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8화 (28/352)

제28화

#11 억울합니다 (2)

「피해자인 한 모 씨는 최근 불법 게이트 채굴 사건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피해자로 알려져 더더욱 안타까움을 사고 있으며……. 시체의 상태가 참혹하여…….」

「이번 살인 사건의 용의자 강이신의 정체를 파헤쳐 봅시다. 무려 바벨 아카데미를 나온 수재였던 그가 왜 이런 괴물이 된 걸까요?」

「이래서 각성자들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이번에 일을 친 각성자는 무려 인식표까지 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인식표보다 더한 제재가 필요해요!」

나는 TV를 껐다.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내 이야기뿐이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게 수배령이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된 뒤 여관에 처박힌 나는 필사적으로 정보를 찾았다.

세상 모두가 이 이야기 중이라 정보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얼마 전 9시 뉴스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그 게이트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점 때문에 더 난리가 났다.

게이트 사건이 이제 막 가라앉으려던 찰나에, 더 큰불이 붙어 버린 셈이었다.

한조희의 온몸에는 고문당한 흔적이 가득했고, 등에는 칼로 ‘입을 함부로 놀린 죄’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마치 사람들에게 협조한 한조희에게 내가 복수한 모양새로.

범인은 마치 보란 듯이 한조희를 본래 병실에 던져두고 나갔다.

한조희는 숨이 붙은 채로 병원의 간호사에게 발견되었고, 간호사에게 죽으며 내 이름을 내뱉었단다.

이 모든 짓을 저지른 게 강이신이라고.

그러고 나서 목숨을 잃었다.

한조희가 실종됐던 시간은 불과 반나절.

그사이에 한조희를 납치하고 고문해서 다시 되돌려놓는 짓을 했다는 거다. 병원의 협조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 병원 내 관계자를 모두 조사 중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꼬리를 남겨 뒀을 리가 없지.’

미친, 내가 저런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잖아.

사실 조금만 머리를 굴려도 내가 한조희에게 굳이 찾아가 해코지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사건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설록진의 짓이다.’

지금 당장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은 설록진밖에 없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이걸 납득시킬 방법이 없다는 거다.

“젠장, 억울하네.”

침대를 뒹굴며 그렇게 소리를 치는 나에게 레이가 말했다.

━어차피 악역을 자처할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나?

“저건 정말로 제가 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한조희가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건 나와 엮였기 때문이었다.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내 정보가 샜을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구한 사람이 저렇게 됐다는 게 새삼 충격이었다.

“어차피 오래 살 순 없었겠지만 저런 고통을 받을 이유도 없었던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들에 대한 증오가 다시금 들끓었다.

“나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좋고, 아니면 나에게 경고를 하고. 덩달아 내 인생도 X 되게 만들고.”

겨우 그런 걸 위해서, 이미 시한부인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든 거다.

━누명을 씌운 건 원망하지 않는 거냐?

레이의 말에 나는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었겠죠.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동생을 해친다든가 해서 협박이라도 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 동생, 동생은 어쩌지.”

하나뿐인 형이 자신의 실습비를 위해 시한부 인생이 된 걸로도 모자라서 잔인하게 살해당하기까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녀석이 겪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었다.

━네 녀석이나 신경을 써라. 지금 남을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느냐. 이걸로 전 세계가 너를 나쁜 놈으로 알게 되지 않았냐.

“하. 방법이 없으니 문제죠.”

━그러게 게이트를 괜히 없애서는. 혹시 모르지 않느냐. 거기에 써먹을 만한 증거가 남아 있었을지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냐고요.”

한숨을 내쉰 내가 말을 이었다.

“게이트 안에서는 설록진과 이어지는 증거가 아무것도 안 나올 겁니다. 애초에 그렇게 허술한 인간이 아니니까요.”

설록진은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허술하게 증거를 남겨 둘 리가 없다.

“저번에 섬에 나타난 것도 백도산을 직접 세뇌하기 위해서였지. 아니었다면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있었을 겁니다.”

그때 처리하는 게 맞았나.

자신의 안전만큼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인간이니,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허술하게 굴지 않을 거다.

준비할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됐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금 박사가 아무런 언질도 없이 나를 끌고 가서는.

━뭐가 문제냐. 이번처럼 나중에라도 기회를 잡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설록진의 능력은 세뇌잖아요. 누군가와 ‘함께’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단 뜻이지요.”

━아, 확실히! 그래서 이번에도 네놈이 단독으로 그놈을 맡았지?

“네, 그리고 제 화력으로는 설록진을 끝장낼 수가 없다는 게 문제고요.”

━끄응.

“설록진이 사는 곳 전부를 날려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놈을 상대하는 건 당분간 접어 두는 게 정신 건강에 낫습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꺼야죠.”

후, 지금 중요한 건 저 사건으로 인해 내가 전국 수배가 된 신세라는 거다.

“이거야, 원. 이제야 좀 활동을 해 볼까 했는데.”

머릿속으로 짜 두었던 이런저런 계획은 전부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당분간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나 잡아갑쇼 하는 꼴이니까.

“차라리 이 시간에 기지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기지?

