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76화 (175/197)

왕국의 깃발 아래 (6)

남작령 부이텐베르크가 자랑하는 최정예 무력대인 철쇄기사단은 단장과 부단장, 4개조 각 12명씩을 합쳐 총원 5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헌데, 방금 쏟아진 화살 공격에 그 50명의 단원 중 무려 7명이 낙마(落馬)하며 전선에서 이탈했다.

“대형 유지! 대형 유지이이이!!!”

“철쇄기사단 전원 방패를 들어라! 적의 화살에 유의하라!!!”

“시발 이거 뭔데? 뭔 화살이 이따위야!?”

“또 온다!!! 피해라아아아!!!”

슈슉! 슉! 슈슈슉!

예상치 못한 적의 공격에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크게 당황한 철쇄기사단의 단원들이다.

말에서 떨어진 동료 중 몇몇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머리와 목, 심장 부근에 화살을 맞아 절명(絶命)했다.

팔과 다리, 어깨 등 당장 목숨에 지장 받지 않는 부위를 맞은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 역시도 화살에 실린 힘이 워낙 강력한 탓에 몸의 중심을 잃고 말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철쇄기사단의 모든 단원들은 질 좋은 강철을 두드려 만든 플레이트 아머(Plate Armor)를 입고 있었다.

휘하 기사단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부이텐베르크 영주가 큰마음 먹고 마련해준 상급의 방어구였다.

어지간한 화살 공격 따위는 강철 특유의 방어력으로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플레이트 아머.

하지만 직전의 화살 공격은 그런 플레이트 아머를 꿰뚫고 들어가 철쇄기사단의 골육을 부수고 찢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카아앙!

“큭!”

철쇄기사단의 조장급 기사 한 명이 자신의 목덜미로 날아든 묵빛 화살을 가까스로 검을 휘둘러 막아낸다.

자신도 모르게 잇새로 흘러나오는 신음.

‘화살에 어찌 이 정도의 힘이...!’

검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낸 오른손이 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쉽게 가시지 않은 충격에 정신마저 얼얼한 기분이었다.

‘설마... 철시(鐵矢)?!’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노린 화살의 정체가 강철을 두드려 만든 철시임을 깨달은 그가 다급하게 주변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이 쏘는 건 철시다! 함부로 막으려 들지 말고 최대한 피해라!!!”

“뭣이!?”

부하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철쇄기사단의 수장 제바스티안 벨리치가 이를 악물었다.

현재 철쇄기사단은 돌격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한데 뭉친 대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토록 무지막지한 화살 공격 앞에서 이런 대형을 유지하다간 더 큰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컸다.

‘흩어져야 한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판단을 내린 제바스티안이 천둥처럼 큰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외친다.

“철쇄기사단 산개(散開)! 모두 흩어져라!!!”

“하!!!”

콰콰콰콰콰콰!

제바스티안의 명령이 떨어진 직후 순식간에 대형을 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철쇄기사단.

그토록 정신없고 급박한 와중에도 수장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과연 왕국 내에 명성 높은 기사단다웠다.

하지만,

푸푹! 푹!

“카악!!!”

“크허억!!”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날아든 묵빛의 철시들은 반응이 늦었던 철쇄기사단원의 갑옷을 여지없이 꿰뚫어내고 있었다.

한편, 직전 대공파의 주둔지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톡톡한 전과를 올리고 돌아온 사자기사단의 수장 빌헬름 리벤트로프.

짧지만 치열했던 전투의 결과로 한껏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수하들과 함께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던 그가 적 기사단을 윽박지르듯 쏟아지는 아군의 화살 공격에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정말 대단하구나!”

얼마 전 다닐렌츠 백작이 궁수들로만 구성된 특수부대가 있다는 말을 전했을 땐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그였다.

기본적으로 빌헬름은 기병(騎兵)의 돌격과 보병(步兵)의 전열유지가 전쟁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전술 개념의 소유자.

그런 그에게 궁병의 존재란 기병과 보병의 주공을 돕는 부차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상식을 일거에 뒤집는 광경에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슈슈슈슉! 슈아악! 슈슈슉!

적의 기사단을 향해 쉴새 없이 쏟아지는 화살비.

처음의 공격은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듯, 그 공격은 점점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전장에 쏟아져 내리는 묵빛 강철의 폭풍.

전쟁터에 나선 이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살육이 그의 눈앞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 언제까지 쏘는... 컥!”

“단장님! 위험합니다! 철시에 담긴 힘이 너무 강하... 크흑!”

“크아아악!”

“피해! 피해라아아아아!”

“커흐윽!!!”

터텅! 텅! 터어엉!!!

둔탁하게 울려 퍼지는 전장의 소음.

무섭게 날아든 강철 화살이 철쇄기사단의 플레이트 아머를 찢어발기고, 투구를 꿰뚫는 소리였다.

