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45화 (145/197)

변절자들 (3)

“뭐? 우리 사위가 뭘 했다고?”

펠리노어 왕성 내부에 자리한 왕실근위대장의 집무실.

부관인 카르스텐 바익스가 전한 소식을 들은 왕실근위대장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예, 대장님. 그... 다닐렌츠 남작이 군무대신인 트리틴 알트마이어 남작을...”

“두들겨 팼다?”

“예.”

“허어...”

디트리히가 앉아 있던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댄다.

한숨을 내쉬는 그 짧은 순간 동안 푸른 눈을 지닌 중년 사내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한다.

이 일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대체 왜 군무대신과 우리 사위가 시비가 붙었던 건가? 아예 마주칠 일이 없는 사이일텐데...”

“아, 예!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존경하는 상관에 물음에 침착한 말투로 대답하는 카르스텐.

그리고 잠시 후,

“하하하하하하하하!!!”

자신의 집무실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리는 디트리히.

“그래, 우리 사위가 얼마나 영특한 사람인데! 별 이유도 없이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일 리가 없지!”

그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걸린다.

카르스텐이 전한 사건의 정황을 들어보니 자신의 사위는 잘못한 것이 없어 보였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군무대신과 그의 부하들이 먼저 사위를 공격했고, 사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방어행위’를 했을 뿐.

사망자가 한 명 나왔다지만 얘길 들어보니 죽어도 싼 짓을 한 놈이었다.

감히 귀족의 면전에서 모욕을 주고 채찍을 휘두르다니?!

기병이 쓰는 말채찍이 얼마나 살벌한 물건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디트리히로선 그의 죽음이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대체 군무대신은 왜 왕도수비군 병력을 이끌고 다닐렌츠 상단으로 간 건가? 그리 간 이유가 뭐야?”

“제가 알아본 바로는 다닐렌츠 남작이 왕도 내에 머무는 봉신 영주들의 병력을 소개하라는 군무부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

카르스텐의 설명을 들은 디트리히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왕도 내 병력 소개령(疏開令).

얼마 전 군무대신의 이름으로 왕도에 포고된 명령이었다.

왕국 각지에서 몰려든 봉신 영주의 병력들이 왕도에 머물며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으니, 서둘러 각자의 영지로 돌려보내라는 지시.

그 내용 자체만 보았을 땐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는 명령이었고, 각기 따르는 정치적 파벌 수장들 또한 그리 하라고 일렀기에 왕도에 모였던 봉신 영주들은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갔다.

딱 한 사람,

다닐렌츠 영주 데미언 카릴베르크만 빼고.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내가 며칠 전에 사위한테 얘기를 한 적이 있었지. 언제 다닐렌츠로 돌아갈 거냐고 말이야.”

“아,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랬나? 그럼 그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도 들었겠군.”

“예, 대장님께서 왕도에 오래 머물다가 괜한 오해를 사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고, 남작은 ‘때가 되면 움직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하셨죠.”

“그래. 나는 그 ‘때가 되면 움직이겠다’는 말이 뭔 소리가 하면서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거니 생각했지.”

톡톡, 앉아 있던 책상 팔걸이 끝을 손가락 끝으로 두들기며 디트리히가 말을 이었다.

“... 그걸로 함정을 팔 줄이야.”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군무대신이 남작이 머무는 상단 건물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닐렌츠 영지군은 모두 떠나고 없었답니다.”

“대체 어느 틈에? 아니, 그보단 군무대신 측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대비했다는 게 더 놀랍군.”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이 된 디트리히.

다른 이들과 달리 군무대신이 대공파로 갈아탄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던 그였다.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물인데, 그런 작자에게 자신의 사위가 제대로 한 방을 먹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그의 얼굴이 사위 자랑에 신이 난 장인의 그것으로 변한다.

“카르스텐.”

“예, 대장님.”

“우리 사위,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그 어린 나이에 말이야, 검사로서의 기량은 이 장인이랑 맞먹을 정도이고, 심계 또한 대단해. 하하하! 내가 정말 사위 하나는 잘 둔 것 같아!”

“아, 옛!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그저 ‘딸랑이(?)’ 발언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회생활 만렙, 카르스텐이었다.

***

군무대신 트리틴 알트마이어 남작이 왕도 한복판에서 개 맞듯 얻어터졌다는 소식은 빠르게 왕도 내에 퍼졌다.

더불어 군무대신이 어째서 얻어맞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도 널리 알려졌다.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 퍼져나간 소문의 내용 기이할 정도로 자세하게 전해졌다는 점이었다.

“군무대신이 병력 소개령 불복종을 이유로 다닐렌츠 남작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뒈지게 처맞았다던데?”

“공격? 공격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군무대신이 끌고 간 왕도수비군 기병대 한 놈이 남작 면상을 향해 냅다 말채찍을 휘둘렀다더구만.”

“에엥?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무슨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떻게 군인 나부랭이가 귀족한테 채찍을 휘두르나?”

“그러니까 미친 거지. 심지어 다닐렌츠 남작이 병력 소개령을 무시했다는 것도 틀린 거였대. 가보니까 병사들은커녕 짐 나르는 상단 직원들만 있었다더군.”

“군무대신이 완전히 헛발질을 했구만.”

“그렇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밑에 놈들, 군무대신한테 정강이 호되게 까였을걸?”

“에헤이, 까이긴 뭘 까여? 군무대신 다닐렌츠 남작한테 얻어맞아서 지금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다던데?”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전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퍼져나간 그 날의 사건.

덕분에 왕도 내에 사는 사람 중 군무대신과 나 사이에 벌어진 일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근데... 넌 그 얘기 어디서 들은 거야? 직접 봤어?”

“에이, 아니지! 나도 다른 사람한테 들은 거야, 들은 거!”

