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01화 (97/197)

< 탄탄대로 (1) >

다닐렌츠 남부 최대의 도시, 카르셀을 배후에서 지배하던 조직 ‘밤의 형제단’.

놈들은 영주가 직접 임명해 내려보낸 카르셀의 시장과 도시 방위군 사령관, 경비대장 등 주요 수뇌부들을 돈으로 부리며 도시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었다.

그렇게 수년간, 세상이 자신들의 것이라도 된다는 듯 함부로 설쳐대던 놈들.

그랬던 그들이, 단 하루 만에 카르셀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닐렌츠 영주로서의 정식 취임을 앞두고 영지 남부 지역 평정에 나선 내 손에 의해 조직의 수장인 테오릭을 포함한 조직원 대다수가 몰살당했기 때문이었다.

기사급 실력자를 여럿 보유했던 그들이지만, ‘고작’ 그 정도 전력으로 내 검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그동안 놈들에게 뒷돈을 받아먹으며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않았던 썩어빠진 자들을 모조리 쓸어냈다.

성질 같아선 그 자리에서 목을 쳐버리고 싶었지만,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오랜 세월 나보다 더한 분노를 참아온 카르셀 주민들을 위해서였다.

“죄인은 도시의 시장이라는 직분을 망각하고 범죄 조직들과 결탁하였으며...”

나는 그들을 며칠 동안 감옥에 가둬두었다가 도시 광장에 마련된 재판대 위로 올렸다.

재판의 결과는?

“... 하여, 죄인 오토 벨스 외 8명을 참수형(斬首刑)에 처한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시장이었던 오토 벨스를 포함해 밤의 형제단과 결탁했던 도시 수뇌부 전원이 카르셀의 모든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목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의 목을 치는 잔혹한 광경.

하지만 정치적으로 봤을 땐 분명 의미 있는 조치였다.

“데미언 공자님 봤어? 히야, 사람이 어찌 그렇게 생겼냐?”

“어어, 아주 금발에다가 피부도 새하얗고... 근데 또 몸은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것이, 아주 멋지시더구만!”

“근데 공자님이 혼자 밤의 형제단 놈들 싹 쓸어 버린 게 진짜야?”

“아잇, 그렇다니까? 내 친구가 시청에서 일하는데, 정말로 공자님께서 혼자 검 한 자루 들고 가서 싹 베어버렸대!”

“으와, 그게 가능한가?”

“어허이, 이 사람들. 지금 그게 중요한가? 공자님이 우리 카르셀을 좀 먹던 쓰레기들을 싹 쓸어버리셨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지!”

“암, 맞지! 내가 얼마 전에 일이 있어서 키르헨 다녀온 사람한테 들었는데, 공자님께서 오신 이후 영지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대!”

“이제 우리 다닐렌츠도 볕 들 날이 온 건가?”

“그렇지, 그 날이 온 거지!”

“어찌 되었건 데미언 공자님 만세다!!!”

“공자님 아니고, 이제 사실상 영주님 아니신가? 영주님이라고 불러!”

“그래, 영주님! 데미언 영주님 만세다!!!”

효과는 확실했다.

눈앞에서 ‘나쁜 놈’들의 목을 뎅겅뎅겅 날려버리는 광경은 그간 쌓여왔던 카르셀 주민들의 분노를 빠르게 가라앉혀 주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밤의 형제단을 홀로 쓸어버린 눈부신 무용담까지 더해지자 카르셀 주민들의 나에 대한 지지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마어마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한 나의 비장의 프로젝트, 카르셀 도박장이 개장했다.

***

신성력(神聖歷) 785년 10월,

남작령 다닐렌츠의 주도, 키르헨_

“영주님, 이번 달 카르셀 도박장의 매출이 올라왔습니다.”

넉 달 전, 공석이었던 영지 재무관 자리에 앉은 파스칼이 내가 사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음, 표정이 좋은데?”

“하하, 그렇습니까?”

내가 툭 던진 말에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파스칼.

그 반응이 나로 하여금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어디보자...”

파스칼에게 건네받은 서류의 내용을 살폈다.

눈에 확 뜨여질 만한 수준의 액수가, 그곳에 적혀 있었다.

“... 9월 순수익이, 2천 골드? 이거 맞아? 매출 아니고, 이런저런 비용 제하고 남은 돈이 이만큼이라는 거지?”

“하하, 예! 맞습니다!”

정확히는 2068골드 하고도 74실버.

순수익이 1천 골드를 살짝 넘은 수준이었던 개장 첫 달에 비해 무려 두 배가 증가한 수치였다.

“음, 좋네. 열심히 떠들고 다닌 효과가 확실히 보이는 거 같아.”

“예, 맞습니다. 홍보의 덕이 확실합니다. ”

파스칼이 말하는 홍보.

그 홍보를 위해, 나는 다닐렌츠 상단을 이용했다.

파스칼의 뒤를 이어 새로이 다닐렌츠 상단의 수장으로 취임한 이자벨.

