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51화 (151/197)

왕실근위대장 (2)

이번 왕실근위대장 선발 무투회에서는 혹시 모를 사고의 발생을 최대한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출전자 모두가 일부러 날을 세우지 않은 대련용 검을 사용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맞닥뜨린 두 거대 정치 파벌의 대표, 고트프리트 루덴도르프와 사울 리카르도는 양측의 합의를 거쳐 대련용 검 대신 손에 익은 병장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이례적인 결정은 내가 출전한 결승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사울은 자신의 애병인 톱니 칼날 대검을 들고 나왔다.

반면, 나는 결승까지 써왔던 대련용 장검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어차피 내 손에 들린 이상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철검이라고 해도 절세의 보검 못지않은 위력을 선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선 그 같은 사실을 완벽히 증명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

“흐아아아아!!!”

힘껏 검을 내리친 내 공격에 가까스로 반응하여 자신의 검을 가져다 대었던 사울.

하지만 그 기민했던 방어 동작은 오히려 치명적인 독(毒)이 되고 말았다.

카아아아앙- 파카아아아앙!!!

수없이 많은 제국군 병사들의 피를 머금은 사울의 대검이 유리처럼 깨져나간다.

사울은 무려 베겐스바흐 대공의 친위대인 암흑기사단의 부단장씩이나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이가 동네 아무 대장간에서나 살 수 있는 싸구려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설 리가 없었다.

사울의 대검은 베겐스바흐 공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검장(劍匠)이 질 좋은 강철을 구해다 수백, 수천 번을 두드려 만든 물건이었다.

어지간한 무기는 그 주인과 함께 진흙 가르듯 베어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명검(名劍) 중의 명검이었던 것.

반면, 내가 들고나온 대련용 장검은 시중에서 파는 것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에 불과한 평범한 무기.

물론 무투회에 출전하는 사람들의 실력을 고려해 준비된 무기인 만큼 아주 싸구려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큰돈을 주고 살 정도의 물건은 아니었다.

애초에 대련용 무기를 큰돈 주고 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평범한 대련용 장검과 이름 높은 장인이 정성으로 벼려낸 명검의 충돌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전자였다.

이 모순적인 결과의 이유는 분명했다.

각각의 검을 쥐고 휘두른 이들의 격차가 너무나도 확연했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명검을 손에 쥐고도 그 실력의 격차를 메우지 못했던 불운한 사내, 사울의 비명이 연무장 가득 울려 퍼진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검이 깨져나가던 순간 몸을 비틀어 얼굴에 검날 조각이 틀어박히는 끔찍한 일은 피했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그의 몸통과 팔다리 곳곳에 찢기고 베인 상처가 생겨났다.

“크흐읍!”

생살을 찢어발기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사울의 입에서 절로 괴로운 신음이 튀어나온다.

허나, 그는 평생을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보내온 사람이었다.

통증으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재빠르게 뒷걸음질을 쳐 나와의 거리를 벌리는 사울.

이어 그가 뒤쪽으로 손을 뻗어 자신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크흐윽! 아직... 아직 싸울 수 있다! 어서 검을 다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손 위에 검 한 자루가 놓인다.

마치 지금의 이런 상황을 예측했던 것처럼 절묘한 순간에 이뤄진 누군가의 도움.

이토록 급박한 와중에도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의 얼굴을 확인하려 사울이 살짝 고개를 돌리는데...

“...!?”

자신에게 검을 건네준 사람의 정체를 확인한 사울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진다.

“이거, 내가 쓰던 거긴 한데 괜찮겠지? 그래도 맨손으로 싸우는 것보단 나을 테니...”

사울에게 검을 건넨 이가, 다름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귀신이라도 본 듯 새파랗게 질린 사울의 얼굴이 보인다.

직전까지 자신의 앞에서 검을 휘둘렀던 내가 어느새 자신의 뒤쪽에서 나타나 검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뭘 어떻게야. 내가 리카르도 경보다 빠르니 당연한 거지. 그나저나... 계속 싸워볼 생각이신가? 그게, 의미가 있을까?”

“크윽!”

으드드득-

태연하게 사실을 지적하는 내 말이 뼈를 때리는 것처럼 들렸던 걸까?

사울이 이를 악무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뭐, 그래 봤자 자기 이만 상하지.

“... 아직! 아직 안 끝났습니다.”

