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99화 (95/197)

< 다닐렌츠 남부 평정전 (7) >

카르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고성(古城).

높이는 건물 4, 5층 정도, 흙벽돌과 나무를 쌓아 만들어진 자그마한 규모였지만, 그래도 성은 성이다.

만약 이곳을 공격하려 든다면, 수비하는 쪽보다 배나 되는 병력을 준비해 들이쳐야 겨우 성문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빨리!”

“야! 이 느림보 새끼들아! 빨리 뛰라고!”

바로 그 성의 성벽 위.

험상궂은 얼굴을 한 무리의 사내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들의 정체는 바로 테오릭 베케르트를 따르던 ‘밤의 형제단’ 소속의 조직원들이었다.

약 두 시간 전, 그들은 밤의 형제단을 이끄는 수장인 테오릭이 시청 정문에 효수(梟首, 죄인의 목을 매달아 높은 곳에 걸어두는 것)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대다수의 조직원은 그 소식을 믿지 않았고, 하여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두목이 도박장에 들어간 후 당했다고?”

“그러면... 범인은 뻔한 거 아닌가?”

“페드로... 감히 우리 뒤통수를 쳐?”

“내가 언젠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두목! 두모옥! 크흐윽...!”

“페드로 이 개새끼! 만나면 씹어먹어 버린다!!!”

“아니, 근데... 페드로가 어떻게 두목을 제꼈지? 그 새끼 칼도 못 쓰잖아?”

“그러게... 경호원들을 어떻게 처리한 거지? 최소한 기사급 실력자 두셋은 있어야 할 텐데?”

“뻔하지, 페드로 이 새끼가 시장을 꼬드겨서 같이 두목을 죽이자고 한 거야!”

“그럼, 시장 통해서 영지군이랑 경비대 병력을 빌렸다?”

“어, 그거 말 되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밤의 형제단.

그들은 도박장의 관리인이자 조직 내 주요 간부 중 한 명이었던 페드로가 시장과 짜고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개새끼들... 시발, 다 엎어버리자!”

“그래, 이번 기회에 시장 그 새끼도 제끼고 우리가 카르셀을 먹는 거야!”

격한 회의 끝에 도달한 결론.

밤의 형제단은, 도시를 점령하기로 마음먹는다.

“자, 준비 끝났냐?!”

“예!!!”

밤의 형제단 내에서 테오릭 다음가는 위치를 지닌 조직의 2인자, 스베토자르.

그는 왕국의 최북단, 겨울 장벽 너머에 사는 야만족 바인야르의 핏줄이 섞였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한이었다.

그가 통나무처럼 두꺼운 목에 굵은 핏대를 세우며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오늘은 우리 밤의 형제단에게 있어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두목을 죽인 배신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고, 카르셀 시청 가장 높은 곳에 우리 형제단의 피로 물들인 깃발을 꽂을 것이다!”

“와아아아아!!!”

무려 오십여 명에 달하는 밤의 형제단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함성을 쏟아내자 낡은 고성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스베토자르의 표정엔 흥분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가슴 속에 쌓여왔던 그의 불만.

‘어째서 테오릭은 충분한 힘이 있으면서도 도시를 지배하려 하지 않는가?’

이미 오래전 카르셀을 지키는 영지군과 경비대의 주요 인물들을 포섭하는데 성공한 테오릭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허수아비 다름없는 시장을 몰아내고 도시를 손아귀에 쥘 수 있는 힘을 지녔던 그.

하지만 테오릭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않고 그저 수면 아래의 지배자로 남았다.

테오릭의 오른팔이자 밤의 형제단 제일의 무력을 지녔던 거한, 스베토자르는 그게 불만이었다.

‘두목은 너무 소심했어.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 꿈을 꿔야지!’

그리하여, 마침내 기회가 왔다.

조직의 일인자였던 테오릭의 죽음.

오랜 시간 그를 믿고 따랐던 최측근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 슬픔을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기대감이 치솟았다.

나는 테오릭과 다르다, 라는 생각이 지금 스베토자르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카르셀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두에게 똑똑히 가르쳐주자! 자, 가자아아아아아!!!”

