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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43화 (243/352)

제243화

#65 죄의 무게 (5)

다음 날, 토요일 아침 일찍 홍난희의 사무소로 출근한 도채희는 홍난희에게 해야 할 일을 전달받았다. 목록은 한없이 길었다.

“못하겠어요?”

홍난희의 말에 도채희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 부탁해요”

도채희는 그곳에 서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확인했다.

김현기, 그러니까, 이번 일의 피의자인 그를 인터뷰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게 가장 먼저 할 일이라는 건 말이 되지만…….

문제는 아직 도채희가 그 친구를 직접 마주할 준비가 안 됐다는 거였다.

“그, 그래도 그 친구 인터뷰는 직접 해 보셔야…….”

“말했잖아요, 시간이 없다고.”

여전히 서류에 코를 박고 있는 홍난희는 도채희의 질문에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워낙 바빠 보이는 터라 말을 더 붙일 수도 없었다.

“그, 이미 호산 씨 인터뷰도 있고…….”

“하기 싫으면 그만둬도 된다니까요?”

“누가 하기 싫대요?”

“하도 이래저래 말을 덧대길래 하기 싫은 줄?”

홍난희의 말에 도채희는 앓는 소리를 냈다. 말로 변호사를 이기려 드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만 체감했을 뿐이다.

도채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알겠어요, 만나러 갈게요.”

그 말에 홍난희는 쓱 고개를 들었다.

“인터뷰에 필요한 내용은 거기 정리해 뒀으니까 확실히 듣고요. 녹음기도 챙겨 뒀으니까 확실히 녹취 따고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홍난희가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저걸로 변장하고 가요.”

“변장이요?”

“응.”

홍난희가 가리킨 곳에는 서류 가방과 두꺼운 선글라스, 그리고 남색의 코트가 있었다.

“인식을 흐리는 아티팩트예요. 경찰이라며. 변호사 편으로 인터뷰하러 간 거 들키면 그쪽이 곤란해질 거 아녜요?”

“……변호사가 이런 아티팩트는 왜 가지고 있는 건데요?”

“필요할 때가 있어서요.”

도채희는 구석에서 아티팩트를 챙겼다. 홍난희가 눈을 찡긋했다.

“한 번 만나고 와요, 그 친구.”

* * *

“김현기 씨 사건을 담당하게 된 변호사입니다.”

“변호사요?”

구치소에 있던 남자는, 그 녀석에게 변호사가 있었나 하는 얼굴로 도채희를 바라보았다.

“의뢰인을 만나고 싶은데요.”

“아, 알겠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남자는 도채희를 알아보지 못했다.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굴리며 도채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쪽으로 오시죠.”

구치소는 차가웠다. 다른 각범부 건물과 똑같은 구조, 똑같은 페인트, 똑같은 조명을 썼는데도. 이상할 만큼 뼛속에 소름이 돋았다. 도채희는 뚜벅뚜벅 복도를 걸어 김현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 끝나시면 여기에 있는 인터폰으로 알려 주세요. 저희 직원이 나올 겁니다. 모든 과정은 CCTV로 촬영되니, 주의해 주시고요.”

직원은 ‘허튼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라’는 듯 도채희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도채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김현기는 각성자 전용 구속구를 찬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김현기에게 도채희가 말했다.

“아, 안녕?”

“……누구신데요?”

“나는 홍난희 변호사 사무실에서 온 사람이야. 이번 사건에서 널 변호하러 왔어.”

“저, 저를요? 왜요?”

김현기의 눈에는 경계와 의심이 가득했다.

“정호산, 이라는 사람 알지?”

“그 사람이 보내서 왔어요?”

그 이름에 경계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 잠깐 사이, 정호산은 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 거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난 너를 도울 거야. 무죄가 나올 거라는 말은 못 해도, 최선을 다해서 네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네 목소리를 전할 수 있게 할 생각이야.”

그 말에 김현기의 눈동자가 떨렸다. 꿀꺽 침을 삼킨 도채희가 서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 안에서 차근차근 준비된 서류와 녹음기를 꺼낸 도채희가 김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천천히 한번 말해 볼까?”

