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피스로 전설 기사-193화 (192/197)

최후의 결전 (7)

“다닐렌츠... 백작!”

자신에게 손도끼를 집어 던진 이의 정체를 확인한 에리히 프라이슬러가 신음 같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분명 척후조의 보고로 다닐렌츠 백작이 바덴하임 증원군을 요격하기 위해 진영을 빠져나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전투를 끝내고 돌아왔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

하지만, 그가 믿고 안 믿고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잿빛의 도끼창을 휘두르며 황금방패 기사단을 도륙 중인 저 금발의 사내는 머릿속 환각이 아닌 생생한 현실의 인물이었으니까.

“흐아아앗!!!”

휘웅- 카아앙!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다닐렌츠 백작의 도끼창을 검을 들어 간신히 받아낸 황금 방패 기사단 소속의 한 기사.

스르르릉- 콰직!!!

하지만 도끼창에 실린 압도적인 힘을 완전히 이겨내지 못해 자세가 틀어졌고, 그대로 검날을 쓸고 내려간 도끼날이 기사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끄아아아!!!”

어깨를 파고든 도끼날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황금 방패의 기사.

하지만 그 비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흡!”

퍼석!

다닐렌츠 백작이 말을 타고 그 기사의 곁을 스치듯 지나가던 순간, 마치 수박이 터지듯 기사의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어깨에 박혀 있던 도끼창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도끼날이 기사의 머리통을 후려친 탓이다.

“감히!!!”

“놈을 죽여라!!!”

동료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황금 방패 기사단의 여러 기사들이 눈이 뒤집혀 다닐렌츠 백작에게 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모닥불에 달려드는 날벌레나 다름없는 신세.

“끝이다, 백작!!!”

쉬잉-! 흉!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휘둘러도 그들의 검은 다닐렌츠 백작의 몸에 닿지 못했고,

휘우우우우앙! 콰직! 퍼어억!

반면, 다닐렌츠 백작의 도끼창을 휘둘러지는 곳마다 붉은 피와 허연 뇌수를 뿌렸다.

그 모습을 본 에리히는 더는 참지 않고 말 배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내가 상대하겠다!!!”

휘이잉-!

허공에 크게 휘둘러 떨쳐낸 에리히의 검이 정오의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

‘에리히...!’

검을 치켜들고 내게 달려오는 에리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긴장감? 두려움?

물론 그 두 가지 감정 또한 들었으나, 그보다 앞서서 나의 가슴을 지배한 감정은 따로 있었다.

바로,

후련함.

‘... 드디어, 그날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소설 <로스트 킹덤>의 진 주인공이자 이제는 나의 여동생이 된 니나의 아버지, 바일 아르펜 남작을 죽음으로 몰아붙인 자.

동시에 나에게 쓰디쓴 첫 패배의 기억을 안겨주었던 사나이.

바덴하임의 사자, 에리히 프라이슬러.

심지어 그는 내가 사랑하는 부인 아이린의 아버지이자 존경하는 무인, 바이펠베르크 백작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를 쓰러뜨린 가문의 원수(怨讎)이기도 했다.

“... 그 모든 악연을, 털어낼 때다!”

휘우우우웅-! 파앙!!!

손에 쥔 도끼창 낙뢰(落雷)를 힘껏 떨쳐내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리히는 과연 나를 알아볼까?

남작령 리트베르크가 멸망했던 7년 전의 그 날, 자신의 검에 밀려나 성벽 아래로 떨어졌던 그 용병 소년과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내가 안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변한다.

보이는 것은 단 하나뿐.

“에리히이이이이이!!!”

있는 힘껏, 에리히의 머리를 노리고 낙뢰를 내리찍었다.

쿠콰아아아아앙!!!

사람과 사람의 격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새빨간 불꽃의 향연.

단 한 차례의 충돌이었지만 공격을 가한 나도, 그 공격을 막아낸 에리히도 상상을 초월하는 상대의 힘에 전율을 느꼈다.

“크흡!”

하지만 에리히는 에리히.

