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54화 (154/197)

서열 정리 (2)

“여긴가...”

왕실근위대장의 사전 재가를 받지 못하면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그곳.

카를리온 왕성 지하에 위치한 왕실근위대의 지하 연무장 문 앞에, 오늘의 손님이 도착했다.

“하! 왕실근위대 놈들, 실력도 안 되는 것들이 연무장만 좋아서...”

“아직 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 좋은지 안 좋은지 어떻게 알아?”

“야, 딱 보면 모르냐? 연무장 입구 생긴 것만 봐도 알겠다. 근위대 놈들, 뭔 놈의 연무장 문짝을 이렇게 으리으리하게 해놨어?”

“애초에 왕성을 지을 때 같이 만든 시설일 테니, 으리으리한 게 당연하겠지.”

“아니 근데 근위대 놈들은 지네가 뭐라고 왕성에서 지내는 거야?”

“뭐, 그래도 국왕 폐하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녀석들 아닌가? 그러니 왕성 지하에 연무장을 두는 게 당연하지.”

“그러니까 더 문제지! 그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시설도 이리 좋은 걸 쓰면서 실력이 변변치 않다면 그거 자체로 불충(不忠)인 거 아닌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연무장으로 들어서는 이들.

번쩍이는 은빛 갑주 위에 ‘머리에 왕관을 쓴 사자’가 수놓아진 서코트를 걸쳤다.

보통 연무장에 오는 사람들의 복장이 가볍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게 과한 옷차림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딜 가든지 이 같은 복장을 고수했다.

자신들의 가슴에 새겨진 사자의 존재에 무한한 자긍심을 품고 있는 자들.

이들이 바로 왕국 3대 기사단의 일익(一翼),

펠리노어 왕국의 국왕친위대,

사자기사단(獅子騎士團)이었다.

“웅성거리지 마라.”

생전 처음 와보는 왕성 지하 연무장을 살피며 떠드는 단원들을 한 마디로 조용하게 만드는 사내.

그는 마치 한 자루 잘 갈린 검과 같은 기세가 풍기는 인물이었다.

곁에 다가서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위험한 느낌.

이 사내가 바로 왕도 카를리온에서 나흘 거리에 자리한 작은 영지, 남작령 베를하임의 영주이자 황금빛 사자들의 수장(首長).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리벤트로프(Wilhelm Liventrop)였다.

끼이이-

“들어가자.”

“예, 단장님.”

수장인 빌헬름의 뒤를 따라 천천히 지하 연무장으로 들어서는 사자기사단.

그런 그들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응?”

“아니, 이게 무슨...?”

텅 비어 있는 연무장 내부.

오늘 그들과 함께 합동 훈련을 진행하기로 한 왕실근위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뭐야, 이 새끼들. 쫄아서 튄 거야?”

“어쩐지, 우리가 같이 훈련하자는 얘기에 냉큼 승낙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만...”

“새끼들, 그동안 바이펠베르크 백작님 믿고 까불긴 했지. 백작님 빼고 붙으면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조용, 경솔하게 함부로 떠들지 마라.”

왕실근위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두고 함부로 떠드는 부하들을 제지하며 차분하게 빈 연무장을 살피는 빌헬름.

그런 그의 시선 끝에, 연무장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이 눈에 띠었다.

“...!”

다른 이들에겐 느껴지지 않지만,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작은 문 뒤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누군가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 허!”

아예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존재감이라니.

그 순간 빌헬름은 전임 근위대장이었던 ‘왕국제일검’ 바이펠베르크 백작이 훈련 참관을 위해 방문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니고서야 저 정도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이가 왕도 내에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철컥, 끼이이-

문의 크기가 작은 만큼 열리는 소리도 작게 들렸다.

하지만 그 쪽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이의 정체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으니...

“음, 제가 조금 늦었군요. 오래 기다리신 건 아니겠지요?”

“...!”

훤칠한 키와 찬란한 금발, 신비로운 녹색 눈동자로 대표되는, 놀랍도록 잘생긴 미남자.

외모만 보면 땀 냄새 가득한 연무장이 아니라 왕도 번화가 극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모두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전임 군무대신인 트리틴 알트마이어의 실각이라는 크나큰 사건을 만들어내며 화려하게 중앙 정계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

더불어 적당한 후임을 찾지 못해 20년간 왕실근위대장의 자리를 지켜온 ‘왕국제일검’ 바이펠베르크 백작을 비로소 그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사람이었다.

