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26화 (126/197)

< 대전사(代戰士) (4) >

‘안할트의 늑대’라 불리며 지난 십수 년간 왕국 북서부 최강의 기사로 군림했던 마티아스 괴츠.

그러나, 그 사나이의 전설은 바렌부르크 영지의 주도 엘스터 근방의 어느 숲속에서 쓸쓸히 끝을 맺었다.

“적장 마티아스가 죽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마티아스의 가슴에 직접 검을 박아넣어 자신의 오랜 악연을 끊어낸 기사 겔베르트 로이터.

다닐렌츠의 영주, 데미언 카릴베르크의 무력을 대행하는 대전사(代戰士), ‘챔피언’의 영예를 손에 쥔 그의 선언과 함께 다닐렌츠와 바렌부르크, 루테니아, 안할트까지 무려 북서부의 네 개 영지가 얽혀 싸웠던 일명 ‘소금 전쟁’은 다닐렌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전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무엇보다 왕국 북서부 지역 내에서 다닐렌츠 영지가 지니는 위상이 변했다.

원래도 영지의 크기만 보자면 어지간한 남작령 영지 두어 개를 붙여 놓은 수준으로 컸던 다닐렌츠.

허나 그 광활한 영토의 크기가 무색하게 경제력이나 군사력 모두 볼품없던 곳이다.

그랬던 다닐렌츠가 최근 몇 년간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 그저 달라졌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 극적인 변화였다.

그 변화에 반응한 것은 다닐렌츠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두 영지, 바렌부르크와 루테니아.

그들은 최근 몇 년간 가파르게 성장하는 다닐렌츠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고, 급기야는 함께 손을 잡고 다닐렌츠를 침공했다.

모두가 다닐렌츠의 패배를 예상한 전쟁.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다닐렌츠는 두 영지의 공격을 보기 좋게 막아내고, 역으로 그들의 땅으로 쳐들어가 정복전을 벌였다.

그 결과, 바렌부르크를 자신들의 영지로 병탄(倂呑)해버렸고, 루테니아는 사실상의 식민지로 만들면서 더는 자신들이 과거의 덩치만 큰 허깨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뿐인가, 바렌부르크 영지의 ‘뒷배’라고 할 수 있는 백작령 안할트가 보낸 지원군마저 보기 좋게 격파했다.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던 지역 내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혀 버린 거대한 변화에, 모두가 왕국 북서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

사실 다닐렌츠의 형편이 크게 나아져서 먹고 살 만하게 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 다닐렌츠가 그렇게 잘 나간다며?”

“엥? 다닐렌츠? 내가 아는 그 다닐렌츠 말하는 거야? 우리 사는 옆 동네?”

“어어, 맞아.”

“에이, 뭔 소리야? 거기 몬스터 들끓어서 사람 살 곳 못 된다는 거 몰라? 그래서 농사도 못 짓고, 그렇다고 변변찮은 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원래 살던 사람들도 짐 싸 가지고 맨날 다른 동네로 도망간다던데? 왜, 우리 마을에도 다닐렌츠에서 넘어온 사람이 몇인데...”

“참나, 이거 뭐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어? 다닐렌츠에 살던 몬스터들, 죄다 토벌당해서 지금 농사지을 땅이 넘쳐난대요, 이 사람아!”

“에엥? 그게 진짜야?”

“그럼 진짜지,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딴 걸로 뻥을 치겠냐?”

“와, 그게 진짜야?”

정보의 전달이 쉽지 않은 시대, 그저 사람과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이 이어져야 하는 환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 불러 마땅할 다닐렌츠의 변화상을 실감하는 건 기껏해야 그들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남동쪽의 루테니아, 북동쪽의 바렌부르크, 남서쪽의 케른하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왕국 북서부 지역을 넘어 왕국 북부와 중부 전역으로 과감하게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다닐렌츠 상단의 존재 덕분이었다.

다닐렌츠 상단은 영지 곳곳에 바글거리던 몬스터를 때려잡아 얻어낸 가죽 등의 각종 부산물과 그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되찾은 광대한 토지에서 쑥쑥 자라난 밀과 보리, 그리고 북부 나움가르트 광산에서 캐낸 암염을 다닐렌츠 주변 영지들에 공급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물론, 다닐렌츠 상단의 성장 과정이 마냥 순탄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존에 왕국 북서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상단들의 방해였다.

