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77화 (176/197)

왕국의 깃발 아래 (7)

나의 혹독한 지도로 새롭게 벼려낸 왕국의 검, 국왕 친위대 사자기사단과 다닐렌츠의 압도적인 자금력을 쏟아부어 키워낸 엘리트 궁수부대 ‘슈탈레겐’의 활약으로 대공파와의 서전(緖戰)을 승리로 장식한 국왕파.

그 뒤 이어진 전투의 결과도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릿수만 많을 뿐이지 제대로 뭉치지도, 싸울 줄도 모르는 대공파의 귀족 병력을 상대로 우리 국왕파의 병사들(사실상, 다닐렌츠 영지군이 거의 대부분이었다)은 한 수 위의 전투력을 선보였고, 결과 또한 가져왔다.

연전연승(連戰連勝).

싸웠다 하면 이겼고, 전투를 거듭할수록 우리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 좋지 않군.”

국왕파 주둔지 한가운데 세워진 지휘관 막사.

국왕파의 사령관인 나와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리벤트로프, 슈탈레겐의 수장인 엔리케 아르미엔토를 포함한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모인 회의 자리였다.

회의 탁자 위엔 거듭된 국왕파의 승리를 알려주는 전투 결과 보고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군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광경이건만, 나의 표정을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 다들 인지하고 있겠지만, 대공파 놈들은 지금 우리에게 소모전을 강요하고 있다.”

긴장감이 실린 나의 목소리에 자휘관 막사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내 입에서 나온 ‘소모전’이라는 표현에 이 자리의 모두가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사자기사단의 돌격으로 본격적인 두 세력 간의 전투가 막이 오르기 전, 국왕파와 대공파의 병력은 각각 8천과 1만5천 정도였다.

사실상 두 배에 가까운 양측의 병력 차이.

그리고 전투 시작 열흘째에 접어든 지금, 그 차이는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벌어져 있었다.

전투 중 사망한 병력과 크게 다쳐 전력 외로 분리된 이들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우리 국왕파의 병력은 7천하고도 2백 명 정도.

수치상으로 약 8백 명 정도의 손실이 있었다.

반면, 대공파의 병력 손실은 그 세 배가 넘었다.

적진의 사정이었기에 그 숫자를 아주 정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우리 측 정보부의 분석에 따르면 대공파 내에선 같은 기간 대략 2천5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교환비로 따진다면 1대3 이상의 압도적인 승리.

문제는, 우리가 대공파의 병력을 깎아내는 속도보다 병력이 새로 충원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거였다.

그 결과,

“대공파 측에 잠입해 있는 저희 측 정보원들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현재 대공파의 병력은 1만 7천 명 규모로 파악됩니다.”

“허!”

“미친...!”

내가 매일 옆에 끼고 다니다시피 하는 다닐렌츠 정보부 장교의 보고 내용을 들은 국왕파의 주요 지휘관들이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지난 열흘 동안 그 고생을 하며 적의 병력을 깎아놨는데, 오히려 숫자가 더 늘었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니... 대공파 놈들은 대체 어디서 그렇게 병력이 자꾸 오는 겁니까?”

“루트비히 이 새끼, 뭔 마법주머니라도 차고 다니나...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아무리 허수아비 같은 잡졸들이라고 해도 쪽수에는 장사가 없는 것인데...”

“지금이야 전쟁 초반이라 우리 측의 사기도 높고, 체력도 받쳐주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결국 우리 병사들이 버티지 못하게 될 겁니다!”

금세 어수선해지는 막사 안.

각자의 생각을 토로하는 지휘관들의 얼굴에 불안함과 우려가 역력했다.

“각하, 혹시 대공의 병력이 어디서 자꾸 충원되는 것인지 파악이 되었습니까?”

모두를 대표하여 내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사자기사단장 빌헬름.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답을 해주었다.

“첩보 분석 결과, 지금 늘어나고 있는 대공파 병력의 대부분은 기존 대공파 소속의 귀족들이 아니라 새로이 대공파에 줄을 대고 싶어하는 귀족의 병력들로 밝혀졌다.”

“아니, 대체 왜...”

