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44화 (144/197)

변절자들 (2)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를 잡아다 신나게 단도리(?)를 치려던 왕국의 군무대신 트리틴 알트마이어의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도수비군 기병대 병력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내가 있는 다닐렌츠 상단 카를리온 지부로 들이닥친 트리틴.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갑작스러운 기병대의 방문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상단 직원들의 모습뿐이었다.

“어... 어디서 오셨습니까?”

“왕도수비군? 저거 왕도수비군 깃발 아냐?”

“아니... 갑자기 왕도수비군이 여긴 왜...?”

마차에 짐을 싣다 깜짝 놀란 상단 직원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한편, 갑옷까지 차려입고 행차한 트리틴의 얼굴은 낭패감으로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지부 건물 어디에도 그가 찾는 다닐렌츠 영지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분명 보고서에는 다닐렌츠 남작이 아직 왕도에 남아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 분명... 저도 그렇게 들었는데...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근데! 병력은 어디 있나? 다닐렌츠 영지군 오십 명, 여기 아직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 그게...!”

일그러진 트리틴의 얼굴을 마주한 왕도수비군 지휘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그때,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상단은 이렇게 함부로 사전 약속 없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

우리 상단 지부 근처에 정체 모를 감시자들이 얼쩡거린다는 사실은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급 기사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내가 그까짓 첩자 놈들의 움직임 따위를 놓칠 리가 있겠는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 첩자 놈들을 잡아 족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왕도 곳곳에서 활동 중인 우리 다닐렌츠 영지군 정보부 소속의 요원들을 동원해 놈들의 뒤를 밟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 왕국 군무부에서 나온 놈들이라고?”

“예. 몇 단계를 거쳐서 올라가 보니, 군무대신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군무대신이라...”

부하들이 알아낸 것은 딱 거기까지였지만, 나는 그 이상을 알 수 있었다.

‘... 이거, 대공파 놈들이 수작을 부리는 거네.’

원작 소설 <로스트 킹덤>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는 군무대신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 일이 베겐스바흐 대공과 연관되어 있음을 눈치챘다.

‘선왕의 장례식과 현 국왕 요제프 3세의 대관식 참석을 위해 모였던 봉신 귀족들의 병력을 왕도에서 싹 치워버리려는 심산이겠지. 그래야 놈들이 왕도에서 일을 벌이기가 수월할 테니.’

대공파 놈들이 원하는 게 뭔지 훤히 알고 있는 나이기에 이런 추론이 가능했다.

“군무대신 이 자식... 아주 노골적이네?”

나는 그가 왕실을 배신하고 대공 쪽에 붙은 변절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불어, 놈은 나의 장인어른이신 바이펠베르크 백작과 ‘견원지간’이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인물이지만, 이래저래 나랑 원수진 일이 많아진 군무대신이다.

“... 이렇게 먼저 시비를 걸어주셨는데, 순순히 물러나면 또 예의가 아니지.”

그날부터 나는 군무대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을 팠다.

다닐렌츠에서 데려온 영지군 병력을 줄줄이 매달고 보란 듯이 왕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이다.

내 뒤에 붙은 대공파의 끄나풀들을 속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의 눈엔 내가 군무대신이 내린 명령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 작전은 보기 좋게 먹혀들어, 결국 군무대신은 우리 상단 지부로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심지어...

“허, 기병을 데리고 왔네?”

군무대신이 끌고 온 병력은 그냥 보병도 아니고, 덩치가 집채만 한 군마를 탄 기병들이었다.

슬쩍 봐도 기병의 숫자가 서른 기 이상 되어 보인다.

‘군무대신 이 새끼, 아주 제대로 싸워볼 작정으로 온 모양인데?’

보병 서른 명과 기병 서른 기는 숫자는 같지만, 그 전력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냉병기 시대의 군마(軍馬)란 현대 시대의 탱크나 다름없는 존재.

그리고 그런 군마에 올라타 창검을 휘두르는 기병은 평범한 보병과는 비교 불가한 고급 전투 인력이었다.

그런 강력한 전력이 떼거리로 몰려왔으니,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평범한 상단 직원들의 입장에선 얼마나 무섭고 두렵겠는가?