다닐렌츠 남작, 데미언 카릴베르크.

그가 완전한 복장을 갖춰 입은 사자기사단과 대비되는 간편한 차림새를 하고서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이 새끼들, 뭔 전쟁하러 왔나?’

사자기사단을 처음으로 본 나의 감상이었다.

연무장에서 이뤄지는 훈련에 저렇게 갑주에 서코트까지 차려입고 오다니.

사자기사단이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집착한다고 하더니, 과연 그 소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긴, 국왕친위대라는 위치가 있으니... 드레스 코드를 빡세게 유지하는 게 맞나?’

반면, 나는 근위대원의 훈련 지도를 할 때 입는 수련복에 오크 가죽을 재단해 만든 조끼를 걸친 가벼운 차림이었다.

얼핏 보면 동네 시장 마실이라도 가는 듯한 모습.

그런 나의 옷차림새를 확인한 사자기사단 단원들의 얼굴에 묘한 불쾌함이 떠올랐다.

“크흠...!”

“조끼? 지금 조끼를 입고 나온 거야?”

“하, 어린 나이에 근위대장이 됐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몸에 칼침 한 번 맞아봐야 정신 차릴 것 같은데?”

“푸흐, 네 실력으로 그게 되겠냐? 명색이 왕실근위대장인데?”

“하! 안될 건 또 뭐야?”

자기들끼리만 들릴 정도로 작게 떠든 말이었지만, 나의 청력이 지나치게 좋은 탓에 무슨 소리를 하는 지가 다 들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실 뭐, 쟤들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만한 일이기도 하니까...’

내가 하다못해 흉갑 정도만 추가로 걸치고 나왔어도 저런 반응이 나오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가 오늘 처음 본 놈들 비위 맞춰주자고 그 귀찮은 짓을 할 필요는 또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뭔 짓을 해도 저놈들의 검은 내 몸에 닿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근위대장. 지난번 임명식 때 인사 나눈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씨근덕거리는 부하들의 목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앞으로 나선 사자기사단장이 내게 악수를 청한다.

빌헬름 리벤트로프.

그는 기사단 평단원을 거쳐 조장이 되고, 부단장 직위를 거쳐 마침내 단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사자기사단의 깃발 아래서 싸워온 사나이였다.

참고로 내게 첫 패배의 쓴 기억을 안겨주었던 ‘바덴하임의 사자’, 에리히 프라이슬러가 눈앞에 있는 빌헬름의 기사단 3년 선배가 된다.

최근 ‘사자의 발톱이 녹슬었다’는 소리가 종종 나오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내게 손을 뻗어오는 이 사나이만큼은 달랐다.

인성이야 뭐,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실력만은 진짜배기였다.

“예, 단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뭐, 별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근위대 연무장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명성 높은 사자의 검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빌헬름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나는 스킬 ‘창조주의 눈’을 통해 슬쩍 그의 능력치를 엿보았다.

그 결과는...

‘... 레벨이 71이라, 대단하군.’

빌헬름은 얼마 전 왕실근위대장 선발 무투회 결승에서 싸운 암흑기사단의 부단장 사울 리카르도를 간단히 압도할 정도의 저력을 갖춘 기사였다.

과연 국왕친위대라 불리는 병력의 지휘관다운 능력치.

한참 전의 나였다면, 꽤 긴장하며 상대해야 했을 수준에 올라 있는 빌헬름이었다.

하지만...

팟-!

『 데미언 / Lv. 94

소속: 남작령(男爵領) 다닐렌츠

클래스: 기사

고유 특성:

- 창조주(創造主)

- 검성(劍聖)

- 무골지체(武骨之體)

- 붉은 송곳니의 대군주

보유 스킬:

- 창조주의 눈(신화 등급)

- 리히테나워 류(전설 등급)

- 오크 왕의 분노(전설 등급)

보유 아이템:

- 왕실근위대 제식 장검(고급 등급)

- 오크 가죽조끼(고급 등급) 』

지난 몇 달간 ‘왕국제일검’이라 불리는 장인어른과 매일 같이 검을 맞대며 수련에 열중한 결과, 나는 레벨 94라는 놀라운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이미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무(武)의 극의에 도달한 장인어른과의 대결은 어중간한 실력의 상대와 백 번 싸우는 것 이상의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장인어른이 힘과 속도, 기술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나와 대등한 수준을 지닌 상대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이 은혜는 평생 갚겠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장인어른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빌헬름이 내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한데... 나머지 근위대 병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 그게...”