“루트비히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왕실 직할령의 땅을 쪼개어 나눠주겠다 선언한 모양이다.”

“예?!”

“허,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왕실의 재산을 죄다 갈라서 나눠주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전쟁에서 이겨 어찌어찌 왕좌에 오른다고 해도 왕실직할령이 사라진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땐 왕권이 부실해질텐데...”

왕실직할령, 이른바 ‘카를란트(Karland)’는 왕실의 재정을 탄탄하게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왕국의 재산이었다.

헌데 그런 카를란트의 땅을 갈라 귀족들에게 나눠준다고?

아무리 봐도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듯한 루트비히의 행동에 내 설명 들은 모두가 웅성거렸다.

“지금의 루트비히는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그저 왕좌에만 앉을 수 있다면, 왕국의 사정이야 어찌 되는 상관없다는 거지.”

“... 말 그대로, 왕좌에 눈이 멀었군요.”

“그래, 일종의 광기(狂氣)랄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

권력에 눈이 먼 루트비히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생 왕좌를 갈망해온 그 사내의 대책 없는 폭주(暴走)를 제어하는 임무를 맡아 싸워나가야 했다.

“뭐, 해결책이야 간단하다.”

“...?”

툭 던져놓은 나의 말에 장내가 조용해진다.

모두가 내 입에서 나올 다음 말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

나는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 국왕파가 나아갈 길을 정해주었다.

“숫자의 우위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면 된다.”

“...!”

“대공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보여주면, 놈의 곁에 달라붙어 왕권 찬탈의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던 놈들이 생각을 달리하겠지. 그러니...”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두에게 말했다.

“... 다음 공격엔 내가 직접 나서겠다. 놈들에게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해주지.”

그렇게, 국왕파의 사령관인 내가 직접 전장에 나서기로 결의한 다음 날,

“와라, 루트비히의 개들아! 내가 바로 국왕파의 총사령관, 왕실근위대장 다닐렌츠 백작이다!!!”

해가 뜨기가 무섭게 우리 군 주둔지 앞으로 개떼처럼 몰려든 대공파의 병력을 향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을 감행했다.

내가 천금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엘리트 궁수부대, 슈탈레겐의 든든한 엄호사격과 함께였다.

***

“자, 우리가 영주님 앞으로 시원하게 길을 뚫어드리는 거다! 쏴라아아아아!!!”

“슈탈레겐! 사격 개시이이이이!!!”

투투투퉁! 투투퉁! 투퉁! 투투투투투퉁!!!

백여 명의 궁수들이 한꺼번에 튕겨내는 활시위 소리가 마치 뜨거운 여름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들렸다.

‘하긴, 생각해보니 비슷할 수밖에 없나?’

슈슈슈슈슈슈슈슈슉!

머릿속에 떠오른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곧 나의 충성스러운 수하들이 만들어낸 강철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상에 도래한 끔찍한 풍경!

푸푸푹! 푹! 푸푹! 푸푸푸푸푹!!!

“끄아아아악!!!”

“사, 살려... 커흡!!!”

“내 눈! 내 누우우우운!!!”

“이 시발! 방패가 그냥 뚫리잖아! 이거 뭔데?!”

“퇴각해, 퇴각! 그 궁수대가 또 나타났다!!!”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 슈탈레겐의 철시가 빈약하기 그지없는 대공파 병사들의 투구와 갑옷을 꿰뚫고 들어가 그들의 육신을 헤집는다.

전쟁 개시 첫날 부이텐베르크의 철쇄기사단을 말 그대로 ‘녹여버렸던’ 그 정체불명 궁수대의 공격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미친 새끼들이 저 비싼 화살을 대체 며칠째 쏴 갈기는 거야!?”

“아가리 닥치고 전진해라! 저기 놈들의 총사령관이 있다! 저놈만 잡으면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좆 까는 소리 하지 말고 네가 가서 잡아 봐 그럼!”

“끄르륵...! 이 화살 좀 뽑... 뽑아주...!”

허나, 며칠 전과 다르게 그 철시 공격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두렵기 그지없는 하늘에서의 공격이 잠잠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대공파의 병사들.