“뭐, 내가 건네준 검을 들고 그런 말을 하니까 하나도 안 멋있긴 한데... 아무튼, 계속하자고 하니 맞장구는 쳐주겠네.”

자신을 완전히 눈 아래로 깔아보는 듯한 내 말투에 아득한 표정을 짓는 사울.

그러다 문득, 자신에게 검을 건네준 내가 빈손으로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대로 공격을 하려다가 그래도 기사된 자로서 마음에 좀 걸렸는지, 쥐고 있던 검 끝을 바닥으로 내리며 내게 말했다.

여전히 분해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였다.

“남작... 크흠, 다닐렌츠 남작님! 검을 한 자루 들고 오시지요. 기다리겠습니다.”

“검? 아...”

나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손을 둘러 보다 싱긋 웃으며 말했다.

“검이 없어도, 자네 정도는 쉽지.”

“...!?”

“뭘 망설이고 있나? 들어오게.”

“이, 이, 이...!!!”

안 그래도 검이 깨지며 입은 상처 때문에 온몸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던 사울.

그런 이가 극도로 분노해 얼굴까지 시뻘겋게 변하니, 이건 뭐 역사책에 나오는 홍인(紅人)이 따로 없었다.

“크아아악!!! 이 개좆 같은 새끼! 죽여버리겠다!!!”

결국, 한 가닥 남아 있던 이성의 끈마저 놓아버리고 내게 달려드는 사울.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죽이긴 뭘, 그것도 능력이 돼야 하는 거지... 흐랏차!”

***

내가 싸우는 내내 사울의 속을 벅벅 긁어댄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어, 리카르도 경이 지금 뭐라고 한 겁니까? 다닐렌츠 남작을 상대로 ‘죽여버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왕 폐하께서 자리하신 곳에서 어찌 저런 불경한 말을!”

“그전에 한 말도 문제입니다! 분명 개좆... 어휴, 더러워서 제 입에 담기도 민망하군요!”

“왕국의 법도가 지엄한데, 어찌 국왕 폐하의 봉신(封臣)에게 공국의 기사가 저따위 망발을 하는가!”

나의 거듭된 도발에 이성을 잃은 사울이 ‘개좆 같은 새끼! 죽여버리겠다!’는 외침을 내뱉는 순간, 무투회 결승을 관람하기 위해 왕성 앞에 모여 있던 귀족들 사이에서 분노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 자리는 정말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전쟁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왕국의 왕실근위대장을 뽑기 위해 열린 무투회였다.

설령 서로 병장기를 맞대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졌다 하더라도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법.

끓어오르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는 정도까지는 어찌어찌 참아줄 수 있겠지만, 상대를 죽여버리겠다며 줄기줄기 살기를 내뿜는 건 명백히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한 이는 공국(公國)의 기사, 그 말을 들은 쪽은 왕국(王國)의 봉신 귀족이 아닌가.

이 자리에 모인 대다수의 귀빈이 왕국에 기반을 둔 귀족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방금 사울의 말은 그들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는 분명한 실언이었다.

뭐,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사울이 나를 상대로 죽이네 어쩌네 소리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왕도의 귀족들은 나와 달리 뼛속까지 신분제 사회의 단물을 빨아먹으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그런 이들에겐 감히 기사 ‘따위’가 왕국의 귀족을 상대로 죽인다는 말을 입에 올린 것 자체가 큰 불경일 수밖에 없었다.

“무투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리카르도 경의 발언은 따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저토록 경솔하게 입을 놀리는 자가 어찌 국왕 폐하를 모시는 왕실근위대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당장 끌어내려야 합니다!”

“애초에 공국의 기사가 여기 나온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저자가 정녕 국왕 폐하를 지키는 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때다 싶어 목소리를 높이는 국왕파 귀족들의 외침 속에,

휘잉- 퍼억! 퍽! 콰직- 빠각!

“크윽, 컥! 쿠헤엑!!!”

연무장 위의 사울은 점차 사람의 몰골(?)을 잃어가고 있었다.

***

왕국의 전(前) 군무대신이었던 안스바흐 남작 트리틴 알트마이어의 실각으로, 대공파는 왕도 내부에서 자신들을 도와 거사(巨事)를 이끌 협력자를 잃게 되었다.

트리틴의 역할은 단순히 거사 당일 왕도 내에 주둔하는 군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일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수도 있을 ‘가장 중요한 임무’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바로, 왕실근위대장을 대공파의 병력이 기다리고 있는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

모두가 알다시피, 현 왕실근위대장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는 감히 맞설 자가 없는 왕국 최강의 기사였다.

