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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59화 (159/197)

대계(大計) (3)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달린 듯한 큰 키에 바윗돌을 쌓아 만든 듯한 장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어 세상 사람들에게 ‘강철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고트프리트였다.

그는 사람을 맨손으로 찢어버릴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으나, 그런 그도 사람인 이상 등판에 검을 두 번이나 맞고도 무사할 순 없었다.

“크아악!!!”

등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격통에 고트프리트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과연 강철곰은 강철곰, 그는 등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흐트러진 자세를 회복한 후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휭- 푸화아아악!!!

고트프리트의 등에 검을 찔러넣고 다시 어둠 속으로 물러서던 암살자가 공중에서 두 조각 나며 사방으로 피를 뿌렸다.

그 암살자는 무려 상급 기사의 이목을 속이고 접근해 그의 몸에 칼을 꽂아 넣을 정도의 대단한 은잠술(隱潛術)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실력 자체가 고트프리트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암살자는 기습 상황에 최적화된 검을 평생토록 수련한 이들.

그 얘기인즉, 정면 승부에선 그들이 고트프리트를 이길 수 없다는 얘기였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눈앞에서 사람이 쪼개지고 뜨거운 피가 튀자 천생 기사인 고트프리트는 잔뜩 흥분하며 아픔을 잊었다.

후와아아앙-!!!

암살자 하나를 쪼개 버린 검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휘두르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강맹한지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어마어마했다.

“큭!”

자신의 허리께를 노리고 쏘아지는 고트프리트의 검을 보고 기겁한 암살자가 도망치던 몸을 돌려 자신의 검을 쥔 손에 있는 힘껏 힘을 불어넣었다.

완전히 피해내기엔 불가능한 상황, 어떻게든 고트프리트의 공격을 받아낼 심산인 듯했다.

까드득- 카앙! 퍼어억!!!

하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암살자의 검을 벌레 짓누르듯 뭉개고 지나간 고트프리트의 검이 암살자의 옆구리에 틀어박힌다.

중간에 암살자의 검과 부딪히며 살짝 그 기세가 누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몸통 절반 이상을 썰어버릴 만큼 고트프리트의 검에 실린 힘은 강력했다.

“커흐윽-”

콰직!

뭐라 비명을 내지르려던 암살자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분노한 고트프리트가 주먹을 날려 그의 머리통을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촤악- 철퍼덕!

머리통이 부서진 암살자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군다.

단 두 번의 칼질과 한 번의 주먹질로 암살자 둘을 해치워버린 고트프리트.

그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을 한 채 주변을 들러보았다.

아끼던 후배 기사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폭풍 기사단의 옌스 보나탈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다.

그의 목에 검을 찔러넣었던 암살자는 곧장 반격에 나선 주변의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에 의해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흘린 피가 적지 않았다.

옌스 말고도 목숨을 잃은 기사가 두 명이나 더 있었고, 병사들의 희생은 그 몇 배나 되었다.

대체 암살자 주제에 어떻게 이토록 고강한 실력을 지닐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라이에른-팔츠 백작령의 후계로 자라나 어렸을 적부터 여러 가지 고등 교육을 받은 고트프리트는 적들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하샤신.

저 강대한 제국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 피의 사신들이 왕국의 충신들에게 검을 들이댄 것이다.

대체 왜 제국의 적인 하샤신이 왕도 카를리온의 밤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국왕파의 수장인 아버지를 둔 기사 고트프리트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루트비히, 이 왕좌가 미친 자가 결국... 큭!”

분노한 고트프리트가 베겐스바흐 대공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하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린다.

“부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상처가 깊습니다! 여기, 붕대를 가져와라! 어서!”

등판에서 시뻘건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고트프리트의 몸 상태를 걱정한 주변 병사들이 질겁한 얼굴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하지만 고트프리트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나는 신경 쓰지 마라! 각하를 지켜라! 호위진을 펼쳐라!!!”

“예, 예엣!”

여기서 말하는 각하란 당연히 고트프리트의 주군이자 왕국의 군무대신이었고, 사적으로는 그의 아버지인 라이에른-팔츠 변경백 파울 루덴도르프였다.

