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07화 (207/352)

제207화

#58 사기꾼과 거짓말쟁이 (2)

“가 봐야 한다는 사람 어디 갔나.”

니키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하필이면 제안이 들어왔던 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직후일 게 뭐람. 위층에서 끝내주는 판이 열릴 거라는 말에, 나는 추잡하게 내가 뱉었던 말을 되담았다.

다행히 니키는 눈치를 주면서도 순순히 나와 동행해 주었다.

나는 파리 대왕에 빙의한 것처럼 앞발, 아니, 손을 싹싹 비벼댔다.

“이럴 때 아니면 제가 어떻게 여기 오겠습니까.”

━못 오기는, 올 계획을 다 세워 뒀으면서.

‘그 계획대로였다면 기껏 번 돈을 주변에 다 뿌려대야 했을 테니까요.’

나를 대신해 니키가 호구로 소문난 게 이 얼마나 다행인지.

내 간신배 같은 행동에 니키는 눈을 찡그렸다.

“어울리지도 않는 짓은.”

아, 지금 얼굴로는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던가. 매번 주의해야지 하면서도 까먹는다니까.

내가 니키를 얼마나 털어 댔길래 공식 호구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편하게 됐다.

리아는 판에 끼지 않겠다며 빠졌다.

“카드를 보면 이제 머리가 다 아파지는 것 같아.”

리아의 말에 니키는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도 그녀를 보내 주었다. 나머지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판은 정말로 ‘크다’고 했으니까.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니키가 슬쩍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난 큰 판을 좋아하지 않아.”

“그럼 왜 가는 겁니까?”

“그만큼 실력자가 모일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니키가 눈을 찡긋거렸다.

“거기에서도 그쪽의 마법 같은 포커페이스가 통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흐음, 결국 나를 구경하러 가겠다는 거네요.”

“하하! 말이 그렇게 되네?”

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면, 니키도 그 제안을 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네가 저 여자를 사기도박에 끌어들인 셈이구나.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저와 있는 한은 사기도박에 돈을 뜯길 일은 없다는 거죠.’

━그래?

‘되도록 오늘 안에 승부를 볼 생각이거든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오늘 안에 모든 걸 끝낼 생각이다.

━어떻게?

‘일단 어떤 식으로 그놈들이 사기를 치는지부터 알아야겠죠.’

나도 사실 자세한 건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사람들에게 사기 치는 일행이 있다는 것뿐. 그러니 일단은 부딪쳐 볼 생각이다.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늘 자신감에 넘친다니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죠.’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직원이 우리를 게임을 할 공간으로 안내했다.

밑에 있던 게임룸도 꽤나 고급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감탄부터 나왔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대리석 조각들을 지나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문을 열자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놓인 포커 테이블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섯 명의 사람과 한 명의 딜러가 그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마지막 게스트가 오시는군요.”

딜러 유니폼을 입고 있던 30대 중반의 흑인 남자가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의 게임을 주관할 딜러, 모지아노라고 합니다. 편하게 모지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모지아노라고 자신을 소개한 딜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기이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에서 본 얼굴인가? 하지만 낯이 익지는 않았다. 얼굴이 익숙하다기보다는, 눈빛 쪽이 익숙했다.

“오늘 같이 게임을 하실 분들입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요?”

“난 패스, 새삼 서로 지갑이나 털어먹자고 모인 건데 통성명을 하는 악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50대 중반의 남자가 손을 흔들며 자신의 차례를 넘겼다. 그 옆에 있는 40대 중반의 여자도 어깨를 으쓱했고, 그 옆에 앉은 30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아, 제 이름은 어거스트라고 해요.”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너드 타입의 남자만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을 뿐이다.

여섯 명 중에서 단 한 명만 이름을 말해 주다니.

참으로 화목한 분위기였다. 뭐, 나도 이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다.

이들이 어떻게 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중 몇은 딜러인 모지아노와 한편일 게 분명했다.

