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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27화 (127/197)

< 아이젠탈 (1) >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나움가르트의 북부에 자리한 암염 광산 개발 과정에서 철광맥(鐵鑛脈)이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했을 땐 그저 평범한 철광맥이겠거니 생각했다.

아, 물론 철광맥에 평범하다는 말을 붙이는 게 어폐가 있긴 했다.

이 시대의 철(鐵)이란 그 어떤 물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전략물자였으니까.

영지의 경계가 애매한 지역에서 작은 철광 하나라도 발견되면 해당 철광의 소유권을 두고 이웃한 영지 간에 그 즉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말하는 ‘평범한 철광맥’이란 발견된 광맥의 규모를 뜻하는 것.

모두가 이 철광맥의 발견을 두고 왕국 역사상 최대 규모라 불리는 나움가르트 암염 광산의 개발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온 작은 행운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당 철광맥의 규모가 이미 발견된 나움가르트의 암염 광산을 압도하게 되리라 예상한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다닐렌츠 영지의 지배자이자 광산 개발의 전권을 쥐고 있는 조직 다닐렌츠 상단의 주인인 나였다.

“다닐렌츠 상단장.”

“예, 영주님.”

“이번에 발견된 철광맥 광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세요. 예산은 얼마든지 써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재무관에겐 철광산 개발과 관련된 예산 편성의 경우 선(先) 조치 후(後) 보고를 허용합니다. 그만큼 이 사업이 원활하고 막힘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군무관.”

“예, 영주님.”

“군무관은 광산 개발 현장의 보안 유지를 위해 투입할 병력의 편성안을 준비하세요. 병력 지휘관 자리엔 무조건 기사급 전력을 투입합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암염 광산 개발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신중하고, 각별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적어도 2년간은 이 철광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이가 없어야 합니다. 보안 규정 위반자에 대해선 가차 없이 처벌합니다. 최소 징역, 최대 참수형에 처합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영주인 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다닐렌츠 상단의 광산 개발 부서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철광산 개발에 투입했다.

나움가르트의 암염 광산에서 캐낸 소금을 팔아 벌어들인 월 수익의 7할 정도가 철광산 개발 예산으로 매달 쓰이고 있다면 대충 감이 오겠는가?

“영주님, 아직 확실하지 않은 사업을 크게 벌이는 게 아닐지...”

땅속에 묻혀있는 철광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미친 듯이 돈을 쏟아붓는 것이 불안했던 것인지, 영지의 재무관 파스칼의 눈빛이 날로 퀭해졌다.

안 그대로 가파르게 성장 중인 영지의 사정 때문에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신경 쓸 곳이 너무나도 많은 그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파스칼에게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파스칼. 나중이 되면 지금 걱정했던 게 민망해지는 날이 올 테니까.”

“그럼 다행이겠지만...”

“참나, 속고만 살았나... 두고 봐, 파스칼. 광산 시설이 완성되는 날이 오면 철광에서 나오는 돈이 넘쳐 흘러서 주체가 안 될 지경이 될 테니까.”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내가 파스칼에게 약속했던 그 날이 왔다.

***

신성력(神聖歷) 768년 7월_

맴맴맴맴...

매미가 울고, 내리쬐는 햇살을 피할 나무 그늘이 절실해지는 계절.

여름이었다.

똑똑똑-

“영주님, 재무관이 알현을 청합니다.”

“그래, 들라하라.”

내 집무실 앞을 지키는 호위병의 굵직한 목소리에 대답을 건네자마자 문이 활짝 열린다.

“영주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더운 날씨 때문일까?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한 금테 안경의 사내, 파스칼이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껏 솟은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가져온 소식이 범상치 않은 내용임을 알 수 있었다.

“바, 방금 저한테 보고서가 올라왔사온데...”

“워워,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듣는 사람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네.”

“아, 예!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죄송하다고 말하며 손에 든 문서를 내게 공손히 내미는 파스칼.

