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7화 (7/352)

제7화

#5 암시장 (1)

똑똑.

“형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형님 아니고 팀장님. 그리고 들어온 다음에 물어봤자 무슨 소용이지?”

“나, 나갈까요?”

최인혁은 당황한 얼굴로 문에 걸려 있는 김두식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귀엽지도 않은 놈이 저런 짓을 하니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다 들어와 놓고 이제 뭘 나가.”

“헤헤.”

190cm에 가까운 거구에 까까머리를 한 놈이 귀엽게 웃어 봤자 징그러울 뿐이다.

최인혁은 기업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저런 놈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저 험악한 얼굴들을 이 업장에서 전부 빼 버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에게 꽉 잡혀 사는 최인혁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멀쩡한 것으로 고르고 골라 데리고 온 게 저 모양이니, 원. 삼박 사일은 물속에 처박아 둔 것처럼 퉁퉁 불어 있는 김두식의 얼굴을 본 최인혁이 가볍게 투덜거렸다.

“내가 되도록 여기 들어오지 말랬잖아. 내 눈 버린다고.”

최인혁의 말에 김두식은 서운하다는 듯 입을 삐쭉거렸다.

저러면 현장에서는 귀여움을 꽤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최인혁은 이 답지도 않은 애교가 겁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들어온 용건이나 말해.”

짜증이 가득한 최인혁의 목소리에 김두식은 재빨리 본론을 꺼냈다.

“아까 그 녀석에게 대출 승인을 해 주셨길래요. 혹시 뭐 제가 모르는 마땅한 이유라도 있을까 해서.”

“왜, 내가 허투루 대출을 해 줬을까 봐?”

“아니, 형님, 아니, 팀장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딱 봐도 사기꾼 같아서 말이지요…….”

몸은 피죽도 제대로 못 얻어먹은 것처럼 마른 데다가 행색도 남루하고, 거기에 가로로 쭉 찢어진 눈은 영 불량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일에 몇 년은 몸담은 김두식이 보기에는 영 불량한 신용을 가진 놈이었다.

그런 녀석에게 1억이 넘는 큰돈을 대출해 주다니.

물론 그 돈을 다 잃는대도 이 「푸쉬 앤 캐시」가 무너지는 날은 오지 않겠지마는, 평소 다른 녀석들은 잘만 걸러내던 형님이 어째서 그런 놈에게 돈을 빌려 준 것인지 김두식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고깝게 생각하는 형님께서 벼락을 내릴 일이라는 걸 알아도 끼어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달까.

다행히 김두식의 형님, 최인혁은 이 일에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지. 하지만 내 눈에는 다른 게 보였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최인혁이 김두식에게 물었다.

“그 녀석 목에 달린 거 봤어?”

“예에, 봤죠.”

정신계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에게 달리는 족쇄. 김두식은 각성자가 아니었지만,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전자발찌보다 더 위험하게 생각하는 게 전자목찌 아닌가.

그때 하나의 생각이 김두식의 머리에 스쳤다.

아하!

“그놈을 암시장에 팔아 버리려고요?”

상쾌하기까지 한 김두식의 말에 최인혁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누굴 인신매매나 하는 놈인 줄 알아?”

“에, 하지만 저번에는…….”

분명 빚을 갚지 못한 놈을 팔아 버리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직 우리 고객님이잖아, 고객님. 고객님을 팔아 버릴 수는 없지.”

“그럼 도대체 왜…….”

당연히 못 갚을 걸 예상하고 돈을 빌려 준 게 아니란 말인가.

“보통 저런 걸 단 놈들은 대부분 인생을 포기한 눈을 하고 있단 말이지. 그야, 저걸 달고서는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최인혁의 말에 김두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식표를 다는 것만으로도 비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예비 범죄자로 보일 뿐이니 일반적인 직장을 잡는 건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그놈 눈은 달랐어. 어찌나 건방진 눈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뽑아 버릴 뻔했다니까.”

“혀, 형님! 그, 그렇다고 눈을 뽑으시면…….”

“걱정하지 마, 나도 함부로 눈을 뽑진 않으니까. 그게 얼마짜린데 뽑아, 뽑기를.”

대수롭지 않게 끔찍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최인혁은 조금 전 이 앞에 앉아 있던 고객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수많은 고객을 이 무저갱의 입구로 안내했던 김두식처럼, 이 늪의 왕좌에 앉아 있는 최인혁에게는 돈이 될 놈과 안 될 놈을 구분하는 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이 말했다.

눈앞에 있는 놈은 무언가 크게 될 놈이라고.

“그 돈으로 뭘 할 생각인지는 몰라도 재밌을 것 같았단 말이지.”

누군가의 병원비니, 다음 달을 버티게 해 줄 생활비니, 그런 시시한 이유로 돈을 빌려 가는 소시민들은 지겹다.

하지만 그놈은 달랐다.

1억 3천.

한낱 유흥에 던지기엔 큰돈이긴 했지만, 최인혁은 걱정하지 않았다.

“뭐, 갚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우리 식으로 받아 내면 그만이잖냐.”

자신의 기대를 채우지 못할 만큼 도량이 작은 놈이라면 김두식의 말대로 어디 벗겨 팔면 되는 것이었으니.

최인혁은 몰랐다.

이 1억 3천이라는 빚이 이후 얼마나 그의 신경 줄을 타들어 가게 할 것인지를.

