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53화 (153/197)

서열 정리 (1)

‘왕국 3대 기사단(騎士團)’이라는 것이 있다.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며 왕국 내 기사단들의 순위가 어렴풋이 정해지고,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어느 정도 굳어진 이후에 나온 표현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왕국에서 가장 강력하다 알려진 세 개의 기사단.

그 첫 번째는 단연 세상 모든 기사단의 기원으로 알려진 북부 전선 겨울 장벽의 수호자, ‘설원기사단(雪原騎士團)’이었다.

이 설원기사단에 대해 설명하려면, 펠리노어 왕국이 등장하기도 전인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

지금으로부터 족히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머나먼 옛날.

아직 세상에 ‘왕(王)’이라 불리는 절대 권력자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당시 대륙엔 수백 개에 달하는 부족_혹은 씨족이라고도 불리는_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각자가 속한 세력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몇백 년간 이어지던 지루한 싸움 끝에, 검을 일족의 상징으로 삼은 일명 ‘검족(劍族)’과 전설 속의 신수(神獸)인 드래곤을 부족의 상징으로 삼았던 ‘용족(龍族)’이 각각 거대한 세력의 중심이 되어 살아남는다.

그렇게, 검족과 용족은 가장 위대한 부족의 이름을 얻기 위한 최후의 전쟁을 벌였고...

수십 년에 걸친 두 부족 간의 지루한 전쟁 끝에, 위대한 지도자였던 ‘무적자(無敵者)’ 지크프리트(Siegfried)를 앞세운 검족은 용족으로 무너뜨리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통일이라는 위업을 이루어 낸다.

이어 검족의 지도자였던 지크프리트는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세상의 인간들을 발아래 두게 된 스스로를 일컬어 ‘왕’이라 칭하니, 대륙에 인류의 문명이 발흥한 이래 최초로 왕국(王國)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료의 부족으로 이 나라의 이름은 후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이에 후대의 학자들은 이 이름 모를 대륙 최초의 국가를 ‘고대 왕국(古代 王國)’이라 칭하였다.

다만 ‘대륙을 통일했다’는 표현은 사전적 의미의 대륙 통일과는 조금 달랐다.

당시 인류가 개척한 땅은 지금의 대륙 중서부 지역에만 국한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인류가 진정으로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은 고대 왕국의 탄생으로부터 아득히 먼 미래의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고대 왕국의 탄생으로부터 다시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금으로부터 약 8백여 년 전, 하나뿐인 왕국의 절대자 자리를 두고 왕의 자식들인 왕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난다.

본디 왕위에 올라 왕국의 지배자가 될 운명이었던 이는 1왕자 펠린느(Felline).

그러나 그는 세 살 아래 동생인 2왕자 뷔에른(Büern)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고, 간신히 목숨만을 건져 아직 개척되지 않았던 미지의 땅, 대륙 북부로 몸을 피하게 된다.

왕국의 1왕자, 펠린느의 나이 스물일곱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그 후 펠린느는 평생토록 잃어버린 자신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눈을 감는다.

평생 동생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며 살았던 펠린느는 결혼조차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뒤를 이을 자손을 남기지 못했다.

이에 남은 사람들은 생전의 펠린느가 가장 신뢰했던 가신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카를(Karl)’에게 자신들을 이끌어 줄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달라 요청했고, 친구이자 주군인 펠린느의 소망을 이뤄내고 싶었던 카를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후로 다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된 카를은 친구이자 주군, 펠린느의 이름을 수놓은 깃발을 앞세워 남쪽에 자리한 고대 왕국을 향해 진군한다.

오랜 평화에 취해 있던 왕국의 병사들은 거친 대륙 북부의 땅에서 길러진 카를의 병사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허수아비 같은 적군을 단숨에 쓰러뜨리고, 왕국 전역을 자신의 수중에 넣은 카를.

그는 왕국의 당대 군주이자 펠린느의 동생, 뷔에른을 잡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목을 베는 것으로 자신과 죽은 펠린느의 숙원을 이룬다.

이로써 대륙 문명 최초의 왕국이었던 ‘고대 왕국’은 멸망하고 만다.

한편, 뷔에른을 죽여 펠린느의 복수를 이뤄낸 카를은 벗의 이름을 딴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선언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펠리노어 왕국’의 시작이다.

