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17 Home, sweet home (2)
공중에 뜬 마정석은 찬란하게 빛났다.
내 주먹만 한 사이즈의 마정석의 안에서는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것처럼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홍염의 마정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아티팩트나 다름없다.
홍염이라는 이름 때문에 얼핏 들으면 불 속성의 마정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곳이 발견된 곳은 흡혈귀 마을이었다.
수천, 수만의 인간들의 고혈을 빨았던 흡혈귀의 몸에서 나온 마정석이 왜 불꽃과 관련이 있겠나.
애초에 여기에 들어간 ‘염’이라는 글자는 불꽃에서 나온 염(炎)이라는 한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사념 따위에 붙고는 하는 그 염(念)이라는 글자지.
마정석은 자신을 품었던 몬스터에 맞는 속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두려움, 공포.
그것을 집어먹고 자란 마정석이 바로 저놈이었다.
━이걸 아티팩트로 만들었다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무기가 만들어졌겠구나. 암만 봐도 사람의 피를 탐할 놈이다.
‘예, 그렇기에 무기로 만들면 안 되는 놈입니다. 언제고 사고를 칠 놈이거든요, 저거.’
홍염의 마정석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기억하지 못했으나, 이 녀석을 만져 보고 나서는 깨달을 수 있었다.
후에 이걸로 만들어진 스태프가 탑의 빌런에게 탈취되어 온갖 사건을 일으켰다는걸.
그러니 더더욱 이곳에 이 마정석을 쓸 생각이다.
━이런 걸 머리 위에 두고도 잠이 잘 올 것 같으냐. 딱 봐도 악몽을 꿀 것 같은데.
‘주먹 쥐고 자면 가위에 안 눌린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확실히 이런 걸로 집을 만들었다간, 귀신들에게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귀신들을 우리를 위한 방패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제법 괜찮은 쓰임새 아닌가.
차분히 마나를 풀어내 마정석에 주입한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손을 댔다.
이 땅바닥에는, 그리고 저 빌어먹게 많은 벽돌의 겉면에는 내가 일주일 동안 채 여덟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겨 넣은 마나 회로가 있었다.
공중에 띄워 올린 마정석은 울림을 줄 종이다.
저 종을 쳐서 생긴 파동으로, 내 몸과 내 몸에 연결된 모든 회로를 자극하는 거다.
마나 회로들은 점차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연결이 더딜 뿐,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로 안에 물이 차오르듯, 내가 새겨 놓은 마나 회로 속으로 마나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그림을 모두 채워 넣으려면 내 몸 안의 마나로는 턱도 없었다. 팔찌에 꽉 채워 넣은 마나석 가루의 마력 또한 일제히 끌어 올렸다.
“큭.”
내 몸에 과부하가 걸렸다. 레이가 마나 회로의 과부하를 같이 부담해 주고 있다고는 해도 쉽지는 않았다.
둥.
둥.
둥.
마치 사람의 심장 박동처럼 홍염의 마정석은 박동했고 그 박동은 이윽고 내가 새겨 놓은 마나 회로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이때다.
나는 집에 새겨진 마나 회로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내 몸의 마나는 일종의 도화선이다. 이 모든 마나 회로를 ‘가동’시킬 불꽃인 거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격통이 온몸을 휩쓸었다.
“으으윽.”
입술을 꾹 깨물었으나 살갗이, 온몸의 마나 회로가, 혈관이 끓는 듯한 고통은 나 혼자서 감내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온몸의 핏줄이 터져 나가고 온몸에 있는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버텨라! 다 끝나 가니까!
레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정신을 놓을 뻔했다. 가까스로 버틴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마나를 연결했다.
내 손에서부터 시작된 마나가 공중 위에 뜬 마정석을 거쳐 벽돌에 그려진 마나 회로들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완전하고 빈틈없는 마나의 흐름.
그 흐름이 완성된 순간 내 눈앞에는 안내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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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티드 하우스(Haunted house) / 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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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ㆍ다세대주택
강이신의 소유
진흙과 마정석을 구워 만든 벽돌로 이루어진 다세대주택.
형편없는 솜씨로 마감되어 등급이 격하되었다.
홍염의 마정석을 핵으로 삼아 은신, 은폐, 혼란을 상시 발동한다.
소유자의 동거인으로 등록되는 경우 해당 효과에서 벗어난다.
쉽사리 파괴되지 않으며, 주택의 60% 이상이 남아 있을 경우 마정석의 마력을 이용해 수리한다.
수도, 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방 5개/주방 1개/거실 1개/욕실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완성됐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보스! 괜찮아요?”
한서현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하하!”
아직 안에 만들어진 게 별로라 B급으로 격하되었지만, 그래도 포텐셜이 말도 안 될 만큼 좋은 집이었다.
‘은신’, ‘은폐’,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란’. 내가 생각했던 세 가지 기능이 모두 잘 붙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동굴은 막혀 있는 절벽으로밖에 안 보일 거다. 절벽을 뚫고도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환상을 선사하겠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접근조차 어려울 거다.
해냈다. 내 머릿속에 있던 그대로를 이식하는 데에 성공한 거다.
아직은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러운 뼈대밖에 없는 집이라고 해도.
만들어 냈다.
모두가 안전할, 그 누구도 쉬이 침범할 수 없는 우리의 안식처를.
그리고 나는 피를 뿜으며 그대로 기절했다.
* * *
나는 꼬박 이틀 만에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땐 눈이 퉁퉁 부은 한서현이 내 앞에 꿇어앉아 있더라.
“으어엉, 그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피가, 진짜 한 사발은 쏟아졌다고요.”