“가자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스베토자르의 명령을 받은 밤의 형제단 조직원들의 성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나가는데...

“응?”

“저 새끼는 뭐야?”

활짝 열린 성문 밖, 카르셀 도심으로 향하는 길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

“어허, 문이 잠겼네.”

아드리안에게 혼자 가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치고 나온 길이었다.

그렇게 날 듯이 달려 밤의 형제단 놈들이 아지트로 쓰는 고성(古城) 앞에 도착했다.

한데 성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나의 신체 능력은 저런 자그마한 흙벽돌 성이 아니라 집채만 한 돌을 깎아서 쌓아 올린 대도시의 성벽이라도 해도 단번에 달려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

근데,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끼이이이이-

고막을 괴롭히는 소음과 함께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성문.

그 열린 문 너머에서 각자의 무기를 든 밤의 형제단 조직원들이 기세등등하게 달려 나오다 나를 보고 멈칫거린다.

이상하겠지.

수상할 거다.

처음 보는 어린놈이 지네들이 가야 할 길 가운데 떡 하고 버티고 서 있는 걸 봤으니 말이다.

“야이 새끼야! 칼 맞아 뒈지기 싫으면 당장 꺼져!!!”

개중에 지위가 좀 있는 듯한 사내 하나가 날이 넓게 만들어진 투박한 펄션 한 자루를 휘두르며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누가 범죄자 놈들 모아 놓은 조직 아니랄까 봐 처음 본 사람한테 대뜸 칼 맞아 뒈지기 싫으면 꺼지라는 폭언을 해댄다.

“...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옛말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다.

일단 나는 고운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휘웅- 휘웅- 휘웅-

나 역시, 곱지 않은 대답으로 화답했다.

아, 말로 한 게 아니니 대답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콰직!!!

내 손을 떠난 도끼가 꺼지라며 협박했던 사내의 이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틀어박혔다.

쩍,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갈라진 놈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고, 그것을 신호로 하여 나는 검을 뽑았다.

촤아아앙-!

“흐이익!”

“뭐, 뭐야! 저 새끼 뭐냐고!”

“아잇, 시발! 미, 밀지마 이 새끼야!”

귀를 쨍하게 만드는 호쾌한 발검 소리에 깜짝 놀란 밤의 형제단 조직원들이 온갖 수선을 피우며 걸음 뒤로 물러선다.

우스운 광경이었다.

물경 오십에 달하는 병력의 우위를 지니고도 한 사람의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을 치다니.

놈들이 잘 훈련된 정예 병력이 아닌, 그저 칼만 들고 있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너 이 개새끼야!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켁!!!”

쓸데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던 녀석 하나가 또 손도끼의 제물이 되었다.

이번엔 이마가 아니고 턱에 도끼를 꽂았다.

즉사는 하지 않겠다만 어차피 입과 턱이 쪼개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남은 생 편히 살기는 글렀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밤의 형제단인지 유랑단인지, 너희들 별별 나쁜 짓들 다 하고 살았다며?”

“...!”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이니, 뒈져도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자, 잠깐!!!”

잠깐 같은 소리하네.

파아아앙-!!!

나는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차고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날카로운 파공성을 터트리며 쏘아진 나의 몸.

열댓 걸음 이상 떨어져 있던 상대의 얼굴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온다.

하나, 둘, 셋, 넷... 허이구, 많기도 하다.

휘우우웅- 푸화아아악!!!

한 칼질에 다섯 놈의 목숨을 거둔다.

머리통이 솟구치고, 잘린 팔다리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잘 익은 과육을 베어내는 것처럼 저항 없이 적들의 몸을 파고든 검이 살과 뼈를 한 번에 갈라낸다.

촤아악!!!

시뻘건 피가 튀어 오른다.

“아아악!!!”

“씨발! 내 팔, 내 팔이-!!!”

끔찍한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진다.

눈 깜짝할 사이 펼쳐지는 인세의 지옥.

하지만 그 지옥의 창조자인 나는 놈들에게서 일말의 측은함도 느끼지 않는다.

인과(因果)가 너무나 명확한 죽음이었다.

놈들은 지금껏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고, 이제 죽음으로서 그 죗값을 치르는 것일 뿐이었다.

