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55화 (155/197)

서열 정리 (3)

솔직히 말해, 사자기사단의 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 눈앞에 쓰러져 있는 놈들은 그랬다.

물론 내가 눈앞에 자빠져 끙끙거리고 있는 이 녀석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내 경지는 장인어른을 제외하고 왕국의 그 어떤 기사가 와도 무릎 꿇릴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보였다.

왕국 3대 기사단이라는 휘황한 명성에 가려져 있던 녀석들의 형편없는 실력이.

‘개판이군.’

그렇다고 사자기사단 녀석들이 기본도 안된 머저리라는 사실은 아니었다.

객관적인 눈으로 본다면, 평범한 기사의 수준은 훌쩍 넘어서는 준수한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사자기사단의 이름값을 생각했을 땐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

뭐,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사자들의 검이 예전처럼 날카롭지 못하다는 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그렇게 된 이유도 알고 있었다.

‘... 실전 경험을 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사자의 발톱이 점점 무뎌지는 게 당연하다.’

전대 국왕인 하인리히 4세의 치세기 동안 왕도 카를리온은 늘 평화로웠다.

그 평화가, 사자기사단에겐 독이 되었던 거다.

싸우지 않는 군대.

싸우지 않는 기사.

사자기사단과 함께 왕국의 3대 기사단으로 묶이는 설원기사단, 암흑기사단이 각기 북부 전선과 동부 전선에서 처절한 전투를 겪으며 강군으로 단련될 동안 사자기사단은 왕도의 평화를 즐기며 서서히 맹수의 본능을 잃어갔다.

‘이게 참, 모순적인 거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이들이, 오히려 그 평화 때문에 힘을 잃는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무튼, 그 오랜 평화를 누리며 사자기사단은 서서히 그 성격이 변해갔다.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왕국의 적을 분쇄하는 용감한 검이었던 그들.

하지만 지금의 사자기사단은 그저 으리으리한 가문을 지닌 귀족가 자제들의 사교 모임 같은 곳으로 변해버렸다.

자식에게 ‘기사단 출신’이라는 빛나는 이력을 선물하고픈 귀족들의 눈에 사자기사단은 그야말로 최고의 선택지였다.

우선 사자기사단의 주둔지 자체가 왕도(王都)라는 점이 좋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왕도 카를리온은 왕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

그런 곳에 머물며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귀족 자제에겐 크나큰 기회였다.

더불어 사자기사단이 딱히 위험한 전장에 갈 일이 없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왕국의 국경 지대까지 달려가 활약하던 과거의 사자기사단과 달리 근래의 사자기사단은 그저 왕도와 그 주변, 그러니까 왕실직할령인 카를란트 지역의 치안 유지 정도에만 힘쓰는 경비대 수준의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몸에 두른 갑옷과 들고 다니는 무기는 모두 수십, 수백 골드를 호가하는 명품들이었으니, 그 또한 귀족 자제들의 허영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리벤트로프가, 왕실근위대장 데미언 카릴베르크 경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합니다.”

지금 내 앞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리는 사내는 앞서 내게 달려들었다가 박살이 난 얼치기 도련님들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좋습니다, 오시죠.”

이십여 년 전 처음 사자의 이름을 달았고,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여전히 맹수의 기운을 잃지 않은 눈앞의 사내에게 나는 존중의 의미로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카아아아아아아아앙!!!

잠들어 있던 사자의 본능을 깨울, 거센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흐아아아아아!!!”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의 처절한 함성이 연무장에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카캉! 까드득-!!! 카아앙!!!

하지만 그의 검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어디를 찌르건, 어디를 베려고 들건 모조리 가로막힌다.

상대의 검이 마치 빌헬름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로가 너무 정직합니다! 조금 더 과감하게 검을 움직이십시오!!!”

“크흐읏!!!”

상대는 펠리노어 왕국을 대표하는 상급 기사 중 한 명이자, 사자기사단의 수장인 그를 상대로 마치 지도 대련이라도 하는 듯 충고를 섞어가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빌헬름을 신(神)처럼 모셔왔던 사자기사단의 단원들에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다.

