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80화 (179/197)

암흑은 사라지고 (2)

국왕파 진영에서 홀로 달려온 정체불명의 기사에게 검독수리 기사단의 수장, 야닉 카이달(Jannick Kaidal)의 목이 날아가던 순간,

“단장님!!!”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단장님께서...”

야닉의 뒤에서 자신만만하게 돌진하던 검독수리 기사단의 단원들은 믿기지 않은 상관의 죽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악의 목소리를 내었다.

야닉이 누구인가.

얼마 전 초인(超人)의 경계선이라 불리는 상급 기사의 벽을 돌파한 검독수리 기사단 최강, 최고의 기사였다.

베겐스바흐 대공국 전체로 보아도 야닉보다 확실하게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기사는 서넛 정도에 불과할 정도.

한데, 그런 이가 저리도 허망하게 죽음 맞이하다니?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이 현실에 검독수리 기사단의 단원들은 눈이 돌아버렸다.

“이런 시발새끼가아아아!!!”

“죽여버려!!!”

“잡아! 반드시 잡아!!!”

“개새끼야! 거기 서라아아아아아!!!”

앞으로 달리던 말머리를 돌려 야닉의 목을 베어낸 정체불명의 국왕파 기사를 뒤쫓기 시작한 검독수리 기사단.

그들이 자신을 추격한다는 것을 알아챈 국왕파의 기사는 냅다 말 배를 걷어차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흐랴아앗!!!”

슁- 푸화악!!!

“크아악!”

“커흡- 끄륵...!”

그 기사는 그저 도망만 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국왕파의 진영을 향해 천천히 전진 중이던 베겐스바흐 대공국 중장보병대의 측면으로 파고 들어가 사방에서 뻗어오는 칼날을 피해가며 검을 휘둘렀고, 그의 검에 베이고 찔린 병사들의 피해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거냐 이노오오옴!!!”

“기사의 수치다! 거기 서라아아아!!!”

“아악!”

“에잇! 비켜라, 비켜!!!”

그 바람에 뒤를 추격하던 검독수리 기사단은 아군 중장보병들과 동선이 엉키며 충돌, 큰 피해를 입었다.

퍼어억! 콰직!!!

“크아악!”

“이 미친 새끼들아! 뭐 하는 거야!!!”

자식처럼 아끼는 수하들이 검독수리 기사단의 군마와 충돌해 넘어지고 짓밟히자 분노한 중장보병대의 베테랑 백인대장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라면 신분의 차이 때문에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상대였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말이 함부로 튀어나왔다.

“으으! 놓치지 마라!!! 반드시 사로잡... 아니, 죽여야 한다!!!”

하지만 모시던 수장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극도로 분노한 검독수리 기사단의 귀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어이없게 죽은 단장 야닉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한편, 그들의 추격을 받는 국왕파의 기사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적진 한복판을 마치 동네 뒷산 산책하듯 여유롭게 내달리고 있었다.

“아주 눈깔이 돌았네, 이 새끼들... 어디 한번 따라와 봐라, 흐읍!”

휘우웅- 터텅! 텅! 푸화악!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에서 뻗어진 대공파 병사들의 창대가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가고, 주인 잃은 목에서 뿜어진 붉은 피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고속으로 달리는 말 위에서 전후좌우로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결코 몸의 중심을 잃지 않는 절정의 기마술(騎馬術).

동시에 적의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 들어가는 탁월한 판단력과 시야를 겸비한 사내.

그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향해 맹수처럼 포효했다.

“내가 바로 다닐렌츠의 기사, 겔베르트 로이터다!!!”

***

“... 머저리 같은 놈들.”

멀리, 대공파 진영의 후방에서 전황을 살피던 거구의 사내.

베겐스바흐 대공 친위대(親衛隊), 암흑 기사단의 수장 리하르트 그라나흐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단 한 명의 적에 의해 농락당하는 아군 병력의 모습에 분노가 치민 까닭이다.

“하, 저러니 검독수리 놈들이 평생 우리 암흑 기사단의 뒤나 닦아주는 신세라는 말을 듣는 거 아니겠습니까?”

“푸흣, 그러게 말이야.”

