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48 벨츠머츠로 사는 법 (2)
차송진은 이불 위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프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빌어먹을 놈의 강이신. 반질반질한 얼굴로 자신을 굴리는 그놈의 얼굴을 생각하니 욕이 절로 나왔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우리랑 평생 살고 싶어?’, ‘벨츠머츠의 네 번째 멤버를 소개합니다.’ 같은 말을 내뱉는 바람에 오기가 생겨 버티고 또 버텼다.
‘진짜, 내가 언젠가 이 기지를 뜨고야 만다.’
이를 갈며 그렇게 외친 차송진의 머릿속에는 얄밉게 웃는 강이신의 얼굴이 가득했다. 언젠가 그놈의 웃는 얼굴을 망쳐 주고 말겠다.
‘목말라…….’
근육통 때문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는 밤. 왜 목까지 마른 것인지. 갈지자로 걸어 냉장고로 향한 차송진은 물을 꺼냈다. 목을 축이고 다시 방안으로 돌아가려는 길.
슬쩍 열린 한서현의 방문 사이로 무언가 하얀 것이 지나갔다.
“히익.”
저, 저게 뭐야.
차송진은 천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는 격언도 있으나, 조금 전에 자신이 본 게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오늘 잠을 잘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살금살금 걸음을 옮긴 차송진은 조심스럽게 한서현의 방문을 열었다.
공중에 뜬 해골과 눈이 마주친 차송진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
하마터면 그대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겨우 뒷걸음질을 친 차송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덮고 두 눈을 꾹 감아 보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해골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귀기 어린 푸른 불꽃을 두 눈에 태우고 있던 괴물.
‘그, 그러고 보면 한서현은 자기 방문을 늘 꼭 닫고 있었지.’
평상시에는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서현은 언제나 자신의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강이신 또한 저 안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설마, 저 안에서 끔찍한 인체 실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면? 언, 언데드들이 돌아다니는 거지!’
그러고 보니 박상편의 시체를 빼돌린 것도 벨츠머츠였잖아. 그, 그렇게 빼돌린 시체로 대체 무슨 짓을 했을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차송진은 강이신의 방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흐어어어!”
* * *
“그러니까 저 안에서 스켈레톤을 봤다고?”
한밤중 내 방으로 쳐들어온 차송진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이거야, 원. 네크로맨서 방에 해골이 돌아다니는 게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구나.
‘그야,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한서현의 방에는 원래 이상한 것들이 굴러다닌단 말이야.
현장에서 빼돌린 시체라든가, 몬스터의 사체라든가. 장기라든가.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 애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 중인데!
그 노력을 단지 징그럽다느니, 무섭다느니 하는 말로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호, 혼자서는 도저히 못 자겠어요.”
베개를 꽉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는 차송진이 내게는 더 부담스러웠다.
“침대는 내 거다. 바닥에서 자.”
“흑흑, 네.”
차송진은 훌쩍이면서 바닥에 누웠다. 무섭다고 빼액 소리를 질렀던 것치고는 머리를 누이자마자 코까지 골았다.
‘하여간 겁이 쓸데없이 너무 많다니까.’
그렇게 차송진의 코골이 소리와 함께 자느라 잠을 설친 나는, 곧바로 그다음 날 한서현에게 차송진이 봤다는 스켈레톤에 대해 물었다.
“스켈레톤을 따로 소환하지는 않았는데요.”
“정말이냐?”
“예. 애초에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데에는 정신력이 따로 들어가서요. 쥐돌이나, 새돌이하고는 달리 잠을 자는 동안에는 소환을 유지할 수 없단 말이죠.”
“잠깐, 새돌이?”
언제 그런 이름을 붙인 거래? 내 질문에 한서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어쨌거나! 잘 때는 스켈레톤이랑 하운드를 부르지 않는다고요. 그냥 그 사람이 환각이라도 본 거 아니에요? 워낙 쫄보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차송진은 유난히 겁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열고 한서현의 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연 한서현의 방문. 그 안에는 차송진이 말했던 대로 하얀색 스켈레톤이 서 있었다.
“흐음.”
나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스켈레톤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적어도 차송진을 괴롭힌 건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혹여 나를 스켈레톤이 공격할까 걱정했지만, 스켈레톤은 나를 빤히 바라만 볼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흐음.’