“어,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

가까이에 있던 우리 상단 직원 하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지부 앞마당으로 들이닥친 기병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뭔가 잘못되었다는 얼굴로 씩씩대며 사방을 둘러볼 뿐이었다.

‘우리 영지군 병사들이 보이질 않으니 당황했겠지.’

놈들이 생각했던 건 이런 그림이 아니었으리라.

우리 상단 지부 앞마당에 다닐렌츠 영지군 병력이 집결해 있고, 그런 그들에게 ‘왕명을 어긴 죄를 묻겠다!’ 따위의 대사를 치며 소란을 피우려 했겠지.

‘이후엔 그 문제로 장인 어른까지 걸고 넘어지려 했을 것이고...’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곡식과 소금, 그밖에 이런저런 판매 물품을 상단 마차에 싣고 있는 순진한 얼굴을 상단 직원들뿐이었으니.

그가 찾는 다닐렌츠 영지군 병력은 이미 며칠 전 상단 직원으로 위장해 왕도를 빠져나간 뒤였다.

“이게 어떻게 된... 분명 보고서에는 다닐렌츠 남작이 아직 왕도에 남아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 분명... 저도 그렇게 들었는데...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근데! 병력은 어디 있나? 다닐렌츠 영지군 오십 명, 여기 아직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 그게...!”

일그러진 얼굴로 휘하 지휘관을 추궁 중인 군무대신, 트리틴 알트마이어 남작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네가 우리 장인어른한테 그렇게 지랄한다는 그놈이구나?

더불어 나이 어린 국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숙부란 놈을 그 자리에 밀어 올리려는 변절자 놈들의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지.

놈의 얼굴을 확인한 후, 나는 직원들과 함께 마차에 싣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향해 걸어나가며 닫혀 있던 입술을 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상단은 이렇게 함부로 사전 약속 없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누구냐! 어딜 함부로 다가오는 것이냐!”

직원들과 똑같은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일하고 있던 내가 입을 열자, 옆에 있던 기병대 장교 하나가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왔다.

제 딴에는 군무대신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주려 나선 것 같았는데, 나도 전생에 직장인으로 살며 상사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이라 그 마음이 이해는 갔다.

하지만 이해가 간다는 뜻이지, 용서를 해주겠다는 얘기는 아니지.

속마음이 그렇다 보니, 말투가 절로 퉁명스럽게 나갔다.

“함부로 다가온다라... 그건 우리 쪽에서 해야 할 말인 것 같소만? 애초에 약속도 없이 우르르 몰려온 것은 그쪽이 아닙니까?”

“이, 이놈이!?”

내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태연하게 대꾸하자 당황한 눈빛이 된 기병 장교.

하지만 곧바로 기세를 회복한 그가 목청을 높였다.

“이런 건방진 놈! 이 분이 누구신 줄 알고 그따위로 떠드는 것이냐! 죽고 싶은 게냐?”

마치 면전에서 제 부모의 욕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까지 붉히고 길길이 날뛰는 기병 장교.

하지만 나는 상대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 뒤에 계신 분, 왕국의 군무대신 트리틴 알트마이어 남작님 아니십니까?”

“아니, 그...!”

내가 너무나 당당하게 대답하자 기병 장교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가 누군지 알고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나의 모습에 놀란 것이겠지.

고작 상단 직원 따위가 왕국의 대신이 이끌고 온 기병 장교에게 따박따박 말대꾸?

뭐 대충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이, 이... 이 건방진 놈이!!!”

선불 맞은 멧돼지 같은 면상을 한 기병 장교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는다.

나 같았으면 ‘어, 이 새끼... 태도가 더럽게 당당하네? 혹시 귀족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눈앞의 멧돼지는 그 정도로 영리한 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걸 아는 놈이 감히! 왕국의 군무대신 각하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는 것이냐?”

눈앞의 멧돼지... 아니, 기병 장교는 뒤에 있는 군무대신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려 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턱! 저벅저벅-

말에서 내리더니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손엔 말채찍까지 들고서 말이지.

설마 저걸 나한테 휘두르려는 건가?

“어디 일개 상단 직원 따위가 왕국의 군무대신 각하 앞에서 오만하게 구느냐? 내 너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

쐐에에에에엑!!!

호통과 동시에 내가 뻗어져 날아오는 말채찍.