“말했잖습니까. 전 사람들을 구하고 그 사람들한테 이 세상을 구하게 할 거라고. 그러려면 우리가 다 같이 살 기지가 필요하겠죠.”

이건 어린 시절 꾸었던 내 꿈이기도 했다. 나만을 따르는 크루를 만드는 것.

“마침 시간이 남아돌게 됐으니, 집이나 지으러 가죠.”

* * *

[그쪽 땅을 사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정말로 괜찮겠어? 거기 말이다, 언제 어디서 게이트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땅이라고?]

내가 금 박사에게 부탁한 땅은 게이트 발생 우범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실제로 과거 10년 동안 매년 3번 이상의 게이트가 발생해 기존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이사를 가고, 그 뒤로는 방치되어 버려진 땅이 되었다지.

하지만 미래에서도 이 주변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으니 괜찮겠지.

아무도 탐내지 않을 땅이라 그런지 나는 그 일대를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얻을 수 있었다.

거래를 마친 뒤 금 박사가 제법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뉴스 봤어. 그건 괜찮은 거야? 딱 봐도 누가 누명을 씌운 것 같던데.]

금 박사는 놀랍게도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내 결백을 믿어 주었다. 뭐, 시간상 그날은 금 박사와 온종일 붙어 있었으니까. 시간상 내가 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뭐, 누명이긴 한데 어쩔 수 없죠. 증거가 저렇게나 확실하니까요.”

금 박사가 나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내가 증언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쪽도 떳떳하게 경찰서를 찾아갈 입장은 못 돼서 말이지.]

“괜찮습니다. 애초에 강이신이라는 신분은 버릴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렇게 전국적으로 홍보할 생각은 아니었잖아?]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는 금 박사의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놀리지는 마시죠. 나름 이쪽은 인생의 위기란 말입니다.”

[흠, 그러려나. 아, 맞다! 너에게 전해 줄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지.]

“무슨 소식인데요.”

[네가 마스크를 좀 좋아하는 것 같길래, 이번 신작 콘셉트를 마스크로 잡았걸랑. 조만간 재밌는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금 박사의 말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어딘가 나사 빠진 인간이긴 했지만, 금 박사의 실력은 진짜다. 금 박사가 내 물건을 만들어 준다면야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번 일이 고맙기도 하고, 그 가면. 딱 내 취미라서 말이지.]

미친 과학자 같아 보이겠다고 미친 동글뱅이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과 취향이 겹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데.

내 질색하는 표정에 레이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내가 악취미라고 하지 않았냐!

[어쨌거나 완성하면 이쪽으로 연락하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예에.”

[수사망이 좁혀 오거나 하면 연락 달라고. 내가 또 사람 빼돌리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할 수 있거든.]

든든했다.

역시 이래서 인맥, 인맥 하는 건가.

나는 금 박사의 도움을 받아 땅의 구매와 소유권 이전을 마쳤다. 강이신이라는 이름으로 살 수는 없어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야 했다.

금박사는 내게 낄낄 웃으며 말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 네 땅을 달라고 달려들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퍽이나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광주광역시 구석에 위치한 도람산 되시겠다.

도람산은 게이트 브레이크 이후 산이 된 지형인데, 지형이 워낙 험해 일반인은 아예 출입하지 않는 곳이었다.

마나의 농도도 다른 곳보다 높은 편이라 국가에서 출입을 금하기도 했고.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면 이 땅을 굳이 사지 않아도 됐던 거 아니냐?

‘나중에 다른 사람이 여기에 뭔가를 짓겠다고 들어오면 곤란해지니까 말이죠.’

도람산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나의 농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자연의 기운 또한 풍부하다는 뜻.

생긴 지 불과 몇 년 안 된 산인데도 몇백 년간은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산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기세 좋게 여기까지 올라온 건 좋은데, 여기에 어떻게 기지를 짓는다는 거냐? 그것도 혼자서?

레이의 말대로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험지에 기지를 세우는 건 분명한 장점도 있었지만 명확한 단점도 있었다.

일단 모든 걸 나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부터가 엄청난 단점이지.

그래도 어차피 시간은 넉넉했다.

누구 덕분에 당분간은 이곳에 꼼짝없이 갇혀 살아야 할 팔자니까.

“차근차근 하면 뭐든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오늘은 기지가 될 터부터 골라 보도록 하죠.”

━터부터 골라야 하는 거냐?

“저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직접 들어온 적은 없어서요.”

회귀자 특전도 없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는 소리다.

내 말을 들은 레이가 질색했다.

“산 중턱을 깎는 건 아무리 초인인 각성자라고 해도 무리니, 적당히 평탄한 평지를 찾거나 동굴 같은 곳을 찾아야죠.”

━넌 초인 축에도 못 끼잖냐.

“어쨌거나 일반인보다는 강하잖습니까.”

그렇게 레이와 대화하다 나는 다행히 이 근처에서 커다란 자연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치 배X맨의 배X 케이브가 떠오르는 동굴이었다.

“역시 다크 히어로의 기지 하면 동굴이지.”

문제는 이곳에 이미 선객이 있었다는 거다.

여길 들어올 때 배X맨을 생각한 게 잘못일까. 동굴의 위쪽에는 수천 마리에 박쥐 떼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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