그들을 다닐렌츠 상단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지저분한 수를 썼다.

다닐렌츠 상단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퍼트리는 것은 예사였고, 자신들끼리 담합하여 시세를 조정하거나 영지의 유력자들에게 뇌물을 써서 공권력으로 방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수작이 다닐렌츠가 쏟아내는 막대한 물량 앞에선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밀과 보리 같은 곡식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몬스터 가죽의 경우 루테니아와 바렌부르크 영지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그 품질 자체가 말도 못 하게 좋았다.

“와, 이거 가죽 상태가 진짜 좋은데? 상처가 하나도 없네! 이거 어디서 온 물건이에요?”

“저희는 다닐렌츠에서 넘어왔습니다. 물건 진짜 좋죠?”

“다닐렌츠? 아니, 다닐렌츠 물건이 이리 좋았나? 참나, 내가 이 장사를 평생 했는데, 이렇게 상태 좋은 물건들은 처음 보네.”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근데 상태가 좋아서 가격이 좀 나가겠다. 어디 보자, 이거 가격이... 엥? 진짜 이 가격이에요?”

“아이, 그럼요. 대신 최소 구매 단위가 오십 장씩입니다. 저희가 물량이 많아서 싸게 드리는 거거든요.”

“이 품질의 가죽을 오십 장씩이나? 와아, 그 말 진짭니까? 그럼 내가 당장 사지! 이건 떼다 팔면 무조건 돈인데! 이거 얼마나 있어요? 내가 다 살게!”

“다 사신다고요? 그럼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돈이야 내가 걱정할 일이고, 딱 말해봐요. 이런 가죽 얼마나 더 있어요?”

“아이고, 저희 마차 안에 이 정도 물건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쪽으로 와보세요, 바로 보여 드릴게!”

이처럼, 다닐렌츠에서 생산되는 몬스터 가죽은 질과 양 모두에서 고객들을 만족하게 했다.

그 만족이 곧 돈으로 변하여 다닐렌츠 상단의 금고를 차곡차곡 채워준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바렌부르크와 루테니아로 하여금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던 귀하고도 귀한 자원, 소금의 경우엔 그보다 한술 더 떴다.

“뭐? 다닐렌츠에서 소금이 난다고?”

“진짜야? 너 이 새끼... 그냥 어디서 헛소문 들은 거 아니야?”

“아니, 정말이에요! 이거 얼마 전에 키르헨 다녀온 사람한테 들은 얘기라니까? 확실한 정보에요.”

“쓰읍,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일단 상단장님한테 보고하고, 바로 준비해서 움직이자. 소문 더 퍼져서 다른 놈들 꼬이면 우리 몫 없어져!”

왕국 내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왕국의 대표적인 소금 산지는 멀리 왕국 북동부 잘츠슈타인 영지의 암염 광산과 서쪽 끝 해안가에 자리한 튀링헨 백작령의 천일염전 정도였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엔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튀링헨 백작령과 그 봉신 영지 내에서만 자체적으로 소비할 뿐 외부로의 수출은 하지 않았다.

즉, 왕국 남부 지역처럼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수입하는 방법을 제외하고 왕국 내에서 유일하게 소금을 구할 방법은 왕국 북동부 잘츠슈타인 영지로 찾아가는 방법뿐이었다.

파는 곳은 한정되어 있는데, 찾는 이는 많은 상황.

공급과 수요의 지독한 불균형이 만들어낸 결과는 뻔했다.

“이런 미친... 소금 값이 또 올랐다고요?”

“예, 이번 분기에 광산에서 생산량이 좀 적었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난번 왔을 때랑 비교해서 마차당 가격이 5골드나 더 붙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면? 안 사실 거고? 그럼 뭐, 비켜요. 뒤에 손님들 기다리잖아.”

“아니... 그게, 안 산다는 말이 아니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나날이 치솟는 소금의 가격.

때문에 소금 장사는 어지간한 자금력이 없다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사업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더해, 잘츠슈타인과 지리적으로 먼 곳에 자리한 왕국 북서부 지역 상단의 경우엔 소금 구매에 쓰는 돈뿐만 아니라 오가는 길에 쓰는 상단의 운송경비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기에 그 금전적 위험도가 더욱 컸다.

