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겠습니다 (2)
콰앙! 쾅! 콰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왕성 지하에 마련된 커다란 공동.
바로 그곳에 왕실 근위대 전용 연무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 임무의 특성상 전력 기밀 유지가 필요한 왕실 근위대의 특성을 고려해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지하에 연무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왕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장인어른과 검격을 나누게 된 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조건이었다.
왜냐고?
“하아아아아앗!!!”
콰아아아앙!!!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대로 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가겠습니다, 아버님!!!”
카아아아앙!!!
하지만, 작정하고 내려진 나의 공격을 너무나 가볍게 받아내는 장인어른.
노익장(老益壯)이라는 표현으로는 감히 담아낼 수 없는, 압도적인 저력이 장인어른의 검 끝에서 느껴졌다.
“자, 받아보시게! 흐아압!!!”
슈아아앙-!!!
그뢰네마이어 가문의 비전이라 할 섬전(閃電) 같은 찌르기 공격.
장인어른의 검이 단숨에 내 몸을 꿰뚫어버릴 듯 뻗어진다.
“크흐읏!!!”
그 번개 같은 찌르기를 막아내기 위해 나는 용을 쓰며 바닥으로 밀려났던 검을 끌어올렸다.
카아아앙!!!
서로 부딪힌 두 자루의 검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고, 손목이 으스러질 듯한 충격이 뒤따른다.
“흐읍!!!”
속을 진탕시키는 충격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주저 없이 다음 공격을 위해 몸을 던진다.
아래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신없이 오가는 공방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장인어른의 얼굴엔 분명히 ‘기쁨’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하! 좋구나, 좋아! 아주 제법이구나-!”
콰아아앙!!! 쾅!!!
***
“허어...”
펠리노어 왕실 근위대장의 부관, 카르스텐 바익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존경하는 상관, 왕실 근위대장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와 그의 사위인 다닐렌츠 남작 데미언 카릴베르크의 진검 대련.
처음 다닐렌츠 남작이 근위대장에게 대련을 청했을 땐, ‘그럭저럭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실력이야 당연히 근위대장이 압도적일 테지만, 다닐렌츠 남작의 실력 또한 괜찮은 수준이라 들었으니 장인이 적당히 사위의 검을 받아주다 종내에는 한 수 가르침을 내려주는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겠지.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이게 어떻게 이런...”
두 사람의 대결은, 카르스텐의 예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 대장님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기사가 있었단 말인가?”
지난 십수 년간 왕국 최강의 검으로 군림했던 왕실 근위대장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
그를 넘어서긴커녕 비슷한 수준의 기사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한데, 이제 겨우 나이 스물셋이 된 그의 젊은 사위가 오랜 세월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장인어른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었다.
콰아앙!!! 콰앙! 쾅!!!
지축(地軸)이 뒤흔들린다.
저러다가 왕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
하지만 디트리히와 데미언, 두 사람 모두 지하 연무장의 천정을 떠받치는 기둥을 절묘하게 피해가며 공전절후한 대결을 이어가고 있었다.
“바익스 경, 이... 이런 싸움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카르스텐의 곁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함께 지켜보고 있던 아이린이 말을 더듬으며 묻는다.
자신의 남편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기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사실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아이린으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는 결과.
‘오빠가 강하다는 건 알았는데... 그게 아버지와 검을 겨룰 정도라니?!’
그녀에게 있어 아버지는 세상이 멸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끝끝내 쓰러지지 않을 사람이었다.
검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의 끝에 이른 사람.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강함의 극에 도달한 사람.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기사의 마음으로 바라본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에 대한 아이린의 감상이었다.
‘아버지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남편이 그걸 해내고 있었다.
“정말... 정말이지 대단한 부군(夫君)을 두셨습니다. 근위대장님의 검을 저리 당당하게 받아내는 기사는 맹세코 처음입니다.”
아이린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대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카르스텐의 허탈한 목소리.
자신과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다닐렌츠 남작이 저토록 강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그였다.
“... 저도, 제 남편이 저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뿌듯함과 묘한 흥분이 뒤섞인 목소리로 대답한 아이린이, 다시금 두 사람의 대결에 집중했다.
디트리히의 딸이자, 데미언의 아내였고, 한 사람의 기사로서 놓칠 수 없는 대결이었으니까.
***
나와 장인어른의 대결을 바라보는 아이린과 카르스텐의 놀라움이 점점 더 커져가던 그 순간,
‘으아, 미치겠다 정말!’
나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검이 생각보다도 훨씬 매섭고, 강맹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좋구나, 정말 좋아!”
슈아아아앙-
“흐윽!”
콰아앙!!!
옆구리를 단번에 갈라버릴 기세로 휘둘러진 장인어른의 검을 간신히 막아낸 후 그대로 옆으로 굴러 서 있던 자리를 벗어났다.
뒤이어질 후속 공격에 대비해 몸을 피했던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카카카캉!!!
우리 네 차례나 되는 공격이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연이어 쏟아지며 연무장 돌바닥 위에 날카로운 상흔을 남겼다.
“잘 피했군, 좋은 움직임이야. 예측한 건가? 하하하!”
자신의 검이 소득 없이 바닥을 때렸건만, 오히려 그 결과가 더욱 기껍다는 듯 웃음을 짓는 장인어른.