“공격이 그쳤다!!! 다시 전지이이인!!!”

“고개 쳐들어 이 새끼들아! 화살 쏘는 거 이제 끝났다고!”

“놈들의 화살이 다 떨어졌다! 두려워 말고 전진하라!!!”

하지만 그 뒤로 밀어닥칠 폭풍의 정체를 예상했다면, 그들은 감히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 없었을 것이다.

“흐랏차아아아!”

슈아아아악- 촤촤촥! 촤악!

“끄아악!”

“커흡!!!”

강철의 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금발의 사신(死神)이 강림했다.

내가 마음먹고 휘두른 도끼창에 무참히 베이고 찢긴 적의 팔다리와 머리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같은 뼈와 살로 이뤄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쉽게 부서지고 깨어지는 육신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나의 무자비한 근력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번 대공파와의 내전을 앞두고 새로이 장만한 무기, 도끼창 ‘낙뢰(落雷)’의 절륜한 위력 또한 눈앞의 광경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멈춰라, 다닐렌츠 백작! 내가 바로 크루하우젠 제일의 기사, 다비트...”

휘우웅- 콰직!!!

내게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가 낙뢰의 도끼날에 내리 찍힌 대공파의 기사가 머리부터 가랑이까지 완전히 두 조각 나 말 위에서 떨어졌다.

도끼 자체의 절삭력이 워낙 엄청난 터라 굳이 힘을 강하게 주어 내리칠 필요가 없었다.

“하하! 좋구나!”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대단한 무기의 성능을 확인한 내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의 육신과 질긴 가죽 갑옷을 통째로 베어내는 일이 마치 날을 잘 세운 칼로 종이를 가르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게 느껴졌다.

기존에 내가 사용했던 고급 등급의 초대형 강철 글레이브 역시도 빼어난 성능을 지닌 무기였다.

하지만 이 낙뢰의 대단함은 그 글레이브를 동네 대장간에서 산 싸구려 철검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낙뢰의 아이템 등급이 예전 무기보다 두 단계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미쳤네, 진짜!’

내가 지닌 육체적 능력이 워낙 뛰어난 터라 지금까지는 무기에 대한 욕심이 그리 크지 않았었다.

싸구려 철검은 고사하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아무 나뭇가지 하나만 들고 싸워도 어지간한 기사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뢰를 사용해보니, 왜 그렇게 기사들이 값비싼 무구(武具)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뭐, 전투에 들어가는 피로감 자체가 아예 없는 수준 아닌가!

‘운철 무기, 진짜 사기네!’

지난 몇 년간 영지 이곳저곳에서 운철(隕鐵)이 발견될 때마다 훗날 새로운 무기를 만들 생각으로 그것을 쓰지 않고 착실히 모아 두었던 나였다.

그리고 얼마 전, 그렇게 모은 운철의 양이 하나의 무기를 벼려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나는 그 즉시 왕국 내에 단 3명밖에 없다는 ‘거장(巨匠)’ 등급의 대장장이를 찾아가 새로운 무기의 제작을 의뢰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도끼창 낙뢰.

내가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유일(Unique)’ 등급의 무기였다.

“무엇하느냐? 나를 잡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나? 어서 덤벼 봐라!!!”

시퍼렇게 날이 살아 있는 낙뢰를 치켜든 채로, 나는 적들을 윽박질렀다.

나를 잡기 위해 몰려든 적병들로 빽빽하던 주변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분수처럼 치솟는 붉은 핏물.

낙엽처럼 흩날리는 적들의 팔다리.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쉬이 덤벼들 수 없을 광경.

그렇다면,

“안 온다면, 내가 가겠다!”

몬스터 오록스의 피를 타고난 거대 흑마, 블리츠의 배를 걷어차며 내가 소리쳤다.

“가자, 블리츠! 놈들을 짓밟아주는 거다!!!”

“크르릉! 키히히히히잉!!!”

나는 오랜만에 맛보는 전장의 뜨거움에 한껏 흥분한 블리츠의 고삐를 잡아채며 다음 목표물을 향해 달렸다.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적진의 한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화려한 갑주를 차려입고 있는 이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

대공파의 지휘 막사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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