“너한테 얘기해준 그 사람은 직접 그 상황을 본 거야?”

“아, 나한테 얘기해준 사람 말이지? 그 사람 다닐렌츠 상단 직원이야.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더라고.”

“어쩐지... 말해주는 내용이 엄청 자세하더라.”

“하하, 직접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처럼, 소문의 중심엔 다닐렌츠 상단 직원이라 자신을 소개한 이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진짜 상단 직원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나의 명령을 받은 다닐렌츠 정보부 소속 요원들.

그들은 열심히 발품을 팔며 왕도 곳곳에 소문을 퍼트렸다.

그에 반박해야 할 군무대신은 내게 얻어터져 얻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려 병상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왕도의 여론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조성되었다.

그것이,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열린 재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두한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였다.

“군무대신의 명령은 국왕 폐하의 인가를 받아 시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봉신의 한 사람으로서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저를 수행해 왕도에 함께 방문했던 저의 호위 기사 아드리안 쉬라흐 경에게 병력 인솔을 맡겨 다닐렌츠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처럼, 저는 군무대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왕도 내 병력 소개령을 충실히 따랐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왕국의 법무대신까지 자리한 재판에서, 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과 목소리로 나의 무죄를 주장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지만, 나는 확실하게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증언을 보탰다.

“휘하 병력은 다 돌려보냈는데, 저는 왜 왕도에 남아 있냐고 물으셨습니까?”

“제가 지금 왕도에 남아 있는 것은 다닐렌츠 상단의 주인으로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제 아내인 아이린 그뢰네마이어 양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다는 장인어른의 청이 있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저의 장인 되시는 분은 왕실근위대장 바이펠베르크 백작 각하십니다.”

“그분의 사위이자, 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왕도에 남은 것이 그리도 문제입니까? 다짜고짜 쳐들어온 왕도수비군의 장교에게 말 채찍을 얻어맞을 만큼?”

왕도 내에서 그 어떤 귀족보다도 드높은 명성을 지닌 나의 장인어른 바이펠베르크 백작.

그분의 이름이 내 입에서 언급된 순간 이 재판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 피고 다닐렌츠 백작 데미언 카릴베르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나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재판장을 빠져나왔다.

***

쪼르륵-

“고생했네, 사위.”

“아닙니다, 고생은요.”

군무대신 및 왕도수비군 폭행(?) 혐의로 열렸던 나의 재판이 무죄로 끝을 맺은 날.

나는 왕성 근처에 자리한 장인어른의 저택에서 그분의 술잔을 받고 있었다.

“근데, 그런 일을 벌일 거면 미리 알려주지 그랬나. 그랬으면 나도 대비를 했을 텐데.”

“혹시라도 장인 어른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 아닐까 해서...”

“부담은 무슨, 이보게 사위. 이 장인이 그래도 왕도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세.”

“예, 다음에는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약속한 걸세. 하하하! 자, 한잔 하세나.”

“예, 아버님.”

처음 만났을 땐 아이린에게 들었던 대로 무척이나 무뚝뚝했던 장인어른.

하지만 매일 아침 검을 맞대며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유해지셨다.

아, 물론 내 실력이 장인어른을 만족하게 해드릴 정도였기에 가능한 변화였겠지.

예전에 아이린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검(劍) 잘 쓰는 사람이라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분이라고.

그래서 자신을 포함해 오빠들도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사랑받으려 죽어라 검을 수련했다고 했었지.

듣기로 낚시 좋아하는 장인이 낚시꾼 사위를 만나면 영혼의 친구가 된다는데, 그런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이보게, 사위.”

“예, 아버님. 말씀하십시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봤네.”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 자리 말일세, 왕실근위대장 자리.”

“예.”

“그 자리에... 자네가 앉는 것은 어떤가?”

“... 예?”

예상치 못한 장인어른의 제안에 나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인어른은 내가 따라드린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 나이도 이미 오십하고도 넷일세. 슬슬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져서 말이야. 이제는 후임을 알아봐야지.”

아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 그 오십하고도 넷인 나이에 여전히 왕국제일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사위의 신분으로 하늘 같은 장인의 말을 잘라먹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잠자코 이어지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몇 년 동안 내 후임을 맡아줄 사람을 찾느라 고생했다네. 왕국 이곳저곳으로 서신을 보냈지. 아마 나름 검 좀 쓴다는 기사들한테는 다 보냈을 거야.”

“몰랐습니다.”

이건 진짜 몰랐다.

애초에 이건 소설 원작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었으니까.

“한데 아무도 내 후임이 되겠다는 이가 없지 뭔가?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내가 왕실근위대장의 자리를 제안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기사라면 각 지역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 텐데, 무엇하러 그 생활을 마다하고 이 골치 아픈 자리를 떠맡으려고 하겠나?”

“골치 아픈 자리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하, 아니긴. 골치 아픈 자리가 맞지. 장인을 생각해서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

그 뒤로도 나는 한참 동안 장인어른과 함께 왕실근위대장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흐름은 비슷했다.

장인어른은 권하고, 나는 애써 거절하는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졌던 것.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아니, 하면 안 될 건 또 뭐야?’

생각해보니, 내가 왕실근위대장 자리에 앉아 있으면 곧 벌어질 ‘그 일’을 막아내기도 더 편해진다.

해서 나는,

“아버님, 저...”

“응? 아아, 그래. 시간이 너무 늦었군. 아이린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하고 정리하지.”

“아니, 그 얘기가 아닙니다.”

“...?”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장인어른에게,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하겠습니다.”

“뭐... 뭐를 말인가?”

설마하는 표정의 장인어른에게, 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답을 전해드렸다.

“아버님의 왕실근위대장 자리를, 제가 잇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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