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71화 (171/197)

왕국의 깃발 아래 (1)

베겐스바흐 대공이 자랑하는 가장 날카로운 검, 암흑기사단의 3조장 발데마르 가우더.

그의 인성은 당장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 감옥에 처박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기사로서의 실력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단장인 리하르트 그라나흐, 부단장 사울 리카르도의 뒤를 이어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었던 절정의 재능.

그러나,

콰직- 푸시싯!!!

“컥! 끄르륵...!”

그 발데마르의 가슴 한복판에 사자의 송곳니가 깊게 틀어박히며 붉은 피를 뿌렸다.

그가 지닌 대단한 재능으로도 감히 막아설 수가 없었던, 까마득한 경지에 오른 이가 펼쳐낸 공격의 결과였다.

“이런 개 같... 은...”

입가로 붉은 피를 울컥거리며, 발데마르가 원독(怨毒) 어린 눈빛을 쏘아낸다.

하지만 그 눈빛을 받아내는 상대,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리벤트로프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지옥으로 가라, 이 개자식아.”

“씨이... 발! 뭐라는...”

촤악- 휘이이잉- 푸화아아악!!!

발데마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가슴에 틀어박혔던 검을 빼낸 빌헬름이 그대로 발데마르의 목을 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휘잉- 철퍽!

바닥에 떨어진 발데마르의 머리통이 피로 붉게 물든 진창 속에 처박힌다.

“흠!”

자신이 쳐낸 발데마르의 머리통을 향해 손을 뻗는 빌헬름.

곧, 수십 년의 수련으로 다져진 그의 억센 손에 붙잡힌 발데마르의 머리통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적장의 목을 쳤다!!! 우리의 승리다!!!”

***

발데마르가 대공 측 병력의 공식적인 지휘관인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인물이 목이 잘려 적장의 손에 들려 있는 꼴을 보았으니, 대공 측 병력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당연지사.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대세의 불리함을 깨달은 인물은 추격대의 실질적인 지휘관 우베 발이었다.

“후, 후퇴! 후퇴하라아!!!”

그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남아있는(곧 죽을 예정인) 부하들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으윽!”

“씨, 씨발! 야, 튀어!!!”

“같이 가 이 새끼야!!!”

눈앞에 급속도로 쌓여가는 동료들의 시체를 볼 때부터 애초부터 도망칠 생각이었던 대공의 병사들.

그들 모두가 상관의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등을 돌려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평소 하늘처럼 떠받들던 암흑기사단의 기사들마저 모두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판국에 더 싸울 마음이 날 리가 없었다.

“도망쳐! 시발! 싸우지 말고 튀라고 이 새끼들아!!!”

“빠, 빨리 도망... 크악!!!”

“살려 주... 커억!!!”

하지만, 싸우다 도망치는 것도 계속 싸우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자신들보다 월등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적을 상대로 무사히 도망치는 건 더욱 어렵다.

심지어 그들의 적은 이곳 현장에 투입되었던 암흑기사단 3조 전원을 도륙 내고도 여전히 피가 끓고 있는 사자기사단의 맹수들이었으니...

“가긴 어딜 가! 뒈져 이 새끼들아!!!”

푸화악!!! 콰직!!!

“아악!!!”

“살려주세요! 살려... 켁!!!”

촤아아악- 콰직!

사방에서 붉은 피 안개가 피어오른다.

체력과 속도, 검술 실력까지.

도망치는 대공의 병사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자기사단의 기사들.

그들이 낫자루를 들고 밀밭에 뛰어든 농부처럼 도망치는 대공의 병사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 결과...

“허억! 헉! 허억!”

“대, 대장님!!! 이제 그만... 그만 뛰십시오!”

“크허억! 헉...! 헉! 그 새끼들은? 사자기사단 새끼들, 아직도 따라오냐?!”

“없습니다! 요제프 국왕을 확보해 전장을 이탈한 것 같습니다!”

“어흐흑!”

털썩-!

사자기사단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말에 그제야 안심한 우베 발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하아, 하아... 씨발... 이런 좆 같은...”

상태가 엉망이었다.