빌헬름의 질문을 받은 나는 선선히 웃으며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상대가 듣는다면 속이 뒤집힐 수밖에 없는, 그런 대답이었다.

“오늘 사자기사단을 상대할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

“... 예?”

“저희 근위대가 맡은 임무가 워낙 많아서, 부득이하게 병력을 뺄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걱정하시는 마십시오. 훈련 성과는 충분할 겁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빌헬름이 눈을 끔뻑인다.

‘지금 내가 뭔 소리를 들은 거지?’

뭐, 대강 이런 표정이랄까?

“그러니까 지금... 근위대장님 혼자서 저희 모두를 상대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정확합니다.”

“허!”

나와 대화하는 내내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던 빌헬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것이다.

“... 근위대장께서 아무리 ‘왕국제일검’의 사위라고 해도, 홀로 모든 사자들과 싸워 이길 수는 없을 텐데요.”

자존심이 상한 듯, 한껏 으르렁거리는 빌헬름의 목소리.

하지만 그의 말을 받는 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뭐, 길고 짧은 건 대어 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자자, 준비하시죠. 저도 일이 좀 바빠서 빨리 끝내야 합니다.”

대답을 끝마친 후 나는 천천히 걸어 연무장의 한 가운데로 향했다.

그러자 그런 나의 모습을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빌헬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 사자기사단, 준비하라.”

***

콰아아앙-!!!

“크아악!”

또 한 명, 나의 검을 받아낸 사자기사단의 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간다.

받아친 검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탓이다.

“자, 다음!!!”

날아가는 기사의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나는 힘찬 목소리로 외치며 몸을 날렸다.

몸놀림은 새처럼 가볍지만, 검 끝에 실린 힘은 바윗돌처럼 무겁다.

휘우웅- 카캉! 카아앙!!!

“으허엇!”

“아악!”

내가 휘두른 검에 자신들의 검을 마주친 사자기사단원 두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한 명은 검을 놓치며 뒤로 주저앉았고, 한 명은 넘어지진 않았으나 검이 부러져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야이잇!!!”

쉬이잉-!!!

앞서 언급한 두 명의 기사단원을 상대하는 틈을 타 내 뒤로 접근한 한 명이 텅 비어 있는 내 등을 향해 검을 찔렀다.

하지만, 그가 찌른 것은 나의 등이 아닌 허공(虛空)에 불과했다.

등 뒤로의 접근을 알아차린 내가 빠르게 몸을 돌려 상대의 옆으로 붙었기 때문이다.

“검이 느리다, 한 박자 더 빨라야지!”

나는 급박한 와중에도 상대를 향한 충고를 잊지 않으며,

휭- 빠각!!!

비어 있던 왼손을 내질러 헛손질에 당황한 상대의 턱을 후려쳤다.

“커헉!”

내게 턱을 강타당한 사자기사단원이 눈을 까뒤집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적당히 힘 조절을 했으니 뼈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우, 자 보자... 하나, 둘 셋... 일곱 명 남았네?”

나 하나를 상대로 단장과 부단장을 제외한 사자기사단 총원 마흔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서른 명이 넘는 상대를 바닥에 눕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 차.

그 사실을 증명하듯, 내 이마엔 땀 한 방울 배어 나오지 않았다.

“... 이게, 어떻게 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며 경악한 빌헬름의 모습이 보인다.

그동안 자신들보다 못한 실력의 기사단을 찾아가 힘의 우위를 선보이며 억지로나마 사자의 명성을 유지해오던 그들.

위태로이 지켜오던 그 자리가,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 더는 대련이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이쯤에서 단장님과 부단장님이 나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혹시나 내 말이 상대에 대한 조롱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한껏 정중한 말투로 건넨 제안이었다.

“...”

나의 제안을 들은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의 표정이 굳어진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꾸벅-

연무장 한가운데 선 나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분한 음색이었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리벤트로프가, 왕실근위대장 데미언 카릴베르크 경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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