놈들의 비참한 죽음을 동정할 찰나의 순간마저 아껴, 나는 부지런히 검을 휘둘렀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 아아악!!!”

“이런 씨발! 저 새끼 뭔데? 뭐냐고!!!”

양 떼 한가운데 뛰어든 배고픈 사자처럼 나는 마음껏 날뛰었고, 그 결과 기세 좋게 성문을 나섰던 밤의 형제단 조직원들의 숫자는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콰직!

“끄르륵...!”

내 검을 피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끝끝내 목에 일검을 허용한 조직원 하나가 조직원 하나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쓰러진다.

철퍽!

어느새 흙길 한가운데 만들어진 피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은 그가 움직임을 멈춘다.

“허으윽... 히익!”

“사, 살려... 살려줘...!”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질린 눈을 한 조직원 몇 명이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놈들이지만, 그렇다고 놈들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퍼억! 뻑!

바닥에 엎드리고, 주저앉아 목숨을 구걸하는 녀석들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통렬한 일격을 선사해주었다.

검의 동선 위에 있으면 목을 쳤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비어 있는 왼손으로, 그마저도 아니면 발로 걷어차 응징했다.

나의 손과 발에 담긴 힘은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지 오래.

주먹에 맞은 놈이나 발에 걷어차인 놈이나 머리통이 터지고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괴... 괴물!!!”

“미친, 살려줘! 살려달라고오오오!!!”

내 검에 베여 쓰러지고, 손과 발에 맞아 죽은 이들의 숫자가 서른을 넘어섰다.

서 있는 자보다 바닥에 쓰러진 자가 더 많아진 상황.

그제야 부하들의 뒤편에 숨어 있던 놈들의 수괴(首魁), 밤의 형제단의 새로운 두목 스베토자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온 거냐! 오토 벨스, 그 새끼가 보냈나? 아니면 페드로 그 배신자가?!”

어마어마한 거구에 어울리는 큼지막한 전투 망치를 손에 든 스베토자르가 나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나를 때려죽일 듯 소리를 지르는 것과 별개로 놈의 행동은 침착하기만 했다.

눈앞에 부하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린 것을 보았으니, 긴장을 안 할 수가 없겠지.

그나저나, 어디서 왔냐고 물었으니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겠지.

“키르헨에서 왔다.”

“... 뭐?”

내 대답을 들은 스베토자르가 되물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답이 아니어서 당황한 모양.

하지만, 진짜 당황할 일은 지금부터다.

터벅, 터벅-

나는 스베토자르를 바라보며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 예상 밖의 행동에 크게 당황한 스베토자르가 주춤거리는 게 보인다.

“이런 씨... 이 개새끼가!”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어볼 생각이었나본데...

“나 할 일 많다. 바쁘니까 빨리 끝내자.”

“으으, 시발! 뒈져라 이 새끼야!!!”

후우우우우웅-!!!

놈의 머리 위로 솟구쳤던 전투 망치가 음산한 파공성과 함께 나를 향해 떨어진다.

사람이 아니라 곰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체구와 대단한 힘을 지닌 스베토자르.

그런 놈이 전력을 다해 내리친 공격이었다.

바위를 깨부수고, 벽을 무너뜨리는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그 거대한 전투 망치를...

터억!!!

“!?”

“... 뭣?!”

“저, 저게 뭐야?”

나는, 비어 있던 왼손을 들어 가볍게 잡아버렸다.

“이, 이이이익!!!”

내 손에 붙들린 전투 망치를 다시 빼내기 위해 용을 쓰는 스베토자르.

믿기 힘든 순간을 맞이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다음 동작을 가져가려 한 것은 충분히 칭찬할 만한 자세였다.

하지만...

“읏차.”

“허으으윽! 큭!!!”

망치의 머리 부분을 붙잡은 왼손에 한 차례 힘을 쓰자, 그대로 내 쪽을 향해 딸려오는 스베토자르.

나는 핏발 선 눈으로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다,

“흐읍-!!!”

쉬이잉- 푸화아아악!!!

그대로 검을 휘둘러, 놈의 몸을 두 조각으로 베어버렸다.

< 다닐렌츠 남부 평정전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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