슬쩍 문서의 제목을 보니, 맨 윗줄에 낯익은 이름이 쓰여 있다.

“... 아이젠탈, 드디어 첫 달 정산이 나온 건가?”

“예엣, 맞습니다!”

아이젠탈(das Eisental).

‘철(鐵)의 계곡’이라는 뜻으로, 2년 전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나움가르트 북부에 만든 철광산 산업 단지를 이르는 명칭이었다.

아이젠탈은 단순히 철광석을 캐내는 광산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고, 다시 그 철을 녹이고 두드려 강철을 만드는 대장간, 그 강철을 재료로 무기와 농기구 등의 각종 장비를 만드는 공방 등의 관련 시설들이 모두 갖춰진 장소였다.

무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의 눈으로부터 꼭꼭 숨겨 놓았던 곳.

우리는 바로 그 아이젠탈의 존재를 한 달 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고, 드디어 오늘 그 수확의 결실을 확인하게 됐다.

“후우우...”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내용에 가슴이 뛰어서, 진정하려 일부러 내쉰 한숨이었다.

“... 파스칼.”

“예, 영주님!”

“여기 쓰인 내용들, 모두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나의 물음에 신나서 대답하는 파스칼.

뒤이어 그가 미리 본 문서의 내용을 떠들기 시작한다.

“아이젠탈에서 생산해낸 철광석의 양이 왕국 최대의 철광이라 불리는 왕국 중부 메르크바인 광산의 생산량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철광석에서 뽑아내는 철의 추출 수율 역시 왕국 내에서 보고된 적이 없는 수준입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걱정하지 말랬지?”

나는 들고 있던 문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씨익 미소지었다.

어차피 생산량을 제외한 금전적 수익 부분은 첫 달이기에 의미 없는 자료들.

아이젠탈의 생산량이 단연 왕국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나머지는 더 볼 것도 없었다.

“아이젠탈의 생산력이 메르크바인 광산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이제 우리에게 줄 대려는 놈들이 넘쳐나겠군.”

“예, 맞습니다.”

“광산에서 나온 철쪼가리 한 장이라도 받아먹겠다는 놈들이 그득할 거야. 얼토당토않은 놈들은 알아서 재무관 선에서 잘라내. 나한테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예, 알겠습니다.”

“명색이 전략 자원인데, 소금처럼 돈 된다고 무조건 팔아먹을 수는 없지... 철저하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장사하자고.”

“그럼... 영주님께서 따로 생각하시는 자원 거래 상대가 있으신지요?”

“물론이지.”

파스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내가 책상 위 잉크병에 꽂혀있던 깃털 펜을 들어 아이젠탈 관련 문서의 빈자리에 몇 개의 이름을 적었다.

“음...”

내 손길을 지켜보는 파스칼의 눈이 반짝일 만큼, 하나같이 흥미로운 이름들이었다.

***

처음 다닐렌츠가 아이젠탈 광산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을 때, 그 소식을 접한 주변 영지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뭐? 다닐렌츠에서 철광이 발견돼?”

“이런 니미... 그 새끼들은 뭔 행운이 그렇게 한꺼번에 쏟아져? 암염 광산 하나만 해도 어마어마한 건데, 거기에 뭐? 철광? 처어얼과아아앙?”

“아, 어쩐지. 다닐렌츠 그 거지 같은 놈들이 대번에 루테니아랑 바렌부르크 집어먹는 게 이상하다 했지. 철광을 끼고 있으니 그게 가능했구나!”

“다닐렌츠 이 새끼들, 더 크기 전에 밟아줘야 하는 거 아냐? 안할트 영지 쪽이랑 얘기를 좀 해봐야겠는데?”

너무나 가파르게 성장 중인 다닐렌츠에 대한 질시와 경계.

경제적 압박이든 군사적 도발이든, 더 늦기 전에 다닐렌츠를 견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아이젠탈 광산의 첫 달 생산량이 공개되며 그러한 분위기를 금세 뒤집혔다.

