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50화 (350/352)

제350화

#89 이이제이(以夷制夷) (1)

오승우는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나마 에드워드만 미국에 왔을 때까지는 참을 만했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감정을 뒤로 밀어 놓는다면, 에드워드만큼 뛰어난 루키를 새로 관리하게 됐다는 사실 만큼은 오승우에게 그다지 손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에드워드가 제게 먹이는 꼽을 견뎌 내야만 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손해는 아니었다.

그 일 이후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에드워드는 완전히 달라졌다. 에드워드의 잠재력은 B급에 불과했지만, 그 잠재력이 무색할 만큼 에드워드는 실제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뽐냈다. 능력을 활용하는 것만 보자면, B급이 아니라 S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잠재력이란, 문자 그대로 잠재력에 지나지 않는대도 B급에 불과한 능력을 이렇게나 활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몇 번의 테스트 끝에 오승우는 자신이 오판한 게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테이카 정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밑 라인까지는 넣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에드워드는 대단한 헌터가 되어 있었다.

툭하면 자신에게 눈치를 주는 게 좀 그렇긴 했지만……, 어쨌거나 미래가 창창한 루키니 에드워드‘까지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달랐다.

오승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사 온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받아 든 첸륜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감자튀김도 서비스로 받아 오라니까.]

통역사에게서 그 말을 전달받은 오승우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샐러드 집에서 감자튀김을 어떻게 서비스로 줍니까?”

[세계 최고의 에이전시라면서 그 정도도 받아 내지 못하는 건가? 실망이네. 중국에서는 뭐든지 다 가능했는데 말이지. 역시 미국 놈들이란, 정이 없어. 정이.]

오승우는 그 말에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난 미국 놈이 아니라 한국 놈이다만. 한국인한테 감히 정을 운운해?’

하지만 오승우는 프로였다. 오승우는 당장 그 길로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해 감자튀김을 사 왔다. 하지만 막상 그 감자튀김을 받은 첸륜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배가 찼는데, 감자튀김이라니. 튀김 종류는 뒀다가도 못 먹는데, 센스가 참 없군.]

그 말에 오승우는 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들이 이어졌다. 아니,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욕실에 붙어 있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오승우는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올라가 있던 올림머리는 어디로 가고,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에 양복 위에 입은 앞치마까지. 모든 것이 오승우가 그렸던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승우는 그 즉시 손에 들고 있던 빨랫감을 집어던지고 입고 있던 앞치마도 풀어헤쳤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데!”

다른 것도 아니고 손빨래라니! 세계 최고의 에이전시로 불리며 빛나는 삶을 살아가던 오승우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모였다.

“그래, 손빨래 좋다고. 세탁기는 영 미덥지 않고 전자파가 나오는 것 같다는 이상한 변명도 괜찮아. 근데 그걸 나한테만 시킨다고?”

오승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다른 건 그렇다고 치고 굳이 ‘오승우’에게만 이 모든 일을 시키는 점에서 악의가 느껴졌다. 원하면 집안일을 담당할 사람을 붙여 준다는 말에도 오승우가 아니면 싫다니, 이게 괴롭힘이 아니면 뭐냐고.

툭하면 자신을 바라보며 ‘아, 역시 유명세가 좋긴 좋아? 이런 대접도 다 받을 수 있고’, ‘아, 이제 나도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꼽을 주는 에드워드도 에드워드였지만, 첸륜 일행의 원초적인 괴롭힘은 도저히 오승우 혼자가 견딜 수준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자존심 때문에 버텨 왔지만, 이건 도저히 그냥 버틸 수준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속을 털어놓고 얘기해 보는 거야. 나를 괴롭히는 이유가 뭔지.’

과거의 잘못 때문이라면 무릎을 꿇고 사과할 생각도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만은 없으니.

오승우는 소파에 앉아 팔짱을 낀 채로 일행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승우는 재빨리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에드워드와 함께 쇼핑을 갔던 테이카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어디에 두고 혼자 돌아온 테이카에게 오승우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에드워드는요?”

“아, 애들이랑 놀이공원에 좀 다녀온대요.”

그쪽과 한판을 벌이는 건 뒤로 미뤄야 하는 건가. 오승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잘됐네요.”

최근, 테이카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마다 호되게 당했던 오승우는 그 발언에 바짝 긴장했다. 오승우의 긴장을 알아채지 못한 테이카는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미국에 회사를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씨X.]

그 말을 듣자마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C, 봐아?”

“아니, 잠깐 말이 샜어요. 갑자기 회사는 왜요?”

“그냥 아는 사람이 물어보더라고요. 여기에 제약 회사를 하나 세우고 싶다나.”

오승우는 그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라고? 네가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친구도 없으면서. 그 인간이다, 그 인간.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그 빌어먹을 놈의 벨츠머츠일 게 분명하잖아!