“야닉 단장이 상급 기사 된 후로 지들도 뭐 된 것처럼 뻐기더니만... 개죽음도 저런 개죽음이 없네.”

리하르트의 옆에 있던 암흑 기사단의 부하들이 수장을 잃은 검독수리 기사단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안 그래도 평소 암흑 기사단을 자신들의 라이벌로 여기던 검독수리 기사단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던 차였다.

자신들의 기량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믿는 암흑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그 같은 검독수리 기사단의 모습은 가소로운 수준을 넘어서서 상당한 불쾌함을 느끼게 했던 것.

하지만 이제 기사단의 수장이던 야닉을 잃었으니, 그 건방진 태도도 한풀 꺾이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보통 놈이 아니군.”

리하르트의 시선이 대공파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유유히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는 기사의 뒷모습으로 향한다.

검독수리 기사단의 단장 야닉 카이달은 명색이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오른 사내.

그런 이의 목을 저렇게 일검에 쳐버렸다는 것은 저 기사 역시 같은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뜻이 된다.

리하르트의 수하들 역시 수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맞습니다. 야닉 단장의 목을 일검에 날려버렸으니...”

“쓰읍, 야닉 단장이 방심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방심했다 하더라도 상급 기사의 목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게 쉽냐?”

“하긴... 그럼, 저놈도 상급 기사라는 건가?”

“그렇겠지. 방금 우리 진영을 휘저으며 보여주었던 몸놀림... 상급 기사가 아니고서야 적진 한복판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여줄 수가 있겠어?”

“... 시끄럽다.”

“옙, 죄송합니다.”

단 한마디로 부하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리하르트.

뒤이어, 그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한다.

“준비해라, 국왕 요제프는 우리가 잡는다.”

***

“전열을 갖춰라! 부상자는 뒤로 빼! 빈자리를 채워라아아아!!!”

“움직여! 움직이라고 이 새끼야!!!”

“야 이 새끼야! 정신 안 차려? 뒈지고 싶어?”

“빨리 움직이라고 했잖아! 뭐해 이 새끼들아! 국왕파 놈들한테 모가지 따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는 거냐?”

겔베르트의 1인 돌파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전열을 회복하기 위해 대공파의 지휘관들과 백인대장들이 악을 쓰며 병사들을 몰아붙였다.

전열이 망가진 틈을 타 국왕파가 밀고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익으로! 우익으로 집결해라!”

“기사단 정렬! 전열 유지하라!!!”

수장을 잃은 충격에 앞뒤 안 가리고 돌격하다 아군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검독수리 기사단.

뒤늦게나마 자신들이 한 잘못을 깨달은 그들은 원래의 자리였던 대공파의 우익(右翼)으로 돌아가 정신없이 전열 정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뿌우우우우우...

“...?!”

“시발!”

그런 대공파의 움직임을 가만히 두고볼 국왕파가 아니었다.

“전군, 돌격하라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왕국의 적을 죽여라!!!”

“국왕 폐하 만세! 왕국이여 영원하라!!!”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들며 돌격을 개시하는 국왕파의 병사들.

대공파가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들이쳐야 했기에, 그들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왕국의 적들을 모두 죽여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콰콰콰콰쾅!!!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

국왕파의 선두엔 선 기병대 병력과 대공파의 선두 병력, 검독수리 기사단이 충돌했다.

콰직- 우지직!!!

“키히이이이이잉!!!”

“커흐윽!”

“아아아악!”

손에 쥔 병장기가 닿기 전, 육중한 군마(軍馬)의 말발굽이 나약한 인간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차려입은 갑주와 인간의 몸이 한꺼번에 터지고 찢겨나가는 무시무시한 광경.

그 참혹한 모습에 단번에 전의(戰意)가 꺾여버린 몇몇 병사들이 등을 돌리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어어어...!”

“으으, 살려줘!”

“나, 난 못해! 여기서 나갈 거야!”

“같이 가! 으아아아!”

“엄마! 엄마아아아!”

공황 상태에 빠진 병사들의 이탈로 인해 전열의 붕괴가 시작되자 경험 많은 고참 병사들과 백인대장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전열 유지! 물러나지 마라!!! 버티라고 이 새끼들아!”