이어 펠리노어 왕국의 시조가 된 카를은 자신과 친구의 이름을 합쳐 ‘카를 폰 펠린느(Karl von Fellin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그의 사후, 후대의 사람들은 그에게 ‘건국왕(建國王) 카를 1세’라는 시호를 부여했다.

건국왕의 아들이자 펠리노어 왕국의 2대 왕이 된 ‘루트비히 1세’는 왕국력 32년, 아버지의 이름을 딴 도시 ‘카를리온(Karlion)’을 세워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 후 카를리온은 무려 8백 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왕국의 수도로서 찬란한 명성과 드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왕국 3대 기사단의 으뜸으로 꼽히는 설원기사단은, 앞서 설명한 펠리노어 왕국의 건국기(建國記)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연관이 있다.

왕위를 노린 동생의 습격을 받아 대륙 북부로 몸을 피했던 고대 왕국의 1왕자 펠린느.

하지만 대륙 북부는 ‘바인야르’라 불리는 난폭한 야만족 무리의 습격이 1년 내내 이어지는 위험한 땅이었다.

하여 펠린느의 제일 가신이자 최강의 전사였던 카를은 자신을 포함해 펠린느를 주군으로 모시던 아홉 명의 사내를 모아 주군의 목숨을 지키는 검이 되리라 맹세하니, 이것이 바로 대륙 최초의 기사단이자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기사단인 설원기사단이다.

본래 설원기사단은 앞에 붙은 ‘설원(雪原)’이라는 단어 없이 그저 ‘기사단’이라는 이름만으로 불렸다.

하지만 후일 그들을 모방하여 우후죽순 생겨난 기사단들과의 구분을 위해 굳이 설원이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카를과 그의 여덟 동료가 주군 펠린느에게 검의 맹세를 했던 장소가 ‘눈 쌓인 들판’이었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이토록 범상치 않은 역사를 가진 설원기사단은 그 실력 자체도 월등히 뛰어났다.

그들의 적은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운 힘과 난폭함을 지닌 전투 종족 바인야르.

그런 이들을 상대로 800여 년 가까이 북부 전선을 지켜온 설원기사단의 실력은 그들의 까마득한 역사만큼이나 공고했다.

이렇듯,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설원기사단.

하여 그 누구도 왕국 3대 기사단의 명단 가장 윗줄에 그들의 이름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왕국 3대 기사단에 설원기사단이 들어간다고? 에이, 까놓고 말해서 설원기사단은 빼놓고 뽑아야지. 아예 급이 다른데.”

“애초에 기사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설원기사단으로부터 시작된 거 아닌가? 존재 자체로 전설인 기사단인데, 왕국 3대니 뭐니 하는 말로 다른 기사단이랑 묶는 게 더 굴욕이겠다.”

“설원기사단이 왕국에서 가장 센 기사단이냐고? 야, 장난하냐? 설원기사단은 왕국이 아니라 대륙 최강이야!”

설원기사단에 대한 왕국민들의 인식 자체가 이러한 수준이니, 사실상 왕국 3대 기사단이란 설원기사단에게 한 자리를 고정적으로 내어주고, 다른 두 개의 기사단을 뽑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왕국엔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수많은 기사단이 존재했지만, 그들 중 설원기사단과 함께 왕국 3대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불리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들은 극히 일부였다.

국왕 친위대인 ‘사자기사단’, 북부의 지배자라 불리는 라이에른-팔츠 변경백의 친위기사단인 ‘바르디안 가드’, 왕국 최강의 기사 바이펠베르크 백작이 키워낸 ‘백검기사단’ 등등.

하나같이 대단한 명성과 오랜 역사를 지닌 기사단들이 설원기사단과 함께 왕국의 3대 기사단으로 뽑히길 소망했다.

한데 불과 몇 년 전 창단되었음에도 왕국의 쟁쟁한 기사단들을 밀어내고 왕국 3대 기사단의 영예를 차지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아닌...

***

“... 설원기사단의 다음으로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들은 암흑기사단입니다.”

“음.”

나는 왕실근위대장 부관, 카르스텐 바익스의 말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몇 년을 기준으로, 북부 전선의 설원기사단을 제외하고 가장 압도적인 전공을 올린 왕국의 기사단을 꼽으라면 볼 것도 없이 암흑기사단이었다.