다행히 파울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암살자의 칼을 맞고, 부하 여럿이 죽어 나가는 흉험한 광경이 벌어졌지만,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백전노장 파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긴, 그가 살면서 겪었던 암살 시도가 어디 이번 한 번뿐이랴.

온갖 수라장을 거치고 북부의 패자(霸者)가 된 그에게 이 같은 상황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끄흠...”

아비의 무사함을 확인하자마자 잊었던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악무는 고트프리트.

몸에 걸치고 있던 오크 가죽 갑옷의 품질이 원체 훌륭했고, 고트프리트의 단련된 상체 근육이 짐승 수준으로 탄탄했던 터라 암살자의 검이 장기에 닿을 정도로 깊이 박히진 않았다.

하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베인 상처에선 온 등판을 붉게 적실만큼 많은 피가 흘렀다.

전투의 흥분으로 통각이 둔해진 상황임에도 이렇게 아픈데, 땀이 식은 뒤엔 얼마나 통증이 클 것인가.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출혈량이 많다 보니 빠른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루덴도르프 경! 괜찮으십니까!!!”

눈에 익은 왕국군 복식을 한 병사 한 명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고트프리트에게 급히 달려온다.

눈을 가늘게 떠 자세히 바라보니, 녹색 빛깔에 고급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진 작은 유리병이었다.

“그게 뭐냐?”

“군무대신을 모시는 호위대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힐링 포션입니다. 소량이지만 회복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우선 이것으로 지혈부터 하시지요!”

“힐링 포션?!”

병사가 말한 유리병의 정체에, 고트프리트의 일그러졌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힐링 포션은 새벽녘에 처음으로 길어온 맑은 정화수를 아르닌 교의 주교급 이상 고위성직자들이 축성하여 만드는 일종의 성수로, 각종 상처의 치료와 구마(驅魔) 의식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기본적으로 주교급 이상의 직위를 지닌 고위성직자들이 많지 않고, 그들이 축성에 쏟아부을 수 있는 신성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힐링포션은 구하기가 극히 어려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파울 루덴도르프는 왕국의 군무대신이자 북부의 패자로 불리는 인물.

그 정도 되는 사람을 근거리에서 모시는 호위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힐링포션을 들고 다니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각하께서 사용을 허락하셨나?”

“물론입니다. 최대한 빨리 치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아, 감사한 일이군.”

“루덴도르프 경, 상처 부위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제가 바로 포션으로 처치해드리겠습니다.”

“음, 그래. 부탁한다!”

병사에게 등을 보인 고트프리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자신보다 작은 체구를 지닌 병사가 상처를 살피기 쉽도록 해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어떻게 이런 상처를 입으시고도...!”

고트프리트의 등에 난 상처를 확인한 병사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놀라워했다.

멎을 생각도 없이 철철 흘러나오는 붉은 피.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처를 입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고트프리트는 이런 상처를 두 군데나 입고도 맹렬하게 검을 휘둘러 두 명의 암살자를 쓰러뜨렸다.

과연 북부의 패자, 라이에른-팔츠 변경백을 수호하는 근위 기사단 ‘바르디안 가드’의 부단장다운 강인함이었다.

“루덴도르프 경, 죄송하지만 갑옷을 벗겨도 되겠습니까? 이대로라면 힐링포션이 갑옷에 막혀 밖으로 흐를 것 같습니다.”

“음...”

병사의 말을 들은 고트프리트가 잠시 망설인다.

직전에 암살자의 습격이 있었던 상황.

아직 그 현장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갑옷을 벗어도 될까 걱정이 되었던 거다.

그런 고트프리트의 생각을 눈치챈 것일까?

등 뒤의 병사가 재차 그에게 말했다.

“루덴도르프 경,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 출혈이 계속되면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힐링포션을 부으면 곧장 지혈이 될 거고, 회복도 빨라집니다. 지금 하셔야 합니다!”

“... 알겠다.”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에도 몇 번이나 힐링포션의 위력을 체험했던 고트프리트였기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병사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갑옷을 벗은 고트프리트.