“후으읍!”

한껏 숨을 들이마신 빌헬름이 크게 발을 내디디며 검을 찌른다.

너무나 빠르고, 또한 정확한 일격.

어지간한 기사들은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검이 쏘아지는 것조차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쾌속한 찌르기였다.

하지만,

카아앙!!!

이번에도 막혔다.

마치 그리로 검을 찌를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검을 움직여 빌헬름의 공격을 막아낸 금발의 사내.

펠리노어 왕국 역대 최연소 왕실근위대장, 데미언 카릴베르크가 새처럼 가볍게 발을 움직이며 빌헬름의 등 뒤를 점했다.

퍼억-!

텅 빈 빌헬름의 등판을 가차 없이 검 손잡이로 찍어 내리는 데미언.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그 건장한 빌헬름의 전신이 휘청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였다.

“커억!”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한 고통을 느낀 빌헬름이 비명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만약 데미언이 손잡이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검을 찍어 내렸다면 꼼짝없이 가슴이 꿰여 죽고 말았을 순간.

그러한 사실을 일러주기라도 하는 듯, 데미언의 입이 열렸다.

“한 번 죽으셨습니다, 단장님.”

“...”

빌헬름을 향해 전하는 데미언의 목소리엔 그 어떤 비웃음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치열한 승부의 한복판에 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하고, 담백한 목소리.

그런 그의 목소리가 등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신음하던 빌헬름의 투지에 다시금 불을 댕겼다.

“다시...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예, 오십시오.”

“흐아아아앗!!!”

카카캉! 촤앙- 파카아아아앙!!!

***

“와아, 미친...”

“저, 저게 말이 되나?”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저 나이에 저토록 강할 수가 있지?”

“마법... 마법사 아냐?”

왕실근위대장 데미언과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의 대결을 지켜보던 사자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하나같이 경악한 눈빛을 한 채 입을 열었다.

그들은 지금 지금껏 가지고 있던 상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앞서 단장과 부단장을 제외한 사자기사단 총원 40명이 단 한 사람에게 덤볐음에도 옷깃 하나 베어내지 못하고 패배했다.

40명이 제각기 얻어터지고, 검을 놓치고, 심지어 검이 박살 나며 바닥을 구르는데 걸린 시간이 고작 10분 남짓.

턱이나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해 정신을 잃었던 이들 중 몇 명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 일어난 이들의 상태도 엉망이었다.

손바닥과 주먹 모양이 그대로 찍혀 움푹 들어간 금속제 흉갑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사방에 과자 조각처럼 부러진 검날 조각들이 즐비했다.

이제 더는 검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그 물건을 바라보는 주인들의 눈빛에 허망함이 깃든다.

그 검은 사자기사단에 입단한 기사들에게 개인당 두 자루씩 주어지는 기사단의 제식 장검으로, 왕도 카를리온에서 제일가는 검장(劍匠)에게 의뢰해 만든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집채만 한 바윗돌을 힘껏 후려친다고 해도 검날만 조금 상할 정도로 튼튼한 물건인데, 그런 검이 상대의 검과 부딪칠 때마다 동네 대장간에서 산 싸구려 철검처럼 뚝뚝 부러져 나갔다.

‘대체 상대가 들고 있는 검은 얼마나 대단한 검이길래?’

처음엔 그런 의문이 들었던 사자기사단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건 검이 대단한 게 아니다...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 대단한 거야!’

살가죽이 찢어지고 뼈마디가 부러지는 무시무시한 경험 끝에 깨달은 결론이었다.

“무투회 결승에서 보여준 모습은 약과였어. 왕실근위대장님의 경지는 정말이지...”

자신도 모르게 왕실근위대장이라는 호칭 뒤에 ‘님’을 붙였으나 말하는 이도, 주변에서 그의 말을 듣던 이도 모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분명했다.

경외(敬畏).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상대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이 뒤섞여 그들의 마음속에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크웨엑!”