도망치는 와중에 몇 번을 자빠지고 구른 것인지, 긁히고 까진 상처가 온몸에 가득했다.

심지어 머리도 꽤 심하게 다쳤는지 이마를 타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깨달을 정도로 정신없이 이뤄진 도주였다.

“사... 살아 있는 이들은? 총 몇 명이야? 생존자, 얼마나 있어? 응?”

퀭하다 못해 이미 다 죽은 송장 같은 얼굴로 부하에게 살아남은 병력의 수를 묻는 우베.

그의 물음에, 부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대장님에 저까지 합쳐서, 다...”

“다...?”

“총원 다섯 명입니다, 흐으윽!!!”

“...?!”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부하의 답변에 황당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는 우베.

그제야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바닥에 엎어져 헉헉거리고 있는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나마도 한 명은 왼팔이 잘렸고, 한 명은 도망치다 등판에 칼을 맞았는지 갑옷 뒷부분이 시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머지 한 명 역시 귀 한쪽이 잘려서 없는 상태.

부하들의 처참한 꼴을 보니 팔다리 다 붙어 있는 자신의 몸 상태가 다행이란 생각이 든 우베였다.

“하아, 하아...”

우베는 생각했다.

국왕 요제프를 놓쳤다.

더불어 자신을 포함해 이쪽 방면으로 갈라져 나왔던 추격대 병력 총원 94명 중 89명이 죽었다.

사실상 전멸이라고 봐도 좋을 막대한 피해.

거기에 더해, 대공이 애지중지 아끼는 암흑기사단 1개 조 6명이 모조리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물론 상대가 사자기사단이었다는 상상 이상의 불행이 끼어든 탓이었지만, 결과를 중시하는 대공은 그런 변명 따윈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간신히 살아남아 왕도로 돌아간 우베와 그의 부하들을 기다릴 결론은 하나뿐.

바로, 죽음이었다.

“좆됐네, 씨발...”

털썩-

힘을 잃은 우베의 양팔이 거친 흙바닥 위로 떨어졌다.

***

빌헬름이 이끄는 사자기사단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국왕 요제프의 앞에 제때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주 아르닌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감사한 주신(主神)의 은혜 이전에 그들을 대공파의 눈을 피해 왕도 밖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한 나의 안배가 있었다.

왕성에 자리한 왕실근위대의 지하 연무장에서 매일 같이 검을 겨루며 서로에 대한 상당한 친분과 믿음을 쌓은 나와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나는 왕도 탈출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비밀스러운 수단을 통해 빌헬름에게 서신 한 통을 보냈다.

그 서신엔 왕도 탈출 작전의 내용과 더불어 사자기사단이 해주어야 할 임무가 담겨 있었다.

‘... 국왕 폐하 일행을 쫓아 라이에른-팔츠 영지로 향하는 척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왕도 서북쪽에 자리한 산속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다닐렌츠 상단 지부 건물의 비밀 지하 통로를 통해 탈출한 국왕 폐하께서 계실 겁니다.’

‘국왕 폐하를 호위해 다닐렌츠 영지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국왕파의 병력을 규합해 대공을 칠 것입니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빌헬름은 내가 이끄는 카넬리아 대비의 행렬이 왕도를 떠나 북쪽으로 출발한 뒤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나 움직였다.

왕도의 모두가 알 수 있을 법한, 떠들썩한 움직임이었다.

“국왕 폐하의 명이시다! 사자기사단 전원은 지금부터 완전무장한 채 라이에른-팔츠 영지로 향한다!”

“우리는 국왕 친위대, 폐하께서 있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건 충심(忠心) 어린 사자들이 함께할 것이다!”

갑작스러운 국왕 친위대의 출병 소식을 접한 대공파의 첩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 소식을 접한 대공파 측의 반응은 딱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 사자기사단까지 동원해 북쪽으로 향한 국왕의 행렬이 진짜인 것처럼 연막을 친다? 꽤 과감한 수를 쓰는군.”

“하지만, 속지 않는다.”

“진짜 국왕을 태운 마차는 남쪽 바이펠베르크 영지로 향했다! 그쪽으로 예비대를 제외한 암흑기사단 3개 조를 투입하라!”