점점 심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리는 그에게 병사가 말한다.

“루덴도르프 경, 이제 힐링포션을 붓겠습니다.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살이 타는 것 같은 뜨거운 느낌이 들 텐데, 잘 참아주십시오!”

“예전에 써본 적이 있어 잘 알고 있다, 어서 시작해라.”

“예, 알겠습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고트프리트가 곧 다가올 등 뒤의 통증을 예상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주르륵-

앞선 병사의 설명처럼, 힐링포션이 상처에 닿자 살이 타는 것처럼 뜨거운 느낌이 고트프리트의 등판 가득 느껴졌다.

“크흡...!”

알고 있어도 참기 힘든 고통에, 고트프리트가 불편한 신음을 흘리는데...

‘... 잠깐.’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평범한 병사가 힐링포션을 사용할 때의 느낌을 어떻게 알지?’

앞서 설명했듯, 힐링포션은 너무나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물건이었다.

고트프리트야 워낙 대단한 가문 출신에 상급 기사의 경지까지 오른 이였기에 힐링포션을 써 볼 수 있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든 물건이었다.

본 적도 없으니, 당연히 힐링포션을 상처에 부으면 어떤 느낌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하여 보통 사람들은 힐링포션을 상처에 부으면 대단히 상쾌하고 청량한 느낌이 들것이라 생각한다.

착각이었다.

현실은 그 정반대로, 힐링포션을 상처에 부으면 엄청나게 뜨겁고 강렬한 통증이 밀려든다.

다행히 그 느낌의 지속시간은 길지 않아서, 잠깐의 고통만 참으면 아주 놀라운 회복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외상(外傷)이 아닌 내상(內傷)에 사용하기 위해 힐링포션을 마시는 경우엔 실제로 청량한 기분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됐건 이 상황에 중요한 것은, 등 뒤의 병사가 힐링포션을 상처에 썼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는 결론은 하나.

‘... 이놈, 병사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고트프리트의 몸이 반응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자세에서 그대로 앞쪽으로 구르듯 쓰러지며 등 뒤의 병사와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촤아아아앙-!!!

검을 뽑는 동시에 앞쪽의 상대에게 검을 휘두르는, 일종의 발검(拔劍) 공격.

말로 설명하니 길지만, 이 모든 동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카아앙!

허나, 고트프리트의 검은 적의 몸에 닿지 못했다.

어느새 허리춤에서 검을 뽑은 병사가 고트프리트의 검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었다.

“크흐윽! 이런 개자식! 네 놈도 암살자였구나!”

뒤늦게 병사의 정체를 알아챈 고트프리트가 두 눈으로 살기를 줄줄 흘리며 으르렁거린다.

“...”

직전까지 고트프리트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충성심 어린 표정을 짓던 병사는 어디로 갔는지,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을 한 사내가 독기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다.

“저, 저!”

“부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멀리서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본 다른 이들이 크게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다들 왕국군 복장을 한 이가 달려가 고트프리트를 치료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갑자기 둘이 칼부림을 시작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진짜 최악의 위기는 그 직후에 발생했다.

비틀-

“윽... 이, 이게 무슨...?!”

자신을 속인 암살자에게 검을 겨누던 고트프리트가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시야가 흐려진다.

당장이라도 구토를 할 듯 속이 메슥거리고, 검을 든 손이 덜덜 떨린다.

“... 이런 제기랄...”

경험 많은 기사인 고트프리트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았다.

독(毒)이다.

“...”

자신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는 눈앞의 암살자.

그가 고트프리프의 상처에 부은 것은 힐링포션이 아니라 사막에 사는 여러 독사의 독을 모아서 만든 맹독이었다.

“가... 각하를... 지, 지켜...”

마지막 힘을 쥐어짜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안쪽에서부터 퉁퉁 부어버린 목은 목소리를 내뱉지 못했다.

“큭, 크르륵-!!!”

챙그렁! 털썩-

검을 놓치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고트프리트.

가물거리는 시선 끝,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암살자들과,

‘... 저, 저들은...!?’

새카만 암흑의 갑주를 두른 채 검을 뽑아드는 기사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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