테이카가 자신 모르게 뒤로 그놈들이랑 연락하고 있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에드워드 또한 그놈의 수작으로 이곳에 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중국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모를 수가 있겠냐고.

하지만 오승우는 참았다.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에드워드에게는 자신이 잘못한 게 있으니까, 숙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 뭐? 사업을 하고 싶어? 거기에다가 제약 회사라니. 그놈들은 빌런이잖아! 여기에서 마약 산업이라도 하고 싶어진 거냐고.

할 말을 잃어버린 오승우의 얼굴을 살핀 테이카가 조심스레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미스터 오가 바쁘면 내가 따로 알아보고요.”

“아니, 그럴 순 없죠.”

“응?”

“당신을 관리하는 게 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면 다들 이렇게 생각할 거 아닙니까. ‘그렇게 완벽하게 사람을 케어하는 것 같더니만, 결국 테이카가 따로 일을 알아보게 하네?’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돼요.”

첸륜이나, 에드워드의 관리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테이카만큼은 안 된다.

“하…….”

오승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테이카를 관리했는데. 이상한 친구를 만나 잘못된 길로 빠지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며 인성이 괜찮은 인간들로만 주변을 채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바라던 대로 테이카는 아주 바른 인성으로 자랐다. 벨츠머츠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단 한 번도 오승우의 속을 썩인 적도 없었다. 가끔, 오지에 있는 게이트를 공략하겠다며 딴 길로 빠지던 때를 빼고는 말이지.

이제 겨우 세계 최고의 헌터로 성장시켜 꿀이나 빨까 했는데…….

하지만 미워도, 그래, 미워도 테이카는 ‘테이카’다.

오승우는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말해 봐요, 내가 다 알아봐 줄 테니까.”

제약 회사를 세워? 제약 회사는 무슨, 분명 마약을 만들려고 그러는 걸 거면서! 어림도 없다.

‘신고해 버릴 테다.’

* * *

며칠간, 나는 김석훈의 곁을 지키며 정보를 수집했다.

사실, 나는 김석훈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김석훈은 내가 설록진의 밑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에 설록진에게 정리당해 버렸으니 말이지.

그래도 간혹 설록진은 내게 김석훈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했다. 자신을 정치인으로 키워 준 게 바로 그 사람이라면서. 어쩌면 자신은 그에게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말이지. 하지만 그 말들에 자신의 스승을 생각하는 애틋한 감정 같은 건 없었다.

하긴, 설록진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석훈의 일상은 간단했다.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산책. 7시에는 집으로 돌아와 가볍게 차를 마시며 아침 뉴스 확인. 7시 30분에 가족들 모두와 둘러앉아 아침 식사. 8시에 학교에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그때부터 아침 일과 시작. 열한 시 반에 다시 산책 후 열두 시에 점심. 그 뒤로 다시 오후 일과. 오후에는 특히 유력 정치인들과 재계 사람들과의 만남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김석훈의 모든 일정은 저녁이 되기 전에 끝났다.

왜냐. 저녁에는 그 녀석이 돌아오거든. 김석훈의 ‘하나뿐인’ 아들, 김영호 말이다.

내가 김석훈을 따라다니면서 가장 놀란 점은 김석훈이 정말로 자신의 아들인 김영호를 아낀다는 거였다. 그래,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김석훈은 김영호를 아끼고 사랑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은 꼭 아들과 같이 식사했고 그 식사 시간 동안에도 아들과 다정히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이 완벽한 좋은 아버지랄까.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 아들보다는 손자로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고서는, 김영호와 김석훈의 사이는 무척이나 좋았다.

금찬명은 그렇게 버려 놓고서, 아니, 죽이려 했으면서…….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길래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부모라는 게 있어 본 적이 없어서 가족들 간에 사랑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저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애초부터 금찬명을 제 아들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은 게지.

‘하지만 살려 뒀잖아요. 저 녀석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달에 한 번은 찾아갔고…….’

━아들로 생각해서 챙겨 준 게 아니야. 유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남겨 둔 거지. 정말로 금찬명을 제 아들이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금찬명에게 자기가 아비인 걸 감추지 않았겠지.

‘아.’

애초부터 금찬명을 아들로도 생각하지 않은 건가.

김석훈은 빌어먹을 아버지였다.

‘여기에서 본 건 금 박사한테 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버지가 자길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야,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제 동생이 그 사랑을 전부 받고 있었다고 하면, 속상할 것 같거든요.’

차라리 김석훈이 부정이라는 걸 모르는, 매정한 아비였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는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였고, 그래서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금 박사는 복수 따위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쁜 짓을 했으면 그만큼 벌을 받는 게 맞지.

똑똑, 나는 김석훈의 방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퇴근 안 했나?”

“네,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서요.”

“으응?”

김석훈의 말에 나는 준비했던 한 방을 던졌다.

“설록진 의원이 전 대통령님의 뒤를 캐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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