아직까지는 이 중에 누가 사기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니키. 초보 포커 플레이어예요. 사실 여기에 와도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테이블에 앉은 니키가 모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참 활발하다고 해야 할지. 낯을 안 가린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게도 그 인사를 받아 준 것은 뿔테안경의 남자, 어거스트뿐이었다.

“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끝낸 니키가 내게 눈치를 줬다. 아, 내 차례군. 마음 같아서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개를 생략하고 싶지만, 물주께서 눈치를 주니 이거 어쩔 수 없군.

그러고 보니 니키한테 내가 이름을 알려 줬던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일단 가장 무난한 대답을 하는 게 정답이다.

“……스미스입니다.”

내 소개에 니키가 얼굴을 구겼다.

“진심?”

“진심이고, 뭐고. 이게 제 진짜 이름입니다만…….”

뭐, 내가 이게 진짜 이름이라고 우기면 어쩔 텐가.

어쨌거나 통성명이 끝나고 딜러의 설명이 이어졌다.

게임은 텍사스 홀덤. 기본 판돈은 이천 달러였다. 총 여덟 명이니, 판을 시작하면서부터 무려 만육천 달러가 깔린다는 소리였다.

얼마 안 되어 보일 수도 있지만, 몇 번 배팅을 지나면 판돈이 순식간에 불어나는 포커의 특성상,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니었다.

재수가 없으면 몇 판 만에 그동안 번 돈을 다 털어 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설명을 대충 흘려들으며 레이에게 말했다.

‘이 방안에 뭔가 이상한 게 보이면 말해 줘요.’

━이상한 거라니?

‘아티팩트라거나, 그런 거요.’

이곳에서도 아래층과 같이 우리 모두 팔찌를 끼고 있었지만, 이 팔찌를 신뢰할 수는 없다.

━그 팔찌 말이다. 어떻게든 먹통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걸 왜 지금 말합니까?’

━안 물어봤으니까?

‘……이따 신호를 주면 부탁합니다.’

본체가 아티팩트인 만큼, 레이는 아티팩트의 제어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박상철의 마검을 조사하는 데에는 영 쓸모가 없었지만, 이럴 때는 꽤나 든든하단 말이지.

‘방 안에 딴 건 없고요?’

━잠시만. 한 번에 하나씩만 시켜라. 아주 정신이 없다니까.

‘예에.’

까칠하다니까.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나는 레이의 말을 기다렸다.

━확실히 이 방, 이상하긴 하구나.

‘뭐라도 찾았습니까?’

━여기저기 아티팩트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다. 지금 네가 앉은 의자와 테이블까지도.

아티팩트를 이용한 사기일 가능성도 있겠는데.

━흠, 뭔가 더 파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잠깐 집중 좀 해 보마.

레이가 답을 알아 올 때까지, 나는 일단 몸을 사리기로 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딜러는 우리에게 패를 나눠 주었다.

첫 배팅을 시작한 건, 어거스트였다. 어거스트는 조심스럽게 툭툭 테이블을 두드렸다.

체크, 돈을 올리는 일 없이 일단은 순서를 넘기겠다는 뜻이었다. 연이어 다른 사람들 또한 체크를 콜로 받았다.

그렇게 순서가 돌아 니키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니키가 입을 열었다.

“저…… 여기는 떠들면서 하면 안 되는 분위기?”

입을 닫고 있는 분위기가 불편했던지 니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떠들면서 하면 집중이 안 되지 않나?”

50대 남성은 니키의 말에 곧바로 퉁을 놓았다.

“이렇게 삭막하게 게임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말이죠. 그래서 물어봤잖아요, 입을 닫고 있어야 하냐고.”

“저희 카지노에서는 게임 중 대화를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화를 통한 그 어떤 부정행위도 용납하지 않으니 그 점만 주의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부정행위라니, 절대 안 그래요. 그냥 심심해서 떠들어 대는 건데, 뭘.”

니키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을 받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와, 다들 진짜 진지한 분위기네.”

재미없어, 그렇게 투덜거린 니키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하프!”

침묵에 열이 받은 니키가 급발진으로 몇 번 판돈을 뻥튀기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첫 세 판은 무난히 흘러갔다.