“뭐? 아이젠인지 뭔지 하는 그 다닐렌츠 철광산의 생산량이... 메르크바인을 넘어섰다고? 그게 사실이야? ”

펠리노어 왕국 중부에 자리한 메르크바인(Merkbein) 광산은 왕국 최대 규모의 철광석 산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장장 백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쉬지 않고 철광석을 캐냈는데, 아직도 메르크바인은 왕국 제2의 철광석 산지라고 불리는 북부 라이에른 영지의 슈트람(Stramm) 광산 생산량의 두 배에 달하는 철광석을 쏟아내고 있었다.

한데 그 대단한 메르크바인 광산보다 더 많은 철광석을 쏟아낸다?

그 얘기인즉 다닐렌츠의 내부 수요를 넘어설 정도의 많은 철이 생산된다는 뜻이었고...

‘... 다닐렌츠 측과 얘기만 잘 되면, 남는 철을 수입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영지의 군사력과 농업 생산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략 자원인 철의 수급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각 영지의 수뇌부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다닐렌츠로 보낼 사신단 준비해! 다닐렌츠 영주가 좋아하는 선물, 뭐 있는지 빨리 알아봐!”

“크흠! 우리 영지가 다닐렌츠랑 과거에 척진 일이 있었나? 있으면, 바로 사과문 얹어서 사신단 보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

“군무관 발터 브라운, 재무관 파스칼 긴터, 행정관 세르지오... 이 중에 우리 영지랑 연줄이 있는 사람이 있나? 있으면 빨리 말해! 어서!”

“그... 이번에 ‘안할트의 늑대’를 잡은 기사가 용병 출신이라고 했지? 그때 이끌던 용병대 이름이 푸른 방패라고 했던가? 우리 영지랑 계약 한번 하지 않았었나? 그쪽으로 좀 줄을 대보는 건 어때?”

이처럼 여러 영지가 어떻게든 다닐렌츠와 이어질 명분과 인맥을 찾아 사방을 들쑤시는 동안, 누구보다 빠르게 다닐렌츠의 주도 키르헨으로 달려가는 한 떼의 인마가 있었다.

***

“드디어 다닐렌츠인가...”

지난 봄 벌어졌던 왕국 북서부 ‘소금 전쟁’의 패배로 사실상 다닐렌츠의 속국 신세가 되어버린 영지 루테니아를 지나 이제 막 다닐렌츠의 경계 안으로 들어선 사나이.

외르크 라인홀트(Jörg Reinhold).

그는 멀리 ‘왕국의 젖줄’이라 불리는 포나우 강 이남에 자리하고 있는 백작령 바이펠베르크(Weifelberg)를 대표하는 3인의 상급 기사 중 1인이자, 영지의 기병대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올라 있는 사내였다.

보통 외르크 정도 되는 거물급 인사가 백작령인 바이펠베르크보다 급이 떨어지는 남작령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다닐렌츠는 평범한 남작령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려 전략 자원인 철을 바이펠베르크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상대.

거기에 더해 다닐렌츠엔 바이펠베르크 백작의 핏줄인 ‘그녀’가 있기에, 여러모로 무게감 있는 인사를 외교 사절로 선정해 보낼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외르크는 현 다닐렌츠 영주인 데미언 카릴베르크 남작이 용병으로 활약하던 시절 공무로 그와 만난 인연이 있었다.

여러모로 사신단을 이끌기에 적합한 인재였던 것!

“일개 용병에서 작금 왕국 북서부를 뒤흔드는 땅의 영주가 된 사내라...”

4년 전, 바이펠베르크의 봉신 영지인 텔마르크 남부 지방을 어지럽히던 오우거 ‘치페른의 폭군’을 쓰러뜨렸던 금발의 어린 용병.

그때 그 용병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릴 생각을 하니, 어딘지 마음이 이상해지는 외르크였다.

“그때도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일지... 후, 기대되는군.”

검을 든 한 명의 기사로서 느끼는 묘한 기대감에, 외르크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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