* * *

나는 손에 든 가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길 자금이 마련됐다. 그래도 아주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사채업자들하고 엮여서 좋은 건 없다. 특히 나처럼 이 빌린 돈을 떼먹겠다고 생각한 나쁜 고객의 경우는 더더욱.

이쪽 계열 사람들은 집요하기 짝이 없다. 돈, 그 자체보다 고객에게 돈을 떼어먹혔다는 선례 자체가 이쪽 업계에는 치명타였으니까. 한번 그렇게 안 좋은 선례가 남아 버리면 근처에서 얕보이기 마련이니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돈을 떼먹은 사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단돈 백만 원을 빌려도 그럴진대, 무려 1억 3천을 당겨 버린 나는 아마 저승에 가서도 저놈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될 거다.

하지만 내게도 다 계획이 있었다.

자금도 얻었겠다,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미 오래전에 폐쇄된 지하철역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떨어져 나간 페인트 때문에 녹이 슨 기둥들과 깨진 보도 타일, 이리저리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공간에서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았다.

게이트가 등장한 이후 지하철은 대부분 폐쇄되었다.

이유야 다양했다. 지하에서 게이트가 튀어나오면 답이 없다는 게 그 첫 번째. 몬스터 때문에 툭하면 끊기는 노선을 더는 유지, 보수할 자원이 없다는 게 그 두 번째.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게이트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지하도로와 지하철은 구시대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지하철이 구시대의 유물이 돼 버린 건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지하철은 폐쇄됐지만, 여전히 이 지하철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은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집과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된 사람에서부터 비행 청소년들.

그 누구의 시선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인생의 낙오자들까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지하 공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건 범죄자 집단이었다.

개미굴처럼 얽혀 있는 이 공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암시장이 생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하철 노선 안에 있는 암시장은 단속을 염려해 주기적으로 그 위치를 옮겼다. 그래도 핵심이 되는 중심 역이 있기 마련.

암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가 지금 들어온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

대림역 근처에서 발생한 게이트 브레이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참사로 기록되었다.

하필이면 게이트가 지하에 발생해, 그 누구의 눈에도 발견되지 않고 방치되다 브레이크 되었고 또 하필이면 그 안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독을 품고 있는 곤충형 몬스터였다.

곤충형 몬스터들은 그 일대 지하를 파고들었고 수를 불려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여왕개미를 닮은 곤충형 몬스터는 물량전으로 그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약해진 지반 덕분에 대림역 근처는 2m 이상 완전히 가라앉았고 수천억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다행히 각성자들의 개입으로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사체에서 발생하는 독이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대림역은 여전히 출입 금지 지역이었다.

물론 오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곳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초토화된 뒤 이곳 근처에는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독성 물질로 인해 공식적인 출입이 금지됐다는 건, ‘비공식적’으로 이곳은 자유의 땅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자연히 대림 주변 지역은 우범 지역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 딱지는 평범한 시민들을 쫓아내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역도 비슷했다.

전혀 관리되지 않은 지하철 안쪽은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미리 준비한 야구 모자를 꾹 눌러쓴 나는 조끼에 매달린 손전등의 전원을 켰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는 손전등이 필수였다.

그나마 멀쩡해 보였던 바깥쪽과는 달리 이 안에는 모든 게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었다. 주변에서 비가 올 때마다 흘러 들어온 진흙들, 부서지고 깨진 채로 방치된 기물들이 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섰던 플랫폼을 내려가 나는 철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발소리가 철도 내부에 울려 퍼졌다. 중간중간 나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춰 확인했다. 벽에는 이런저런 낙서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정부는 각성하라!’, ‘각성자는 꺼져!’ 따위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선전 문구나 초보 예술가가 남긴 형편없는 그래비티 사이로 내 눈에 띄는 화살표가 있었다. 바로 이 화살표가 암시장으로 가는 지시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염료로 그려진 화살표는 현재의 암시장 위치를 가리킨다.

정확히는 그곳의 입구를.

화살표가 가리키는 건 아무것도 없이 꽉 막혀 있는 벽이었다. 바로 이 벽 뒤에 암시장이 있다.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손을 들어 벽을 두들기자 벽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나타난 이후로 이 세상에 나타난 새로운 기술 마도 공학이다. 암시장에 처음 오는 사람은 이 입장만으로도 잔뜩 겁을 집어먹지(내가 과거에 그랬다는 건 아니다).

이건 일종의 과시다.

이 암시장은 이런 기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이의 관리하에 있다는.

빛나며 숨겨져 있던 공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내 몸을 삼킨 벽은 언제 열렸나 싶게 꽉 닫혔다.

나는 벽을 따라 걸었다. 빛 한 점 들지 않았던 철도와는 달리 이 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쨍쨍했다. 나는 손전등의 전원을 껐다.

희미하게 느껴지던 사람들의 기척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시장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암시장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모이는 시장이니 저잣거리처럼 시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소리를 쫓아 걷길 얼마간.

내 눈에 암시장이 나타났다.

암시장이라고 해도 생긴 건 별거 없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야간 시장을 꼭 빼닮은 모양새였다.

여기저기 달린 조명이라든가 줄을 맞춰 세워진 가판대라든가 하는 점이 말이다.

물론 그 야간 시장과는 파는 물건 자체가 엄청나게 달랐지만 말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범죄자들과 물건을 사려는 헌터들로 인해 암시장은 시끌벅적했다.

“후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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