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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0화 (20/352)

제20화

#8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 (2)

김명철은 혀를 찼다.

전력을 다한다면 여기에서 도망간 저놈을 다시 붙잡아 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호산이 이렇게 나온 순간 그 생각을 포기했다. 애초에 김명철이 여기에 온 것도 저놈의 호감을 사자고 한 것 아니었던가.

정호산의 마음 하나 얻자고 온 건데, 정호산을 잃을 짓을 해서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김명철은 정호산에게 작게 손짓했다.

“네 친구 놈은 됐고 여기에 있는 사람이나 챙겨 보자꾸나.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니?”

그 말에 정호산은 감사하다는 듯이 또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주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누굽니까.”

김명철의 말에 남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을 보니 김명철도 속이 좋지 않아졌다.

“여기서 불법 채굴 일을 하던 거라는 건 압니다. 그건 딱 봐도 보이니까 거짓말을 한대도 소용이 없어요.”

“죄, 죄송합니다.”

“나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고요.”

범죄를 저질렀는데, 하필이면 그걸 불의를 참아 넘기지 못한다는 김명철에게 들켰다. 곤란한 것도 알지만, 김명철은 이 사람들을 겁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이 불법을 저지르게 된 사정을 대충은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철은 남자들을 샅샅이 훑었다.

행색이 영 안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게다가 누가 챙겨 줬는지 마나석 주머니도 갖고 있었고.

“하나만 물읍시다. 그놈이 거기서 뭘 한 겁니까?”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정호산을 위해서라도 그 친구가 나쁜 놈이 아니길 바랐지만, 원하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입을 꾹 닫아건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툭 치면 죽을 것처럼 파리한 사람들에게 힘을 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입가는 물론 손끝까지 푸릇푸릇한 걸 보니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뻔히 보여서 더 그랬다.

그렇게 숨 막히는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게이트 안에 있던 황 비서가 나왔다.

반색한 김명철이 황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 그 안에는 뭐가 있던가?”

“살해당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시체가 다섯 구 있었습니다.”

그 말에 정호산의 어깨가 떨렸다.

“허어.”

그 시체를 만든 게 누구일지는 뻔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에게서 피 냄새가 진하게 났었지.

김명철은 아까부터 말이 없어진 정호산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그 친구 놈이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걸까.

‘살인까지 할 수 있는 놈으로 보진 않았는데.’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나 죽였다라.

처음, 놈의 GPS를 쫓아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불법 게이트 일에 불행히 엮인 불쌍한 각성자를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너무 달랐다.

피해자인 줄 알았던 놈이 오히려 살인마가 된 상황.

김명철의 상념 위로 황 비서의 말이 이어졌다.

“안쪽에는 더 많은 시체가 있었고요.”

“그것도 그 녀석이?”

“아니요, 그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돼 보였습니다. 외상이 없는 것으로 봐서 대부분 마나 중독 증상이 심해져서 그렇게 된 것 같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굴렸다는 거야?”

불법 게이트 채굴 일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막 굴리는 건 흔치 않다. 보통은 서로 알음알음 봐주면서 하기 마련이니까.

“아주 한탕 치려는 놈들이었던가 본데.”

그렇게 말한 김명철이 눈을 찌푸렸다. 황 비서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건 이곳의 감시 역으로 붙은 헌터들인 것 같았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신분증을 모두 챙겨 오긴 했는데 제대로 된 길드 소속인 사람은 없습니다.”

불법 채굴 일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살려서 데리고 오고 그곳을 지키던 감시역만 목을 쳐 냈다라.

“자경단 같은 건가?”

그런 거라면 채굴꾼들에게 손을 대지 않은 이유도 알 만했다. 저들이 입을 닫은 것도 협박이 아니라 협조일 거고.

하지만 그러기엔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런 곳을 알았으면 신고를 하면 되지 왜 자기가 나서냔 말이야.”

이런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각성자 범죄 전담 팀이 있는데, 일개 시민에 불과한 그놈이 대체 왜?

“GPS는 여전히 여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황 비서의 말에 김명철은 혀를 찼다. 인식표를 끊고 도망쳤다는 거다. 거기에 불법 게이트에서 채굴한 마나석까지 잔뜩 챙기고.

의도야 좋았을 수도 있지만, 결과는 그렇지가 못하다.

“어떡하냐, 호산아. 네 친구가 아무래도…….”

김명철은 구겨지는 정호산의 얼굴을 보고는 입만 쩝쩝거렸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가 범죄자가 되었다니, 이거야, 원.

“호산아, 오늘 그놈을 도망치게 도와준 건 내가 모른 척 넘어가 주마. 그런데 다음에 또 그러면 안 돼요.”

김명철은 정호산을 달래듯 말을 이었다. 외부인 앞에서도 저놈을 지금처럼 감쌌다가는 큰일이 날 테니까.

하지만 정호산은 김명철의 그 깊은 마음을 모르는 듯이 철없는 소리만 해 댔다.

“이신이가 그럴 리 없어요.”

“어허, 이미 그놈이 사람을 다섯이나…….”

“죽일 만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죽여도 괜찮은 사람은 없어.”

김명철은 단호하게 외쳤다. 정호산의 말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김명철은 정호산에게 호통쳤다.

“우리가 신이냐, 뭐냐! 우리는 그저 분에 넘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야, 인간! 죄를 지었다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지.”