대체 화살의 위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저런 결과가 나온단 말인가?

“진짜 미쳤다! 그 철쇄기사단을 저렇게 쉽게 막아내다니!”

“그냥 막아내는 게 아니라 완전히 압도하고 있잖아?!”

“부이텐베르크의 철인(鐵人)도 별수 없네. 하긴, 나였어도 저런 공격 앞에선 할 수 있는 게 없겠어!”

사자기사단장 빌헬름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아군 장병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궁수대의 위력에 탄복하던 그때,

“어떻습니까, 리벤트로프 경. 우리 다닐렌츠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手)가.”

“아... 백작 각하!”

어느새 빌헬름의 곁으로 다가온 다닐렌츠 백작, 데미언 카릴베르크가 한껏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닐렌츠의 엘리트 궁수부대, ‘슈탈레겐’이라고 합니다.”

“슈탈레겐...”

데미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다시 한번 곱씹는 빌헬름.

슈탈레겐(Stahlregen).

‘강철비’라는 뜻으로, 그들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정말 놀랐습니다. 각하께서 다닐렌츠에 궁수들로만 이루어진 특수한 부대가 있다고 하셔서 약간의 기대는 했지만, 그게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제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지만 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하하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위력을 낼 수가 있는 겁니까? 아무리 철시를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그 단단한 플레이트 아머를 뚫어버릴 줄이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묻는 빌헬름에게, 데미언이 가볍게 웃으며 그 비결을 전해주었다.

“기본적으로 슈탈레겐에 소속된 궁수들은 각 지역에서 ‘신궁(神弓)’으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빼어난 활 솜씨를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다닐렌츠는 물론이고 루테니아와 바렌부르크, 케른하임과 트란베르크, 안할트 등 주변의 다른 영지에서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고 불러모은 인재들이지요.”

“막대한 보상이라면...”

“간부급이 아닌 슈탈레겐의 평대원들도 모두 타 부대 백인장 이상의 봉급을 받습니다.”

“허...”

“거기에 더해, 쓰는 무기 자체가 워낙 대단합니다. 저 친구들이 쓰는 활이 보이십니까? 다닐렌츠 전역에서 잡아들인 트롤의 갈비뼈를 기반으로 질 좋은 목재를 더해 만든 활대에 오크의 힘줄을 뽑아 만든 활시위를 걸어 만든 특수한 활입니다. 화살 또한 특별하지요. 리벤트로프 경, 혹시 아이젠탈 광산을 아십니까?”

데미언의 물음에 빌헬름이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허! 이 왕국에 아이젠탈 광산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닐렌츠가 자랑하는, 왕국 최고의 철광석 산지 아닙니까?”

“하하, 맞습니다. 저들이 쓰는 철시가 바로 그 아이젠탈 산(産) 강철을 수백 번 두드려 만든 것이지요. 플레이트 아머를 여러 번 꿰뚫어도 화살촉이 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허...”

데미언의 설명을 들은 빌헬름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슈탈레겐에 소속된 궁수들의 기량이 대단한 수준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들고 있는 무기의 수준이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이었던 거다.

‘트롤의 갈비뼈에 오크의 힘줄, 거기에 아이젠탈 산 강철로 만든 철시까지...’

활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간 원자재의 가격만 해도 어림잡아 수십 골드는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미친 듯이 날려대는 화살의 가격은 또 얼마인가.

모르긴 몰라도 저 묵빛 철시 한 대의 가격이 나무를 깎아 만든 보통이 화살 열대여섯 대의 가격과 맞먹으리라.

“... 정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한 부대였군요.”

“예, 그렇습니다.”

슬슬 정리되어 가는 전장으로 고개를 돌리며, 데미언이 말을 맺는다.

“원래, 전쟁은 돈으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절정의 실력을 지닌 엘리트 궁수들로만 이루어진 다닐렌츠 영지의 특수부대, 슈탈레겐.

내로라하는 실력을 자랑하는 백 명의 가려 뽑은 궁수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뽐내는 사내가 있었다.

“숨도 못 쉬게 몰아붙여라! 쏴! 멈추지 말고 쏴라!!!”

위엄 서린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슈탈레겐의 수장, 다닐렌츠의 기사 엔리케 아르미엔토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적들을 응시한다.

그의 주군인 다닐렌츠 백작이 수백, 아니 수천 골드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길러낸 슈탈레겐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자리.

그 슈탈레겐의 수장인 엔리케로서는 주군인 다닐렌츠 백작에게 완전무결한 승리를 선보여야 할 의무가 있었다.

퉁! 퉁! 투웅! 퉁!

그의 손이 마치 시곗바늘처럼 정확한 간격과 속도로 움직이며 연달아 네 대의 철시를 쏘아내었다.

푹! 푹! 푸욱! 푹!