“뒤로 내빼는 새끼는 내 손에 죽는다! 싸워라! 앞으로 나가라고!!!”

“어딜 도망가 이 새끼야!!!”

푸욱- 촤아악!!!

“커흑!!!”

“앞으로 전진! 뒤를 돌아보는 새끼는 그 자리에서 처형이다! 싸워라, 앞으로 나가아아아!!!”

고참 병사들과 백인대장들이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병사들의 등을 찌르며 앞으로 밀어붙였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독전(督戰)의 결과로 간신히 전열이 유지되는 가운데, 그 어느 것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뒈져라, 이 시발 새끼들아!”

“흐아아아!!!”

“몰아붙여라! 잠시도 틈을 주지 마라!!!”

“뒈져 이 새끼들아! 죽으라고!!!”

카앙- 캉! 콰직! 푸화아악!

솟구치는 피 분수, 찢어진 살점과 부러진 뼛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비명이 쉴새 없이 나온다.

국왕파와 대공파, 양 군세의 첨단(尖端)에 서 있는 인마일체의 전사들.

다닐렌츠 기병대와 검독수리 기사단의 혈투는 놀랍게도 어느 한쪽의 우위를 점칠 수 없는 박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체적인 기량은 검독수리 기사단 측이 단연 우위에 있었으나 다닐렌츠 기병대는 부족한 기량의 차이를 압도적인 장비의 질과 우수한 혈통의 군마가 지닌 기동력으로 메꾸고 있었다.

휘잉- 콰직!

“뒈져라 이 새... 으응?!”

비어있던 상대의 등판에 검을 찔러넣었던 검독수리 기사단의 기사 하나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분명 상대가 입고 있던 것은 가죽 갑옷이었는데, 마치 금속제 갑옷을 찌른 것처럼 더는 검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크 가죽으로 만들어진 다닐렌츠 기병대의 갑옷 안쪽에 얇은 철판이 덧대어져 있음을 걸 몰랐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놀랬냐, 이 새끼야!”

“이런 씨...”

휘잉- 푸화악!!!

등 뒤에서 느껴진 충격에 재빨리 몸을 돌린 다닐렌츠 기병의 장검이 상대의 목을 빠르게 베어낸다.

“컥! 끄르륵...!”

억울한 눈빛을 하며 말에서 떨어지는 검독수리 기사단의 기사.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닐렌츠의 기병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대를 향해 짧게 혼잣말을 던진다.

“억울하냐? 그럼 너도 다음엔 다닐렌츠에서 태어나던가.”

***

“흐읍!”

촤악-! 푸화아아악! 콰지직!

“크하아악!”

“컥!”

“끄륵...!”

겔베르트가 검을 한 번 떨치자, 동시에 세 명의 기사가 몸을 뒤집으며 말 아래로 떨어졌다.

검독수리 기사단은 명백히 다닐렌츠 기병대에 비해 강한 전력을 지닌 상대였기에, 겔베르트는 털끝만큼의 여유도 부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죽어라 검을 휘두른 결과...

“하아, 하아... 어우, 힘들다!”

겔베르트와 다닐렌츠 기병대는 검독수리 기사단을 완전히 궤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남아 있는 놈 몇이야?”

“허억, 허억... 현재, 전투 가능한 전력은 스물일곱입니다!”

“전투에 투입된 게 백오십인데 남은 전력이 스물일곱이라...”

상상 이상으로 큰 피해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겔베르트.

검독수리 기사단의 전력이 명백히 우위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부하를 잃은 지휘관의 심정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 젠장.”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겔베르트는 남아 있는 기병대 전력을 수습해 전투를 이어가기로 한다.

“남은 병력을 수습해서 바로 이동한다! 아군이 밀리는 쪽으로 가서 도움을...”

바로 그때,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조금씩 소강상태로 접어들던 전장의 분위기를 다시 뜨겁게 끌어올리는 이들이 등장했다.

“드디어 등장했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겔베르트가 이를 갈며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국왕파의 모든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전장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들.

“... 암흑기사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