정호산은 김명철의 말에 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 <붉은개> 길드에 들어온 것은 다 저런 김명철의 인품에 반해서였다. 자신만큼이나 불의를 경계하고, 각성자들의 힘을 경계하는 그라서.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했네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정호산은 바로 사과했다. 김명철은 그런 정호산을 보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워낙 친구를 아끼니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단호하게 대처해야 했다.

“수배 때릴 거다. 그놈들이 무슨 짓을 했든, 잘못은 잘못이야.”

인식표를 벗어 던진 것만으로도 이미 수배가 될 이유가 충분한데 사람까지 다섯이나 죽였다. 아무리 죽은 사람들이 범죄자였더라도, 아무리 정호산의 친구라도 이건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아뇨, 제가 직접…….”

“어떻게 찾을 건데?”

5성급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정호산은 육체 강화계. 사람을 찾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전문가에게 맡겨.”

“그 전문가가 걜 다치게 하면요, 죽이면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였던 정호산이었지만, 이건 영 아닌가 싶은가 보다.

“무슨 사정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막상 그 사정이 무엇인지는 정호산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건 분명 강이신이었지만, 정호산이 알던 강이신은 아니었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김명철은 황 비서를 통해 알아낸 내용을 정호산에게 말해 주었다.

“임현수라던 그 인간이 그러더라. 네 친구가 엄청난 빚을 진 것 같았대.”

“빚이라니.”

버는 돈이 많지는 않아도 누구한테 빚을 지고 사는 놈은 아니었다.

“뭔가 일이 있었나 보지.”

“그런 힘든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했을 거예요.”

“오히려 친구니까, 그래서 더더욱 말하지 못하는 일도 있기 마련 아니냐.”

“……꼭 생포해 달라고 해 주세요.”

“그래, 그래.”

김명철은 그렇게 정호산을 달랬다.

“호산이는 뭐냐, 1팀 좀 불러라. 여기에 있는 사람들 데리고 가야 할 거 아니냐.”

그런 말로 정호산을 구석으로 보낸 뒤, 김명철은 황 비서에게 말을 던졌다.

“어땠나?”

눈치라곤 죽어도 없는 누구와는 달리 황 비서는 그 짧은 질문에도 바로 김명철이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던데요.”

“크음.”

정호산은 강이신이라는 놈을 믿을지 모르겠지만, 김명철은 아니었다. 그 시체를 보기 전이라면 모르되, 그 시체를 본 뒤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주저흔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와 세 번째 시체. 이미 제압한 상태에서 확인 사살한 겁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완전히 기습이고요. 계획된 살인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각성자가 등장한 세계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여전히 중죄다. 각성자끼리 저지른 살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살인을 저지를 녀석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스터를 속였거나, 아니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겠죠. 아니면 마스터의 사람 보는 눈이 꽝이거나.”

늘 그런 말을 들어 왔던 터이기에 차마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 삐딱해 보이는 김명철의 얼굴을 살핀 황 비서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정호산 씨의 반응만 봐도 평소에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평이 맞는 것 같지만요.”

황 비서의 말에 김명철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망할 놈의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 수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황 비서가 나오고 삼십 분 만에 게이트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안을 촬영해 오라고 시켰을 텐데, 증거가 모두 사라졌다.

게이트 안에서 나온 사람들 또한 입을 닫았고.

“끙, 이거야 원.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이래서야.”

김명철은 복잡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 * *

그날 김명철은 그 일을 모두 제가 맡아 수습했다. 각성자 범죄 전담 팀에 연락해 불법 게이트 사건을 신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구조된 피해자들을 옮기는 것까지 포함이었다.

마나 중독 증상인지라 치료를 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병원에 데려다주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김명철은 몇 번이고 그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했다.

현장에서 사라진 강이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들은 굳게 입을 닫아걸었다.

그놈이 다시 찾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다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런 식으로 입을 닫아 버리니 천하의 김명철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주희인가 그 친구는 알 법한데.”

“한조희입니다.”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사람의 이름은 사소하지 않은데요.”

깐깐한 황 비서를 보며 눈을 흘긴 김명철이 말을 이었다.

“강이신이랑 같이 일했다고 했지?”

“네. 하지만 대외적으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거기까지 구하러 갔을 리가 없잖아. 분명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아, 그 임현수라는 놈은?”

불법 게이트를 알선했던 임현수 또한 김명철의 레이더에 걸린 지 오래였다.

“전담 팀에 넘겨서 관련 인물을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정보가 나오는 대로 알려 달라고 해. 붉은개 길드도 협조할 테니까.”

그렇게 말한 김명철이 황 비서를 향해 덧붙였다.

“아, 그리고 채굴꾼들한테도 마나석을 모두 좋은 가격에 쳐준다고 말해. 사정을 최대한 봐주겠다고. 이런 말은 좀 미안하지만 곧 죽을 사람들이니, 마음이 약해지는 구석이 있을 거야. 그걸 공략해 보자고.”

그의 말에 황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일의 전말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강이신 그 친구를 찾는 걸 테지만 말이야.”

콧잔등을 찌푸린 김명철이 말했다.

“호산이를 위해서라도 그 친구, 꼭 찾아야겠는데.”

그리고 같은 시간 다른 장소.

김명철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꼭 잡아야겠네요, 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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