내가 펼친 이중의 기만전술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대공파는 사자기사단의 출병을 그저 자신들을 속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았다.

그렇게, 사자기사단은 왕도를 떠나 북쪽으로 향하다가 그대로 방향을 꺾어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사자기사단은 자신들의 어린 주군이 대공이 보낸 추격대의 손에 붙잡히기 전에 현장에 도착했고, 그를 구해낼 수 있었다.

“폐하! 신이 너무 늦었사옵니다!!! 이 무거운 죄를 어찌 용서받아야 할지...!”

“아닙니다, 리벤트로프 경. 그대가 제때 와주어 이 별 것 아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감격한 얼굴로 다가와 바닥에 엎드린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을 일으켜 세우는 국왕 요제프.

그는 자신을 구해낸 빌헬름과 사자기사단의 공을 치하한 후 그에 앞서 처절한 싸움을 펼치며 끝끝내 자신을 지켜낸 왕실근위대의 기사, 카르스텐 바익스의 상태를 물었다.

“바익스 경은 전신에 많은 상처를 입었고, 특히 투창 공격에 당한 옆구리의 상처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응급처치를 하여 출혈을 진정시켰으니,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오...!”

카르스텐의 응급처치를 담당한 기사의 대답에 요제프가 눈물까지 보이며 기뻐했다.

“정말, 정말로 다행입니다! 바익스 경이 나를 살렸습니다! 그가 죽었다면 그 슬픔을 어찌 감당할지 자신이 없었는데...”

그의 처절했던 마지막 싸움을 떠올리던 요제프가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던 기사의 모습이 어린 소년왕의 가슴에 불로 지진 듯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폐하, 바익스 경의 용감한 분투(奮鬪)를 영원히 기억하소서. 그는 왕국의 모든 기사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영웅이옵니다.”

“당연히 그리할 것이오. 또한 사자기사단의 이름 역시 바익스 경의 곁에 놓일 것이오!”

“영광이옵니다, 폐하!”

“영광이옵니다아!!!”

왕국의 용맹한 사자들이 자신의 하나뿐인 주인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

사자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빠르게 북상한 국왕 요제프.

뒤늦게 소식을 접한 대공이 추격대를 편성해 그들의 뒤를 쫓았지만, 어중이떠중이 기마대도 아니고 왕국 3대 기사단이라 불리는 사자기사단이 쉽게 꼬리를 잡힐 리가 없었다.

그들은 놀라운 속도로 다닐렌츠를 향해 이동했고, 가는 곳마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마침내 왕도를 떠난 지 엿새째가 되던 날,

“다닐렌츠의 기사, 겔베르트 로이터가 왕국의 주인이신 국왕 요제프 3세 폐하를 뵙습니다!!!”

국왕 일행은 이제는 다닐렌츠의 속령(屬領) 중 하나가 되어버린 루테니아(Rutenia)의 남쪽 월경지에서 5백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달려온 다닐렌츠의 기사 겔베르트를 만날 수 있었다.

“로이터 경, 반갑소. 그대와 그대가 이끄는 다닐렌츠의 정병(精兵)들을 보니 변란으로 인해 춥고 두려웠던 과인의 마음이 비로소 안정을 찾는 듯 하오.”

소년왕의 기꺼운 음성을 들은 겔베르트가 고개를 아래로 향한 채 대답한다.

“폐하, 이제 더는 두려우실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다닐렌츠의 깃발 아래 있는 모두가 폐하를 모시기 위해 일치단결하며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한 겔베르트가 국왕 요제프, 그리고 그를 호위해 이곳까지 온 사자기사단의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저희 다닐렌츠 군이 폐하와 사자기사단의 영웅들을 호위할 것입니다. 왕국의 깃발 아래, 모두에게 영광이 있으라!”

***

그로부터 이틀 뒤...

“폐하, 신 왕실근위대장 데미언 카릴베르크! 대비마마를 무사히 라이에른-팔츠 영지로 모시라는 폐하의 명령을 완수하고 돌아왔나이다!”

나는 그토록 그리웠던 나의 영지,

다닐렌츠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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