사위인 나의 실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분이 무척 좋아지신 듯싶었다.
아주 대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장인어른.
그 순간, 나의 눈앞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상태창.
『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 / Lv. 97
소속: 펠리노어 왕국, 백작령(伯爵領) 바이펠베르크
클래스: 기사
고유 특성:
- 왕국제일검
- 벽안무적(碧眼無敵) 』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기 전에도 미리 살펴본 바 있었지만, 장인어른의 능력치는 과연 왕국 최강의 기사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레벨 97이라니,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6년 전, 나에게 처절한 패배의 쓴맛을 가르쳐주었던 ‘바덴하임의 사자’ 에리히 프라이슬러의 레벨이 88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인어른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 충분히 붙어볼 만해.’
현재 나의 레벨은 89.
다른 이들과 달리 흡수한 여러 히든 피스들의 도움을 받아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오르고도 꾸준히 레벨의 상승을 이뤄온 나였다.
뿐인가, 나는 왕국 역사상 최강의 검사라는 ‘검성(劍聖)’ 울리히 리히테나워(Ulrich Liechtenauer)의 진전을 이은 사람.
레벨의 차이가 다소 나더라도 배우고 익힌 검술의 위력을 앞세워 그 간극을 메워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아, 다시 가네. 이번엔 쉽지 않을 거야!”
“...!!!”
나의 장인어른, 왕실 근위대장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는 정말로 괴물 같은 사람이었다.
쉬잉!!! 쉬이잉! 슈아아악!!!
한여름날 몰려오는 태풍이 이보다 더 거칠고 무서울까?
장담컨대, 지금 장인어른이 내게 펼치는 공격에 비하면 태풍따윈 봄날에 부는 산들바람 정도에 불과할 거다.
“흐으읏!!!”
카캉! 캉! 카아앙!!! 카카캉!
온 정신을 집중해 내 목과 가슴, 옆구리, 허벅지를 노리고 쏘아져 오는 장인어른의 공격을 막았다.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손목이 부러지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흐아아아앗!!!”
쉬이이이잉-!
나는 끝끝내 그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더 나아가 반격을 펼쳤다.
뒤로 밀려나던 몸을 바로 하고, 크게 발을 내디디며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
순간적인 빈틈을 찾아 뱀처럼 휘어 들어간 검이 장인어른의 왼쪽 쇄골 부근으로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카아아아아아아앙-!
막혔다.
이번에도 장인어른은 기괴막측한 움직임으로 검을 움직여 나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막아냈다.
“끄으으...”
“끄응, 대단하군... 자네.”
검과 검을 사이에 두고 장인어른과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
다른 이들이 볼 때는 그저 검을 마주 댄 채로 가만있는 듯 보이지만, 지금 우리 두 사람은 가진 모든 힘을 짜내어 검에 밀어 넣고 있는 상황.
관자놀이에 굵은 핏줄이 툭툭 올라오고, 검을 쥔 손과 팔, 어깨, 아니 전신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과연... 대단... 하십니... 다, 장인어른!”
“... 이제야... 우리 사위가... 이리 대단하단 걸... 알겠군... 늦게 알아, 미안하네... 끄응!”
장인어른이나 나나,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몇 시간을 싸워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이미 호승심이란 불이 붙어버렸기에 검을 멈추지 않고 계속 휘두르고 있었을 뿐이다.
“후으으...”
이대로 가다간 밤새도록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들고 있던 검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마치 거짓말처럼 내 검을 찍어누르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고, 장인어른. 그렇게까지 사위를 이기고 싶으셨습니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겨우겨우 표정 관리를 하며 검을 회수했다.
뒤이어 장인어른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졌습니다. 정말이지 많이 배웠습니다. 존경합니다, 장인어른.”
“아니, 오히려 내가 배웠지. 이 정도로 나를 몰아붙인 상대와 검을 겨룬 게 얼마만인지... 감개가 무량하군.”
그저 나한테 듣기 좋으라고 해준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장인어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얼굴.
드디어 자신의 수준에 필적하는 검사가 나타났는데, 그 검사가 자신의 딸과 결혼한 사위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쁘고 뿌듯한 모양이었다.
“최근 몇 년간 왕국 북서부에서 들려온 자네에 관한 소문들... 거진 다 과장된 얘기들이라고 생각했네.”
“...”
“아, 사위를 무시한 것이 아니네. 그저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직은 어린 자네의 나이와 부족한 경력을 생각하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들뿐이었거든.”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한데, 오늘 이렇게 검을 겨루어 보니 알겠군. 자네는... 하하,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그게, 그러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시는 건지, 한참을 주저하던 장인어른이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자네는, 이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의 사위가 되기에 충분한 사내야. 이 말을 해주고 싶었네. 하하하!”
이 순간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을 해주는 장인어른.
“... 감사합니다!”
그 말 속에 담긴 따뜻함이 여실히 느껴져서, 나는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
펠리노어 왕국의 38대 국왕, 하인리히 4세의 장례식은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문제없이 잘 치러졌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왕의 봉신(封臣) 귀족들이 슬픈 얼굴로 말 없는 옛 주군의 관에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들 모두 아비의 죽음 앞에 슬피 우는 어린 소년, 요제프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지금껏 지켜온 왕실에 대한 충정을 변함없이 이어가리라 맹세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맹세가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 밝혀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