그녀와 그녀가 이끌던 보크 상단의 합류로 우리 다닐렌츠 상단의 규모는 훨씬 더 커졌다.

다닐렌츠와 루테니아, 동쪽의 바렌부르크, 남쪽의 케른하임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방대한 영역을 무대로 활동하게 된 다닐렌츠 상단.

나는 그런 상단의 영향력을 십분 이용하여 새로 개장한 카르셀 도박장의 홍보에 이용했다.

“아, 혹시 그거 아세요? 카르셀에 이번에 아주 기가 막힌 도박장이 생긴 거?”

“아예 성을 통째로 도박장으로 꾸몄다고 하더라고요. 안에 들어가 있는 가구 장식들 가격만 해도 수백 골드는 된다죠?”

“거기 가면 음식에 술에... 그거 다 공짜로 준대요. 옆에서 악사들이 계속 음악도 연주하고, 직원들도 다 미인들만 있어서 아주 눈과 귀가 즐겁다던데?”

“다음에 시간 되시면 한 번... 아, 맞다. 근데 거기 입장료가 어마어마하대요. 진짜 부자들만 갈 수 있다나 봐.”

“거긴 한 판에 오가든 판돈 크기가 다르다던데요? 수십 골드는 예사고 한 번에 수백 골드가 오가는 큰 판도 있대요!”

나의 지시를 받은 다닐렌츠 상단의 직원들은 다른 영지 이곳저곳을 오가며 카르셀 도박장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다.

도박장이란 그저 음침하고 어둑한 분위기에 깡패와 거친 용병, 눈이 풀린 술주정뱅이와 도박쟁이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이 세상의 편견을 깨트려 버린, 완벽히 새로운 공간.

그 상상을 실체화한 것이 바로 내가 만든 카르셀의 고급 도박장 ‘다스 슐로스(das Schloss, 성)였고, 그 공간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영주님의 혜안에는 늘 놀랐지만, 이번에는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군요. 이 정도의 성공을 예상하셨습니까?”

“뭘 또 소름까지야...”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파스칼의 말에 괜히 민망해져서 코끝을 긁었다.

하지만 민망한 와중에도 할 말은 잊지 않고 전했다.

“페드로에게 전해. 슐로스에 한번 왔던 손님들, 신상 파악해서 직원들에게 얼굴과 이름 정확하게 외울 수 있도록 하라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도박에 그렇게 큰돈 턱턱 낼 만큼 사는 게 여유 있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 자기 알아봐 주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놈들의 취향, 그러니까 음식 뭘 좋아하고 무슨 술을 마시는지까지 파악하라고 전해.”

“예, 방금 말씀하신 내용까지 잊지 않고 전달하겠습니다.”

대답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페드로에게 전하려고 한 말을 들고 있던 작은 수첩에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파스칼이었다.

“최대한 빨리 보내. 돈 아낀다고 전서구 쓰지 말고, 전서응으로 쏴.”

“하하, 굳이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이미 영주님의 명령 하달에는 늘 전서응을 쓰고 있었습니다.”

“좋네. 그럼, 전할 내용은 이게 다 인가?”

“아, 하나가 더 있습니다. 여기...”

파스칼이 자신의 품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꺼내 내 집무실 책상에 살포치 내려놓는다.

“아휴, 서류 두꺼운 거 봐. 이건 또 뭔데?”

“지난번 월례 회의 때 말씀하셨던, 나움가르트 인구 증감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세르지오 서기관이 성당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저에게 대신 좀 영주님께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 그거. 어디 보자...”

나움가르트(Naumgart).

본디 다닐렌츠 영지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나움‘이라 불리었던 곳.

그러나 지금은 마을 근처에서 잇달아 발견된 광물 자원들로 인해 다닐렌츠 전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도시가 되었다.

처음엔 소금이 발견되었고, 그다음엔 철광석이 나왔다.

하나만 있어도 영지의 살림살이를 피게 해줄 어마어마한 가치의 자원이 둘씩이나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한 결과.

광부들과 상단 직원들, 또 그들의 가족들이 가장 먼저 작은 마을 나움에 발을 들였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자원의 보호를 위해 주도 키르헨에서 파견한 병사들과 용병들이 뒤이어 나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몰리니, 자연스럽게 그런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식당이 생기고, 술집이 생기고, 여관이 생겼다.

무기와 갑옷, 각종 도구를 파는 대장간, 과일을 파는 청과상, 여러 곡물을 파는 방앗간, 고기를 파는 정육점, 옷감을 파는 포목점과 만들어진 옷을 파는 의류점도 생겨났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상업 시설들 덕분에 생활의 수준은 더욱 윤택해졌고,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유입되는 인구수를 더욱 늘렸다.

그 결과...

“... 나움가르트 인구가 벌써 8천 명이 넘었어?”

“예, 이제는 카르셀보다도 더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됐습니다. 인구만 따진다면 얼마 전 2만 명을 돌파한 키르헨에 이은 다닐렌츠 제2의 도시입니다.”