* * *

김현기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도채희는 홍난희가 시킨 임무를 차근차근 해냈다. 증거실에 들러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고 현장 주변에 있던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모든 일과를 끝낸 도채희는 홍난희 사무소로 향했다.

이미 저녁을 넘어 밤이 가까워진 시간.

홍난희는 여전히 그 좁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퇴근 안 하세요?”

“말했잖아요, 바쁘다고.”

“이, 이거 드시고 하세요.”

도채희의 양손에 들린 편의점 봉투를 본 홍난희가 헛웃음을 지었다.

“뭐예요, 뇌물?”

“그냥, 이 시간까지 뭐 안 드시면서 일하실 것 같아서요.”

빼빼 마른 홍난희의 체격을 보니, 당연히 끼니도 거르고 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깨를 으쓱인 홍난희가 도채희의 손에서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래서 어땠어요?”

홍난희의 질문에 도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양강장제를 홀짝이며 홍난희가 물었다.

“일일 변호사로 일해 보니까, 어떻냐고요.”

“그게…….”

도채희는 눈동자를 굴렸다. 뭐라고 할까.

“되게 많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경찰로 일할 때하고.”

“어디가, 어떻게?”

그 질문을 던지는 홍난희는 이미 그 답을 대충은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거다. 이 꽉 막혔던 경찰인 도채희가, 무슨 말을 할지. 도채희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가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인터뷰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피의자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현장에서 증인들이랑 대화를 나누는 것도. 늘 내가 하던 일이니까.”

하지만 실제로 겪어 보니 많은 게 달랐다.

‘경찰’ 도채희의 인터뷰는 언제나 공격적이었다. 때와 상황도 가리지 않고 도채희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왜냐? 그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사건 해결이었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이라는 건, 곧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거였고 그 외의 나머지는 전부 무시했다.

하지만 변호사의 인터뷰는 달랐다.

“많이 듣게 되더라고요. 그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고.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의 상황에 이입하고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경찰하고 달리 우리 변호사는요, 무조건 의뢰인 편이 되어야만 해요. 그 사람의 편에서 그 사람의 선택을 생각해 보고,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면서, 그 사람을 변호해야 하니까.”

경찰 도채희는 김현기의 의도와 상황을 깊게 이해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변호사로서는, 그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도채희는 몇 시간이고 김현기의 말을 들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왜 여기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이미 정호산을 통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직접 김현기와 마주하며 들은 그의 이야기는 더욱더 처절했다.

그 인터뷰가 끝나고, 도채희는 경찰로서 자신이 했던 인터뷰를 돌아봤다.

“경찰로서 저는 최악의 인터뷰를 했어요. 사건을 해결하겠답시고, 시한부 환자의 병실로 쳐들어가서 대답을 요구한 적도 있었죠.”

강이신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한조희의 병실로 쳐들어간 날. 도채희는 한조희에 대한 조금의 예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병실을 지키고 있던 한서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자신을 막아서던 한서현에게 자신이 뭐라고 했더라.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꼭 본인에게 확인해 봐야 하는 게 있어서…….”

그 말 그 어디에도 한조희에 대한 안타까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사건 해결을 위해서, 시한부 환자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려 했음에도 도채희의 행동에는 그 어떤 미안함도 없었다.

한서현에게 한 소리를 들은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급한 마음에 실수를 했네요. 그럼 질문지를 남겨 드리고 갈 테니 혹시라도 나중에 답을 해 줄 수 있다면 부탁드려요. 그 나쁜 새끼를 꼭 잡고 싶거든요.”

지금 그때의 자신을 평가하자면 정말…….

‘최악이잖아.’

조금의 배려도, 뭣도 없이. 그냥 범죄자를 잡는 데에만 혈안이 된 사람. 그런 주제에, ‘피해자를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변호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정말 피해자를 위해서, 범인을 잡고자 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정의로운 나에 취해 행동했던 걸까. 정말로 피해자를 생각했다면, 그런 식으로 굴면 안 됐던 거잖아요, 저.”