나는 적당히 사리며 눈치를 봤고, 니키는 내게 내숭은 그만 떨라며 옆구리를 툭툭 쳤다.

“또 그렇게 수줍은 척을 하려고?”

“말했잖아요, 나는 슬로우 스타터라고.”

첫 세 판까지는 사기꾼이 나타나지 않았기도 했고.

내가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네 번째 판부터였다. 네 번째 판은 시작부터가 이상했다. 패를 받은 이들의 행동이 보다 명확하게 보였으니까.

긴장이 풀려 속에 담긴 감정이 드러난 걸 수도 있겠지만, 아니. 확실히 행동과 표정이 눈에 띄게 커졌다.

나는 니키의 행동을 살폈다. 니키는 왼쪽으로 눈을 굴렸다. 구린 패를 손에 들었다는 뜻이다.

나는 적당히 주변 사람들과 동화하면서 순서를 보냈다.

패가 드러났을 때, 그리고 승자가 밝혀졌을 때 나는 이 판의 오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제, 제가 이겼네요.”

소심한 얼굴로 패를 내민 어거스트가 만들어낸 조합은 겨우 투 페어.

“아, 이런!”

안타깝다는 듯이 패를 내려놓고 입술을 삐죽인 니키의 손에 쥔 카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조합은 스트레이트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투 페어가 스트레이트를 이기는 이 상황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니키 또한, 좋은 패를 들고도 단 한 번도 좋은 패를 든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기도 했고…….

답은 하나.

지금 이들의 눈에는 카드가 아예 다르게 보이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때 마침 레이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알아냈다. 여기에 설치되어 있는 아티팩트는 모두 사람들의 인지를 흐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어.

‘인지를 흐리는 역할이라고요.’

━그래. 술에 취한 것처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거지. 하지만 아티팩트 하나로만 이들을 속이려 들었다면, 위화감이 장난 아니었을 거야.

‘그렇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니까요.’

고로 아티팩트는 어디까지나 보조다. 사람들을 홀려 정신을 흐리게 하는 주체는 따로 있다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중에 누가 능력을 쓰고 있는가. 나는 어렵지 않게 그 주체를 찾을 수 있었다. 모두의 카드에 접근할 수 있으면서, 카드를 오픈할 때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액션을 할 때마다 모두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바로 딜러인 모지아노 말이다.

━하지만 범인이 저놈이라면, 어떻게 능력을 쓰는 거냐? 팔찌는 가릴 수 있어도 눈동자를 가릴 순 없을 텐데.

각성자의 경우에는 능력을 쓸 때 동공의 색이 변한다. 그걸로 상대방이 능력을 쓰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설록진의 경우에는 강력한 세뇌로 제 눈과 마주친 모든 대상의 기억을 통제해 버렸고, 나의 경우에는 색의 변화가 도드라지지 않아 티가 나지 않는 편이었다.

일단 딜러의 경우 전자는 아니었다. 설록진의 동공 색을 내가 똑똑히 확인한 것처럼, 놈의 동공 색이 변했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

━네 놈처럼 동공이 검게 물드는 타입인가 본데.

‘아니면, 특수한 렌즈를 낀 것일 수도 있고요.’

━렌즈?

‘범죄자들을 위해 나온 특수한 렌즈를 사용하면 재능을 쓸 때 나오는 빛을 차단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그 렌즈를 착용하면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텐데 용케 멀쩡한 척을 하고 있군요.’

나에게 통하지 않은 걸 보면 놈이 쓰는 재능이 어떤 종류인지도 확실하다. 인지를 흐리는 아티팩트를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 장벽을 낮추고, 사람들의 머릿속을 멋대로 조종해 눈앞에 놓인 패를 다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능력이겠지.

암시라든가, 세뇌. 혹은 그 비슷한 것들.

‘차라리 눈보다 손은 빠르다면서 정통 사기를 치는 놈들이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나는 말이지, 누군가 이런 식으로 남의 머릿속을 건드리는 게 정말로 싫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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