형을 잃은 지도 얼마 안 된 애한테 참 끔찍한 꼴을 보였다 싶었다. 나는 미안함에 뒤통수를 긁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일부러 그랬다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
“됐어요. 밥이나 먹어요.”
한서현이 끓인 맛없는 죽으로 끼니를 때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지은 집을 확인했다.
“아직 아무것도 없어요. 텐트 안에 있던 걸 좀 떼 와서 채우긴 했는데.”
한서현의 말대로 아직 이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겨우 벽돌로 세웠으니, 벽지고 뭐고 없어 휑뎅그렁할 뿐인 집. 사실, 아직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조명 역할을 해 줄 것도 없어서 어두컴컴한 곳에는 아직 집의 역할을 할 무엇도 없었으니.
“조명도 사야겠네.”
전기야, 이곳을 휘감고 있는 마정석의 마나로 대신하면 되겠지.
“벽도 제대로 마감해야 하고.”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걸 읊었다.
“바닥에도 타일을 깔아야겠다.”
“아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런 거예요?”
“그래. 겨우 터만 세우고 쓰러졌잖아. 아직 집으로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아직 엄청나게 부족하고 뭣도 없다고 해도.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보육원에서 살았을 때도,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을 때도. 고시원에서 쪽잠을 잘 때도. 설록진 그놈의 밑에서 분에 넘치는 부를 누렸을 때도.
단 한 순간도 나는 집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집이 생겼다.
━아티팩트 이름이 귀신 들린 집이라는 건 상관없는 거냐.
‘그래서 더 좋죠.’
나는 바깥으로 나섰다.
나는 이 마정석과 공명하고 있었다. 이 집은 나를 주인으로 여긴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있는 한서현과 김재호 또한.
하지만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끔찍한 악몽을 선사할 거다.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기만 해도 귀신 들린 집이라는 이명의 진가를 알게 되겠지.
그러니 나는 이 집이 사랑스러웠다.
늘 내 삶은 다른 사람에게 짓밟히기만 했다.
설록진 이전에는 아카데미에 있던 놈들이 있었고, 그 전에는 보육원의 개자식들이 있었다.
이 세상은 나에게 절대 아무것도 쉽게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내 손으로, 이 집을 이루고 있는 벽돌 하나까지 내 손이 닿은 거였으니까.
애정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부터 나는 시작한다.
설록진을, 이 세상을 무너뜨릴 위정자들을 꺾어 버릴 것이다.
* * *
짝짜작.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눈이 부신 카메라 플래시를 바라보며 도채희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런 자리는 익숙하지가 않다. 당장에라도 이곳을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지만, 이제 그녀에게 걸린 짐의 무게를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굴마담으로서 얌전히 사진에 찍힌 지 얼마.
자신을 이 자리에 올려 준 은인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손에는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서.
“축하드립니다.”
설록진 의원의 말에 도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완전히 독립권을 갖게 되셨잖아요.”
그동안 검찰청 소속이었던 각성자 범죄 전담 팀은 이제 아예 각성자 범죄부로 분리되었다. 조직이 개편되며 팀원에 지나지 않았던 도채희 또한 자신만의 팀을 제대로 꾸리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권한 또한 무척이나 강해졌다. 대놓고 각성자 범죄부를 밀어주겠다는 정치권의 푸쉬가 있었던 덕분이다.
이 대대적인 개편 뒤에는 분명 설록진 의원의 힘이 있었다. 설록진은 최근 늘어난 각성자 범죄를 막겠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그녀를 지지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배경 뒤에는 옥션에까지 활개를 친 벨츠머츠가 있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궁둥이가 무거운 의원들을 움직이는 데까지는 또 한세월이 걸렸을 터이니.
물론 그놈에게 고마운 건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놈의 날갯짓이 이 폭풍을 불렀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했다.
도채희는 생각을 접고 설록진이 자신에게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더 많은 활약을 기대할게요.”
설록진의 말에 도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이 두 사람의 투 샷을 쉴 새 없이 찍어 댔다. 도채희는 애써 웃었다. 이 또한 설록진 의원에게 힘이 되는 거라면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었다.
설록진은 미안하다는 듯이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축하만 전해도 모자랄 이런 날에 정치판에 휘말리게 해서요.”
“아닙니다. 제게 도움을 주셨잖아요. 저 또한 도움을 드리는 게 당연하죠.”
설록진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이 세상은 조금 더 좋게 바뀌겠지.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그럼 고생하세요.”
“네! 의원님도요!”
도채희는 설록진의 뒷모습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의원들과 사진을 찍고. 각종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영양가도 없는 포부를 읊고.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해방되었다.
“진짜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네.”
기자가 모두 떠나간 다음에야 도채희는 마음껏 욕을 내뱉었다.
필요한 일이니 참고 참았지만, 여전히 머릿속으로는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하는 자괴감이 가득했다.
그래도 이 광대 짓 한 번으로 많은 걸 얻었다.
이제 박철완과 자신은 더 이상 검찰청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완전히 독립된 부서로서, 독립된 수사권과 체포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희소식에도 그녀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막상 이 권한으로 잡아야 하는 놈의 흔적이 정말 뚝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어디 산속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는 것 같다니까.”
망할 놈. 속으로 욕을 중얼거린 도채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소식이나 들려줬으면 소원이 없겠네.”
범죄자에게 제발 범죄를 저질러 달라고 하는 셈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소식이 없어서야, 도채희가 예지자가 아닌 이상에야 잡는 게 불가능했으므로.
악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욕을 뇌까리며 도채희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놈은 꼭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