그는 그 대단한 명성에 어울릴만한 몸놀림을 보이며 순식간에 무너진 몸의 균형을 회복했고, 즉시 반격에 나섰다.

“하아아앗!”

슁-!!!

다른 이들의 검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

“큭!”

쉬이이익!!!

에리히의 검이 내 얼굴과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차이를 두고 지나간다.

검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였다.

“역시, 대단하군!”

자신의 공격을 피해낸 내 모습을 보며 감탄을 표하는 에리히.

하지만 칭찬과 동시에 검을 떨쳐 뒤로 한껏 젖혀진 나의 몸 이곳저곳을 베어내려 시도했다.

쉬잉! 슁! 슈아아악!!!

그 하나하나가 단번에 팔다리를 자르고 내 목을 날려버릴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들.

이번만큼은 몸의 움직임만으로 피할 수가 없는 수준이어서, 나는 낙뢰를 몸 앞으로 끌어와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카카카카캉!!! 카앙!!!

에리히와 나 사이, 눈 한번 깜박이는 것보다 더 짧은 시간에 대여섯 번의 공방이 오간다.

어지간한 사람 수준이 아니고 최소 상급 기사의 경지에 오른 이들 정도는 되어야 흐릿한 윤곽이라도 볼 수 있을 만큼 초고속으로 이어지는 움직임.

우리 두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해 상대를 찌르고 베며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저런 미친...?!”

“저, 저게 사람인가? 나랑 똑같은 사람이 맞아?”

“둘 다... 인간이 아냐...!”

“대체 어떻게 저런... 허어!”

나와 에리히의 격돌이 시작된 이후 언제부턴가 양측의 병력들은 전투를 멈추고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양측 군세를 대표하는 수장들이 맞붙은 이 대결의 결과에 따라 전쟁의 향방이 갈리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키히이이이잉!!!”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맞닥뜨린 나와 대등한 수준의 실력자에 블리츠가 잔뜩 흥분한 울음을 터트렸다.

“키잉...!”

반면, 에리히가 타고 있는 군마는 잔뜩 주눅 든 울음을 내뱉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바덴하임의 사자가 타고 다니는 군마인만큼 녀석 또한 대단한 혈통을 지닌 명마이겠으나, 타고난 피의 절반이 흉폭한 몬스터인 나의 애마 블리츠에 비할 바는 아닐 터.

몬스터를 두려워하는 짐승으로서의 본능이 발현된 것이다.

“크르릉!!!”

에리히의 군마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눈치챈 블리츠가 더욱 기세를 높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달라붙어 공격을 시작했는데, 그 공격의 방법이란 다름 아닌 상대의 몸통을 물어뜯는 것이었다.

“크륵, 크아아!!!”

“키히이이잉!!!”

블리츠는 보통의 군마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힘과 속도, 그리고 거친 성격을 지닌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상대 군마의 귀와 주둥이를 연신 물어뜯으며 덤벼들자 말 위에 올라탄 에리히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이런...!”

뒤늦게 자신의 말에게 닥친 위기를 파악한 에리히가 이를 악물었다.

안 그래도 철옹성 같은 나의 방어를 뚫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는데, 타고 있는 군마까지 말을 듣지 않으니 더욱 상황이 어려워진 탓이다.

“왜, 생각대로 되지를 않나?”

“...!”

그리고 나는 적의 어려움을 너그럽게 봐줄 만큼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슈아아아아악!!!

에리히의 빈틈을 노려 나는 낙뢰를 뻗었다.

그 에리히조차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로 쾌속한 찌르기 공격이었다.

“이런 젠장!”

비록 눈으로는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으나, 에리히의 본능만은 이 순간에도 충실하게 위험을 감지했다.

거의 몸을 뒤트는 듯한 움직임으로 내려찍은 에리히의 검 끝에 낙뢰의 도끼날이 닿는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화려하게 튀어 오르는 불꽃과 굉음.

에리히의 본능이 만들어낸 움직임으로 나의 공격은 원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했다.

다만,

휘웅- 콰지직!!!

에리히의 검과 충돌해 방향이 뒤틀린 나의 도끼창 낙뢰는 그가 타고 있던 군마의 몸통에 직격했다.