그리고 그의 손을 떠난 네 대의 철시는 조금의 빗나감도 없이 모두 목표물에 안착했다.

두 발은 말에게, 다른 두 발은 사람에게.

“키히이이이잉!!”

퍼어억!!!

몸통 깊숙이 강철 화살을 얻어맞은 철쇄기사단의 군마 두 마리가 구슬픈 비명과 함께 앞다리를 꺾으며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커헉!”

“끄르륵!”

그 위에 올라타 있던 기사 두 명 역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말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이미 말에서 떨어지기 전 머리와 목덜미에 각각 철시 한 발씩을 허용한 그들이었기에 갑작스러운 낙마에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이노오오오옴!!!”

수족처럼 아끼던 부하들이 너무나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모습에 분노한 철쇄기사단의 단장 제바스티안 벨리치.

충격과 경악, 슬픔으로 얼룩진 그의 두 눈동자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곧, 전황의 어려움에 퇴각을 생각하던 그가 별안간 말머리를 돌려 국왕파의 진영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한, 최후의 돌격이었다.

“응? 저 새끼 갑자기 뭐야? 야, 집중 사격! 말에서 떨궈 버려라!!!”

“알겠습니다아아아!!!”

슈슈슈슈슈슉!!!

엔리케의 명령을 받은 슈탈레겐의 대원들이 돌격해 들어오는 제바스티안을 향해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하지만,

태에엥! 탱! 카아아앙! 탱! 티이잉!

제바스티안은 모든 기사의 꿈이라 불리는 상급 기사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대단한 실력자.

그가 철쇄기사단의 평단원들과 격이 다른 몸놀림을 선보이며 날아드는 화살을 침착하게 쳐내기 시작했다.

“대, 대장님! 저 새끼한테 화살이 먹히질 않습니다!!!”

“팔십 걸음... 아니, 이제 육십 걸음 남았습니다!!!”

쏟아지는 화살비를 뚫고 눈이 뒤집혀 미친 듯이 달려오는 제바스티안의 모습에 경악한 몇몇 슈탈레겐의 대원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원거리에서는 경천동지할 위력을 보여주는 슈탈레겐의 대원들이었지만, 그 능력을 한쪽에만 쏟은 탓에 근거리 전투에선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야이씨, 비켜 봐!!!”

사태의 심각함을 알아챈 엔리케가 부하들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흐으으으읍!!!”

한껏 부풀어 오른 그의 팔 근육이 오크의 힘줄을 여러 번 꼬아 만든 활시위를 최대한으로 잡아당긴다.

그 활시위에 걸린 것은 보통의 철시보다도 훨씬 더 크고 두꺼운 화살이었다.

“이거나 먹고 뒈져라아아아!!!”

투우우우우우웅!!!

슈탈레겐의 수장인 엔리케에게만 지급되는, 또한 그만이 쏘아낼 수 있는 대(對) 기사 저격용 화살이 마침내 주인의 손을 떠난다.

쐐에에에엑!!!

화살의 크기만큼이나 남다른 파공성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멀리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을 만큼 명확하고 커다란 굉음(轟音).

그리고 그 소리는 목표물인 철쇄기사단의 수장, 제바스티안에게도 닿았다.

‘...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쳐내야 한다.

“흐으으읍!!!”

통나무처럼 두꺼운 두 허벅지로 말의 몸통을 단단히 붙잡은 제바스티안이 왼손에 쥐었던 말고삐를 놓는다.

이어,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붙잡아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하아아아압!!!”

콰아아앙!!!

검으로 화살을 후려치는데, 무슨 망치로 벽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한 손목의 통증과 팔 전체의 충격이 뒤따랐지만, 제바스티안은 끝끝내 자신에게 날아든 화살의 방향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퍼어어어억!!!

물이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가 터져 나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들던 화살이 옆구리에 꽂혔다.

“커흐으으읍!!!”

마치 맹수에게 물어뜯긴 듯, 왼쪽 옆구리 부근의 살점이 뭉텅 뜯겨나간 제바스티안이 몸을 뒤집으며 말 아래로 떨어진다.

엔리케가 쏘아낸 화살에 담긴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몸이 홱 뒤집힌 탓에 머리부터 떨어진 제바스티안.

콰지직- 퍼억!!!

그는 그대로 머리통이 깨지고,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명성 높은 기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불행한 최후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대공파에겐 실로 끔찍한 아군의 죽음이었지만, 국왕파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자랑스러울 광경.

화살 한 발로 왕국에 명성 자자한 기사단의 수장을 거꾸러뜨린 엔리케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다닐렌츠의 슈탈레겐이 철쇄기사단을 무너뜨렸다!!!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트란베르크 북부에서 벌어진 국왕파와 대공파의 첫 대결은, 그렇게 사자기사단과 슈탈레겐의 눈부신 활약 속에 국왕파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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