도채희의 말에 홍난희가 가볍게 말을 던졌다.

“변호사 일도 아주 못 해 먹을 건 아니죠? 이렇게 배울 것도 있으니까.”

“그…….”

“여태까지 변호사는 다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서, 그쪽.”

홍난희의 말에 도채희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 그게…….”

“왜 범죄자를 옹호하는 걸까, 왜 감방에 보내야 할 놈들을 빼내 주는 걸까. 그래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나도 가끔은 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변호하는 게 옳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게 말한 홍난희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아니, 가끔이 아니지. 그 생각은 맨날 하지.”

“변호사님도, 그런 생각을 합니까?”

“하하, 도채희 씨. 애초에 내가 왜 잘나가는 로펌 때려치우고 여기에서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있는지 알아요?”

그 질문에 도채희의 눈동자가 떨렸다. 확실히 홍난희의 이력을 조회했을 때, 최고의 로펌에서 보낸 몇 년의 경력이 있었지. 도채희 또한 궁금했다. 홍난희가 왜 그 로펌에서 나와 개인 사무소를 차렸는지.

하지만 홍난희를 보고 겪으니,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약자를 돕기 위해서 나오신 거 아닌가요? 이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홍난희는 도채희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헉, 헉! 하하, 아니요. 나도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이 꼴이 됐으면 좋겠지만 정반대예요. 내가 거길 나온 건 성질이 더러워서예요.”

“예?”

“응, 난 성질이 더러워. 그래서 못 참겠더라고요. 더러운 일들.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그냥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딱 한 번만 참으면 행복한 인생이 펼쳐진다는 거를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 성질머리로는 참아지지가 않아서. 그래서 때려치운 거예요.”

“어…….”

“뭐, 그럴싸한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그냥, 못 봐 주겠더라고요, 역겨워서.”

홍난희는 그때 일을 회상했다.

“딱 눈 한 번만 감고 참으면 되는 거였는데, 아, 그 순간이 너무 후지게 느껴지는 거야. 그 사람들도, 그 옆에서 알랑거리면서 어떻게든 그 인간들의 눈에 들려는 나도. 그냥…….”

홍난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왔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봤던 역겨운 인간들한테 한 방 먹여 주려고 했지. 그 사건, 반대 변호인을 내가 맡았거든.”

“……어, 어떻게 됐는데요?”

“어떻게 되긴. 그냥 깨져 버렸지.”

“예?”

“뭐, 그럼 이게 무슨 ‘그래서 주인공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인 줄 알았어요? 최고라고 불리는 변호사 여덟 명이 달라붙은 재판을 무슨 수로 나 같은 초짜 변호사가 뒤집어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난 성질이 더럽다고. 질 싸움인 게 뻔히 보이는 데도, 들이박아 봐야겠는 걸 어떡해?”

결국 졌고, 그로 인해서 매장당하다시피 했음에도 홍난희는 그 일을 후회하진 않았다. 후회하긴 했다. 조금 더 준비를 잘할걸, 조금 더 입을 잘 털어볼걸. 하지만 그날 그 회사를 나와 그 사건을 맡았던 일을 후회하진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힘이 없으면 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홍난희가 말을 이었다.

“근데, 참 세상이 뭣 같은 게 힘이 없을수록 착하게, 예쁘게 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 안전세만 해도 그래. 착하게 굴면? 그냥 나가서 죽어야 해. 착하게, 서서히, 죽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지X을 해야지. 나 죽겠다고, 이렇게 되면 나 살 수가 없다고.”

홍난희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억척스럽고, 목소리가 컸다. 전부 살기 위해서 그렇게 된 거다.

“힘을 가진 놈들이나 착하게 살 수 있지. 왜냐, 자기 일대로 모든 게 다 술술 풀리는데 뭐하러 얼굴을 구기고 목소리를 높이냔 말이에요. 그냥 우아하게 웃으면서 자기 할 일이나 하면 되는데.”

안 그래요?

그렇게 묻는 홍난희에게 도채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

그녀 또한 엄밀히 말하면 ‘착하게’만 살아온 세계의 사람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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