한서현의 방으로 들어선 나는 침대 위부터 살폈다.
한서현은 깊게 잠이 든 상태였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또 한 번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괴로운 악몽을 이겨 내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스켈레톤을 부르는 걸지도 모르지.
‘정말 그뿐인가.’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던 스켈레톤은 이내 나에게 익숙해진 건지 나에게 신경을 껐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스켈레톤을 관찰했다.
한서현의 무의식이 불러냈다기엔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았다.
‘가장 확실한 건 한서현을 공격해 보는 거지만…….’
저렇게 끙끙거리면서 자는 애를 공격하는 건 좀.
━그렇지.
도대체 저 스켈레톤은 뭘까. 왜 소환이 되는 걸까. 한서현의 의지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저 스켈레톤을 부른 것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스켈레톤과 한서현을 번갈아 바라볼 때였다.
스켈레톤이 한서현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한서현을 달래는 것처럼.
“뭐야.”
나는 눈을 찌푸렸다.
소환물은 스스로 행동할 수 없다. 모든 소환물은 주인의 명령에 따른다. 한서현의 무의식이 ‘저런 위로’를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라면…….
흑마력을 완벽히 통제하게 된 뒤로 한서현이 ‘새로’ 계약한 스켈레톤은 모두 검은 뼈를 가지고 있었다. 오직 한서현과 제일 처음 계약한 스켈레톤만이 하얀색 뼈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켈레톤은 유난히 약했다. 뼈의 내구도도 약해 빠진 데다가, 움직임도 유난히 둔했지. 그래서 한서현은 흰색의 스켈레톤을 전투에서 배제했다. 나도 그러라고 했다. ‘이건’ 전투에 써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제일 처음 계약한 것치고는 유난히 약했지.
문득 한서현이 내게 보여 주었던 스킬 설명이 떠올랐다.
「첫 번째로 계약한 소환물은 각성자와 함께 성장하며,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다.」
분명, 성장한다고 했다. 나는 그 성장이라는 게, 물리적인 강함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너 설마…… 한조희냐?”
설마 저 안에 아직 한조희가 남아 있는 걸까. 내 질문에 스켈레톤은 나를 뻔히 바라보았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거면, 아무 대답이나 해. 고개를 끄덕이든가, 아니면 젓든가.”
내 말에 스켈레톤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의사소통은 무리인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스켈레톤이 문득 손을 들어 올렸다. 무슨 뜻이지, 저건. 그 손에 집중하던 나는 곧이어 정수리에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삼켰다.
“뭐야? 뭔데?”
갑자기 날 왜 때리는 건데?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당최 이게 무슨 일인지.
한서현의 무의식이 날 때린 건지, 아니면 스켈레톤 안에 있을 한조희가 내게 응징의 주먹을 날린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저 스켈레톤이 내게 화를 내고 있다는 거다. 한 번 내 머리를 내려친 스켈레톤은 연달아 내 옆구리를 쳤다.
“허…….”
진짜 한조희라면 몇 번이고 내 머리통을 때려도 괜찮긴 하다만…….
“아니, 아니지. 왜 날 때리는 건데. 나도 인마, 나름 노력했다고.”
네 동생이 삐뚤어지지 않게 나름 얼마나 노력한 줄 아냐. 나름 육아 책도 읽고, 얼마나 열심히…….
“악!”
스켈레톤이 또 한 번 내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비명에 한서현이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스켈레톤은 곧장 흩어져 버렸다. 졸지에 나만 허공에 대고 비명을 지른 사람이 돼 버렸다.
“허.”
“보스?”
잠에서 깬 한서현이 눈을 비비며 나를 바라봤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스켈레톤에 대해서 묻고 싶지만, 아직 정확하지도 않은 걸로 애한테 추궁하기는 좀. 조금 더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자는 사람 방에 들어오는 건 꽤 오싹한 일이니까 주의해 주셨으면 하네요.”
“……그래.”
정신을 차린 한서현은 곧장 나를 쫓아냈다.
다시는 자기 방에 멋대로 들어오지 말라나?
아무래도 한서현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
━그야, 같이 사는 사람이 방 안에서 자기가 자는 걸 뻔히 보고 있으면 누구든 소름이 끼칠 것 같지 않냐.