일반 기병도 아니고 장교씩이나 되는 이가 휘두르는 채찍이라 그런지 날아오는 궤적이며 담긴 기운이 장난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 맞는다면 아마도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점이 찢겨나가고, 골수에 사무칠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겠지.

그 얘기인즉,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 상단 직원 중 하나가 이 무식한 멧돼지의 채찍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이런 미친 멧돼지 새끼가? 아주 사람 죽으라고 채찍을 휘두르네?’

그 사실이, 앞으로 닥쳐올 놈의 미래를 결정했다.

촤악!!!

“아닛!?”

거의 사람을 쪼개놓을 기세로 힘차게 뻗어진 기병 장교의 말채찍.

하지만 나는 왼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려 가볍게 그 채찍을 잡아챘다.

마치 팔랑이며 떨어지는 새의 깃털을 잡아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오오오오!!!”

“역시 우리 영주님이시다!”

“다닐렌츠의 대영웅!”

그러자 그 광경을 본 주변의 상단 직원들이 저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쳤다.

그동안 말만 들었지 실제로는 목격한 적 없던 영주의 드높은 경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크게 감격한 얼굴이었다.

한편, 상단 직원들이 소리친 말을 들은 군무대신과 그의 부하들은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 영주?”

“저 어린 상단 직원 놈이 다닐렌츠 영주라고?”

군무대신인 트리틴은 물론이고, 그가 데려온 왕도수비군 기병대 역시 내 얼굴을 몰랐다.

대충 어디서 듣기는 했겠지.

다닐렌츠 영주는 금발에, 녹안을 지녔으며, 키가 크고 잘 생긴...

뭐, 어쨌든 대강의 인상착의는 알고 있었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명색이 귀족의 신분을 지닌 그 다닐렌츠 영주가 상단 마당에 나와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싸구려 첫옷을 입고 직원들과 함께 물품 상하차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아니, 잠깐... 머, 멈춰라! 아니, 멈추시오! 다닐렌츠 남작!!!”

불길함을 느낀 군무대신 트리틴이 기병 장교가 휘두른 채찍의 끝을 붙잡고 있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처음엔 반말로 외치다 나의 정체를 깨닫고 급히 존대로 바꾸는 것이 아주 눈물겨웠다.

하지만,

“그 얘긴 이 자식이 채찍을 휘두르기 전에 하셨어야지!”

이미 늦었다.

파아아아아앙!!!

바닥을 힘차게 박찬 내 몸은 이미 채찍을 휘두른 놈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어흐윽!!!”

자신이 휘두른 채찍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나의 모습에 잔뜩 겁에 질린 기병 장교.

손에 잡고 있던 채찍까지 집어던진 채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려 했지만...

휘이이이이잉- 철썩!!!

“꿰엑!!!”

날아온 기세 그대로 휘두른 나의 오른손에 뺨을 얻어맞고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린다.

철퍼덕!

정신을 잃은 멧돼지가 바닥으로 처박힌다.

손바닥으로 뺨을 쳤을 뿐이지만, 맞는 순간 얼굴의 절반이 으스러지고, 동시에 목뼈가 부서졌다.

한 마디로, 즉사였다.

“허윽!”

“하, 하, 한방에?”

“아니, 저게 어떻게...”

히이이이잉!!!

뺨 한 방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나의 괴력에 기겁한 사람과 말이 동시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선다.

모두의 떨리는 눈이 얼굴 반쪽이 으스러진 채 바닥에 처박힌 기병 장교의 시신으로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옮겨진다.

일개 기병 장교 따위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귀족을 선제공격했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 벌어질 정치적 파장.

모두가 이 사건이 불러올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숨 막히는 장내의 기류를 읽은 내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 왕도수비군의 기병 장교가 무작정 쳐들어와 정당한 사유도 없이 왕국의 봉신 귀족에게 살수를 펼쳤다? 이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 그게... 다닐렌츠 남작, 내가 다 설명하겠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진땀을 흘리며 나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군무대신 트리틴 알트마이어.

그런 그에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변명은 필요 없다.”

“...?!”

차갑게 웃은 내가 천천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맞다 보면, 알아서 잘못을 불게 될 테니까.”

“아, 아니!!!”

파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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