루트비히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키워냈고,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대공 친위대 암흑기사단의 날고 기는 기사들조차 왕실근위대장의 드높은 명성 앞에선 입을 다물었다.

홀로 수천의 병사와 수십의 기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규격 외의 존재이자 난다긴다하는 대공의 참모들이 몇 날 며칠을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짜낸 계획을 거대한 존재감 하나로 압도해 버리는 인물.

그것이 바로, 왕실근위대장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였다.

해서 대공파는 심혈을 기울여 군무대신을 포섭했고, 그를 이용해 왕실근위대장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던 거다.

하지만...

“저, 전하! 군무대신이... 파직되었다고 합니다.”

그 모든 계획이 트리틴 알트마이어의 실각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

심지어 공석이 된 군무대신의 자리를 차지한 이는, 대공의 최대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라이에른-팔츠 변경백이었으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대공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지난 십 수년간 어마어마한 역량을 기울여 준비해왔던 필생의 계획이 쓰레기통에 처박힐 위기에 처한 그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의 상황이 벌어졌다.

대공파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존재,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가 ‘스스로’ 왕실근위대장의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었다.

거기에다 왕실이 주관하는 무투회를 벌여 그 우승자를 차기 왕실근위대장으로 삼는다는 파격적인 선언까지 나왔다.

대공파가 마주한 위기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차기 왕실근위대장 자리에 대공파의 인물을 앉히면 군무대신을 포섭했을 때보다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된다!’

하여 대공파가 꺼내든 카드는 암흑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오른 사울 리카르도였다.

혹시라도 그가 대공의 수하라는 이유로 무투회 참가를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왕실 측에선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기 왕실근위대장을 선발하는 무대에 오른 사울 리카르도.

그가 준결승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라이에른-팔츠 변경백의 아들 고트프리트를 꺾었을 때, 대공파의 모두는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수하들의 앞에서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대공조차 입가의 미소를 숨기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어진 결승 무대에서 대공을 포함한 대공파의 모든 이들은 어째서 왕실이 순순히 사울 리카르도의 무투회 참가를 허용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

뻐억! 퍽! 퍼어억!

“...”

내가 사울의 몸 이곳저곳에 주먹을 꽂아 넣었음에도, 그는 작은 신음조차 내뱉지 못했다.

허옇게 까뒤집힌 눈동자, 생기 없이 덜렁이는 팔다리.

이미 의식을 잃고 기절한 사울 리카르도는 더는 대공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있었다.

“... 이쯤 해야겠네.”

사울이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나는 미련 없이 잡고 있던 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털썩-

내 손에서 벗어난 사울의 몸이 비로소 자유를 찾는다.

그 자신이 흘린 피로 한껏 더럽혀진, 연무장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 얼굴을 처박는 사울.

비록 충성의 방향은 달랐지만, 그 역시 누군가의 충신으로서 열심히 살아온 것을 생각해 죽이진 않았다.

죽이지만, 않았다.

멀쩡히 놔두면 내 앞날에 득보다 실이 될 놈이니, 적당한 기회가 온 김에 밟아두었다.

다시는 싹이 나지 않도록, 잘근잘근.

“끝났습니다.”

“... 예? 어으어, 예!”

그 어떤 검술보다도 화려하고 박진감이 넘쳤던, 나의 맨손 타작(?)을 지켜보느라 넋이 나가 있던 장내 사회자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다.

뒤이어 오래 쉬었던 목을 가다듬으며 큰 소리를 내질렀다.

연무장 주위로 몰려든 사람 모두가 빠짐없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목소리였다.

“존귀하신 왕국의 군주, 요제프 국왕 폐하의 검이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왕실근위대장, 다닐렌츠 남작 데미언 카릴베르크의 놀라운 무용(武勇)에 경의의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미언! 데미언!!!”

“국왕 폐하의 검이 탄생했다아아아!!!”

“오오! 왕국에 신의 영광이 있으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성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화답했다.

그리고 귀빈석의 가장 높은 곳, 국왕인 요제프 3세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고위 귀족들이 모여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무투회 결승을 지켜보던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

표정만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으나, 그 가슴 속은 먼바다에 이는 풍랑처럼 격정(激情)이 몰아치고 있을 사내.

베겐스바흐 대공(大公), 루트비히 베르너 이그나티우스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연무장 위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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