하얀 산맥 너머를 지배하는 베겐스바흐 대공의 친위대인 그들은 제국 이교도들을 상대로 수년간 싸우며 어마어마한 전공을 쌓았다.

‘전신을 검은색 갑주로 둘러싼 채 더러운 이교(異敎)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드는 제국의 개들을 거칠게 베어낸다.’

글로만 전해 들어도 강렬한 활약상이 몇 년간 끊이지도 않고 꾸준히 이어져 왔으니, 암흑기사단에 대한 왕국민의 평가는 나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암흑기사단의 활약에 가장 초조해한 것은 국왕 친위대인 사자기사단이었다.

왕국의 군주, 국왕의 직속 병력답게 사자기사단은 최고의 장인이 만들어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의 좋은 무구와 혈통 좋은 군마(軍馬)를 받았다.

그 같은 조건들은 오롯이 전투력으로 이어져, 사자기사단의 전력은 왕국의 중소 영지쯤은 하룻밤에 짓밟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평가되었다.

문제는, 그런 외적인 ‘평가’가 실전으로 ‘증명’되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것.

북부 전선에서 수백 년간 야만족들과의 전쟁을 이어온 설원기사단, 제국을 상대로 동부 전선을 지키는 암흑기사단과 달리 사자기사단은 오랜 시간 몇몇 자잘한 전투를 제외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입증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오래 이어진 왕도(王都)의 평화가 역설적으로 사자기사단의 명성을 깎아내린 셈이다.

‘싸우지 않는 군대’, ‘물지 않는 사자’, ‘돈 많은 이들의 기사 놀이’, ‘갑옷 차려입은 레이디’라는 갖가지 조롱에 시달리던 사자기사단.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게 된다.

“... 하여 사자기사단은 ‘합동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왕국 곳곳에 있는 봉신 영주들의 영지를 방문해 해당 영지의 기사단을 박살 내는 일종의 ‘도장 깨기’를 해왔습니다.”

“허! 왕국 3대 기사단인지 뭔지 하는 말, 어차피 왕실에서 인정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잣거리 사람들이 술안주로 떠드는 같잖은 허명 아닙니까?”

“허명이라기엔 그 왕국 3대 기사단이라는 명성이 주는 힘이 만만치 않습니다. 뭐, ‘왕국제일검’이라 불리는 분의 인정을 받으신 사람은 그런 것에 별로 집착 안하시겠지만...”

카르스텐의 은근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찡그렸다.

이 양반 이거, 놀리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사자기사단 애들이 도장 깨기를 했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됐다고요?”

“예. 그렇게 왕국 각지의 유명한 기사단을 박살 내고 다니면서 사자기사단은 떨어진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강함을 증명했으니까요. 문제는, 사자기사단의 합동 훈련 제안을 받아주는 봉신 영지의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최근에 와선 아예 싹 사라져버렸다는 거지요.”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애초에 자기네 기사단 때려잡아서 지네 명성을 유지할 생각으로 오는 놈들인데, 뭐가 이쁘다고 그걸 받아주겠나?

“하여, 자신들의 강함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진 사자기사단은 왕도 내에서 ‘두들겨 팰’ 상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왕도수비군, 도시경비대, 그리고...”

“... 왕실근위대.”

“예, 맞습니다. 한데, 지금껏 저희랑은 한 번도 교류가 없었지요. 대장님의 장인어른이시자 전임 근위대장이셨던 바이펠베르크 백작이 그런 제안을 받아주시지 않았으니까요.”

‘복덩이 사위’인 나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장인어른께서 그런 광대놀음에 장단을 맞춰주실 리가 없었다.

사자기사단 입장에서도 감히 ‘왕국제일검’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 재차 요구하진 못했겠지.

하지만 이제 그들이 두려워하던 왕국제일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젊디젊은 후임자가 앉아 있다.

오랫동안 왕실근위대를 발밑에 두려 안달이 나 있던 사자기사단 놈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하지만, 사자기사단 놈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흠, 알겠습니다. 사자기사단 애들한테 합동 훈련인지 지랄인지, 그거 하자고 전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새파랗게 어린 왕국제일검의 사위가, 장인어른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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