물론, 그렇게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더라도 소금을 사서 가져오기만 하면 본전을 뽑을 수 있었으니 시도하는 것이겠지만...

여하간 이런 상황에서, 왕국의 들끓는 소금 수요를 감당해줄 다닐렌츠의 암염 광산이 발견되었다.

왕국 북서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장사를 하는 상단들의 입장에선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이보다 더 기쁘지 않았으리라.

“소금 광산이 다닐렌츠 어디에서 발견됐다고? 나움베르크? 거기가 어딘데?”

“나움베르크 아니고 나움가르트! 다닐렌츠 주도인 키르헨 지나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나오는 도시라는데?”

“뭐 하고 있어? 당장 출발이다! 상단에 노는 마차 죄다 끌고 와! 자금도 있는 대로 끌어오고!”

“듀론 상단 놈들도 어제 다닐렌츠로 소금 가지러 출발했다는데요? 우리는 안갑니까?”

“야이씨... 소금 실어 올 마차가 있어야 가지, 마차가! 하, 진짜 미치겠네! 다닐렌츠 새끼들은 왜 하필 이럴 때 소금 장사를 시작해가지고...”

“마차가 없어? 그럼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달구지라도 찾아와!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해! 안 그러면 늦는다고!”

다닐렌츠에서 발견된 소금 광산에서 본격적인 소금 판매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상단들은 주저 없이 마차를 끌고 영지의 경계를 넘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 다른 상단에게 자신의 몫을 뺏길까 두려워서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차를 달려 나움가르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이게 무슨...”

“소, 소... 소금 산이다!”

“미쳤다! 잘츠슈타인이랑은 비교도 안 되잖아?!”

그랬다.

나움가르트의 암염 광산에서 쏟아내는 소금의 양은, 그동안 왕국 내 소금 시장의 흐름을 꽉 잡고 있던 잘츠슈타인의 몇 배나 되는 수준이었다.

“와, 저게 뭐야? 이번 달 소금 시세? 저런 것도 있나?”

“이번 달 내내 소금 가격이 안 바뀐다고? 그럴 수가 있나?”

“미쳤다, 미쳤어!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소금은 처음 봐!”

“하하, 어서 오십시오, 나움가르트 소금 시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매, 소매에 상관없이 일회성 거래를 원하시면 이쪽으로, 장기 거래를 원하시면 저기 보이는 건물을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 건물이 뭡니까?”

“아, 이곳 나움가르트 암염 광산에서 생산되는 모든 소금은 오로지 다닐렌츠 상단을 통해서만 유통됩니다. 그리고 저 건물은 저희 상단 내 조직인 소금 영업관리부 건물이고요.”

“소... 소금 영업관리부?”

“예. 저기 가셔서 담당 직원과 소금 매매 계약을 체결하시면 조금 더 할인된 가격으로 소금을 구매하실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연(年)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

“지금 갑니다! 어이, 들었지? 빨리 움직이자고!”

“야잇! 뭐해?! 너도 빨리 뛰어!”

다닐렌츠의 소금 판매 방식은 몇몇 소금 상인들의 배짱 장사에 의해 운영되는 잘츠슈타인과 달랐다.

오로지 한 곳, 다닐렌츠 상단의 통제 아래 소금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폭리를 취하거나 별다른 예고도 없이 소금의 가격을 변동하는 일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나움가르트 암염 광산의 압도적인 소금 생산량 덕분이었다.

“이번 달 소금 판매 부분 매출이 지난달보다 2할 이상 성장했습니다.”

“음, 확인했어요. 잘 하고 있네. 계속 이렇게만 합니다.”

“예, 영주님.”

“이번 달에 소금 영업관리부 직원들과 암염 광산 광부들에게 성과금 명목으로 50실버씩 추가 지급하세요. 관련 보고서 만들어서 내일까지 내가 봤으면 좋겠는데.”

“옙, 내일 점심까지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

월말 보고를 위해 키르헨 영주 저택에 자리한 내 집무실로 찾아온 다닐렌츠 상단주 이자벨에게, 나는 기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 이제 슬슬 공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나움가르트 철광.”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표정을 짓는 이자벨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소금과 함께 우리 다닐렌츠의 백 년을 이끌어갈 그 사업, 이제 슬슬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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