발... 씨바알! 으으으...!”

자신을 조롱하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테오릭이다.

“페, 페드로는 어떻게 되었지? 그놈도 죽였나?”

“아, 여기 도박장 주인? 잘 있어. 앞으로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하기로 했지.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말야.”

저벅-

테오릭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며 내가 대답했다.

터턱-

내가 다가간 걸음만큼 뒤로 물러선 테오릭의 등이 차가운 철문에 부딪힌다.

이어 ‘꿀꺽’하고 소리가 들릴 만큼 바짝 긴장한 테오릭이 입술을 달싹이며 내게 뭐라 말을 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이 새끼, 뭔 얘기를 하려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데, 이내 놈의 입에서 ‘카르셀의 왕’이라 불리는 거물이 했다기엔 너무나 비참하고 초라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호, 혹시...”

“...?”

“나, 나도, 항복하면 살려줄 건가? 아니... 저도 살려주실 겁니까? 페드로 그놈처럼? 저도 보기보다 쓸모가 많은 놈입니다!”

“하...”

놈이 보여주는 비루한 짓거리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안 쓰던 존댓말을 쓰며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라니.

‘... 하긴, 이 새끼 원래 이런 놈이었지?’

원작 소설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밤의 형제단’의 아지트 노릇을 하는 고성(古城)에 틀어박혀 다닐렌츠의 군무관 발터 브라운이 이끄는 영지군을 상대로 한참을 농성하던 테오릭.

놈은 전투의 형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비밀리에 협상을 걸어왔다.

자신과 밤의 형제단이 지금껏 이곳저곳에 몰래 숨겨둔 모든 돈을 내어놓고, 십 년간 영주의 밑에서 열심히 싸우겠다나 뭐라나.

하지만 새로이 다닐렌츠의 영주 자리에 오른 ‘니나 카릴베르크’ 남작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반역자 테오릭의 죽음’이었기에 토벌군 사령관인 발터는 그 협상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놈은 부하들과 함께 붙잡혀 카르셀 광장 한가운데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리고 지금, 놈은 원작 소설 속에서 군무관 발터를 상대로 꺼냈던 그 제안을 나를 상대로 똑같이 시도하고 있었다.

“제, 제가 숨겨둔 돈이 많습니다! 분명 공자님께서 영주에 취임하신 후 영지를 다스리시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

“그리고... 제가 이래 봬도 검을 좀 씁니다! 그 검을, 공자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공자님의 명령만을 받는 충실한 사냥개가 되겠습니...”

테오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휘웅- 휘웅- 휘웅- 콰지직!!!

순식간에 내 손을 떠나 날아간 손도끼 한 자루가 테오릭의 왼쪽 쇄골을 깨부수며 몸에 틀어박혔다.

“끄아아아아아악!!!”

죽는다고 소리치는 테오릭.

하지만, 그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간 두 번째 손도끼가 오른쪽 골반 부근에 꽂힌다.

콰직! 푸휴흇!!!

골반 쪽에 꽂힌 도끼가 내장을 찍은 것인지, 붉은 피에 찢기고 깨어진 내장 조각이 섞여 흘러나온다.

“아아아악! 이 씨발! 이 개새끼야아아아!!!”

몸에 도끼 두 자루를 꽂은 테오릭이 악을 쓰며 발광했다.

이 새끼가 근데 몸에 칼... 아니, 도끼 좀 맞았다고 존댓말 때려치우고 바로 쌍욕을 갈기네?

그 모습이 괘씸해서, 남아 있는 마지막 도끼 한 자루까지 알뜰하게 먹여주었다.

휘웅- 휘웅- 으직!!!

“크아아아악!!!”

마지막 도끼가 꽂힌 자리는 다름 아닌 왼쪽 무릎이었는데, 도끼날이 무릎뼈를 깨부순 탓에 테오릭은 더는 서 있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콰앙!

“으아아... 으흐흐흑!!!”

몸에 세 자루의 손도끼를 꽂은 채로 쓰러져 버둥거리는 테오릭.

오늘 아침 일어나 부하들과 함께 도박장에 돈을 수금하러 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돈 받아 챙길 목적으로 들렀던 도박장이, 그의 무덤이 되는 이런 상황 말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어디서 건방지게 혓바닥을 나불거리나? 감히 너 따위가, 지금 나한테 협상을 걸고 조건을 내밀어?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대는 테오릭에게 다가가, 그의 골반에 꽂혀 있는 손도끼의 머리 부분을 지그시 밟아주었다.

‘으지직’하는 음산한 소리와 함께 테오릭의 몸에 꽂혀 절반 정도 드러나 있던 도끼날이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몸속으로 틀어박혔다.

“끄허으어으윽...!”

어마어마한 통증에 하얗게 눈이 뒤집히는 테오릭.

나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극심한 출혈로 정신을 잃어가는 그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여주었다.

“네가 밤의 형제단 아지트로 쓰고 있는 고성(古城)의 지하 감옥, 제일 안쪽에서 두 번째 방의 벽 안쪽.”

“...?!”

“거기에 지금껏 모은 돈과 보물을 숨겨 놓은 거, 잘 알고 있다.”

“끄흐윽... 그, 그걸 어떻게...”

“그 돈, 내가 가져다가 잘 쓰마.”

“어떻게... 어떻게에...!!”

충격으로 눈을 부릅뜬 테오릭이 뭐라 더 말을 하려했지만...

휘우웅- 촤악!!!

인정사정없이 내리친 나의 검에, 놈의 머리가 깨끗하게 떨어졌다.

< 다닐렌츠 남부 평정전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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