“키히이이이잉!!!”

한없이 구슬픈 울음과 함께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에리히의 군마.

단번에 갈기갈기 뜯겨나간 말가죽과 모조리 부서져 나간 놈의 허연 등뼈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크윽!!!”

타고 있던 말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이 무사할 리 만무한 일.

에리히는 쓰러지는 말의 몸뚱이에 깔리지 않기 위해 순식간에 말 등을 박차며 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새처럼 날렵하고, 쾌속한 움직임.

“오오!”

“바로 저렇게 반응을 하다니...!”

“과연 바덴하임의 사자!”

대결을 지켜보던 모두가 재빠른 에리히의 대응에 감탄을 터트리던 그때,

“그래, 발을 딛지 않은 공중에서도 이걸 받아낼 수 있을까?”

“!?”

나만은, 에리히의 움직임에 넋을 놓고 있지 않았다.

휘아아아아앙-!!!

앞서 선보였던 그 어떤 공격보다도 빠르고 날카롭게, 낙뢰가 시퍼런 도끼날을 앞세워 공간을 갈랐다.

목표는 말 등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에리히의 두 다리.

몸을 지지할 곳이 없는 공중이기에, 당연히 앞서와 같은 기민한 대응이 불가능할 터.

어찌어찌 막아낸다고 해도 큰 타격을 면할 수 없으리라.

“이걸로 끝이다, 에리히! 하아아앗!!!”

***

국왕파의 총사령관, 다닐렌츠 백작의 도끼창을 연달아 막아내며, 에리히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 이게 말이 되는가?’

실로 무시무시한 기량이었다.

힘과 속도, 정확성, 변화까지.

다닐렌츠 백작은 그야말로 단점이 없는 기사였다.

심지어 그가 사용하는 무기는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두껍고 긴 도끼창이었는데, 그런 중병기를 들고도 마치 가벼운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쾌속한 공격을 펼쳤다.

‘진짜배기다, 이놈은 진짜야...!’

그동안 다닐렌츠 백작에 대한 소문을 왕국 남부에서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 소문의 대다수는 그가 도저히 그 나이에 도달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실력을 지닌 천재 검사라는 이야기였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에리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왕국의 역사 속에 등장한 검술의 천재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가 몸담았던 사자기사단만해도 각 지역에서 검의 천재라는 소리 듣는 놈들이 우글우글했었다.

하지만 그 중 에리히 자신이 인정할 정도의 검을 보여주는 이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그 중 에리히 자신을 능가하는 실력자는 당연히 없었고.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달랐다.

‘이건... 장인인 바이펠베르크 백작보다도 더한 천재다! 어떻게 이런 재능이...!’

자신이 이를 악물고 펼쳐내는 공격을 모조리 쳐낸 것도 모자라 서서히 대결의 승기를 잡아가는 다닐렌츠 백작.

손발이 어지럽게 엉키는 상황에서도 에리히는 최대한 침착하게 상대의 공세에 대응하고자 했다.

하지만,

“키히이이이이잉!!!”

“크윽!!!”

자신이 가까스로 튕겨낸 상대의 공격에 대신 적중당한 군마가 구슬픈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다급하게 말 등을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오른 에리히를 향해 다닐렌츠 백작의 도끼창이 날아들었다.

발도 딛지 않은 공중, 완전히 뒤틀려버린 몸의 균형.

이런 상황에서, 대체 저걸 어떻게 막아야 할까?

찰나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 펼쳐지는 초신속(超迅速)의 순간,

목숨을 건 선택을 앞둔 에리히의 눈에 별안간 과거의 풍경이 겹쳐진다.

‘...!’

앳된 얼굴로 리트베르크의 주도 리트렌의 성벽 위에서 자신과 검을 맞대었던 소년.

기억 속 그 소년도 금발 머리에 진녹색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설마, 그때의 그...’

대결 내내 냉정했던 에리히의 표정에 금이 가는 순간,

휘이이이잉- 푸화아아악!!!

끔찍한 피륙음과 함께, 시뻘건 피분수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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