사자기사단을 대표해 앞으로 나선 단장 빌헬름 리벤트로프가 피를 토하며 연무장 바닥에 처박힌다.

왕실근위대장의 공격이 너무나 빨랐던 탓에 뭘 어떻게 얻어맞았는지도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들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방금의 공격을 빌헬름이 아닌 자신들이 맞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로써 열네 번 죽으셨습니다, 단장님.”

“커흐윽... 쿨럭! 퉷!”

예의 담담한 목소리로 빌헬름의 ‘사망 횟수’를 알려주는 왕실근위대장 데미언.

입고 왔던 갑옷이 엉망이 되고, 곳곳이 피투성이가 된 빌헬름과 달리 그의 모습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기만 했다.

그 대조적인 모습을 바라보는 사자기사단의 모두는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평소 하늘처럼 여겼던, 그리고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단장 빌헬름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박살이 나고 있었다.

심지어 상대는 누가 봐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 모습.

실로 터무니없을 정도의 강함을 보여주는 금발 사내의 위용에 저절로 몸이 떨린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으스대려고 했다니...’

그동안 가슴에 박아넣은 황금빛 사자 문양이 최고인 줄 알았던 그들.

하지만 오늘, ‘진짜’ 앞에 선 그들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신들의 현실을 깨닫는다.

“아직... 아직 더 싸울 수 있...”

철퍼덕-

엉망이 된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던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이 결국 정신을 잃고 연무장 바닥에 얼굴을 처박는다.

왕국 3대 기사단이라 불리는 사자기사단 전원이 단 한 사람을 상대로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

“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쓰러지는 빌헬름의 모습을 본 사자기사단원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빌헬름의 앞에 버티고 선 나의 존재가 두려웠던 모양인지, 그 누구도 선뜻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장님! 단장니임!”

유일하게 몸을 움직인 것은 사자기사단의 부단장 가르빈 알트로크(Garvin Altrock).

그가 허겁지겁 달려와 쓰러진 빌헬름의 상태를 살피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상관이 쓰러졌는데, 부하라는 것들이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라...”

사자기사단 이 놈들, 대체 어디까지 망가진 건지.

내 목소리에 담긴 언짢은 감정을 느꼈는지, 뒤늦게 바닥에서 엉덩이를 뗀 사자기사단의 기사들이 내 눈치를 보며 쓰러진 빌헬름에게 뒤늦게 다가온다.

그 한심스러운 모습에, 나는 더는 참지 못했다.

“... 알트로크 경. 단장님을 모시고 물러나 있게.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으셨지만,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니 생명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 거야.”

“예? 아... 예, 알겠습니다!”

본래는 훈련을 이쯤하고 이만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려던 것 같았는데, 어림도 없지.

착 가라앉다 못해 바닥을 뚫어버릴 것 같은 내 목소리를 들은 사자기사단의 부단장 가르빈은 냉큼 알겠다고 대답한 뒤 단장인 빌헬름을 업은 채 연무장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이한 것은 사자기사단의 단원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도 도와줄 생각을 않고 고양이 앞의 쥐 같은 꼴이 되어 가만히 서 있었다는 것.

거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 으...”

“모, 몸이 왜...”

“큽!”

그들의 팔다리를 옭아맨 보이지 않는 그물.

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뻗어 나간 무형의 기운이 빌헬름과 가르빈을 제외한 사자기사단 전원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 사자기사단.”

예의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내가 마치 종교 재판에 나선 이단심판관처럼 말했다.

“너희는 훈련을 계속한다. 내가 끝이라고 할 때까지 계속 일어서서 덤비는 거다.”

“예에?”

“아니, 그...”

내 말에 깜짝 놀란 단원들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려는데...

휭- 퍼어어억!

“꾸웨에에엑!!!”

내 발에 걷어차인 사자기사단의 단원 한 명이 멀찌감치 뒤로 날아가며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함부로 사자의 이름을 칭하던 ‘똥개’들을 향한 매타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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