‘끄윽!’
내 패배다.
* * *
그날 이후로 나는 한서현의 방을 살폈지만, 스켈레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단, 정황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나는 그날의 일을 묻어 두기로 했다.
‘정말 스켈레톤이 성장하고 있다면, 언제든 또 만날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니까요.’
괜히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를 흘렸다가 한서현이 흔들리게 되는 건 사양이었다. 가뜩이나 형이라는 존재에 대해 죄책감과 부채감을 잔뜩 짊어지고 있는 녀석이다. 혹시나…… 하는 희망도 한서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조금 더 확실해지면 말하도록 하자.
대신 나는 한서현의 모래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한서현은 모래의 활용 방법을 다양하게 알아냈다.
모래는 그 자체로 훌륭한 공격 수단이자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모래라는 특성으로 다양하게 모양을 바꿀 수 있었으니까.
저번 테러 때만 하더라도 한서현이 재빨리 불을 차단하지 않았더라면 큰 피해가 있었을 거다.
거기에 모양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것 덕분에, 모래를 이동 수단으로 쓸 수도 있었다.
덕분에 벨츠머츠는 어디로든 편히 이동할 수 있게 됐다.
봉고차나 타고 다니던 때에 비하면 정말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흐음.”
거기에 한서현 본인 또한 많이 성장했다.
“왜요?”
“아니, 너 꽤 몸도 좋아졌다 싶어서.”
그래도 몇 달 정도 꾸준히 운동해서인가. 확실히 몸이 탄탄해졌다. 여전히 자세는 조금 구부정했지만, 근육이 제법 잘 잡혀 있었다. 제법 식스 팩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생겼고.
옆에 대조군인 차송진이 있으니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
“처음에는 쟤처럼 바들거리기나 했는데.”
“아니거든요?”
“큭.”
우리의 말을 들은 것인지, 차송진이 발끈했다.
“비웃지 말라고요!”
“알겠습니다요.”
삐치기 직전으로 보이는 차송진에게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왠지 내 사과를 받고 나서 더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글쎄, 알 바냐.
나는 한서현에게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을 던져 주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창으로 적을 상대하는 걸 배워 볼까나.”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걸 넘어서서 나는 한서현에게 창, 그러니까 봉을 다루는 걸 가르치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그럴 일이 생기지 않겠지만, 유사시에는 스태프를 이용해서 적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스켈레톤의 움직임은 소환자의 전투 경험에 크게 의지한다. 한서현 본인의 전투 센스가 좋아질수록 스켈레톤 또한 조금 더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참 땀을 뺀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그 하얀 거 좀 불러 봐.”
내 말에 한서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건 빼기로 했잖아요.”
“응, 그건 그래도. 첫 소환물은 성장한다고 했잖아. 혹시 모르지.”
“하지만…….”
“한번 꺼내 봐.”
내 말에 한서현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장 스켈레톤을 꺼냈다. 나는 그 스켈레톤을 뻔히 바라보았다.
나를 두들겨 팰 때는 언제고, 제법 조신한 척을 하고 있잖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덤벼.”
내 검 아래 스켈레톤은 형편없이 부서졌다.
‘뭐지.’
전에 봤던 그 움직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안 된다고 했잖아요.”
한서현의 말에도 나는 여전히 그 스켈레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분명 그날 밤, 스켈레톤은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흠, 확실히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그 ‘뭔가’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스켈레톤의 재생성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차송진을 굴렸다.
간단한 맨몸 운동만으로도 차송진은 슬라임처럼 녹아내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신음하는 차송진을 바라보며 나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깐 쉬고 있어.”
“끄으. 영원히 쉬고 싶은데.”
“영원히 우리랑 같이 있고 싶은 건 아니라면서?”
“으!”
나는 차송진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으휴, 언제 사람 꼴이 될지.”
걱정이다, 걱정.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내 옆으로 다가온 한서현이 말했다.
“왜 굳이 붙잡고 있는 거예요. 우리 팀에 받지도 않을 거라면서.”
“그러는 너는 쟤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데?”
차송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한서현은 저 녀석을 싫어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동생이 생긴 첫째의 마음인가 했지만 단순한 질투 정도로 퉁치기에는 한서현의 미움은 제법 깊었다.
“우릴 괴물 보듯이 보잖아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