“흐음, 인구가 늘어난 건 좋긴한데... 치안 관리가 걱정이군.”

“안 그래도 그 부분 관련해서 군무관이 관련 조치를 준비해서 따로 보고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좋군. 알겠어. 뭐 다른 건 없나?”

“예, 상단 수익 관련 보고는 이자벨이 직접 드릴 겁니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이 들어와도 될 것을... 알겠어. 이만 나가봐.”

“예, 영주님. 그럼...”

천천히 뒷걸음으로 물러나는 재무관 파스칼.

곧, 집무실을 밖으로 나간 그를 대신해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한 흑발에 조금은 까무잡잡한 피부,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여인.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다닐렌츠 상단의 수장 자리에 오른 이자벨이었다.

“어, 이자벨. 어떻게 볼 때마다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네?”

“호호, 진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걸요?”

“그럴 리가 있나. 이보다 더 진심일 수가 없는데? 하하!”

빈말이 아니었다.

4개월 전 처음 다닐렌츠에 왔을 때와 비교해 점점 미모에 물이 오르고 있는 이자벨이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서겠지.

콜티츠 상단과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며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았던 보크 상단 시절과 비교해 지금의 환경은 그야말로 천국일 테니까 말이다.

“영주님께서 잘 챙겨주신 덕분에 요즘 개인적으로도, 다닐렌츠 상단의 상단장으로서도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이제 내 사람인데, 당연히 챙겨줘야지.”

“저를 따라 다닐렌츠로 온 보크 상단의 직원들도 모두 영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럴 테지.

상단장인 이자벨을 포함해 다닐렌츠 상단 소속의 직원들이 받고 있는 대우는 그야말로 업계 최고 수준.

장담컨대 왕국 전체, 아니 대륙 전체를 뒤져보아도 우리 다닐렌츠 상단보다 직원들의 급료를 더 많이 챙겨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뿐인가, 나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선진화된 직원 복지 개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주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들, 예컨대 식사 비용 지원,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질병 휴가와 조퇴 제도, 야근 수당 지급 정도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아르닌 교단의 ‘성자(聖者)’처럼 대우했다.

‘... 안식년이나 안식월 제도 같은 것까지 도입하면 아주 신흥 종교 하나 생기겠네.’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에 홀로 미소를 짓다가, 눈앞에 이자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 상단의 매출 상황은 어떤가?”

“예, 영주님. 가져온 자료를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음, 그래.”

앞서 파스칼과 마찬가지로 이자벨 역시 들고 있던 한 무더기의 서류를 내게 보여주었다.

서류 위에 적혀 있는 무수히 많은 숫자들.

예전 같으면 눈이 핑핑 도는 광경이었겠으나, 이것도 계속 쳐다보니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어렵지 않게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

“매출이... 올랐군.”

“예, 영주님. 전달 대비해 2할 정도 성장했습니다.”

“케른하임 쪽으로 거래를 튼 덕분인가?”

내 질문을 들은 이자벨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영주님께서 열심히 노력해주신 덕분입니다.”

이자벨이 나에게 ‘덕분’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

다닐렌츠 남부에 접한 영지, 남작령 케른하임과의 소금 거래 협상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영주인 나였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늘 그러했듯, 소금은 관(官)의 영향력 아래에서만 유통되는 귀한 물품이었다.

하여 소금 거래에는 사는 쪽과 파는 쪽의 모두 해당 영지의 주인인 영주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아무래도 귀족들이 끼어 있는 일인지라 이런저런 복잡한 절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일련의 쓸데없는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케른하임의 영주에게 서신을 보내 소금 거래 협상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직접 협상장 자리에 나가 열과 성을 다한 영업으로 우리 쪽에 유리한 조건을 받아냈다.

귀족 신분으로 직접 ‘천한’ 장사치들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뒷말이 나오긴 했지만, 내게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니었다.

“다닐렌츠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소금처럼 중요한 물품의 거래 자리에 빠지면 쓰나.”

“호호, 역시 영주님께선 다른 고리타분한 귀족들과 달리 깨어있으신 분입니다.”

“깨어있긴 뭘. 그냥 돈 귀신이 붙은 거지. 자, 그래서... 우리 다닐렌츠 상단의 지난달 총 수익금은 얼마지?”

앞서 파스칼이 가져다준 카르셀 도박장의 지난달 순수익은 약 2천 골드였다.

다른 영지에서 들었다면 군침을 삼키며 부러워했을 막대한 수익.

하지만, 우리 다닐렌츠 영지 살림살이의 가장 큰 기둥인 상단의 수익금에 비하면, 그건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상단 운영에 필요한 여러 부대 비용을 제하고, 영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상단 시설 및 각 영지 지점 설치 비용 등의 투자 비용까지 뺀 우리 상단의 순수익은...”

새까만 흑발만큼이나 진한 검은색의 눈동자를 지닌 이자벨이, 나를 보며 미소짓는다.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 총, 1만8293골드입니다. 이번 한 달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영주님!”

< 탄탄대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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